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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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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본문 : 시편 50:22~23

미국 남북전쟁 때 어느 무명의 한 병사가 드렸다는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저에게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자 건강을 구했으나
  당신은 그보다 더 선한 일을 하도록 저에게 병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을 위해 부귀를 구했으나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저에게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만민으로부터 우러러 존경받는 자가 되려고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저를 비참하게 하시어 당신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삶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구했으나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비록 제가 당신께 기도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주시었으니
  주님,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또 이런 기도도 있습니다. "어느 환자의 고백"이라는 기도입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 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나게 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은 이 두편의 기도시를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과연 우리도.. 나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며...
원하는 기도와 정 반대로 진행되어도 감사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질병과 고독과 실패의 터널의 끝이 안보인다고 할찌라도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감사하며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바로 이것이 참다운 신앙인의 마음이며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기에 비록 삶의 형편은 어렵고 힘들어도
오늘이라고 하는 현실을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매일매일 불평과 불만, 원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것입니까?
왜 그들은 상황은 똑 같은데 날마다 불평 불만 원망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본문 22절에도 언급되어 있다시피...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면서도 살았습니다.

기도도 하고 때론 금식도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항상 입에서 감사하다는 소리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들려준 어리석은 부자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6-21).

그는 부자(富者)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 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렇게 생각합니다.

  곡식 쌓아둘 곳도 없으니 어찌할꼬..

그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부(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창고 걱정과 창고 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 많은 재물을 하나님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없고... 이웃을 향한 동정도 자비도 긍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리석은 부자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왜 그렇게 어리석은 부자가 된 것입니까?
왜 그는 그렇게 많은 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재산과 생명과 앞날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만 있었더라면!!
그래서 한치 앞이라도 내다보며 살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야기 끝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그 많은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세가 되면 감사치 아니하는 때가 온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3:1-2)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이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다음에 나와 있는데...
하나님을 잊고 살면... 하나님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좀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마는... 여하튼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 시편 50편의 제목을 보면 아삽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성령님께서 아삽을 감동하여 쓰게 하신 시적(詩的)인 말씀으로서
레위인이며 다윗 시대의 찬양대 대장인 아삽을 통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삽이 누군가 하면
그 집안 그 처지를 생각해 볼 때 도저히 찬양대를 맡을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찬양대장의 일을 하게 한 사람인데
그는 고라(Korah) 족속이었으며 고라 후손이었습니다(역대상 26:1).

고라 족속, 고라 후손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쉽게 요즘 말로 비유해 말해보면
이완용의 족속, 이완용의 후손..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의 가문, 그 후손이로구만.." 이렇게 생각하듯...
고라 족속, 고라 후손...하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모세에게 반기를 들어 반란을 주도한 인물의 후손이란 뜻으로서
그들이 그렇게 민족의 지도자 모세에게 반란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으로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이 다 죽고 말았는데...
바로 그러한 인물의 후손이 아삽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반란군의 족속, 반란군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고라 후손인 아삽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찬양대의 일을 하게 하시며
특히 찬양대장의 일을 수행하게 하셨는데
이 고라 자손 아삽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사 곧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 감사라는 것입니다.

시편은 총 150편으로 되어있고 또 5권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 중 제2권이 시작되는 42편부터 오늘 말씀인 49편까지 쓴 기자가 누군가 하면
바로 이 고라 자손으로서... 주로 예배 찬양 기도에 대한 말씀을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제사의 기초, 예배의 기초를 다시 새롭게 다루고 있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아삽은 이렇게 말합니다. 1절입니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왜 부르신 것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절입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아삽 앞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른 제사, 바른 예배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라고 하는 행위, 예배라고 하는 행위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에 제물도 있었습니다. 헌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기초 즉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 그 자체에 대하여서는
책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9절에도 있듯 제사에 있어서의 제물은 수소나 수염소 등이 제물로 쓰여지는데
제물은 제물로서 당연히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망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제물에 제물 드리는 자의 마음이 묻어 있느냐?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물 드리는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고 있느냐?
이것을 묻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8절)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4절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제사를 드릴 때에 감사한 마음으로 제사도 드리고...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이 그 제사도 받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제사로 언약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보십시다. 5절입니다.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아삽을 통하여 예배의 기초... 제사의 기초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하면
제물이나 헌금이 기초가 아니라!!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마음이 기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요즘 저는 기초를 재확인하는 작업,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려도 기초를 다시 쌓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오늘은 우리의 제사 곧 우리의 예배 기초를 재확인하고 분명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드린 사람이 삶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가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입에서는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때
그의 삶이 진정 복된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예가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항상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자신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 있었던 실예(實例)입니다.

이름은 가와가미 기이치, 그는 해군 장교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조국인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나라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고생고생하다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조국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기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날마나 불평과 불만으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보니 밥을 먹어도 소화도 잘 안되고 이상하게 몸도 점점 굳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는 병원을 찾게 되는데 그때 의사는 이런 이상한 처방을 내리게 됩니다.

"하루에 만번씩만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반드시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이상한 처방이었지만 그는 처방에 따라 억지로라도 매일 그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좋은 일이 일어나든지.. 나쁜 일이 일어나든지.. 무조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점점... 모든 사건, 모든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몸이 완전히 새롭게 치유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감사치료요법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의 병도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입니다. 14절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또 오늘의 본문 23절을 보십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의 본문 속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22절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이요
한 사람은 23절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두 사람에게 물론 기본적인 은혜와 자비는 똑 같이 내려 주시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한 행위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다르게 반응하고 계신데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나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을 하나 짚고 마치려고 합니다.
다같이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 하고.. 감사하며 살려고는 하는데
만일 이것이 잘 안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삶을 방해하며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와 욕심입니다.

이 우리의 죄와 욕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감사하지 않게 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려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하나님의 축복 받는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먼저 우리의 죄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사실 죄 짓기 전의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였습니다.
예배하는 존재였고 감사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감사도 잃고 예배를 모르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그는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나님께 다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로 치유와 회복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분명해 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
감사로 예배 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영화롭게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을 통하여 환란 날에 건짐을 받으며 종국적으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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