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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가야할 섬(島) /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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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가 가야할 섬(島)
성경본문 : 합 3:16~19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 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3장 16~19절)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각기 형편과 사정이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허물과 죄가 많아 부끄럽지만 용서하심을 믿고 왔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최선을 다하며
바르게 살려 노력했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저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 일터를 평안케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로워지고 영육간에 치료받는,
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구석 구석에서 예배를 위하여 수고하는
많은 사람들의 땀흘림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병들어서, 낙심하여, 믿음이 없어…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추운 때에 군대에 나가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성도들,
하나님 저들이 어디에 있든지 상함이 없는 은총으로 지켜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 말씀을 들고 섰사오니 종의 입술을 지켜 주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이었습니다.
한해 동안의 삶을 감사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 초신자로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물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일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분들은 오늘 추수감사 예물을 드릴 줄 압니다.
그러나 추수감사 중에는 정성과 최선을 다한 감사가 있었는가 하면
정성과 최선이 느껴지지 않은 감사도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끄러운 낯뜨거운 감사도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오후에는 선교회 찬양잔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잘 하셨습니다.
남선교회가 주관하는 것이라 그랬는지… 남선교회에는 1개의 상도 주지 않아서
남선교회가 좀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참가하지도 않은 선교회에 상을 주었다고 투덜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심사위원을 심방전도사님들을 시키든지, 아니면 제가 하든지…
아무튼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땀흘리심이 헛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옆의 분들과 "오늘 기쁜 자리에서 만나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의 질문
 
 
이 세상은 참으로 요란합니다.
빈곤과 기아 그리고 테러와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납치, 강간, 살인… 등의 범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경기라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우리 기둥교회 주변의 술집에는 밤마다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십억 씩 다발로 돈을 쌓아놓고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일용할 양식 때문에…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착하게 바르게 살려는데 어려움은 더하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잘 살고 번성하는 것 같고…
왜 불의는 사라지지 않고,
왜 의로운 사람들은 계속 고통을 받으며 사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신가요?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렇지만, 세상에 인간이 흩어져 살면서부터…
이런 질문은 하나님을 향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주전 몇 백년 전에도
"하나님, 하나님은 무엇하십니까?"하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때는 지금 이 시대처럼, 불의와 부도덕(악행), 폭력… 등
각종 범죄가 판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하박국이 활동할 때)
여호야김이 유다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악하고, 불경건하고, 반역적이었습니다.
(왕하23:36~24:7, 역대하 36:5~8)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왕하23:37)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36:5)
 
여호야김은 유다에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한 하박국과
동시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책을
칼로 조각 내어서 불살라버린 사악한 왕이었습니다(렘36:23).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 뒤에 그를 둘러싼
부패, 폭력, 탐욕으로 인한 죄악(불의…)…등이 
너무 너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 모든 죄, 패역함,부패를 본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해 묻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잠잠하십니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순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하박국
 
하박국은 문제를 가지고 가슴을 치고, 탄식하고, 주저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향해 앞으로 갔습니다.
동료들과 어울려 수근거리거나 당을 만들어 혁명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데로 짐 싸들고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데 가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답답한 일을 만날 때
하박국처럼 "여호와여",  "하나님이시여…" 하며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박국은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냉담하신 지, 왜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는지, 무관심하신 지…
우리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챤들도 하박국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는데…
눈물로, 금식하며… 죽기 살기로 구했는데…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를 외면하실까?"라는 궁금증에 빠지게 되면
하박국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리이까?(How long?)" 라고…
그리고 "어찌하여(Why?) 이런 것을 보게 하십니까?" 라고….
  하박국은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방관하시며
"왜" 하나님은
● "남을 해치기 위한 악의적인 행동"을 보게 하시나요?
    → 강포 : violence, 하마스(히)
● "허왕된 것"을 보게 하시나요?
    → 간악 : 불의, 악인들이 형통함을 누리는 것,
            억울하게 애매한 일을 당함
● "패역"을 보게 하시나요?
    → 재난 : 착취를 당함
● "파괴당함"을 보게 하시나요?
    →  겁탈 : 가족 관계, 나라가…
● "논란"을 보게 하시나요?  라고 항변합니다.
    →  변론 : 분쟁을 의미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 가운데도
  "하나님, 얼마나 더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는 건가요?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기도는 잘 들어 주시는 것 같은데
          왜 제 기도에 무심하신가요?
  처음 세상을 창조하시던 그 섬세하심은 노쇠해지셨나요?
  아담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그 음성이 왜 내게는 안들리나요?
  홍수를 내리시고,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퍼부으셨던 재앙은 이제 효력을 다했는지요?
  홍해를 가르시고, 다니엘을 건지시고,
  5병2어의 기적을 보이신 그 능력은 이제 쇠잔해 지셨는지요?
  오랜 세월에 만사가 귀찮아지셨는지요?"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들이 아마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이해가 안됩니다. 성경이 이해가 안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해가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다 이해하고 사나요?
모든 것이 이해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십니까?
- 브라질의 한 소녀가 5살에 임신해서 6살 6개월 7일에 출산했다는데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 미국 오레곤의 한 여인이 57세 6개월 15일에
  자연 분만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 18세기 러시아의 한 여인이 평생동안 69명의 아이를 낳아
  67명이 어른으로 성장(두 쌍둥이 16번, 세쌍둥이 7번, 한 명씩 16번)
  모두 39번 해산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 태국의 25살 남자 청년이 62세 할머니와 결혼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조선닷컴, 2003.11.5)
-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힘을 쓰는 일, 돈을 셀 때는 왼손으로 합니다.
  글씨를 쓰고, 밥을 먹을 때는 오른손으로 합니다.
  왜 그러는지...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 하품은 왜 나오는 것인지?
- 배꼽은 왜 아물지 않는지?
- 딸꾹질은 왜 나는지?
- 남자들의 젖꼭지는 왜 있는지?
- 왜 여자들은 수염이 나지 않는지?
- 왜 사람마다 혈액형이 다른지? …
여러분은 이 모든 사실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똑똑하고 잘난 척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155가지 신비" [시아]출판/스테픈 주안, 김영수역 참조)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모르기 때문에… 갖는 경외심(敬畏心),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신비 때문에 더 사모하고
그 신비 때문에 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 지혜로, 이성으로 이해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모든 하나님의 일에 대해
[어느 때까지인지, 왜인지] 설명하지 않으십니까?
설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려 준다 해도
하나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은 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다 믿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다 설명해 준다면 이해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의혹만 늘어갈 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하박국
 
하박국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어>로 사용된 단어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장에 보면 [내가]로 시작합니다.
  <내가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고
    내가, 어느 때까지(How long?), 어찌하여(Why?)>
▶ 그런데 3장에 오면 3절부터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그가, 주께서> 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단계입니다.
[내가]에서 [주께서]로, [내 뜻]에서 [주님의 뜻]으로… 바뀌어 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변화되는 신앙의 단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고
탄식을 하고 주먹을 쥐고 울부짖었으나
결국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압니다.
 
하박국 시작 부분에 보면
- 하박국의 표현은 거의 포기의 하소연이었습니다. 거의 침몰 직전이었습니다.
- 바벨론의 사악함으로 인해 하박국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파괴, 폭력, 불의, 사악함, 잔인함… 등 절망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3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2절).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압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그 엄청난 일을 우리의 날(in our day),
우리의 때(in our time)에 이루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하박국은 3장 3절~15절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심,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굉장하심,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외침에 무관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아 기다려라. 내가 가만히 있는 자가 아니다.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것임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아무 일을 않으시고, 듣지 않으시고,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 여겼던 하박국은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대해 깨닫고 나더니…
16절에 보면 그 하나님에 대해서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고,
두 다리는 물론 몸이 떨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놀라운 전개를 목도한 하박국은 경외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묵상해 보니(과거…)
하나님이 능력의 소멸이 아니라(지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3) 下
  "이 묵시는 정할 때가 있나니…" (2:3) 下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미래).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삶의 조건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찬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하박국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 17절에 보면
→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이 말은 농작물도 축산물도 실패하고, 그야말로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탈취해을 때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입니다.(애2:12, 4:4, 9~10, 5:17~18)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 18절에 보면
하박국은 이런 기막힌 상황, 역경의 때에…
  "잘 견디겠습니다, 잘 참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했습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구원의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고 나니까 하박국은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박국은 깊은 구덩이에서 시작했으나 산꼭대기에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찬양했습니다.
지금 처참한 환경,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 망한 상황이지만
이 환경을 변화시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는 하박국의 믿음을
여러분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3일)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하여 소록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김명환) 목사님의 안내를 받아 소록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배터에서 소록도를 바라보면서 불과 1km 도 안되는 짧은 거리인데
'저 곳에 가면 어떤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내하시는 목사님이 우리 일행을 만나자마자 정신병동으로 안내했습니다.
한센씨병(나병, 문둥병)에 걸린 것만해도 기가막힌데
정신이상까지 된 불쌍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는 병동으로 데려가는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소록도에 간다는 것 자체로도 불안인데...
정신병동이라니...
그 목사님이  "목사님 들어가시면 환자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런데 눈을 뜨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한 대 맞습니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그 병실에서 기도를 하고 나왔습니다.
일반 병동에도 갔는데, 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이 없고,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하는데 무슨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기도를 해야 할 지…
무슨 말이 좋을 지… 입이 막혀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94세된 할머니는 한 눈으로 저를 보시더니
"목사님이시구먼. 멀리서 오셨나봐. 감사해요. 복 받을 거야. 좋은 일 많이 해요."
저와 제 아내는 울면서 다녔습니다. 
그 분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내가 목회하면서, 내가 목사이면서, 감사하며 살지 못해서…
그들의 [감사하다]는 말에 죄송해서… 회개하며 눈물 흘리며 다녔습니다.
감사도 형식적이고, 억지로, 인색함으로 표현하며 살고…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조금만 속상해도…
기도하고 응답 늦다고 투덜대는 그런 사람들 모두 그 섬에 가봐야 합니다.
 
 






 
 
소록도에서는 이름없이 빛없이 자원봉사하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이 봉사요, 섬김입니다.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찬양대로, 속회강사로, 주방에서…
이런 저런 일에 땀흘리며 일하시는 분들 들으십시오.
칭찬해 주고, 박수 쳐 주고, 선물 주면 좋고
누가 알아 주지 않으면 삐지는 것…  그런 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봉사하는 부서의 담당 부장들이 제게 와서
"목사님, 교사들한테 선물해야 하고, 찬양대원들한테 선물해야 하고…
무엇인가 주며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고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봉사하고 그런 것 안주면 삐진다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금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어떤 부서가 몰래 선물을 주고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면
내년엔 그 부서를 향한 예산지출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럴 돈 있으면 소록도에 선교비를 보내거나
Vision Center 건축헌금으로 드리세요.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봉사, 섬김이 어떤 것인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소록도에서 일하시는 목사님은 건강하신 분이시고,
그곳에서 일하는 전도사님은 한센씨병 환자입니다.
그 전도사님이 방문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 마지막 섬에 오셨습니다.
  한때는 6000명이 넘는 환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750여 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이름만 예쁩니다. 소록도는 "아기 사슴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섬에 들어오면 죽는 것입니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꼭 가야할 또 하나의 섬이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섬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섬에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 섬에 가셨습니까? 가시겠습니까? 혹시 그 섬에 사십니까? 
여러분, 그 섬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 섬의 이름은 "찌라도"입니다.]
"찌라도"라는 섬은 저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 섬은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합3:17)
 
찌라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붙잡혀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8)
 
찌라도…
 
"비록… 없을 찌라도" (합3:1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8)
 
여러분은 그 섬 "찌라도"에 가셨습니까?
그 섬에 살고 계십니까?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가슴에 '제가 그리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느끼고 왔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에 담겨 있는 이 감동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 쉽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안되면 투덜대고 불평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찌라도"라는 단어를 보기는 보았지만
가슴에 담고 그렇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밤부터 부흥회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 자신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기가 힘든 줄 압니다. 어려운 줄 압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소가 없을찌라도… , 식물이 없을찌라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감사해요
주님뜻을 믿기 때문이죠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사랑해요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요
언제나 나를 향한 신실한 사랑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가 함께 높이며 주를 찬양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잘 살았음에 감사합니다.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어려워도 불평하고 투덜댔던 삶에서
이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찌라도"를 담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합3:17)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8)
기뻐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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