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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망하지 말라 /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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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지 말라
민 21:4-9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 선교사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청년은 너무 기뻐서 당장 옷과 구두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해 부득이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하게 된 그는 크게 낙망하여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간다는데 어찌하여 다리를 자르시는 겁니까?"라고 울부짖으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낙심해 있던 그는 어느 날 아프리카로 갈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 나 같은 사람도 받아 주겠는가'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하였으나 생각 외로 합격을 하여 마침내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식인종들을 만나게 되어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식인종들이 빙 둘러싸고는 이 백인을 잡아먹겠다며 축제를 벌입니다. 그때에 이 선교사는 의족인 자기의 한쪽 다리를 뚝 떼어서 저들에게 던졌습니다. 고무다리를 받아든 식인종들은 이것을 먹어 보더니 질겁을 합니다. "이것은 신이다!"라고 하면서 이 선교사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쉽게 전도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그때에 가서야 자기의 다리 하나가 잘린 이유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신앙과 믿음의 언어와 생각으로 생활을 해야 큰일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복 받은 인물 중에 부정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식이 없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았으며, 노아도 아무 원망 없이 방주를 만들어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마15장에 보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늘 씻고, 들어가는 것에 늘 신경을 씁니다. 깨끗한 것을 먹으려고 늘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깨끗한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입안으로 들어가면 다 그게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것이 안에 있다는 것이고,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을 하면 원망 불평이 그 마음 안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속에 보화를 간직하는 종교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됨이 내 안에 있고,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 심령의 창고에 있기에 나의 마음을 주장하여 예배드리게 하고 감사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화는 안에 있습니다. 축복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화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어려움이 있고 환난이 있어도 내 안에 참 보화를 가지고,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주님의 눈으로 보고, 성령의 마음으로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주어 보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항상 천국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길에 광야에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광야 생활이 오래 지속되니 지루하기도 하고, 식물도 없고 물도 없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피곤으로 지치게 되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며,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생각은 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당을 이루게 됨으로 하나님이 그 백성을 불뱀으로 심판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는 죄가 가장 악한 죄입니다. 하나님은 원망을 싫어하십니다. 원망하는 자를 쓰지 않습니다. 원망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감사의 언어를 개발하고, 감사의 언어을 사용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서 나와 내 집이 복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가는 일에 불뱀으로 인하여 시험 드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들음으로 복이 있고, 또 예수님을 나의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어렵고, 자신의 삶이 어려운 것도 말을 부정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믿음 위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말로 뚫어내야 할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자신을 멍들게 할 뿐입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감사함과 긍정의 말로 옮기시기를 바랍니다.
한 남자는 자기 부인이 조그만 사업을 시작한다기에 처음에는 만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부인이 의욕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국은 실패를 해서 빚을 많이 지게 되었고, 그는 매일 부인을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으로 인해 가정생활이 파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월이 흐른 다음에 조용히 생각해 보니, 그 원망함으로 인해서 그 가정은 두 번의 실패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사업에 실패하고 두 번째는 가정까지 실패하게 되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성경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9-10)하였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빌2:14-16)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원망을 할까요? 원망하는 까닭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과거의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바다를 갈라지게하여 건너가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부모님께서 오늘까지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욕심 때문에 원망합니다. 미국 어떤 마을의 제빵업자가 가까운 농장에서 버터를 사오곤 했는데 버터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온 버터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농장의 버터 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화가 치민 제빵업자는 고발하였습니다. 그 버터 공장 주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집에서 어떤 저울을 사용하고 있소?"라고 하자 "우리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터의 무게를 안다는 거요?" "네 그것은 간단하지요.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와 같게 만듭니다." "그럼 그 1파운드 짜리 빵은 어디에서 사오는 거요?"라고 묻자 그 낙농공장 주인은 고소인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저 제빵업자 한테서 사다 먹습니다." 결국 버터의 양이 줄어든 이유는 제빵업자의 빵이 줄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나라가 잘못됨이 나 때문임이 아닌지? 회사에 말썽이 생기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교회의 어떤 부서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는지? 가정에 화평이 없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셋째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어도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로하며 말하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6:10)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 갇혔어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였습니다.(행16:25-26) 이렇듯 믿음의 사람들은 환란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넷째는, 어리석어서 원망합니다. 옛말에 "안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뭔가 안되어 갈 성싶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합니다. 이러한 원망은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창3:12) 원망은 습관이며, 명백한 책임회피입니다. 그리고 원망의 말은 바로 바로 자신을 향해 쏘는 화살입니다.
옛날에 작전을 아주 잘 세우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이 세우는 작전은 늘 화창한 날에만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그 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하늘을 욕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향해 활을 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화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듯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자신을 욕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큰 죄가 아닌 줄 알지만 멸망과 불행을 가져오는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2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광야를 맴돌다가 불평하던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남녀를 합치면 약 10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유1:15,16)고 했습니다. 주님을 거스려 불평하고 원망한 강퍅한 말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출애굽 해 나왔는데도 앞에 홍해가 가로막히고 뒤에 애굽 군사가 쫓아온다고 금방 울부짖으며 원망하기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노라”고 악한 말을 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어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찌니라”하고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 때 홍해가 갈라지며 육지가 되어 그 가운데로 건너가 구원을 받고 애굽 군사는 뒤따라오다가 모두 바다에 수장 지내고 말았습니다.
또 민수기 11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또 원망하고 불평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애굽 군사들이 병거와 함께 수장 지낸 것을 보았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보면서도 그리고 아침마다 맛있는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으면서도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6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고 악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만나는 갓씨와도 같고 진주와 같이 생겼으며 기름 섞은 과자맛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맛있겠나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감사는 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기를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주어 먹게 한 다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민수기 13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두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는 모두 백성 앞에 불신앙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성읍은 견고하고 아낙 자손들은 얼마나 대장부들인지 우리는 그 앞에서 메뚜기 새끼와 같다고 보고하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였다(민수기 14장 1절)고 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불평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한 그 말대로 40년 동안 광야를 맴돌면서 다 죽게 한 다음 불평 대신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원망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도 복을 받지 못하고 가정을 불화케 하고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불평과 원망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며 현재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욕심, 탐심을 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나 친척들 중에 원망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해지고 암이나 기타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말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평소에 하는 말 원망과 불평의 말도 다 들으시는 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은 전염성이 강해서 유행병처럼 퍼져나갑니다. 처음에 “섞여 사는 무리”가 불평하기 시작하니까(민수기 11장 4절) 온 백성에게 퍼져서 온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원망 불평하는 자를 극히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열두 정탐꾼 중에 10명이 불평의 말을 하니까 온 백성이 밤새도록 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직분을 맡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시험 들게 하고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나아가서 교회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죄는 용서할 수 있으나 이런 사람들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1. 원망과 불평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원망과 불평은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에게 불평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하면서 소 떼, 양 떼 모두 다 도적맞고 불타 죽고, 자녀 10남매가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입으로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1장 22절)고 했습니다. 마귀는 욥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고통과 불행을 갖다 주었지만 실패하고 도망갔습니다. 온몸에 악창이 나고 구더기가 버글버글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그 입술로 범죄 치 않았습니다. 결국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평이 자꾸 나올 때는 내가 기도가 부족하고 은혜가 떨어져서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구나하고 빨리 회개하고 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2. 원망, 불평은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때,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하는 말은 요사이 말로 “예수 안믿을 때가 더 좋았다. 천당이구 뭣이구 다 귀찮다. “에이, 교회 그만두자”하는 말과 같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실 말입니까.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말, 불평의 말을 다 들으시는 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찼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했더니 쇠고랑이 풀려져 나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옥사장과 그 가정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을 때 오히려 찬송하고 감사하면 더 큰 기적이 일어나고 더 큰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밖에 있는 자유인들에게 권면하기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더구나 저주받고 지옥에나 가야 마땅한 사람이 구원받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으로 감사는 하지 않고 불평이나 하고 원망하는 말이나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해하시고 괘씸히 여기시겠습니까? 불평, 원망은 축복을 도망가게 하고, 마귀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3. 원망과 불평은 모든 행복과 건강을 빼앗아 갑니다.
불평마귀에 잡힌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끌어들이는데 행복합니까? N.V.Peale 박사의 글에 보면 어떤 여자가 좋은 옷을 입고 비싼 반지를 끼고 기차를 탓는데,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음식 맛이 없다느니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느니 기차는 왜 이렇게 더럽냐느니 등등 계속불평만 늘어놓더랍니다. N.Peale 박사는 그 여자를 “불평 만드는 공장”이라고 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평 원망하는 사람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자신도 결국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거나 죽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신경쇠약이나 노이로제나 위장병, 불면증 등에 걸려 건강한 생활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했고,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10장 13절)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4장 6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대신에 기도에 힘씁시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네가 불평거리를 광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상품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했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나는 구두가 없는 것을 불평했다.”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사람들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5:9)
원망 불평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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