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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본 받아 전도 합시다 / 눅 4: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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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4:43,44
예수님을 본 받아 전도 합시다.

아름답게 지어진 멋있는 예배당에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을 한 신사 숙녀들이 속속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당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흑인 크리스챤이 지나는 길에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기 위하여 예배당을 들어가려고 하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예배당 입구에서 안내를 하던 멋지게 생긴 안내 위원이 못 들어가게 막으면서 하는 말이 이곳은 백인들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당신은 흑인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여서 이 흑인은 예배당을 들어가지 못하고 예배당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누가 와서 등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 형제여! 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 하기에 등을 돌려 바라보니 예수님이 거기 서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반갑고 서럽기도 해서 예수님 품에 안기면서 하는 말이 저는 오늘이 주님의 날인지라 지나는 길에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흑인이라고 못 들어 가게 해서 이 예배당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저 혼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 어떻게 주님의 교회에서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하니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형제여!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나도 저 예배당을 못 들어갔단다 하시더랍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화입니다마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의 주변에서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교회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면 아무리 아름답게 예배당을 짖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는 아닙니다.

기독교회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특히 신약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로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고백 위에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회의 목적은 세월이 흘러서 시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부르시고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요.  더 많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들과 한가지로 이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오셨으며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전도하셨으며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받아 전도 합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사모 하고자 합니다.


  전도하시려 오셨다 하시며 전도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눅 4:43)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눅 4:44)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이적을 보았습니다.

해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눅 4:40)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눅 4:41)고 합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고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며 살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말씀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다고 했습니다. (43,44)

  전도하여야 하리니라의 하여야 하리니라는 말은 예수 사역의 필연성과 긴박성을 강조하기 위해 누차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 13:31)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2)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3) 하시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눅 24:1)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눅 24:2)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눅 24:3)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눅 24:4)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5)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눅 24:6)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눅 24:7) 하십니다.

제자들이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눅 24:24)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 24:25)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눅 24:26)십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 24:44)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전파하시고 거기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전파했습니다"(44절). 예수께서는 어느 한 장소나 사람에게 매이지 않고, 그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그들과 함께 계시는데, 그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복입니다. 회당에서처럼 "이방인의 갈릴리"에서도 그의 특수한 임재가 같이 합니다

예수의 전도 여행 기간은 대략 4, 5개월 정도로 봅니다. 또한 당시 갈릴리 지방에는 1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큰 마을이 200개 정도나 있었고 전체 인구수는 3백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으며 잠시 동안 쉴 겨를도 없이 바쁘게 다니셨으며 심지어는 식사 할 겨를도 없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 4:7)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 4:8)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 하시며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주님께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 4:31)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2)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요 4:33)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권면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쓰라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왜 그런 것을 묻습니까?"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그러자 비서가 말했습니다.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전도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실을 알고 전도 하는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눅 8:1)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눅 9: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눅 9:2)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죄인들을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4)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속한 것으로 오해함으로써 왕이신 예수께 대해서도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예수의 사역이 있는 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29)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로 목회자였던 마빈 감독이 내란으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집을 떠나 아캔자스 지방의 황야를 홀로 헤매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실망과 고독스런 마음으로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에 한 여인의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와 같은 찬송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찾아 들어간 곳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낡은, 가난한 과부가 홀로 살아가는 집이었습니다. 뜰에 앉아 무슨 일을 하면서, 낡은 쌤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에 쌓여 그 여인의 얼굴은 소망의 빛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여인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있던 마빈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나도 주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나를 주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외친 다음 여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마빈 감독은 그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지독한 가난함 속에서도 주와 함께 사는 한 여인이 부른 찬송은 수만 명의 설교자들보다 더 분명하게 나의 심령을 울려주었다."

각자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 심령이 천국이 됩니다.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을 삶 속에서 증거하며 전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하늘로 가시며 성령을 보내주시고 전도하게 하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전도의 대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19)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실 것과 성령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5)


또한 성령이 임하면 증인의 사명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오순절 날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1)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2)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3)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성령의 임하심으로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사도들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요 20:19)라고 합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 4:18)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19)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 4:20)라고 합니다.

그들의 증거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회개하며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 4:4)

심지어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고 주님께 돌아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주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5)

우리는 주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의 주로 고백을 하고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들 주변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전도사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미국 잡지('Gray and Adams Commentary'라는 논평지)에 한 의사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기독교를 경멸하며 예수님을 평가절하 하는 것으로 평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때에도 그는 절대로 '메시아' 혹은 '그리스도' 혹은 '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 목수의 아들(The carpenter's son)'이라고 불렀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예수를 믿을 것을 권하면, 그 의사는 항상 동일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의사인 내가 천박한 목수의 아들에게 내 영혼을 맡기란 말씀입니까?" 그랬던 그가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의사며, 많은 의사 친구를 두었음에도, 자신의 육체를 죽음으로 그림자로 가두어 버리는 질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자신은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더 이상의 애착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병상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곧 죽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괴로운 것은 목수의 아들에 의해 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신의 생애에서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죽음을 앞두고 그 심판을 바로 그 나사렛 목수의 아들에게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를 두려움 속에 가두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에게 다가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목수였던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목수의 아들 이상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지만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장차 오실 것이라고 예언된 메시야시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천하 모든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고 오직 에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이 예수님이 친히 전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며 성령을 보내 시며 전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본 받아 함께 전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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