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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속한 자를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창 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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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속한 자를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창세기 19:12-22)


유다서 1장 7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色)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6절에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받을 네 가지 죄악을 들추면서 그 가운데 하나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간음의 죄악을 얘기하면서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단순히 중동지방에서 일어난 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장차 이 세상 끝 날에 있을 불심판의 거울로, 불심판의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은 <이런 죄는 이렇게 심판받는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구원의 길은 이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장차 임하게 될 불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조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멸망받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주장뿐만 아닙니다. 예언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한정된 지구에서 인류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은 인류학적인 입장에서도 말합니다.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나, 날마다 파괴되어가고 있는 이 환경적 차원에서나, 인류가 만들어놓은 가공할 무기의 처리문제에 있어서나, 어느 면을 보아도, 어느 분야에서든지 다 인류의 멸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역사상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퍼부었을 때에 불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거기에 구덩이가 패여서, 지금도 중동 팔레스타인에 가보면 바다보다도 390m정도 낮은 죽음의 바다 ‘사해(死海)’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해(死海)는 하나님께서 불로써 심판했다고 하는 하나의 흔적이고, 이 죽음의 바다를 보면서 장차 임하게 될 불심판도 이렇게 되리라는 거울로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소돔과 고모라의 죄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은 죄악입니다. 창세기 13장 13절에는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8장 20절에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죄들을 보면 음란죄였습니다. 영어로 소돔사람, sodomite라는 말과 동성연애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음란한 사람, 음란한 시대를 이 소돔과 고모라가 대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롯도 자기 두 딸의 성(性)을 가지고 백성들과 흥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딸들도 아버지의 애를 밸만큼 보고 들은 것은 그것밖에는 없었어요. 롯의 가정이 그 정도였으니 그 성(城)사람들이 얼마나 음란의 죄악에 빠져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음란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  당한 네 가지 죄악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른 죄는 몸 밖에 있지만, 이 죄만은 몸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죄 중에 제일 더러운 죄, 죄 중에 가장 부끄러운 죄, 죄 중에 가장 소문이 잘 나는 죄, 이 죄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가정을 파괴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가정을 세우시고, 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음란죄는 가정을 파괴합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자녀가 영향을 받습니다. 이 죄에 연루가 되면 기도가 막혀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막힙니다. 교회가 파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란죄는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20장 10절에 보면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적인 음란죄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같은 맥락에서 <음란>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음란의 홍수 속에서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 이 멸망 받을 죄악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마가 이 죄악때문에 망했습니다. 폼페이(pompei)가 큰 도시는 아닙니다. 그런데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얼마나 음란한 도시였든지, 지금 못지 아니하는 음란의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온갖  음란한 형상들을 그려놓고, 음란한 장소를 찾아서 음란한 죄들을 짓다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화산(火山)이 옆에서 터져서 화산재가 그 도시를 완전히 덮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의 죄악 때문에 멸망당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죄와 연루(連累)되어 있는 우리의 믿음의 권속들이 있다고 하면, 이 시간 <너희는 그 가운데서 나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잘못된 죄악 가운데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교만의 죄였습니다. 에스겔서 16장 49절 이하에 보면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하였느니라>. 이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면에서 풍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이 비옥하였다>고 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여서 먹고 살만하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면,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종착점이 바로 성적(性的)인 타락입니다. 그리고 교만해졌습니다.  없는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8절 이하에 보면,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공의도 없고 인간의 도덕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짓는, 그러다가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할 때에 다 멸망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세 번째 죄악은 폭력을 휘두르는 죄였습니다. 9절에 보면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들을 깨치려 하는지라>하면서, 롯의 집 안에 있는 천사들과 상관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은 바로 <성적(性的)으로 관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지방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다 그런 관계를 맺었어요. 그러다 ‘새 사람이 없는가’ 했는데 새 사람이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과 동성관계를 맺기 위하여서 롯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가장 대표적인 죄가 바로 음란한 죄, 교만한 죄, 이기심, 폭력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내버려두시고 구경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분(義憤)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정의를 실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성도들과 죄악 가운데서 고통하면서 부르짖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짖음은 <백성이 왕이나 재판장에게 정의를 탄원하고,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아우성치며 고발하는 외침>을 여기에서 <부르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을 때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저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서 그 간역자(看役者)로 인하여서 부르짖을 때에,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서 부르짖었을 때에, 블레셋을 다 물리쳐 주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부르짖을 때에, 그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이 부르짖을 때에, 그 성을 멸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보다는 좀 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그 부르짖음이 그때보다는 좀 약할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스와핑’이라는 참 희한한 일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보도되었습니다.
‘스와핑(swapping)’이라는 말은 본래 ‘물건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물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바꾸고 남편을 바꾸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도 못 사는 사람이 아니고 지도층에 있는 잘 사는 사람들이, 통계에 의하면 적어도 한 6천여 명이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러 부부가 함께 모여가지고 속옷만 입고 술마시고 춤추고 하다가 눈이 맞으면 남의 아내든지 남의 남편이든지 옆방에 가서 성관계를 가지는 일들을, 짐승도 안 하는 일들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그런 일은 안했습니다. 동성연애가 소돔 사람들의 주종된 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보다도 훨씬 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세상이 나아지는, 죄가 없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더 음란하고, 더 악하고, 더 교만하고, 더 이기적이고, 더 향락적인 시대가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한 죄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들이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을 통해서 더 확산된다고 하고 있는데, 인터넷이 없을 때는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인터넷이 나온 다음부터 그런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그런 짓들을 하는데, 앞으로 더 문명이 발달되어지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강요하는 사랑

세상은 점점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죄의 무게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죄값으로 멸망 받을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은 구원할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들은 소돔성의 모든 악독을 친히 목도하고 롯의 집에 찾아와서 롯에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사람들 외에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이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를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했습니다.
롯에게는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네 두 딸을 데리고 이 성을 빨리 떠나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지체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천사가 롯의 부부를, 또 한 천사가 롯의 두 딸의 손을 붙잡고서 성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더했다, 은혜를 더하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까?  버려두면 같이 멸망 당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정에 은혜를 더하셔서, 인자를 더하셔서 그 멸망 받을 장소에서 끌어내어서 소알 성에서 생명을 얻게 했습니다.

롯의 아내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이 아닙니다. 롯은 자기 사위들처럼 천사들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망설였습니다. 망설였다는 말은 천사의 말을 확신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지 않았다면, 롯의 손을 잡아끄는 강권이 없었더라고 하면 그도 유황불에 같이 멸망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강권하십니다. 강권하지 않고, 한 마디 말만 하고 “이 성은 멸망당한다. 나가라”고 했다고 하면 롯의 가정도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거듭거듭 나가라. 나가자, 데리고 가고, 끌고 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 때문에 멸망 받을 그 장소에서 그래도 세 사람이라도 살게 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 이끌어 낸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안 나오려고 하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속히 떠나라>고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절에 보면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17절에 보면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22절에 보면 <그리고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이와 같은 천사의 명령과 재촉과 손을 끌고 가는 강권함이 없었다고 하면, 절대로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롯뿐만 아닙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이 자리에 앉기까지는 하나님의 이러한 집요한 강권함이 없었다고 하면 이 곳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송월타월 회사에서 산업전도를 좀 오래 했습니다. 기숙사에 4백여 명의 여자분들이  있었는데, 수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깨웁니다. 여자 기숙사여서 남자들은 절대 출입하지 못하지만 교역자는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감선생님과 함께 복도를 다니면서 “예배드립시다”하고 깨우고, 또 거의 다 나오고 난 다음에도 또 한바퀴 돌면서 아직도 가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재촉해서 데리고 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예배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강권하기도 하는데, 마지막에 “예배드립시다”하고 한바퀴 또 돌면 아직 안 나간 사람이 안에서 우닥다닥 숨습니다.

주로 어디에 숨는가 하면 옷장 안에 숨습니다. 갑자기 숨으니까 바지를 입은 사람은 괜찮은데, 치마를 입은 사람은, 사람은 들어가고 치마는 닫힌 문 바깥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치맛자락을 당기며 예배를 드리자고 강권하고 해서 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해서 거기도 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강요해서 예배를 드리게 하면 그들이 예배에 참여하다가 믿음이 들어가고, 참 예수님을 발견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을 발견합니다. 결혼이라든지 다른 일들 때문에 회사를 떠나게 될 때에, 예배시간에 그들은 간증을 합니다. “이 좋은 예수, 좀 빨리 믿었더라면 좋을 것인데, 왜 나에게 더 강요하지 않았느냐. 이제야 예수 믿을만하게 되었는데 이 회사를 나가게 되어서 참 아쉽다. 내가 이 회사에 돈을 벌기 위해서 문을 두드렸는데, 돈보다도 더 좋은 예수를 가지고 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남아있는 여러분들도 정말 예수 잘 믿고,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도 억지로 강권해서라도 예수를 믿도록 해달라.”고 눈물 흘리면서 간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억지로라도 강권해놓으면 처음에는 오해하고 귀찮아하지만, 나중에 믿고 난 다음에는 정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전에 어느 교역자 모임에 참여했더니, 자기 교회 권찰이 참 집요한 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데, 하도 강요하니까 교회를 한번 나가 주었습니다. 딱 한번만 나가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 사람이 계속해서 나오라는 겁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그 권찰이 찾아갑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시장 갈 때, “아무개엄마, 시장 갈 일 없어요?”하고 가서 “이번 주일 교회나오세요.”하고 이야기하고, 시장 갔다 오면서 뭐 하나 사가지고 와서 주면서 또 교회 나오라고. 가면서 오고, 오면서 가고, 하여튼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집을 드나들면서 교회 나올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 분이 하도 그렇게 하니까 자기 생활이 없어졌습니다. “예수” 이야기만 들어도 싫어졌어요. 예수 노이로제 걸릴 만큼 되었어요. 나중에는 숨이 막혀서 ‘아, 이러다가는 내가 정신병에 걸리겠다. 도저히 못 살겠다. 이 권찰에게서 벗어나야지, 이래가지곤 안 되겠다’ 생각하고 도망갈 준비를 했어요.
아주 은밀하게 집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야간도주를 했습니다. 만약에 알렸다가는 어디든지 찾아올 수 있는 권찰이기 때문에, 한밤중에 몰래 이사를 갔습니다. 찾아 올 수 없는 아주 상당히 먼 거리까지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안도의 숨을 쉬고 ‘아, 여기까지는 모르겠지. 여기까지는 못 찾아오겠지’하고 이삿짐을 풀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루에 한두번 씩 다니는 이 권찰이 다음날 가보니까 아, 이 사람이 밤새 이사를 가버리고 없습니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찾아갔어요. 가서 전출입대장을 떼어보았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주소를 알았습니다. 이제는 혼자가지 않고, 자기 구역식구들 한 7,8명을 데리고 하이타이, 퐁퐁 등을 사들고 갔습니다. 벨을 누르니까 이 주인은 친척이 왔거니 하고 문을 척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7명이 “할렐루야”하면서 손을 드는데, 이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졸도를 해버렸어요.
나중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분들이 예수가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렇게 나에게 집요하게 강요하는가, 그 예수가 어떤 분인지 한번 알아봐야 되겠다.’ 그래서  교회에 자기발로 나갔습니다. 나가서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을 가졌습니다. 정말 자기에게 강요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또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았겠어요?

한 사람이 교회 나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었습니다. 오늘, 먼저 믿은 성도들을 천사를 대신해서 보냅니다. 그래서 강요하고 강요하고 강요해서 우리가 오늘 이 장소에까지 나와졌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번 “나오세요” 해서 나온 사람이 몇 사람 됩니까?
어떤 남편은 교회가면 용돈 주겠다고 해서 아내에게 용돈 계속해서 받다가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있고, 하여튼 별별 사람이 다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나온 분들이 여기에는 없습니까? 여러분들은 몇 번쯤 예수 믿자고 해서 나왔습니까? 도대체 권찰이 얼마나 내 집을 드나들면서 노력했기에, 내가 이제야 내 발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여튼 오늘의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하나님의 속을 많이 썩이고, 권찰 속 많이 썩인 사람들도 참 많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그렇게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며,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이런 강요하는 사랑, 강권하는 성의가 없었다고 하면, 우리는 이 구원의 잔치자리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사람을 보낼 뿐만 아니라 질병이라는 천사를 보내고, 실패라는 손길로, 가난이라는 손길로, 나를 하나님의 집으로 강권할 수도 있었습니다. 강요하는 아내, 강요하는 친구, 강요하는 교역자, 강요하는 질병, 여러분을 죄악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보낸 천사가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이렇게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백성이 되어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보냄받은 천사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이 시간, 이 자리에 하나님의 자녀로 앉아 있는 것도 다 주님께서 이끌어서 이곳까지 온 줄 믿습니다. 우연히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사가 롯과 가족을 이끌고 성밖에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멸망 당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전적인 하나님의 강권하는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롯에게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했습니다.
성밖으로 끌어내어야 할 사람에게 진리를 바로 말해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위를 거슬린다고, 아파한다고 말해주지 아니하면 그 심령은 그 상태에서 깨닫지 못하고 성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중병에 걸려 수술받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사람에게 “아주 건강이 좋습니다. 지금 좀 불편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그런 일을 다 당합니다. 곧 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면, 그 의사는 의사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병에 걸렸습니다. 그냥 두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수술받으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그 사람이 참 의사입니다.
“나도 죄인이고, 당신도 죄인입니다. 죄인은 심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 문제 처리되고 천국갈 수 있습니다. 안 믿으면 지옥에서 멸망 당합니다” 바로 이야기하고, 그들을 강권해야 합니다. 이끌어내야 됩니다. 한번 안 되면 두 번, 예수님은 찾을 때까지 찾았다고 했습니다. 올 때까지 찾아가는 집요함이 있게 될 때에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이런 강권함이 없었다면 다 멸망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나를 천사로 사용하셔서 저들을 강권해서, 멸망받을 성에서 이끌어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멸망 받을 이 성에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이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 네게 속한 자로써 너와 상관있는 사람 중에서 소돔성의 그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가 있느냐.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령하고 있습니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 중에서 아직도 하나님의 도성에 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멸망의 소돔성 같은 곳에 있는 내게 속한 자, 그 가운데는 부부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도 있을 것입니다. 친구도 형제도 있을 것입니다. 직장동료도 이웃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강권하지 아니하면, 억지로라도 이끌지 아니하면, 그들은 거기서 멸망당합니다.
내가 금식 중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고, 돈을 들여서라도 좋아하는 것을 사다주고, 그들의 요구조건도 들어주면서, 그들을 강권해서 인도해 내야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서 나왔기 때문에 내게 속한 자들도 그렇게 해야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왜 천사가 롯을 이끌었다고 했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내게 속한 자를 정말 사랑한다고 하면 그를 강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이끌어내는 모습을 한번 보세요. 천사들은 두 천사가 왔습니다.

거기의 문맥을 보면, 본래 천사가 몇 명 온 줄 아십니까? 세 명이 왔어요. 아브라함에게는 세 명이 왔어요. 한 천사는 아브라함하고 구원받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두 천사만 소돔성으로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돔성에 구원받을 여섯 사람이 있었다면 세 명 다 왔을 거예요. 그런데 구원받을 사람이 네 사람밖에 없었어요. 두 천사의 손만 가지고 있어도 네 사람을 끌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할 수 있는데 까지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천사의 한 손에 한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네 손이 다 움직였습니다. 남은 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이번 추수주일에 두 손으로 두 사람은 이끌어내어 이 구원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손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빈둥빈둥 노는 손, 죄 짓는 손이 되지 않고, 이 손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붙들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복된 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부산 도성에는 죄로 인하여 멸망받을 수많은 영혼이 있습니다. 멸망 받을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일단 심판이 시작되면 눈물로는 안 됩니다. 노력도 안 됩니다. 그때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을 때가 오게 되는데, 그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소돔성이 멸망당하기 전에만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는 천사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해서 그들을 인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지만 아직도 롯처럼 재물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두 딸처럼 약혼한 남자때문에 머뭇거리지는 않습니까?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아직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음란한 죄, 교만의 죄, 이기적인 죄, 사치와 향락의 죄, 세상의 죄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몸은 여기에 왔지만 아직도 생활과 정신은 소돔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죄악 중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함께 멸망 받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오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음란한 죄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만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치와 향락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속한 자로서 이끌어야 될 자는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지금 찾아보세요. 이끄는 데는 강요해야 됩니다. 강요해서라도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강권하심 때문에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에게 속한 자도 우리의 강권함으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소돔의 죄악 가운데서 나와야 되고, 그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내는 책임성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수주일에 우리의 손 하나도 놀지 아니하고 천사의 양손에 롯의 가족들이 붙들린바 되어 나왔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의 손에 여러분들에게 속하여 있는, 이끌어내야 될 사람들을 인도하여서 바로 그날은 생명이 살아나는 날, 영혼이 추수되는 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날이 되어 추수꾼의 기쁨과, 주님의 기쁨에 여러분들이 동참할 수 있는, 한 생명이 살아나는데 동참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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