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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바 아버지 / 갈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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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바 아버지
< 본 문 > 갈4:6~7

이철환 씨의 <연탄길>이란 책이 있습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짠~ 하는 감동을 주는 책인데, 그 가운데 ‘아버지의 우산’이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시절 달동네에 살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글입니다. 아버지는 고물 장사를 하며 고생했습니다. 철이 없는 그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돈을 조금 모아 식당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맙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우유 배달을 합니다. 설사가상으로 교통사고로 부상당해서 깁스를 하고 집에서 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천정에서 비가 주룩주룩 새서 양동이를 받쳐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숨만 나오는데, 아버지가 속이 상했는지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밤이 깊어져도 돌아오지 않자 식구들이 찾아 나섭니다. 동네를 다 뒤져도 아버지를 못 찾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지붕 쪽에서 시커먼 물체를 발견합니다. 아버지였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안간 힘을 쓰며 우산을 받치고 물이 들이치는 지붕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가족을 보호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인생에 늘 든든한 기둥이 됩니다.

연약한 인간 아버지도 든든한 기둥이 될진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여러 칭호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너무 좋은 칭호입니다. 본문 6절 보면 ‘아버지’ 칭호가 나오죠. 그런데 여기 보면 그 앞에 무슨 말이 붙어 있습니까? ‘아바’라는 말입니다. ‘아바’는 본문 성경이 기록된 1세기 당시의 유대인들이 쓰던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그리고 ‘부른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크라조’(κραξω)인데 감격스럽게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바 아버지’는 하나님을 감탄조로 부르는 칭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굉장한 일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자연스럽게 ‘아바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것은 그 자체가 신기한 일입니다. 아무한테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겠죠. 만일 그렇다면 정신병자죠.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체험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칭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하면 분명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증거입니다.

[1]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본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십니다. 행17:28 보면 사도 바울에 아덴에 가서 설교할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민들을 향해 “우리가 그(하나님)의 소생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이 인류의 창조주시며 인간은 그분의 자손이라는 말입미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엡2:2~3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그러므로 그대로 방치되면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가능합니다. 그분은 무죄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사형 틀에 피 흘려 죽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원칙입니다. 요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원칙대로 믿는 신자만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권세라는 것은 곧 ‘신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른 인간 조건이나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겁니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

그러므로 이제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늘 나라 로얄 훼미리가 된 것입니다. 롬8:29 보면 아예 예수님을 가리켜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된 신자들의 큰 형님으로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부르게 됩니다. 본문 6절 보면 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믿게 하는 것도 성령이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성령이십니다. 고전12:3 “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롬8:14~16 “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다면 그 한 가지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이 내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하나님 자녀로서의 신분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를 아시죠? 어린 백조가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오리 새끼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구박 받고 삽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합니까? 미운 오리가 돈 거죠. 그런데 다행히 나중에 자신이 백조인 것을 깨닫고 창공을 향해 날아갑니다. 본래부터 백조였지만 자기 신분의식을 가질 때부터 진정한 백조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신분 의식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예수 믿으면 분명한 하나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이런 분명한 신분 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균형 잡힌 신분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 치우쳐 ‘특권 의식’에만 사로잡혀서도 안 되고, 다른 한편으로 치우쳐 ‘의무감’에만 사로잡혀서도 안 됩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히면 방종하기 쉽고, 의무감에 사로잡히면 부자유스런 예속적인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양쪽 다 모두 잘못이요 극단입니다. 신분에는 항상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한편으로는 특권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갖추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는 특권과 책임 양면성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 자녀로서의 특권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모성애가 최고!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모성애보다 더 큽니다.
사49:15~16 “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그러면 여러분, 구체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1) 보살펴 주는 사랑(필요한 것 공급, 보호 등) -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시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예> 책갈피에 고이 간직된 단풍닢 - 이사 다니며 책이 엄청 뒹굴었을 텐데 고이 ...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받는 자녀들은 이렇습니다!


2) 용납해 주시는 사랑(죄와 허물 용서, 용납 등) - 시103:10,12~14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 하셨으니 ...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3) 기도를 들어주시는 사랑(간구, 애원 등) -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도다” 나의 신음조차 들으십니다.


4) 하나님의 기업 상속(상속자의 축복) - 갈4:7(하) “ ...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1세기 당시 로마법으로는 양자도 친 아들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 네로 황제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죠. 그는 본래 왕족이 아닌데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어 완전한 상속자로 로마 황제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기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업은 상속 재산인데 신자가 얻게 되는 영생과 부활, 상급, 천국의 보화 등을 가리킵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특히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하나님의 소유가 내 것이 되고, 예수님이 누리는 것을 나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공동 상속자!
정말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 나라 기업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우리는 잘 몰라서 그 말씀을 듣고도 무덤덤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데 가 보고는 “야~ 기가 막히다!” 하고 감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최상은 천국의 최하보다도 못합니다. 천국에서는 황금을 아스팔트처럼 밟고 다닙니다. 세상에서는 최상인 그 황금을!

재작년인가 아프리카 차드 선교사 양승훈 목사님이 귀국했을 때 로삐라는 차드 청년이 동행했습니다. 대화 중에 제가 한국에 와보니까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같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청년에 세계 어디를 가봤겠습니까? 내내 차드에만 있다가 이틀 정도 빠리를 경우해서 한국에 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자기가 상상하지도 못할 모습이 펼쳐진 겁니다. 그래서 한국이 제일 잘 사는 나라로 여겨진 겁니다. 그 청년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에는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많다, 그리고 천국은 그 나라들보다 더 좋은 데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더, 더 좋은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자녀 된 우리 것이라는 겁니다.

② 하나님 자녀로서의 책임 :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과 더불어 우리가 명심할 것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특권만 누리려면 천국에 가면 됩니다.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에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성도들에게 남겨주신 고난의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당핳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 - 마5:13~16 “ ...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2)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고난 - 딤후3:12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죄가 만연한 세상에 살다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바르게 산다는 게 너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손해보고, 조롱 당하고, ... 그래도 말씀의 선을 지키며 사는 게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의무입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전파하는 고난 -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박혀 구원 사역을 완성했지만 여전히 그 복음이 전해져야 듣고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 사명을 우리가, 교회가 받고 있는 겁니다. 복음전파와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자녀 된 자의 책임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가까운 이웃부터 우리 민족과 더 나아가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새생명축제에 가족과 이웃을 주님께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명을 소홀히 여기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건성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이 말에 포함된 모든 의미를 되새기면서 감격하며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고백에 포함된 하나님 자녀로서의 특권을 풍성히 누리시고, 책임과 사명에 충성함으로 빛나는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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