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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왕하 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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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왕하 6:8-17)


우리는 늘 말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사실의 말을 할 때가 있고 믿음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의 말이 믿음의 말이 되지 못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날은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내 기억에 나는 지금까지 말을 배운 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산 날이 하루 있었습니다. 미국 빅 베어 산에서 뜨레스디아스를 할 때 시계를 풀러놓고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살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말하지 않고 사는 날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할 때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옛날 부흥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였습니다. 어느 강사님이 설교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있는 힘을 다 하였습니다. 힘을 주며 설교를 하다가 똥을 쌌습니다. 강사가 여관에서 지내지 않고 성도들 집이나 목사님 주택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그 옷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옷을 빨아 달라고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사가 남의 집에서 자기가 빨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단 꼬기꼬기 싸두었습니다. 이 때 우체부가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얼른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우체부에게 돈과 함께 주면서 소포로 집으로 붙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약간의 수고비도 주었습니다.
소포가 토요일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여선교 회원들이 주일 준비로 청소를 하는 데 우체부가 가지고 왔습니다. 모두가 부흥회에 간 목사님이 보낸 소포라고 좋아 하였습니다. 모두 부러운 눈으로 무엇인지 뜯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둘러 앉았습니다. 사모님이 뜯었습니다.
내용물이 들어 나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에게 소문이 두가지로 났습니다.
<우리 목사님 부흥회하면서 똥을 싸서 어쩔 수가 없어서 소포로 붙였다>
하나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말입니다.
그러나 또 한 소문이 났습니다.
<우리 목사님 얼마나 부흥회에 열심히 설교를 하였는 지 똥이 다 나오도록 설교하셨다>
믿음이 있는 자의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이같이 말에는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습니다. 똑같이 상황을 목격하고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4장에 유명한 정탐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지 정탐하고 오라고 한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모두 12명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은 10;2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이 먼저 보고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27-33)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의 보고를 들어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8-9)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이같이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고 믿음의 말을 하시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사실을 쓰시지 않고 믿음을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믿음의 말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은 사실의 말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믿음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냈습니다. 홍해 앞으로 왔습니다.
그 때 노예를 잃어버린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로 잡으러 군사들을 이끌고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홍해 앞에서 건너지 못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면서 외쳤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

백성들은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건너지 못 할 홍해와 막강한 무기를 가진 애급 군대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틀림없이 죽음만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앞에서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하나님 입장에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

모세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고 믿음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주간 커피 숍에서 목사님들 몇 명이 모여 회의를 하는 데 원주에서 목회하시는 원 호연 목사님이 들어 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 인터넷에 들어와 내 설교중에 <소원을 소명으로> 이 설교가 얼마나 좋았는 지 은혜받고 각색하여 설교 준비중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금 교회 2,000석 교회를 지으려고 할 때 IMF가 터졌습니다. 온 교인들이 반대하였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건물이 낡아서 그렇지 그런대로 건물이 있습니다. 돈이 돌지 않습니다. 사업을 망친 성도들이 많습니다. 짓다가 틀림없이 빚을 지을 터인데 이자가 23%입니다....>
모두 사실의 말입니다.
그러나 몇 장로님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따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한 사업가가 전주로 이사와서 교회를 짓는 것을 보더니 내가 헌금할 터이니 <교육관까지 지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육관까지 지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실 줄 믿습니다.
내 입장에서, 사람 입장에서, 지금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의 말이고, 하나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믿음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을 보지 않고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지 않고 기적을 기대하며 말하는 말이 바로 믿음의 말입니다. 기적의 기대하는 사람은 기적의 말을 합니다. 기적을 기대하지 못 하는 사람은 결코 기적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판에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허기지도록 말씀을 증거하셨고 사람들은 허기지도록 떠나지 않았습니다. 빈 들이었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돌아가다가 허기져서 쓰러질 것같으니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5,000명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녁입니다. 5,000명이 먹을 것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200 데나리온, 약 2,000만원도 부족할 것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 손목을 잡고 예수님 앞에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요6;9)

사실로만 말하는 제자들과 달리 안드레는 기가막힌 오병이어지만 가지고 와서 주님 손에 붙잡히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안드레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를 주웠습니다. 부스러기가 12 광주리였습니다. 기적의 언어는 기적을 끌어 드립니다.
사실을 말을 하지 말고 기적의 말을 하는 것이 기적을 창조하는 근원입니다.
지난 주간 나는 뉴질란드 해밀톤에 다녀 왔습니다. 동기 친구 안 성옥 목사가 나에게 자기 매제가 뉴질란드 해밀톤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는 데 소원이 강 목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한번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작으니 자비량으로 비행기표도 내가 사고 강사비도 없지만 소원 한번 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교인은 네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허락하였습니다. 하나는 친한 친구 부탁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교회도 좋지만 그런 교회도 부흥되어야 하니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표도 내가 끊고 떠났습니다. 부흥회 약속을 하여 놓고 1년만에 60명 가량으로 부흥하였습니다. 전도사라 아직 세례 줄 수 있는 자격이 안 되기에 내가 세례 예식을 거행하고 왔습니다. 20명 세례를 주었습니다. 부흥회를 약속하여 놓고 일년간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이제 자립교회로 크게 부흥된 것입니다.
<하나님! 강 문호 목사님 모시고 부흥회 약속을 하여 놓았는 데 챙피하지 않게 하여 주세요>
늘 이런 기도였습니다. 해밀턴은 한국 사람은 영주권자 500여명, 유학생과 유학생 가족 1,500여명 모두 2,000여명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교회를 부흥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하여 들어 온 사람보다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민 온 가족이 예배드리러 약도를 보고 한 교회를 찾아가는 데 길을 잘못 들어서 찾아 와서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등록하여 이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나를 운전하여 주던 고 영길 성도는 이민 와서 외롭게 지내던중 주보를 길거리에서 주웠습니다. 주보에 있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아서 찾아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성도 20명을 세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사실을 말하지 말고 믿음을 말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있습니다.

3.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보이는 것만 말하면 사실의 말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면 믿음의 말이 됩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기란 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해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단성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와 아람이 싸울 때였습니다. 아람이 작전 계획을 은밀하게 세우고 나면 탄로가 났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마다 허를 찔리는 것같이 졌습니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간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골방에서 세운 비밀이 탄로가 나느냐고 신하들에게 따지고 물었습니다. 어느 곳을 치자고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몰래 쳐들어 가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알고 그 곳에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있어서 치지 못 하고 돌아 오곤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난 아람왕이 누가 내통하였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 때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왕하6;12)
아람 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을 하기 전에 엘리사를 잡아야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어디 있는 지 찾아 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도단성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 왔습니다.  아람 왕은 밤에 몰래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도단성을 둘러 쌓습니다. 엘리사 종이 새벽에 성벽에 올라가 보니 수많은 군사들이 도단성을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종이 엘리사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큰 일났습니다. 엄청난 아람 군대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사실의 언어입니다. 보이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이는 믿음의 말입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엘리사는 종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보니 아람 군대수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도단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탈무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율법 학자중에 한 명을 들라고 하면 힐렐 랍비입니다. 정말 그는 탁월한 율법 랍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 공부를 할 때에는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결혼하고도 노동을 하여 가면서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그 날 벌어 그 날 공부하면서도 율법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랍비였습니다. 미래에 훌륭한 율법 학자가 되려고 분투 노력한 결과 그는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있었던 한 가지 일화입니다.

하루에 보통 10,000원 정도 벌었습니다. 그러면 매일 5,000원은 아내에게 주어 생활하게 하였고 5,000원은 율법 수업료를 냈습니다. 어느 날 운이 없어서 한 푼도 벌지 못 하였습니다. 힐렐은 집안 식구가 그 날 굶는 것은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율법 공부를 잊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라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지 못 하였기에 교실에는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 가게 만든 창이 지붕에 하나 있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그 창에 얼굴을 대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날 몹시 추웠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몸에 눈이 쌓이고 있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한 참 공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온 종일 그랬습니다. 그 날 밤새도록 공부가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눈도 그쳤습니다. 아침 공부를 하다가 토라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왜 이 방이 어두우냐? 오늘은 눈도 안 오고 밖에 날씨는 좋은 데 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느냐?>
채광창을 보니 사람 얼굴이 보였습니다. 제자 한 명이 올라 가 보았습니다. 눈이 1 미터가 쌓여 있었습니다. 눈을 헤치고 보니 그 속에 힐렐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달걀 하나 이상의 무게를 들수도 나를 수도 없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힐렐을 들었습니다. 불 가까이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몸을 녹인 후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힐렐은 깨어 났습니다. 토라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안식일 법을 어겨도 좋다>
이렇게 율법 공부를 열심히 한 힐렐은 당시 최고 율법 학자가 되었습니다. 남다른 생각, 남다른 행동, 남이 보지 못 하는 미래를 보고 전진 또 전진하였던 힐렐이었습니다. 사실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말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3.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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