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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곧은 길, 맑은 물 (히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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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곧은 길, 맑은 물 (히 12:20)

저희 교회가 빛과 소금의 교회로 모이기 시작한 지 벌써 8년이나 지났습니다. 14명이 시작해서 현재 교인 수가 해외에 나가있는 선교사 가족 포함하여 32명, 그리고 현재 일요일마다 저희 교회 예배당에 나와서 주님을 배우는 구도자 및 구교자가 20여명,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들이 10명... 어린이까지 다 합쳐서 60여명인 것을 보면 그렇게 성공한 목회, 성공한 교회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작년 감사의 날부터 올해 감사의 날까지 돌아보니까 교인들 중 우리 교회를 떠난 사람은 11명이고 새로이 교인이 된 사람은 8명이고 교인이 더 줄었습니다. 쉽게 보면, 농사 참 잘 못짓고 있지요? 숫자 놀음만 생각하면 감사의 날이 아니라 회개의 날이라고 해야 맞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를 쉬운 성장에 배부르게 하지 않으시고, 많은 갈등으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셔서 저희를 성숙한 모습으로 빚어 가시고, 정직한 교회에 대한 이상(理想)과 정신(精神)을 선명히 깨우치사 소망을 깊게 하시고, 그를 위한 믿음의 마음을 강건케 하시고, 적은 무리이지만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을 불러 주시고, 그래서 저희가 모일 때에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맑음과 밝음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심은... 확실히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기억하면, 저희 교회는 하나님께서 뜻을 갖고 계시고 친히 함께 하셔서 세우시고 연단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감히 단언하여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저는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수요일마다 기도모임을 갖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세계 선교를 위하여 이 세 영역을 위하여 교회적 차원에서 중보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한 책임적 존재라면, 그리스도인은 민족의 운명과 정치, 경제적 상황을 놓고 무관심한다거나 혹은 판단하여 혀만 끌끌 차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민족 공동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마음을 모아서, 뜻을 모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도모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기의 유익에 초점이 맞추어진 사람은 이 중보기도모임이 별 감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 책임적 존재로서 의식있는 삶을 드리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혼란함을 대항하여 손을 모으고 일어서는 이 기도모임에 마음과 시간의 우선순위를 두고 참여할 것입니다.

저희 기도모임에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제일 많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곧은 길", "맑은 물"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세우시사 구원의 은혜와 치유하시는 긍휼, 성숙의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 따르는 '곧은 길'을 만들어 '맑은 물'을 흘러내는 '근원'이 되게 하소서" 곧은 길, 맑은 물 이라는 표현은 저희 교회가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마음을 잘 함축해서 표현한 문구입니다.

곧은 길은 <히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는 말씀에서 나오는 어구이고, 맑은 물은 <왕하2:19-22>에 엘리사가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겔36:25>의 말씀,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에서 나오는 어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곧은 길이란, 바른 것을 말합니다. 바른 신앙, 바른 관계, 바른 교회... 맑은 물이라고 하면, 순결한 정신, 순수한 분위기를 말합니다.
예수님 따르는 '곧은 길'을 만들어 '맑은 물'을 흘러내는 '근원'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는 것은 바른 신앙, 순수한 신앙의 정신과 분위기를 엮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엇이 바른 신앙이고 무엇이 순수한 신앙의 정신과 분위기입니까? 예수님 믿고 따르는 곧은 길과 맑은 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감사의 날에 우리 교회의 식구들에게 그리고 저희 교회를 사랑하시는 여러 손님들께 오늘은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쉽게 성장하게 했으면, 이 곧은 길과 맑은 물에 대한 소망을 오늘처럼 선명하게 심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지난 8년동안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쉽게 성장한 모습보다 예수님 믿는 신앙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깨우쳐 주심을 훨씬 더 소중한 은혜라고 여깁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조급해서...빨리빨리 양적으로 성장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몇 년 하고 없어지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기한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교회는 교회다와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 많이 모이고 재정이 튼튼하고 해도, <계2,3장>을 보면, 예수님이 죽은 교회다,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모임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교회로서 세워지기 위하여 조금 세월이 많이 걸려도, 그 사이 우리 교회 성도들이 조금 더 인내해야 하고 고생 조금 더 하고 해도 진정한 교회다움을 위하여, 그만한 수고의 열매는 가치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정직한 추구에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저희가 지금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마저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여서 교훈해 주신, 정직한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 의뢰하여 정직한 교회에 대한 소망의 마음.. 모두어 예배를 드립시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교회의 중요한 가치로서 깨우쳐 주시고 선명하게 확증시켜 주신 것, 신앙생활에서 곧은 길과 맑은 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오늘은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구원과 믿음에 대하여 둘째, 교회의 정신과 분위기에 대하여 그리고 셋째로는 교회의 일군 및 지도자에 대하여.

첫째로, 구원을 얻는 믿음에 대하여는, 믿음은 예수님을 주님되심(lordship)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멧세지를 요약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은 솔직히 예수님 믿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처음 교회에 다녔던 경험.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모호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모호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예수님 믿는 것이라고 잘못 추측하고 그래도 조금 들은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행전이나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기로 했을 때, 영접기도한 모습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도행전에 보면, 어느 사람이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결신하면,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침례의 의미는 자아가 죽고 예수님이 주님되심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침례의식을 통해 신앙고백을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죄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셨고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한 분명한 한 말씀이 <롬10:9,10>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시인하는 자가 구원받음을 명시해 줍니다.

요는 무조건 교회에 다닌다고 예수님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 의미도 모른채 영접기도 한번 했다고 구원받았다고 볼 수 없으며 내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리를 알고 깨달았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받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을 인정하고 이런 순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온 세상의 메시야로, 나의 주인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고 구원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주 예수" 하면 이것이 고유명사인 것처럼 잘못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름은 예수이고 주(Lord)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밝혀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님, 절대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논증을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우려하는 것은, 존 크리스웰 목사님이 하신 말씀처럼, 천국에 갔을 때 깜짝 놀라는 사실 중의 하나, 당연히 천국에서 보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천국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려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사실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그저 일요일에 교회에 많이 와서 헌금 많이 하고 가십시오, 교인들은 일요일에는 꼬박꼬박 교회와서 헌금 섭섭지 않게 해 드릴테니 내 삶에 간섭하지 말고 나한테 상처주지 말고 도전하지 말고 재미있는 말, 은혜가 되는 사랑의 위로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누이좋고 매부좋고 하는 모습이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lordship을 인정하려면 뭔가 다른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월의식, 나는 보통 교인과는 다르다, 나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나는 제자다... 이런 우월의식으로 열심을 내고 하는데 사실 예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월의식이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는, 구원에 대하여 그렇게 모호하게 놔두지 않겠습니다. 그냥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쉽게 구원받았다고 말씀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는 것이 구원임을 명확히 가르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쉽게 구원의 약속을 남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보세요, 목사님 목사님께서 저의 구원을 의심하셨는데 저는 이렇게 천국에 왔잖아요? 차라리 그런 항의를 받아야지, 저희 교회를 만난 어느 사람이 지옥불에 있으면서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데, 그 목사는 그것도 분별을 못해서 나보고 구원받았다고 잘못 가르쳐서 내 운명이 이게 뭐냐?" 이런 사람은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복음의 제일 핵심적인 내용에 대하여 모호하게 놔두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함이  믿음이며 구원임을 명확히 증거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신앙의 곧은 길을 닦는 것이라 여깁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정신과 교회의 분위기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인은 제자이고 교회의 주된 분위기는 배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은혜를 약속하시고 우리에게 초청하시는 초청의 내용은 바른 관계와 배움으로의 초청입니다. 바른 관계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음으로써 예수님은 나의 주인, 나는 예수님의 사랑의 종, 이런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후에, 그 후에 주인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신명기에도 "평생에 네 옆에 두고 읽고 배워서.."라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나의 멍에를 매고 배우라" 말씀하셨으며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제자의 제 일의 의미는 배우는 자이었으며 처음 교회가 세워지는 기록인 사도행전의 교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그들 모임의 중심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배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세상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철학, 예수님의 사랑과 정신, 예수님의 꿈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저희가 교회로 모이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왜 오늘날의 교인들이 예수님 믿는 맛을 모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였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는데 왜 못 경험합니까?
믿음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절에 열심히 쫓아다니거나 성황당에서 지성을 비는 마음으로 예배당 좇아 다니는지 여러분도 아시지요. 종교 형태만 현대적으로 바꾸었지, 속마음은 똑같습니다. 기복신앙, 나와 우리 가족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기복신앙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이 자기가 복받는 것에 치우친 사람들은 생각을 깨우치고 다르게 사는 삶을 도전하는 배움을 싫어합니다. 그냥 예배만 많이 드리면 복받겠지 라고 생각하는 데 큰 오해입니다.
또는 교회에 오는 것을 일요일마다 마음의 즐거움과 기쁨이 우선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복과 영혼의 만족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여전히 자기 생각, 자기 방법대로 종교생활하니까 껍데기 종교인을 못벗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맛,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괴로이 노젓는 것처럼 억지춘향으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배우는 바른 관계와 바른 정신을 세워 보십시오. 당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은혜의 각성이 있을 것이며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 안에 샘솟는 넘치게 하시는 생명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평생 예수님의 뜻을 배우며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고 따라서 교회는 이 배움의 정신이 주된 분위기인 인생의 학교입니다.

올해 은퇴하신 연세대 신학과의 은준관 교수님이 정년퇴임하는 퇴임사에서 자신이 평생 신앙생활하면서 깨달은 바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교회는 배우는 학교입니다.'
저희 교회가 올해부터 예배 전에 교인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합니다. 성경전체를 11년 동안 다 한번씩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성경의 지식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경의 말씀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정신과 원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저희 교회 교인은 누구나 이 성경공부에 참여를 해야 합니다.

이 성경공부를 하는 중요한 취지 중의 하나는, 우리 모두가 배움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제가 가르치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준비해서 가르치고 저도 배우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교회의 사역자나 직분자가 되면 이 배움의 정신을 잃어버려서 가르치고 다스리려고만 하는 병폐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런 교회는 물이 흐려진 교회입니다.
교회의 인도자는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모본이 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같이 예수님을 배우며 따르는 그 분위기의 교회가 맑은 교회이고 밝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내 마음과 삶은 숨겨둔채,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모습이 아니라...개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나누어져야 합니다. 가족들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일과 관계, 내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녀들은 어떻게 양육하고 있는지, 부부관계.. 이런 이야기가 나누어지고 그 가운데서 피차 권면하고 피차 가르침을 주고 받음으로 주인되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삶 전체가 반듯하게, 아름답게 세워져 가는 것이 정상적인 교회생활입니다.
예) 목사 아내의 말 - 제발 저 강단에 안 올라갔으면...

당연히 교회의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그저 일요일에 교회 빠지지 말고 잘 나와 주십시오, 교회 행사때 꼭 나오십시오, 이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과 삶이 나누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피차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며 정상적인 삶을 바로, 순결하게 세워가는 것이 교회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교인들도 교회가 어떻다, 어떻다 이런 생각을 하고 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이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의 이야기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뜻을 함께 물으며 찾으며 배우는 장, field가 공동체, 교회입니다.

" 최초의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신 사람들이 '서로 삶을 나누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서 교회는 그리이스로 이동해 갔는데 거기에서는 교회가 '철학'이 되었다. 다음으로, 교회는 유럽으로 옮겨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미국으로 옮겨 왔는데, 그곳에서는 교회가 '사업'이 되었다."
          - Richard Halverson의 The Awesome Power of Shared beliefs 중에서 -
교회는 철학이나 문화나 사업이나 미신이 아닙니다. 교회는 '서로 삶을 나누는 가족'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성경공부 많이 했어도 하나도 유익도 없고 도움도 안된다고 말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가만히 보면 성경공부 제대로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수박겉핥기식으로 하거나, 이빨 빠지듯이 하거나.. 그렇게 하니까 별 유익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이 오만해서.. 그러고 나서 판단하지요. 내가 다 해봤는데 별 거 아니더라. 눈요기만 해서 맛을 압니까?

곧은 길, 맑은 물의 교회는 배움의 색깔이 제일 진한 공동체입니다. 맑은 물 근원을 기도하는데 비유적으로 표현한 물이 무슨 뜻입니까? "야 거기 물 좋더라"하면 무슨 뜻입니까? 분위기 좋더라 이런 뜻이지요? 교회가 좋은 분위기는 성도들 모두가 예수님의 정신과 삶을 진지함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셋째로, 곧은 길, 맑은 물의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일군 및 지도자를 세우는 것에 대하여는, 교회의 일군 및 지도자는 신앙생활의 모본을 보이는 사람이 은사에 따라서 일군 및 지도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사를 내려오면서, 교회 역사학자들이 교회사상사에서 제일 큰 병폐로 지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직제입니다. 이는 교회가 제일 부패하였던 중세 때에 선명히 획이 그어진 것이고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이 개혁의 3대 기치를 들 때에 그 중의 하나가 '전신자제사장주의'였습니다. 전신자제사장주의라는 것은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는 것으로서 예수님을 주로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형제요, 자매이지 다른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명을 받은 성직자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고 평신도는 적당히 믿어도 되는 사람이고 라는 이원론적 구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마귀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의 사상을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 이 구분을 없앤다고 하였지만, 오늘의 교회는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이 구분이 있습니다. 목사는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여기려고 그러고...신학교 나오면 신분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사회적인 병폐가 "목사가 된다 하면 큰 교회 만들어서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성공하는 것"으로 누구나 생각합니다. 목사,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본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회적 병폐가 '자질없는 신학생들'의 양산입니다. 우리나라 신학생들의 숫자가 전세계의 다른 나라의 신학생들 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성직자의 수가 급증한다는 사회학적 원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이제는 목사가 사회적 범죄를 해도 사람들이 놀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목회자들에게서 윤리적 수준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전임사역자들을, 신학교 자체를 매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교회 공동체에서의 영적 지도자는 존중을 받아야 하고 그 권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지도자적 자질의 검증이 없이, 신학교에 갔다왔다고 해서 무조건 지도자 직분을 갖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가운데, 그 신앙인으로서 생활이 모본적인 사람이 일군으로 서고 지도자로 서야 합니다. 디모데전서에 보면, 거기에 목사와 교사, 영적 지도자는 어떤 사람을 뽑아야하는가 그 기준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사람, 신앙인으로서의 생활에 모본이 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신앙생활에 본이 안되는 사람이 지도자 노릇을 하는 것은 큰 병폐이고 교회의 물을 흐리게 하는 오류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청교도 신앙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사람들은 지도층의 사람에게는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교사상을 곡해하여 지도층의 사람은 특권층의 사람처럼 인식되어서 문제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기능을 배우듯이, 어떤 코스를 거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배우며 따르는 교회생활 중에 성숙한 사람, 본이 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움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 교회는 일군을 세우고 지도자 전임사역자를 세우는데, 무엇보다도 과연 신앙인으로서 정상적인 삶이 모본이 되고 있는가를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배움의 본이 되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세울 것이며 섬김의 본이 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울 것입니다. 배움의 마음은 잃어버린 채, 판단하고 다스리는 역할만 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분위기가 맑은 교회입니다.

전임사역자가 되는 것은 신학교 나와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예수님 배우며 섬기는 생활 가운데 특별히 전도와 양육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소정의 훈련을 받게 하여 전임사역자가 되게하는 것이 바른 모습입니다. 검증이 되지도 않았고 은사도 없는데, 괜히 신학교 가서 목회한다고 하여 쌩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한국 교회의 큰 문제이지 않습니까? 정신이 올곧게 박히도록 연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은사와 재주만 믿고서 목회한다고 하니 교회가 장삿속이라는 말을 숱하게 많이 듣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아닙니까?

<결론>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정직한 소망을 주시고 그리고 이 정직한 소망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천하 범사에 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가심에 그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확연히 "곧은 길, 맑은 물"을 형성하는 때입니다. 저희 교회, 아직도 성장을 이야기하기 앞서서 맑은 물, 곧은 길로 표현되는, 작아도 이 정직과 순결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때입니다. 조금씩 그 물을 이루어 가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중요한 자리에서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다시금 권면합니다. 아직도 신앙생활, 주일 예배만 드리면 된다고 여기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공부에도, 작은 공동체 모임에도 난 안 나간다 하시는 몇몇 분들, 제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정말 사랑으로 권하노니 빨리 마음을 돌이켜서 정상적인 신앙생활, 예수님 배우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손님 여러분, 저희 교회가 곧은 길, 맑은 물로 표현되는 올곧은 교회, 순결한 교회가 되도록 한번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은 같이 하지 못하여도 저희 교회는 오늘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도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정말로 저희 교회가 혼탁한 세상 가운데, 맑은 물을 흘러내는 근원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무리 흙탕물 웅덩이라 하더라도 그 한 구석에서 맑은 물이 계속 흘러나면 마침내 그 웅덩이는 깨끗해집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지경을 보이고 혼란함을보인다 하더라도.. 작아도 맑은 물을 흘러내는 교회를 세우고 지킨다면, 부흥의 소망은 이루어집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 곧은 길, 맑은 물 근원이 되는 교회의 정신과 비젼 가운데로 초청합니다.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나도 정직한 신앙생활 해보고 싶습니다, 몸은 조금 더 피곤하고 시간 우선적으로 많이 드려야 하고 그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신앙생활의 곧은 길을 닦으며 맑은 물 근원으로서의 교회를 이루는데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을 주신다면, 한번 응답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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