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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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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옛날 독일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인가 그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돈 많은 노인 부부가 날마다 빵을 만들어서 동네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매번 빵을 한 개씩만 가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는 빵을 차지하겠다고 난리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한 여자 아이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언제나 맨 끝에 섰습니다. 자연히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빵은 항상 제일 작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더 큰 빵을 차지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자기에게 빵을 나누어 준 노인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조차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 아이는 제일 작은 빵을 차지하면서도 언제나 잊지 않고 깍듯하게 그 노인 부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그 여자 아이는 맨 끝에 섰습니다. 그날따라 그 여자 아이에게 돌아온 빵은 유난히 더 작아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인 부부에게 빵을 주셔서 감사하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자 아이는 집에 와서 빵을 먹으려고 하다가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빵 속에 금화 한 닢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옆의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처럼 작은 것일지라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마련한 선물이란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들 노인 부부의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대체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감사를 요구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골2:7의 끝부분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넘친다는 말은 가득 차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를 넘어서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서 우리 모두의 마음이 감사와 감격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감사의 초점을 맞추어서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감사의 동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감사가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감사의 비결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결과요, 열매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믿음은 언제나 정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감사의 방법입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색한 감사,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리는 감사는 온당치 못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설교를 아주 못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정답은 두 분 다 영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못하시는 목사님은 영감, 곧 성령의 감동이 없습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영감, 곧 할아버지가 없습니다. 물론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영감을 회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어의 think, 생각하다라는 단어는 thank, 감사하다라는 말과 어근이 같습니다. 그리고 grace, 은혜라는 단어는 gratitude, 감사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 깊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마음껏 노 저어 가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감사의 동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감사함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감사의 제목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어쩌면 시시한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크고 많기 때문에 그 수를 우리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우리가 깊이 생각해서 감사할 제목들을 적는다고 할지라도 역시 그 가운데는 빠진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아무리 감사의 조건들을 많이 나열한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사실을 빠뜨려 버린다면 감사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동기가 빠져버린 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참으로 감사함이 넘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을 한번 예로 들어 생각해 보십시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는 참으로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핍박과 환란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지금 바울은 어디에 갇혀 있었습니까?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골로새서를 가리켜서 일명 '옥중 서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서도 그는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3:15∼17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매 절마다 감사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절박한 상황 속에 놓여있지만 자신도 감사로 충만하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감사한 생활을 하라고 강조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넘치는 감사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심방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타고 오던 차가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길옆에 차를 세우고서 땀을 흘리면서 그 차를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한 젊은이가 개 한 마리를 끌고서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목사님이 신사복을 입으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차를 고치느라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목사님에게 다가와서 자기가 대신 고쳐주겠다고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그 청년이 차를 고치는 동안에 함께 온 개는 청년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면서 청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가 주인을 몹시도 따르는군요."
그러자 그 청년은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한번은 혼자 등산을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서 나오려고 해도 저의 힘으로는 나올 재간이 없었습니다. 기진 맥진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곁을 들개 한 마리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손짓을 하면서 좀 도와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들개가 저의 상황을 용케도 알아차리고 자기 입으로 덥석 제 옷자락을 물어서 끌어 당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들개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저는 그 들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극진하게 사랑하면서 잘 보살폈습니다. 이제는 친해져서 한 침대에서 같이 잘 정도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청년에게 넌지시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의 목숨을 건져준 이 개를 발길질한다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반쯤 죽여놓아야지요!"
청년의 말을 듣고 목사님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서 대신 죽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감사하시겠습니까?"
청년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목사님은 비로소 입을 열어서 청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목사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다 듣고 난 청년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자기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모든 영광을 이어 받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사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감사함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감사의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누가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에 굳게 선 사람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요, 결과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감사를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감사는 언제나 믿음의 표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잘 것이 없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앞에 놓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 뒤에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오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하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난 뒤에 비로소 감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시면도 감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리하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우리 예수님의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어떤 일이 있고 난 뒤에 후행적으로 감사를 드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심을 믿고 바라면서 선행적으로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은 우리 믿음의 성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여기에 사과나무 묘목 한 그루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것을 땅에 심을 때 어떻게 합니까? 땅을 파고 뿌리를 먼저 박습니다. 그리고 삐뚤지 않게 똑바로 세웁니다. 그리하고 난 뒤에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도록 주변의 흙을 잘 다져 줍니다. 그러면 잘 자라서 풍성한 과일을 맺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바르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절로 믿음의 열매인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흑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흑인들의 예배는 매우 열정적입니다. 그들은 찬양을 부를 때도 그냥 입으로만 부르는지 않습니다. 온몸을 다 사용해서 찬양을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조금만 은혜가 된다 싶으면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큰 소리로 화답을 합니다.

어느 주일날, 그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습니다.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교인들은 너도 나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며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뛰어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그러자 모두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께서 흐믓한 모습으로 교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시간 구체적으로 작정을 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합시다."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용기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하여금 예전처럼 다시금 앉아있게 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행여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어떠한 희생과 헌신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절로 감사함이 넘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번째, 감사의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overflowing with thankfulness"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가득 차면, 입만 열면 절로 감사하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가득찰 때, 절로 우리 몸에는 감사한 행동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감사는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리는 감사는 온당치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었던 헨리 포드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한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고아원생들을 위해서 강당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2,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신문에 뜻밖에도 이러한 기사가 머릿말로 실렸습니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0,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하다."
2,000파운드가 20,000파운드로 잘못 게재된 것입니다. 고아원측에서는 그 기사를 보고서 포드 회장을 찾아왔습니다.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정정하는 기사를 내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18,000파운드를 더 내겠습니다. 그대신 고아원의 강당이 완공이 되고 나면 그 입구에 이런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지어진 강당.'
그렇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것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함도 마땅히 넘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고 불리워졌던 존 워너메이커는 어린 시절 참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벽돌공장에 다니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한한 복을 주셨습니다. 세계 역사상 그는 열 손가락에 꼽힘을 받는 크리스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곳곳에 YMCA건물을 많이 지어 주었습니다. 종로2가에 있는 YMCA건물도 그가 기증한 돈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한번은 그가 일백만 불을 들여서 큰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일백만 불은 큰돈이지만 그 당시에는 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그는 그 예배당을 헌당하면서 감격 가운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를 못하고 벽돌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어도 드릴 것이 없어서 너무나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일하는 벽돌 공장에서 벽돌 몇 장을 사서 질퍽한 교회 입구를 깔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회 목사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내 손을 붙드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하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때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30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많은 복을 주셔서 이제는 이렇게 큰 예배당을 하나님께 헌당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은혜를 제가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감사는 낭비가 아닙니다.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언제나 축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게 마련입니다.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십시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십시다.
마지막으로 어떤 책에서 제가 인용한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옷이 몸에 좀 끼면, 그것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잔디를 깎아야 하고, 유리창을 닦고, 하수구를 고쳐야 한다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정부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면,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아파트 주변에 주차장이 없어서 불편하다면, 그것은 나에게 차가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전기값과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면, 그것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세탁물이 많고 다림질할 옷이 쌓였다면, 그것은 내게 옷이 많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이른 아침 새벽 자명종 소리에 놀라 깼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 감사하라.
모임을 가진 후에 치울 것들이 많다면, 그것은 친구와 성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니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마다 감사하십시다. 귀로 듣는 말마다 감사하십시다. 누구를 만나든지 감사하십시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십니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지 감사하십시다. 말씀에 순종해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우리의 삶 속에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3년 11월 16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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