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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은 복의 근거가 됩니다. (레 2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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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종은 복의 근거가 됩니다. (레 26:3-13) 


어느날 예수님을 따라 전도하다 지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얘들아, 우리가 저 저 높은
산으로 올라가자. 우리가 올라갈 때 커다란 돌을 두 개씩 들고 올라가자’하셨습니다.
따지기 잘하는 가룟 유다는 ‘힘들어 죽겠는데, 산은 올라가자고 하시며, 게다가 왜 돌은
두 개씩 가지고 올라가자 하시는건가. . . .’ 참 못마땅하게 여긴 가롯유다는 조그마한
자갈돌 둘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올라갑니다. 그러나 우직한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큰 돌 둘을 어깨에 메고 땀을 흘리면서 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앉히시고, ‘자 각자 가지고 온 돌들을 자기 앞에 놓고 다같이
기도하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축사하시고 나니 돌들이 떡으로 변해
있습니다. 우직하게 순종한 베드로는 큰 떡을 얻게 됐습니다. 그 감격은 말로다
할 수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작은 떡을 가지고 후회. . .후회. . .
이 이야기는 순종에는 축복이 따른다는 교훈이 들어있는 위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롯유다와 같은 교인들도 종종 있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지 못합니다.
순종은 헬라어로 ‘휘파쿠오’(아래에서 듣는다, 주의 깊게 듣는다, 명령을 따르다) 라는
의미입니다. 순종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순종에는 피나는 아픔이 있습니다.

보석 중에 땅에서는 나지 않고 바다에서만 나는 보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주입니다.
진주는 ‘아빌퀼리테’라고 하는 조개의 몸속에서 만들어 지는데 그 조개의 몸속에 모래가
들어가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아빌퀼리테’ 조개가 다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조개의 몸속에 모래알이 들어온다는 것은 큰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그런데 이 모래알이
준 이 아픔에 대해서 조개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진주가 되든지 썩어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가 되려고 하면 ‘라카’라고 하는 특수한 물질을 몸에서 발산하면서 그 모래알을 감싸
안고 모래의 거칠한 부분을 점점 부드러운 조갯살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라카’를 배출할 때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참아 이겨내면서 ‘라카’ 를 만들어 대처해 나갈 때 모래알은 비로소 진주가
되어 최고의 보석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아픔과 고통을 축복으로 바꿉니다.

찬송가 342장에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 할 것뿐 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아멘

어려운일 당하면 내가 가진 믿음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십니다.

◎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

1) 믿을 때
믿음과 순종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1:5에 “믿어 순종케 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믿을 때
순종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성령이 임재하시면
성령이 역사하시면 순종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입니다.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말씀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또 순종하게 합니다.
벧전1:2에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게 합니다. 거역하게 합니다.

3) 고난의 때에 순종하게 됩니다.
고난은 성숙하게 하는 학교입니다. 히5:8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과거 시골에서는 소의 코를 뚫어서 논밭을 갈았습니다. 소가 그렇게 사용될려면 먼저
웬만큼 자란 소의 코를 꿰어야 합니다. 코를 꿰면 처음에는 반항을 하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 때문에 길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 아픔 때문에, 그 고난 때문에 그 천방지축의
소는 순종하는 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소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순종하게 하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가치있게 훈련하는 학교입니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소속 선교사 하나가 남미의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글을 만들어
주고 그 글로 성경 번역을 하는 사역을 하는 중에, ‘순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꼭 해야 한다’ 라고 하면서 ‘모든 마음으로 해야
한다.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를‘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길게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순종은 온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어서는 안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에도 마음이
나눠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홍수 심판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구원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창12:1에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정든 고향을 떠나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의 마음이 갈라지
않았습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불란서 사상가 파스칼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나의 모든 것 몸, 마음, 물질,
시간, 명예, 그리고 영혼까지도 주님이 주장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 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나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순종하게 됩니다. 같은 장소에서 말을 해도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이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종의 분량은 말하는 이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롬4:17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다시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라”

풍랑이는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베드로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오라 하소서 했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실 때 베드로가 그 말을 믿고 물에 내려서서 걷는 순간 그는 물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이런 순종을 찾아보기 드물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똑똑한 척합니다. 부모에게 대꾸 하고, 대들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는
학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더 앞장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행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에 하나는 듣는 귀를 개발해야 합니다.
듣는 것을 잘못하는 사람은 좋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헬라어에서 죄를 가리키는 단어
‘하말티아’는 ‘과녁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의 기준을 ‘사회의 법’에 두고 있습니다. 죄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본문에는 불순종의 죄로 인해서 당할 여러 가지 징책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당할 것들은 각종 질병과 폐병, 열병,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해지며, 씨를
뿌려도 헛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대적이 다 먹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전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 각종 질병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 일어나는 병들로 에이즈, 광우병, 사스 . . .모든 세계를 놀라게 하고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얼마전 뉴스에 보도된 것을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이 일본에서 광우병에 걸린 고기를 수입해서 60만명분의 고기를 식당들로 유통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고기를 먹게 되면 10년 후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 때부터 아프다가 죽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소식을 들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고기를 잘 사다 먹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땅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세계는 지금 기근과 가뭄 흉년으로 기아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65억인구중 12억이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8억은 항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에디오피아에는 부모없는 부랑아들이 최소 1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에디오피아의 평균 수명은 47세입니다.
우리의 동포인 북한에는 50% 의 영, 유아들이 영양실조라고 합니다.
가어뿐만 아니라 물부족문제도 심각합니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이미 약 3억명이 심각한 물부족 을 겪고 있으며 2050년이 되면 전세계 인구의 3분의2가 물부족 사태에 직면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전세계에서 약 12억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으며 5백만∼1천 만명이 매년 수인성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는 지금 한 쪽에서는 홍수 한 족에서는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순종하는 자를 지금도 찾으십니다.

본문에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시기적절의 복이 따릅니다.
4절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시후에 비를 주신다는 것은 계절에 맞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적기에 적절한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가 좋아도 와야 할 시기에 오지 않으면 복이 아닙니다. 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비가 아니라 때에 맞지 않는 비는 곡식이 썩어버립니다.
시편 1편에는 복있는 사람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는 비가 두 번 오는데 이른 비가 오면 파종을 합니다. 그리고 늦은 비가 내려야 열매가 충실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가 없으면 그해 농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몇 년전에 성지순례를 가다가 요르단을 지나가는데 보리가 한 30센티 정도 밖에 자라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열매도 드문드문 달려 있습니다. 어찌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가이드가 하는 말이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가 안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했더니 그냥 올해 농사는 망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사에 있어서 적당량의 비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그렇습니다. 비만 좀많이 와도 농사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금년 매미 태풍으로 인해 30%농작물 소출이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단비를 주시지 않으면 인생농사도 망치는 것입니다.

시12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부요는 거품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가라앉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지식은 거만하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2. 땅에 평화를 주십니다.

6-7절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가 대적을 좇으리니”

하나님이 평화를 주시므로 재앙도 재난도 전쟁도 없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영혼이 잘 돼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평화가 임합니다.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돼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영혼도, 육체도, 환경도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의 평화가 우선입니다.
마음의 불안과 걱정은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듭니다.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일이 어려운 일들도 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땅에 화평을 만드는 자들이 많을 때 행복한 삶이 만들어지고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화평을 만드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 격언에“무너진 둥우리에 온전한 달걀이 없다”고 말합니다.
속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교회의 부흥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관이 하나 되지 못하고 교회의 성장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단은 불평케합니다. 평화를 깨뜨립니다.
축복의 땅 에덴동산에도 화평을 깨뜨리는 뱀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도 가롯유다(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가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화평을 만드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기 22:21).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만듭니다. 그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번성과 풍성의 복

9절을 보면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출애굽기 19:5-6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행하면, 번성하고 창대케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소유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구마 하나를 심어놓으면 뿌리를 통해서 쫙 뻗어갑니다. 고구마를 캘 때 여기저기에서 열매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창대하게 번성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번성케 해 주셔야지 사람의 욕망으로 번성시킨 것은 무너집니다.
바벨탑(바벨론)도 무너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창대하고 번성했던 도시도 하루 아침에 불타버렸습니다. 앗수르 제국, 애굽 대 제국도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10절을 보면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던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이삭이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은 그가 똑똑해서도 잘 나서도 아니었습니다. 묵묵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묵묵히 순종하는 자는 크게 번성하고 놀라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 이 말씀은 풍성하여 나눠주면서 살겠다는 말입니다.
이 가을에, 시기적절의 복, 평화의 복, 번성과 풍성의 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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