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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 최고의 특권과 의무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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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최고의 특권과 의무(데살로니가 전서 5:16-18)


1. 인생은 사회적 동물

1) 인류 최초 결혼의 원형

우리 사람은 개인으로 혼자 살지 못하고 함께 모여 단체적으로 살아가게 되어있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이 원리를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인생 창조의 설화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하시고, 한 사람을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척 보더니 이는 남남이 아니고 내 골육이라고 하며 이성지 결합으로 한 몸을 이루었다고, 창세기 2장 마지막 부분에 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표준 새 번역 성경을 보면 아담이 말하기를,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났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렇게 실감나게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말이며, 이것이 인류 최초 결혼의 원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개인이지만 두 사람부터는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가 되는 것인데 이 복수를 가리켜 사회라 부르는 것이지요. 따라서 일남 일녀가 결혼하여 이루어진 가정도 하나의 사회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2) 사회의 정의와 질서

우리 국어사전은 사회를,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이라고 설명하며, 온 세계 -이 세상 전체도 하나의 큰 사회라고 해석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인류의 집단”이라고 잘 정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개인이 아닌 사회가 이루어졌을 때 그 사회가 질서 있게 잘 유지되기 위하여 반드시 사회의 일원으로 지켜 나가야 할 어떤 규범이 필요한 동시에, 그 규범에 따라 각자가 해야 할 책임 곧 의무가 있게 되고, 또 어떤 이익을 주장하거나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따르게 되기 마련이지요.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사회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권리와 의무

1) 일반적 원리

이 권리와 의무가 잘 이행되고 실천되는 사회는 발전하고, 그렇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고 마침내 소멸되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 - 국가라고 하는 큰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꼭 지켜야 할 의무 몇 가지를 든다면, 납세의 의무 ․ 병역의 의무 ․ 준법의 의무 - 나라의 법률을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교육의 의무 - 국민으로서 필요한 국민 교육을 잘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교육은 의무도 되고 권리도 되지요. 교육을 받을 권리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는 자유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데, 언론의 자유 ․ 집회와 결사의 자유 - 자유롭게 모일 수도 있고 정당과 사회단체 등을 조직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 ․ 거주의 자유 - 어디든지 마음대로 이사해 가며 살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2) 민주와 독재의 차이

이 권리와 의무가 잘 지켜지는 나라와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 사회라 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와 사회를 독재 국가 또는 통제 사회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언론의 자유 ․ 종교의 자유 ․ 거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이지요. 제 경우를 봐도 잘 알 수 있어요.

6 ․ 25 동란으로 남하하기 전에 저는 학교 교편을 잡고 있다가 국민학교 교장직에서 공산당에 들지 않는다고 그 직위를 박탈 당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즉시로 좋은 교회의 청빙을 받아, 안주노회 수우리(水隅里) 또는 물모루 교회라 이름하는 곳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는데, 시무 장로가 두 분이나 되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평양과 순안 중간에 위치한 교통도 편리한 곳이어서,매일 기차로 신학교에 통학하면서 열심히 목회에 종사한 지 1 년도 못되어 6 ․ 25가 일어나, 이남으로 피난 오면서 재봉침 머리 기타 귀중품을 땅에 파서 묻어 놓고 나왔는데, 공산당원들이 와서 다 파가고 우리 가족을 그 좋은 사택에서 내 쫓아, 저 평안북도 태천이란 산골로 이사가게 했다는 사실을 조금 후에 피난온 이웃 청년에게서 듣고 알았어요.

주소를 옮기게 한 것은 우리 집만은 아닙니다. 공산 정치 초기에 국가 전체적으로 이주 정책을 실시하여 주소를 다 옮기게 하였던 것이지요. 옛날 살던 한 곳에 그냥 있으면, 과거 이야기만 하면서 개혁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뜻에서,정책상 그렇게 주소를 다 옮기게 한 것인데, 우리 가정은 성분이 좋지 않다고 그처럼 산골로 보냈는데 논밭도 없이 산지를 개척해야 살아가는 불편한 지역으로 보내서 지금도 태천에 살고 있습니다.

3) 권리와 의무의 관계

권리와 의무는 밀접한 연결과 유대(紐帶)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리 있는 곳에 의무가 있고, 의무를 잘 이행할 때 권리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리와 의무가 수례의 양 바퀴처럼 조화있게 병행하며 잘 실천될 때, 그 국가와 사회가 안녕 질서를 잘 유지하여, 국민과 사회인들이 활기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선진 문화국으로 상위권에 놓여있는 미국 ․ 캐나다 ․ 영국 ․ 스웨덴 ․ 덴맑 같은 나라는 전부 기독교 개신교 나라들인 반면에, 천주교와 불교가 왕성한 나라들은 그렇지가 못한 현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동양을 봐도 가톨릭이 많은 필립핀과 불교가 왕성한 태국은 국토가 크고 자원도 좋지만 별로 잘 살지 못하는 현실이 아닙니까?
과거 가난한 약소국의 하나였던 우리 한국이, 근자에 와서 경제적으로 또는 교육 문화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 개신교가 들어와 크게 부흥 성장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 한국의 온 국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4) 기독교와 권리 의무

그렇다면 어찌하여 개신교 국가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 이유를 한 번 고찰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잠언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16:20,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이 두 절 말씀만 봐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예수 믿는 사람이 많으면 그 나라가 복을 받아 부강해질 것이고,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으니, 이신 득의(以信得義) -예수를 믿으므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어 그 나라가 번영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 예수 믿지 않고 죄를 많이 지으면 그 나라 백성이 수욕을 당하게 되는 것이므로, 성경 말씀 그대로 성취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이면서도 천주교(로마 가톨릭)는 교황이 교권을 잡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인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보다도 교회가 집행하는 성례(세례와 성찬 기타)와 교회의 제도, 및 교회가 결정하는 내용과 교의(敎義) 등의 권위를 더 존중하는 교회정치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정확무오한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이 되는 신구약 성경의 진리에서 이탈된 까닭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로마서 13:1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말씀을 따라,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나라에도 충성하는 선량한 국민으로서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게 되는고로,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와 사회는 번영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정치 ․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에, 기독교 문화는 하나님이 주신 인권의 평등과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으므로, 기독교 국가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가 우세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자기들의 권리와 의무를 잘 실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3. 특권 제도

1) 일반적 특권

권리 가운데 일반적 권리 외에 특별한 권리가 있는데 이것을 특권이라 하지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의 특권 가운데 인신 구속을 받지 않는 권리가 있어요. 법적으로 구속 영장이 없는 한 경찰이 국회의원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특권 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의 아들로 황제가 된 콘스탄틴(Constantinus) 대제가, 313년 밀란 칙령으로 기독교의 자유를 선포한 후 교회를 위한 법령을 제정하였는데, 그 내용 가운데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교직자의 병역, 기타 부담을 면제한 조항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것 역시 기독교인과 교회 성직자에 대한 특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휴일인 일요일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이며, 교회 성직자들은 병역과 납세 등의 의무를 면제 받는 특권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인신 구속을 당하지 않는 특권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특권

고대 로마 제국에는 로마 시민권 제도가 있어서 이 시민권 소유자에게는 막강한 특권이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주고 로마 시민권을 사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의 소지자였지요. 그러나 그는 좀처럼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지 않고 여러 차례 전도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권 소유자가 받지 않아도 될 수난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중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이를 행사하신 일이 한, 두 번 있었던 것을 사도행전 기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3차 전도여행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교권주의자들에게 붙잡혀 많은 고통을 당한 후, 마침내 반역자로 무고하여 관헌에게 맡겨 바울을 없애버리려는 궤계가 진행되던 바로 그 때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시민권을 제시하고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을 것을 청원했던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을 통치하는 최고 집권자인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이 감히 바울에게 손을 못 댄 사실을 볼 때, 로마 시민권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행 26:32) 하면서도, 부죄 석방의 그들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바울의 요청대로 백부장에게 붙여 로마로 호송할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또 로마에 가서도 미결수로 재판을 받을 때까지 일단 로마옥에 1차로 수감되었지만, 보통 감방에 갇히지 않고 일반 가정 셋집에 살며 자유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특권

1) 일반적 특권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특권이 있을까요? 대단한 특권이 있답니다. 요한복음 1:12,13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세와 권리 곧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대통령의 아들들이 얼마나 권세를 누리고 권리가 당당하지 아십니까? 지나간 김(金) 자 쓰는 두 분 대통령의 아들들의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우리는 다 지나 보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대통령 또는 부통령이란 말도 나왔고,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일 때문에, 그들의 부친 대통령들 통치 성적에 적지 않은 마이너스를 준 사실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4,5 년이면 끝나는 일개 국가의 대통령 자녀들이 이렇게 특권을 소유한다면, 하물며 온 만유와 전 세계를 영원히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것은, 가히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2) 최고의 특권과 의무

그러한 일반적 특권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제일되는 최고의 특권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본문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17,18은 아마 우리 교우들이 거의 다 암송할 듯합니다. 암송하든지 성경책을 보고 읽든지 한 번 다 같이 시-작.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예 - 항상 희락 ․ 불식(不息) 기도 ․ 범사 감사 -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3대 특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으며, 언제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인간 자체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우리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는 무리하고 몰상식한 분인가요.
이 세상의 부모들도 자녀들이 할 수 있을 것을 하라고 하지 못할 것을 하라고는 안 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못할 것을 하라고 하시지는 않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요 신앙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기록하신 분이 바울 사도입니다. 기록한 자는 바울이지만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 서신을 기록한 저자 바울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것만이 아니라, 그는 기록한 말씀 그대로 실행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 가운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고 하였는데, 이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기록한 옥중 서신 중의 하나이지요.
아무 죄도 없이 옥중에 갇혀있는 바울이 기뻐할만한 조건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씀 가운데 “주 안에서”라는 말에 우리는 주목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밖에서는 안 되고 주 안에서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뜻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밖에서, 주 예수님과 관계 없는 우리 인간 자신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그 주 안에서는 가능하다는 말씀이니 못할 것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신 빌립보 4:13 말씀이 바울의 진지하고도 확고한 신앙의 간증이라고 생각할 때, 인간의 불가능을 능히 가능케 하는 것이 신앙 곧 믿음의 능력이라는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할렐루야!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이기지도 못하고 불가능하지만, 승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능히 온 세상도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1월 23일의 영적 추수주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동안 특별 새벽 기도회를 2 주간 실시하고 아직 1 주간이 남아 있습니다만, 새벽마다 생각하며 은혜 받은 히브리서 11장의 신앙 영웅들의 생애가 모두다 같이, 하나님이 주신 성도의 3대 특권과 의무를 그대로 실천하므로써 세상을 승리한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모세․여호수아․라합․기도온․바락․입다․사무엘․다윗, 또는 욥과 같은 구약 인물들 말입니다.

그들이 다 우리와 같은 성정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승리의 삶이 가능했던 것은 온전히 그들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오늘의 우리가 항상 희락 ․ 불식 기도 ․ 범사 감사의 3대 특권과 의무의 실천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이는 순전히 일반 불신자들의 사고 방식과 실제 생활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며, 믿음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 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5. 결론

사랑하는 본 부산 영락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부여된 성도의 특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이 특권은 곧 우리들의 특별한 의무도 되는 줄 믿고 이를 능히 실천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항상 기뻐하는 것: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을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주의 영인 성령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 크신 주님 능력의 팔이 나를 안보하심으로, 희노애락 간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아침 잘자리에서 깨어 일어나 기도로 하루의 삶을 시작하고, 저녁 자리에 눕기 전 경건한 취침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하루 종일 지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 순례의 길을 행하면, 이는 곧 쉬지 말고 기도하는 생활이며 아울러 범죄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 말씀은 두 가지 내용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헬라어 원문의 뜻이 영어 성경에 두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홈정역(King James Version)에는, “In every thing give thanks:” 하나 하나 매사(每事) 곧 모든 일들에 감사하라는 뜻인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우리 성경이 이 홈정역에 따른 것입니다. R S V(Revised Standard Version/ 개정 표준역)에는,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모든 환경에서 감사하라, 즉 어떠한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뜻으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라는 공동번역은 이 개정 표준역을 따른 것입니다. 대단히 철저하고도 절대적인 명령의 교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8절 하반절 말씀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에베소서 1:4,5)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라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곡한 하나님 마음의 소원이라는 것을 알아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희락 ․ 불식 기도 ․ 범사 기도의 세 가지는 인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능히 가능하다는 뜻에서,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인의 3대 특권이라고 보는 성경적 근거를 다시금 확인하는 동시에, 이 특권은 곧 성도의 특별한 의무도 되기 때문에, 이 특권을 감사히 받아들여 이대로 이 고귀하고 특별한 의무를 잘 이행하고 실천하므로써, 우리를 향하신 뜻 곧 하나님의 원하시는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진대, 이 세 가지 특권과 의무를 실행할 때 하나님은 그 원하시는 듯이 이루어져 영광을 받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학자들의 표준적인 주석을 보면, 이 18절 후반절은 넓은 의미에서 16,17,18절에 다 연결되는 것이로되, 특히 18절에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에 있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써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에서, 희락 ․ 기도 ․ 감사 세 가지 중에서 감사의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결국 기독교는 곧 감사의 종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골 3:15) 권면한 것과 같이 저도 본 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모두 감사하는 자들이 되자고 권면 겸 약속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는 오늘의 본문 18절과 같이 범사에 또 모든 환경에 감사하는 진정한 감사를 의미하며, 이렇게 하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자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언어 ․ 물질 ․ 행동의 세 가지입니다. 감사한 생각이 있으면 말로 발표하게 되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되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왜 이런 말에 그렇게도 인색한지요! 택시 운전자들이 승객에게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 하는 것 들어 보기가 어렵단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있을 수가 없어요. 쌩큐 ․ 쌩크스 ․ 하이 하이, 아리가도-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에서는 이런 고맙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의 말씀이 곧 찬송과 기도입니다. 주의 전에서 또는 가정에서 열심히 찬송하고 간절히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물질로 감사를 표현해야 됩니다. 헌금의 표준은 “온전한 십일조”입니다(말 3:10). 이 표준, 혹은 그 이상으로 헌금을 넉넉히 드려 물질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쓰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셋째로는 감사의 생활화입니다. 감사를 행동으로 나타내어 모든 일-범사와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저는 지난 9월 하순에 미국 뉴욕에서 한 주간 동안 모임을 가지면서 관광도 하는 중, 마사츄셋주 풀리머스(Plymouth)에 가서 청교도들이 타고 온 五月花/Mayflower) 범선과 청교도 박물관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620년 영국과 화란에서 102 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돛단 배를 타고 와서, 1621년 농사한 것을 가지고 11월 미국 토인을 초청하여 1 주간 감사의 잔치를 한 것이 추수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일년간 받은 은혜를 세어가며, 또는 어려운 일을 당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무조건 범사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최고의 3대 특권과 의무를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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