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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학시대의 기적을 체험하자 (신 1:30-33,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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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기적을 체험하자
( 신 1:30-33, 행 2:43-47 )

 
자연신 교도인 토마스 제퍼슨은 재직하는 동안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성경 구절들을 삭제하면서 다시 신약 성경을 썼습니다. 그가 삭제한 부분은 대부분 예수님의 기적과 관계있는 구절들이었습니다. 만약 기적을 삭제한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남아 있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기적입니다. 기적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기적이 아닌 사건들입니다. 기적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어린이들이 보는 어른의 세계는 신비합니다.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뿐입니다. 하나님께는 기적이 없습니다. 기적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실 수 있고 기이하지도 않습니다. 기적에 대한 두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은 과학시대에는 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적만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신비한 체험만 쫓아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적이 많이 나타난 세 시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 시대입니다. 모세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기 위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십니다. 둘째는 엘리야, 엘리사 시대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렸습니다. 어느 과부가 가난하여 엘리사의 말씀으로 모든 병이 기름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수넴의 한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한센병이 든 나아만장군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가 다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과 사도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35가지의 많은 기적을 베푼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많은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기적이 아니면 하나님을 전파될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를 주십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땅을 파도 먹을 수 없을 때에 하늘에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 곡식을 제배하여 추수하게 되었을 때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나 다 같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기적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부세트라는 사람은 기적을 심리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르낙은 과학적 지식의 결핍에서 온 잘못된 신앙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철학자 흄은 자연법의 파괴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기적은 없습니다. 기적은 지금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몸짓입니다. 기적은 모든 것을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과학시대인 지금도 이 기적은 매일 일어납니다. 매일 기적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기적은 하나님이 백성을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40년의 광야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가장 힘든 광야의 길이었지만 가장 은혜로운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기간이 가장 기적이 많은 기간이었습니다. 기적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독생자를 주신 일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게 하신 가장 큰 기적의 원인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되신 것은 두가지 기적의 선물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조건을 준 동정녀 탄생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게 한 부활과 승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과 승천, 전부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기적들입니다. 사랑하시기에 주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인지 아세요? 기적의 중심이 무엇인지 아세요? 누가복음 2:12에는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예수님 자신이 표적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자신이 기적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35가지 기적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에는 측은히 여기심, 민망히 여기심, 불쌍히 여기심이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기적의 조건입니다. 예수님이 두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에도 말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예수님께서 한센병자들을 만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나사로를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병자들을 만지십니다.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치유가 어떠했는지 알게 하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즉시”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23번 나타납니다. 즉시 나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치유가 즉각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것임 표현합니다. 믿음과 필요가 만날 때, 바로 그 때가 기적이 나타날 때입니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이 있습니다. 그의 성선설의 기본이 되는 이론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라고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맹자는어짐의 극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은 사랑이며 기적의 동기입니다. 칼빈은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시켜 나가는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완전한 구속을 지향하는 표지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표지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 많은 기적 가운데 자신을 위한 기적은 없습니다. 고통스런 십자가 위에서뛰어내려오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자신을 위하여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기적도 없습니다.

둘째, 기적은 우리의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몇가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낙원과 음부의 모습을 일러주십니다. 그리고 기적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일러주십니다. 나사로는 부자집 문앞의 거지였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낙원에 갔고, 부자는 음부에 갔습니다. 음부의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자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자신의 혀에 물 한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을 당합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그렇다면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어 자신의 다섯 형제들이 음부에 오지 않게 권해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가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형제들은 누군가가 사람이 가서 권해야지 성경을 보고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고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는 최고의 기적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가장 큰 기적을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산 위와 아래의 모습은 천지차였습니다. 산 위에서는 황홀경에 빠져 세 제자가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산 아래는 아홉 제자가 한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이미 병고치는 은사도 받았고(막 3:15), 이미 병고치는 경험도 있었습니다(막 6:13). 그러나 이번에는 아홉 제자가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 9:22)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셨습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권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치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못했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미 보물을 가지고 있지만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물이 아닙니다. 이미 기적을 보고 있지만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을 보는 가늠자입니다. 믿음은 산을 옮기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는 능력을 일으킵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적의 사람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다른 사람들은 미국에 소개하여 장학금을 많이 얻어주셨습니다. 저의 선친 덕에 어려운 때에 공부한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 일을 안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1984년도에 가지고 계시던 전 재산을 교회에 전액 헌납하셨습니다. 저에게는 헌납에 동의해달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저는 그 때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럽든지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편지를 아버지께 보냈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주신 것만으로도 풍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내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와 식구들이 만 7년을 미국에 살았지만 그 동안 한번도 한국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별 도움이 없이 7년동안 저와 식구들이 공부 다 하고 돌아왔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대에 개설한 은행 구좌에는 큰 돈은 없었지만 잔돈이라도 돈이 떨어진 적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집에 돈이 500달러 정도의 돈이 필요한데 돈이 들어올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제가 잘 아는 장로님께서 미국을 방문하려 오셨다가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나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물론 돈 얘기를 할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식사와 얘기를 다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장로님께서 하얀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사양하는 척은 했지만 얼마나 반가운 봉투였는지 모릅니다. 와서 보니 500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공부하는데 얼마나 고생하느냐고 책 사보라고 하셨는제 죄송하지만 책을 사보지 않고 그 때 꼭 필요한 다른 것을 샀습니다. 저는 그렇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기적의 삶을 너무나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이런 것 말고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기적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으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것만큼 놀라운 기적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구원받은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캘빈 밀러는 “회심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내 삶 전체가 바로 기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천국은 그리스도의 기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최후의 기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땅에서 이런 기적을 맛보고 사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양자가 된 것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존 뉴턴은 이 것을 “놀라운 은혜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0에서 말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 고백은 구원받은 모든 자의 고백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셋째, 기적은 과학시대인 지금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방법은 달라도 기적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변치 않으실 기적이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가장 큰 기적은 역시 마음의 변화입니다. 프랭크 모리슨은 무신론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기적이 얼마나 거짓인가 보여주려고 책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기적적인 면의 베일을 벗기고, 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부활을 증거하는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라는 책을 썼습니다. 루 월래스는 기독교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쓰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재료를 모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예수님에 대한 얘기가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책의 2장 첫 페이지를 쓰다가 부인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회심하게 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그의 불후의 명작인 ‘벤허’입니다. 공산주의 사전에 실린 성경의 정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공상적인 전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 공상적인 공산주의는 망했으나 성경은 살아있습니다. 1882년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공포하였습니다. 그는 과학의 여명을 기독교 신앙의 종말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과학이 동 텄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로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학과 신앙은 절대 괴리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과 신앙은 상호 보충적 관계입니다. 그는 “우리가 사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진지한 과학도야말로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며 신비는 기적을 포장하시는 하나님의 포장지입니다. 현대와 같은 과학 시대에도 기적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신비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얼마 전 어느 글을 보니 전 인류역사의 과학자 90%가 현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현대는 과학의 꽃은 피우고 있습니다. 15초마다 새로운 과학 논문 발표됩니다. 15분마다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기술 혁신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과학 시대이지만 기적과 신비는 끊이지 않습니다. 1988년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심장병 전문의들이 393명의 심장병 환자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그룹을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그룹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기도한 그룹과 기도하지 않은 그룹은 합병증이나 치료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과학시대에 신앙적 기적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마이클 야코넬리의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영국군은 매일 베를린을 파상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임무를 마친 폭격기가 귀환하는 길에 독일 전투기 편대의 공격을 받습니다. “쿵쿵쿵쿵쿵” 5개의 총탄이 연료탱크 옆 기체에 박혔습니다. 연료는 흘러나오지만 기체는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전투기는 기적적으로 기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조종사는 비행기에서 나왔습니다. 몇시간 후 정비사가 조종사의 막사를 찾아왔습니다. 연료탱크에 박힌채 터지지 않은 5개의 총탄에는 화약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총탄 속에서 아주 작은 쪽지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강제로 공장에 끌려와 총탄을 만들고 있는 폴란드 포로입니다. 감시관이 보지 않을 때 우리는 총탄에 화약을 넣지 않습니다.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가족들에게 우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 주십시오.” 과학 시대에도 기적은 살아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기적은 우리 삶에 스며있습니다. 날마다 이 기적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은 감격이 있습니다. 매일의 또 다른 기적에 기대감이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과학 시대에 성경적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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