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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 온 힘 다해 섬기기 (골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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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온 힘 다해 섬기기
골 3:23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을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울산교회 11월은 전교인 출석의 달이요 오늘은 전교인 출석주일로 지킵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다시 살피고 있습니다. 첫 시간 우리는 예배란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일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란 하나님께 사랑 표현하기란 제목으로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온 힘 다해 섬기기란 제목으로 다시금 예배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란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에 정성이 빠져버리면 그것은 예배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5분, 10분 늦게 오는 것은 예배의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우리 편에서 드리는 정성인데 그곳에 정성이 빠져버리면 그것은 예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 가서 수업 받을 때는 5분 늦게 가도 진도 따라가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늦게 가더라도 설교시간 까지만 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뭔가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는 우리의 정성을 쏟아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준비된 마음으로 와서 앉아서 예배에 같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 동시에 엿새 동안에도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 크신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먼저 기쁨으로 반응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분들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삶 전부를 주님의 손에 내어드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기로 정한 시간에는 함께 정한 시간에 나아와서 앉아야만 합니다. 예배는 나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의 뜻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을 다해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말로 하는 사랑의 고백만 아니라 입맞춤도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뭘 꼭 말로 해야 하나라고 말하지만 아내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통해서 신체적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나타내는 또 다른 종류의 표현이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귀찮은 일도 있습니다. 집안일 가운데는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무언가 망치 들고 고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요청을 해도 웬만큼 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남편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바로 달려가서 해야 하는 심부름도 있습니다. 함께 거들어야 하는, 책임을 나누어져야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로만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서 보여주어야 할 사랑이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고치고 상대방을 도와주고 서로 섬기며 함께 나누는 일들로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 역시 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3절은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만약 여러분이 제대로 이 말을 이해한다면 여러분의 삶을 놀랍게 변할 것입니다.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한다면 지금 예배의 자리에 나온 모습대로 돌아가서 그대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문자 그대로 어떤 일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꼭 중구에 있는 이 예배당을 매일 찾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숲속의 기도원을 찾아서 밤마다 올라갈 이유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소원의 첫 자리에 온다고 해서 하루에 5시간씩 큐티를 하고 8시간씩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큐티를 30분 이상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하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하루에 8시간 기도를 소명으로 알고 하시는 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대한민국을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아닙니다. 날이면 날마다 교회당을 찾아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해도 누구를 위해서 하는지를 바로 알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는 그 일이 바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의 삶을 피자 나누듯이 잘라 낼 수는 없습니다. 경건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취미생활 이렇게 해서 한쪽씩 나눠가지고 경건생활 몫에만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섯 시에 혹은 여섯시에 와서 기도하는 그 한 시간이 내 경건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여러분의 뜻대로 생각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마다 초대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하루 삶 스물 네 시간, 일주일 168시간 모두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에만 우리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느 동네 아저씨처럼 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여느 이웃집 아줌마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순간순간마다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잘 알게 되신다면 여러분의 삶은 놀랍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 자체가 악한 일이 아니라면 아무 일을 하든지 하나님은 허락 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십시오. 하찮은 일이라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일은 예배가 될 것입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든지 팔든지, 빵집에서 빵을 사든지, 음식점에서 음식을 팔든지,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찾아오는 고객을 하나님 대하듯이 대해 보십시오. 고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듯이 해 보십시오.

그러면 바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비록 옷 수선 집에서 바지를 고쳐주든지 세탁소에서 남의 옷을 다려주든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듯이 하라고 본문은 그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성경이 그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천만, 천이백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헤아리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이미 자기의 직종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이라고 잘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로 인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비젼공유반 소그룹 공부를 하는데 한분이 그러셨습니다. 치과에 갔더니 제대로 설명도 없이 “당신 그대로 놔두면 안 되니까 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뭐 이런 식, 남을 도와주는 일을 계속 하다보면 자기가 진짜 뭔가 잘 난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 가운데 친절한 분들이 있지만 가끔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교회 집사님 치과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얼마나 손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설명을 잘 해주는지 감동해서 우리 소그룹 공부하는 자리에서 완전히 그 치과 영업 상무노릇을 하더군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다 불친절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고객으로만, 우리를 통해서 돈 벌려고만 생각하니까 세상이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발 도장 찍을 때부터 시작해서 좀 자라면 아이들이 조기 교육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삶이 고달프기가 짝이 없습니다. 숨 떨어지는 순간에 끝나는 게 아니고 숨 떨어져도 역시 누군가가 또 영업의 대상으로 시체까지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모든 일을 할 때에 어떤 일이라도 마음먹고 고객을 섬기려고 시작하면 감동받을만한 일들이 인생 여정에 줄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로서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도, 간호원으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도 예배가 됩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로 일하든지 집에서 아이를 키우든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트럭을 몰든지 택시를 운전하든지 세일즈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느냐,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여 하면 그 사역은 예배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진로를 두고 염려를 합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직업을 인해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을 해야 하냐 저 일을 해야 하나로 생각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실까? 에 대해서 고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특정한 일에 흥미를 갖게 하시고 그 일을 잘 하도록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분에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관심과 능력에 따라서 일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문과에 가든지 이과에 가든지 그 일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중에 트럭운전사가 되든지 변호사가 되든지 의사가 되든지 간호사가 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그 일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 하기로 마음먹으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 보기에 세상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져도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이 알려지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훼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하십시오. 한날 수선공이 된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다하여 주님 섬기듯이 이 일을 하겠습니다.” 그 때 구두 수선이든 우산 수선이든 설교 작성이든 꼭 같이 하나님 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음식을 잘 만드십니까? 식구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든지, 식당을 차려서 손님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든지 상관이 없이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십시오. 혹은 서류를 잘 챙기고 분류하는 일을 잘 하십니까? 그 일을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한번 섬겨보십시오.

제가 대학 1학년 땐가 집에 가니까 어머니가 밭에 가서 위쪽에 물꼬를 치라고 시키더라고요. 사실 내가 일 할 거라고 기대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전공이 일 하는  아니고 학교 다니다가 왔는데 일꾼 사서 일하려니 쉽지는 않고 그래서 아들 본 김에 하라고 시켰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을 하면서 마음먹고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이삼십미터 골을 손질을 하는데 하나님 보실 때 아주 마음에 들게 한번 하겠습니다.” 그러고 파서 흙들 다 치우고 돌들 골라내고 했더니 밭에 갔다 오시더니 칭찬을 한 바지기나 들었습니다. 새참 줘가면서 담배 사주면서 시킨 것보다 훨씬 더 잘했답니다.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프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음먹고 딱 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잘 할 수 없습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밭고랑 물꼬를 트는 일 그것도 하나님 예배하는 일이 됩니다. 하루 스물네시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처럼 예배할 때만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일주일 엿새 동안 교회당 밖에서도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배가 교회당에서만 드려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예배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기 로마서 12장을 풀어서 쓴 성경이 있습니다. “잠자고 먹고 일하려가고 돌아다니는 여러분의 일상생활 모두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십시오.”(롬 12:1상, 메시지성경) 여러분의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의 진수입니다. 신앙인은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진정한 삶은 교회당 안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역모임이나 소그룹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개인 묵상시간이나 기도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삶, 세속적인 삶, 날마다 하는 일 가운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끔 보니까 우리 아파트에 착한 남편들이 있더군요. 음식쓰레기 버리러 간다고 들고 나오는 분들을 만나는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것을 들고 나올 수도 있고 그것을 들고 나가면서도 “하나님, 아침에 이 음식쓰레기를 하나님을 위해서 버리려 갑니다.” 하면서 쓰레기통을 들고 가면 그건 예배 행위입니다. 여러분이 당번 되어서 안내를 맡든지 아니면 주일 헌금 연봇대 돌리는 일하는 것 이상으로 쓰레기 버리러 가는 일도 예배행위입니다. 이불을 개는 일이든 침대를 손질하는 일이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마루를 닦든지 승용차를 씻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든지 빨래를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서 하면 그건 예배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는 일에 여러분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그 일이 바로 예배행위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두고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직장으로 출근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했던 동일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십년 이십년도 넘도록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새로운 주인을 섬기듯이 새롭게 일하겠습니다. 이젠 정말 주님 당신을 위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 영광스런 예배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이 하는 일의 능률이 향상되고, 일하는 기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되도록 소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전부가 예배행위로 변할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변화된 삶의 스타일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 모두는 무엇인가를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로 사람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유전인자 속에는 예배본능이 있습니다. 예배하도록 빚어놓으셨다면 여러분은 결코 예배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인간이길 멈추질 않는 한 예배하길 멈출 수 없습니다.

세상 어느 지역을 가도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이 아니면 헛된 우상이라도 섬깁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 아니면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도 숭배합니다. 참된 하나님이 아니면 가짜 신이라도 만들어 놓고 앞에 가서 손  비비고 있게 마련입니다. 하다 안 되면 자기 자신이라도 숭배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섬기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나는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하니까 성경의 하나님을 섬기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섬기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사랑 첫 번째 자리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능력을 쏟는 첫 번째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입니까? 직장입니까? 직장에서 하는 일입니까?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쏟아 바치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이 되고 맙니다.

돈버는 것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결혼하는 것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쾌락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의 관심 첫 번째 자리에 두게 되면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신입니다.

꼭 나쁜 행동만이 우리의 삶을 잘못가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좋은 일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우리를 잘못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은 무엇입니까? 바둑입니까? 시간만 났다하면 바둑 두고 일주일 내내 성경 앞에는 앉아볼 기회가 없지만 시간 있으면 그 무거운 바둑 상 가지고 나오면 여러분의 신은 바둑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틈만 나면 심지어는 예배시간에 하나님 말씀 들으면서도 증권 시세 생각하고 있으면 증권이 여러분의 신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낚시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지난 집회 동안에 천오백만원짜리 셋집에 살면서 이천만원짜리 낚시 세트 들여놓은 사람 이야기 들었지요? 그 정도 되면 낚시가 신입니다. 축구도 잘 못 하면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축구 때문에 교역자들이 아주 협력을 잘 하고 일을 동역을 잘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 오는데 축구 잘하는 것부터 묻더라고요. 그리되면 축구가 신이 됩니다. 우리는 축구팀을 모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동역할 목회 일 하는 사람을 부르는데 축구까지 잘 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축구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가지고 우리가 사람 불러오는 일에 저울질 하면 축구가 상당히 지나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시간 쓰는 것, 돈 쓰는 것이 아깝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입니다.

예술 활동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 그 첫 번째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쏟는 첫 번째 일이 바로 여러분의 우상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과 능력을 다해서 섬기는 것이 무엇이든 아니면 누구이든 그것이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겪는 가장 큰 유혹이자 범할 수 있는 최대의 죄악은 하나님 대신 무엇인가를 섬기려고 드는 것입니다. 목사는 그런 유혹을 받지 않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 목사들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문제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하면 여러분은 혼란과 충돌과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바른 일보다 편안한 일을 추구하면 좋을 것 같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거기에 평안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만드셨는데 여러분은 그 삶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살면 다른 것 다 할 수 있습니다. 공부 잘 할 수도 있고, 사업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삶에는 참 만족이 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내 체면을 하나님보다 중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보다 내 체면을 중시하게 되고 이익을 앞세우게 되면,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삶에 각종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거듭거듭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창조주보다 다른 어떤 것에 여러분의 관심을, 여러분의 사랑을, 여러분의 능력을 쏟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최대의 유혹인 것을 알아채셔야 합니다. 

여기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관심과 사랑과 우리의 능력을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께 드리게 되면 삶이 새로운 질서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삶이 새롭게 변하게 됩니다. “보라 모든 것이 새로워졌도다”고 선언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에 책임을 지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여라. 네 속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을 허락하시리라. 네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걱정하느냐 ? 오직 여호와께 맡겨라. 주께서 그 모든 것 다 이루어 주시리라.”(시편 37:4-5, 현대어성경)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면 우리의 모든 세세한 일 하나하나까지도 돌보아 주지 않겠습니까? 제가 언젠가 말씀 드렸죠? 작년 성탄절에 집사람이 집에서 내려오면서 손이 시리니까 ‘오늘은 성탄예배 끝나면 남편 붙들고 가서 털장갑이라도 하나 사 달라고 졸라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내려왔는데 도착하니 누군가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서 줬어요. 뜯어보니까 가죽장갑 두 켤레가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먹고 있으면 때로는 이런 공급들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아무리 미련해도 알게 마련이지요. 한번 그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더니 둘째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엄마는 꼭 필요한 것만 구하는 모양이죠? 그러니까 마음먹을 때마다 주시죠” 일용할 양식은 주기로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욕심 안 부리고 꼭 필요한 것만 구해서 받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이야기 입니다. 

어떤 때는 예쁜 옷도 보일 것이고, 목에 걸치고 싶은 스카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늘 마음 조심해서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스카프에 눈독 들이면 하나님께서 그것 보셨을까요, 못 보셨을까요? 생각해보면 이것 없어도 얼마든지 사는데 이런데 돈 쓸 수 없지 하고 지나가지만 여러분이 하나님 같으면 어떻겠어요? 자기 자녀가 그게 사고 싶긴 한데 돈을 그런데 써서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지나가면 그냥 너는 그렇게 살아라. 그러겠어요? 제가 하나님이라도 누구 손을 통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전달해줄 것 같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여러분 각 가정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왜 없었겠습니까?  아주 세밀한 일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에 가서 무엇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온전한 사랑을 쏟을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을 다해 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세상에서 우리가 그 연습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은 성도에게 천국에 가서 드릴 예배 연습장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에게 온통 생각을 쏟고 지내게 될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지르는 일생일대의 실수는 여러분의 기본 목적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 사람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의식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그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게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기 와서 앉아있다고 나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섬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계부 보니까 제일 아낌없이 지출되는 그 항목이 무엇입니까? 그게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시간 일정을 언제 가장 정규적으로 많이 쏟아 붓습니까? 그게 여러분의 신입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일이 바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일이고 그 일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며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여러분의 삶의 가장 우선순위를 두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 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 부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으실 때에 여러분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도록,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 여러분의 삶에도 목표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9 표준새번역) 몸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은 내 정신이, 내 영이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든지,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목표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보람과 만족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168시간이 전부 주님을 위한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엄격하게 말하면 한 시간 삼십분을 떼놓고 ‘이건 예배하는 시간이고 나머지는 내 뜻대로 산다.’ 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피곤해서 잠깐 쉬는 시간에도 한잔 마시는 커피 브레이크 시간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피곤해서 좀 일찍이 일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 눕는 그 시간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자는 것도 주님의 일이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쉬는 것도 주님의 일이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주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잠깐 잠깐 쉬는 것도 주님의 일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강사로 오셨던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그런 부탁을 했던가 봅니다. 가을 다 지나가기 전에, 낙엽 다 떨어지기 전에 부부가 함께 갔다 와라. 보면서 정상적인 신자라면 무엇을 느낄까요?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낍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 아름다운 꽃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겠다. 얼마나 예뻐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런 온갖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게 하실 때 우리 마음속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래서 스물네시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새로 다가오는 168시간 한주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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