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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 /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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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
롬 12:3-8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뇌 기업으로 알려진 IBM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의 창설자인 토마스 왓슨은 회사의 창업기 때에 사무실의 모든 벽마다 '생각하라'는 단어를 부착해 놓았다고 합니다. 회사의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좀더 깊이, 좀더 분명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회사의 번영기 때에는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각의 대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의 3절에서 우리에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제 넘는 생각을 하지 말고 건전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위치와 기능을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건전하게 생각하는 것'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권면을 할 때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회심과 구원과 관계된 것 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사도 직을 부여받은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도 직을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교회에 권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바로 살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혹은 이웃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제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개인적인 이기심을 뛰어 넘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길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신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는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르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일에 가장 커다란 방해가 있다면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과소 평가도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열등감의 발로이며, 이런 사람들은 좀처럼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과소 평가 보다도 훨씬 위험한 것이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 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신인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은 아직도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보시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관해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까? 여기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원문에 보면 "자신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믿음을 갖고 있어도 여전히 제한된 존재라는 것과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겸손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물러서라거나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분량대로 기여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라고 할 때, 1)객체적 믿음, 즉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복음진리가 있고 2)주체적 믿음, 즉 신자가 행사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신자의 믿음에도 1)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2)그리스도를 닮는 신실한 인격으로서의 믿음 3)기적을 행하는 은사로서의 믿음 4)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1)과2)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3)과4)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휘하는 차원의 믿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영적인 능력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하고 그 믿음의 분량대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올바른 평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들의 지체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다른 성도들에 대하여 올바른 생각을 하라는 말입니다.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신앙의 가장 커다란 명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신 이유는 인간은 부족함이 많지만 다양한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형성할 때 바로 이 교회를 통해서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말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요, 이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이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웃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내 이웃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이웃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4절을 보시면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은 아니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영광은 다양한 개성과 다양한 은사, 그리고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치된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획일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자기처럼 생각하고 자기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쉽게 이웃을 비판하고 고발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 몸이 잘 되려면 우리가 한 몸의 지체들이란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다는 의식을 가지고 각기 자기의 재능과 기능을 인식하고 자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여옥이라는 여기자가 쓴 베스트 셀러 가운데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배울 것이 많다라는 풍토에 대해 자신이 직접 살아본 일본에서의 산 체험에 근거해서 일본에게서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지적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본은 오늘날 너무 규격 문화에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획일 문화는 선진 문화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21세기의 문화를 지향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개성과 다른 은사, 그리고 다른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일치된 한 목표를 향해서 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교회의 과제입니다. 우리가 서로 지체들로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맡겨주신 영광스러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성도들 모두는 함께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성도로서의 인식인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은사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으로 섬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각기 은사를 주셨습니다. 6절에 보시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동기를 이루는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자신의 사역의 자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서야 할 자리를 발견한 사람,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서 내게 그 일을 맡겨 주셨다는 확신 속에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본문의 6절 이하에 보시면 각각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해야 합니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계속 섬겨야 그 은사가 계발됩니다. 또한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계속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사가 계발되는 것입니다. 권위 하는 자는 권위 하는 일로 섬겨야 합니다. 권위란 권고하고 위로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현대적인 개념으로 바꾼다면 '상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긍휼의 은사를 가진자는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은사는 크게 말씀은사와 행위은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말씀은사: 예언(미래예언, 혹은 설교로 말씀을 적용하는 일), 교육(주어진 계시를 설명하는 일), 권면(상담은사). 2)봉사적 은사: 구제(자신의 재물이나 타인의 재물을 모아서 나누어주는 일), 지도력(교회행정, 교회정치를 하는 것)-부지런함으로 하라. 긍휼을 베푸는 것-(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 보이고 사람들을 동정하라) 즐거움으로 하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하라는 것이다.

  죤 칼빈은 "환자들이나 고통이 있는 자들에게 자기들을 돕는 자들이 기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없습니다. 자신들을 돕는 자들의 얼굴에서 수심을 보는 것은 도움을 받는 자들에게 스스로 멸시 당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은사를 바른 자세와 바른 영역에서 시핼 할 때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각자가 자기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실질적인 제안: 우선 여러 가지 일들을 해 보라-교사, 찬양대,안내위원, 헌금위원, 위원회, 전도회에 들어가 봉사해 보라. 그리고 내가할 수 있는 일로 봉사하라- 꽃꽂이, 성미, 식당봉사, 주차사역, 운전, 교회청소, 기도하는 일, 구역장, 권찰, 남이 모르는 은밀한 봉사, 남에게 빛이 되는 봉사, 구제사역, 심방 등에 참가해 보라! 그리고 어떤 봉사를 할 때 가장 큰 기쁨과 환희가 있는가? 그 일만하면 재미있고 너무 기쁜 그 일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여러분의 은사입니다. 그 은사에 따라 사역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직분과 은사를 발견한 후에는 그 일을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감당할 의무와 책임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일에 대한 평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평가를 받아 보라.
  네 번째는 평생 헌신할 것을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확신이 들면 이 일을 평생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는 은사를 계속 계발해야 합니다. 은사를 계발하는 길은 은사를 땅에 파묻어 두지 말고 계속해서 성실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지미 카터-미국 죠지아 주 교회 주일학교 교사 봉사. 은퇴한 미국 대통령중 가장 존경받음. 미타임지-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했던 대통령, 백악관이 그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백악관을 디딤돌로 삼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한 평생 기쁨으로 섬기려면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먼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올바른 평가를 하십시오. 둘째는 이웃에 대해서, 내가 이웃과 더불어 어떻게 일을 잘 할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셋째로는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은사를 주셨으며 이 은사를 따라서 내가 어떤 사역을 한 평생 감당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애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 주님께서 고백 하셨던 것처럼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그 일을 제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먼 훗날 내가 떠나간 삶의 자리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후손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우리 아빠 엄마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시다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는 고백을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그 분량대로 평생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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