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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기도하여야 하나? /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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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도하여야 하나? 
빌 1:3-11


(빌 1: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빌 1:4)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항상 여러분 모두를 마음에 두고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빌 1:5)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 1:6)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빌 1:7)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 압니다. 그것은 a내가 여러분을 나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갇혀 있을 때에나,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할 때에나, 여러분 모두는 나와 함께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빌 1: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십니다.
(빌 1:9)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더 풍성하게 되어서,
(빌 1:10)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기에 순결하고 흠이 없이 되며,
(빌 1: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마틴 부버가 [나와 너]라는 책을 써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틴 부버는 그 책에서 '인생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만남을 갖지만 대부분 생명이 없는 만남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만남,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만남, 피상적인 만남은 나와 그것의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의미가 있는 만남,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그와 인격적인 조우가 이루어지는 만남은 나와 너의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 나와 너의 관계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틴 부버에게는 회히러라는 친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1914년 어느날 당시 유대인들이 독립을 하지 못했던 터라 유대인들이 한곳에 모여 과거 유대의 역사를 재현하자는 시온이즘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부버는 베를린을 방문한 그의 친구 회히러목사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친구를 기차역까지 배웅을 하러 함께  길을 갑니다. 길을 가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다가  목사님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부버, 내가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우리가 시온이즘을  논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이네. 당신 하나님을 믿지?'라고  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질문에 부버는 엉겁결에 '응, 믿고 말고!'하고 대답했습니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친구가 자기에게 물었던 '부버, 자네 하나님을 믿지?'라는 질문이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춰서서 '나는 어떤  하나님을 믿지? 왜 내 신앙은 안 믿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믿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희미할까?'생각하며 고민합니다.
한참을 서서 고민하는데 섬광 같은 생각 하나가 스쳤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3인칭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었구나. 역사의 기록 가운데 계신 하나님일뿐 그 하나님이 오늘 내 삶 가운데 나를 만나 주시고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내가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이것을 깨닫고 쓴 책이 바로 [나와 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가운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신앙의 회색지대를 걷고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 청산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만났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열리게  됩니다. 진실한 친구를 얻으면 그와 만나고 싶고 대화가 즐겁듯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되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즐겁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에서도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또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내가 기도하노라'<9절>고 하며 열거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강요된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인생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사람만이 힘이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능력을 힘입고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단지 허공을 맴도는 주문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잇습니다. 기도를 무거운 의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간구해야 좋을지 몰라 기도시간만 되면 당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나누어 주시고 싶어하는 최고의 선물을 간구하는 지혜를 개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한 사도바울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며 우리가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풍성한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9절>

기도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는데, 첫째는 소유(to have)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어릴때에 해당됩니다. 어린아이가 필요한 것들을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은 특권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구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두 번째는 행함(to do)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세번째는 전 존재(to be)의 단계입니다. 주님을 닮은 주님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를 주님께 맡기는 차원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것인가?'를 위한 차원의  기도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핍박이 멈추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의 부요함이나 질병의 치료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까?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에 "주님 제 맘에 사랑이 더 풍성하게 해 주십시오."  또는 가족이나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때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여져서 더 많은 사람을 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는 가질려는 욕망이 어떤 행함,  어떤 존재에 대한 열망보다 크기 때문에 배우고 가진자들이 많이  있지만 문제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내용이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요구내용이나 다를바가  없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성숙한 교인들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구했습니다.  왜 사랑을 구했을까요? 여기서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며,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4:8>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뜬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한자는 이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는 그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부어 주시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자기를 통해 다른 사람도 이 사랑을 체험하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기를 열망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궁극적인 기도제목은 주님을  가장 많이 닮은 주의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는 살벌한 도시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먹고 마시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다른사람의
영혼은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회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먼저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슴에  담고 이 사랑의 전달자로 헌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 우리 직장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인격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헤르만 헷세의 작품가운데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 마을에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날 밤 신비한 노인이 아기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 '아기를 위한 네 소원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이는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났을 때 이 중년의 사나이는 사랑만 받았지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 그 삶이 굉장히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비순환은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는 불행한 존재가 되어 나날이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그 노인이 중년 사나이의 꿈에 나타나 과거 어머니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네 소원이 뭐냐?"
사나이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베풀면서 얻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을 베풀며 살게 해주십시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됩니다. 사랑을 베풀때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 때 인생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또 풍성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최고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실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께 영적 총명을 간구해야 하겟습니다.

2. 영적 분별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10절>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연합군은 독일의 숨통을 끊고자 6개월의 준비 끝에 잘 알려진 '가운데  토막작전'(The Battle of Bulge)을 시도했습니다. 그
런데 이 작전은 독일군의 엉뚱한  책략에 의해 지연되고 말았습니다.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이 몇 대의 지프에  나눠 타고, 연합군 지역에 침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심한 폭우가  내리는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합군이 세워놓은 방향표지판들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았습니다. 잘못된 방향  설정은 결국 연합군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끔찍한 질책을 받기에  이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3) 신앙의 표지판이 잘못되었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인간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로서 가야할 길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베드로와 동일한 책망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도와 말씀 위에 믿음의 표지판을 꽂아놓고, 바른 길을 가는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것을 분별해서  겉과 속이 똑같은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은 부딪히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닮는만큼 진실해 질 수 있습니다.
이 진실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A.우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1)우리의 삶에 잇어서 중요한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2)그러나 모든 것이 다 꼭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3)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가장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B.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두가지 결과로 나타납니다.

1)우리의 삶이 진실하고, 세상 것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삶이 됩니다.
2)우리의 삶이 허물없게 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삶이 되지 않으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흠없이 이르게 됩니다.

존 웨슬리가 32세의 선교사로 조지아주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아름다운 크리스챤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독신으로 있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한 친구가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웨슬리는 그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 친구는 세 장의 종이를 준비해 한 장에는 "결혼하라", 또 한 장은 "올해는 생각지 말라", 마지막 장에는 "더이상 생각지 말라"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15년후 그는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부적당한 배우자였으며, 웨슬리의 전도사역에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20년간의 비참한 결혼생활 후에 그녀는 그를 떠났습니다. 제비뽑기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는 조지아에서 결혼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 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표적을 통해서 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슴을 통해서 말슴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감동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때로 훌륭한 크리스챤들의 조언과 환경과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바른 소원을 통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출처의 음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정욕에 의한 음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느 것이 어떤 음성인지를 분별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생의 대가가 따르는 행동은 항상 피하라고 말하고, 언제나 쉬운 길을 택하라고 권하는 음성이 있다면 필시 육신의 음성입니다. 이러한 음성은 자기 멋대로 해도 좋으며, 조건이 딸려 있는 하나님의 규례임에도 불구하고 조건은 없애고 결과만 믿으라고 권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됩니다. 비록 마음 속에 두려움이나 불신을 가지고 어떤 중요한 결정에 임하지는 않는다 해도 매우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하시며, 생각과 소원을 주님과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므로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감동을 조용히 기다리면 하나님의 뜻 즉 지극히 선한 것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언제나 최선을 분별하고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3. 의의 열매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11절>

김현승님의 시 가운데 보면  '가을의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농부의  삶의  보람은  열매를 거두는데  있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그 폭염과  무더위를  견디면서  땀을 흘리고  애써  일하는  농부의  유일한 보람,  유일한 기대는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열매가 풍성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든지, 성령 충만함을 받아 그 품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든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든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열심히 간구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한 해동안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까?  여러분의 열매로 인해 스스로 만족스럽습니까?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잘 맺고 있습니까?  혹시 열매가 빈약하다면 또는 전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를 위하여 바울처럼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열매가 빈약하다고 탄식만 하지 말고 부지런히 '나도 열매 많이 맺게 해 주세요.' 하고 열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 생긴 상점을 발견한 여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맘씨 좋아 보이는 상점 주인은 따뜻한 얼굴로 여인을 맞았습니다. 여인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기선 무얼 팔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엉뚱하게도,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한 여인은 잠시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 행복,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이번에는 주인이 입을 꾹 다물고 손을 턱으로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찾으시는 걸 드릴 수 없겠군요, 부인 이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우리가 기대하는 열매도 상점에도 물건을 사듯이 쉽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려 믿음과 순종으로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인내하며 반복하여 수고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수고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이 열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맺을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놓으신 새로운 법, 생명의 성령의 법, 곧 복음의 은혜안에서만 맺을수 있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수 있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의롭고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데  반드시 기도해야 하나?' 하면서 기도를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36:36, 37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
여야 할지라"고 말씀 하심으로 기도에 정의를 분명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성숙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 분별력을 얻어 최선의 것, 하나님이 품고 계신 최선의 계획을 분별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열매를 많이 맺히도록 기도를 하여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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