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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강절] 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 (벧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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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 벧후3:8-13
새문안교회 2003.11.30 대강절 첫째 주일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베드로후서 3장의 첫머리인 1-2절에서는 이 편지를 쓴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3:1-2) 즉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신자들이 주님과 그의 사도들을 통해서 받은 진리를 확고히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목적의 편지를 쓰게 만드는 상황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을 뒤따르는 3-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과 그의 사도들을 통해서 주어진 진리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부인하고, "만물은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말함으로써 신자들을 현혹하고 혼란스럽게 하여 의심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하지 않은 삶 즉 거룩하지 않은 행실과 불경건함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과 만물의 변화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조롱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만유의 창주자로서의 하나님의 만유에 대한 주권과 권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개입하실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일도 없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롭게 하실 일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조롱하는 자들은 세상만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과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홍수로 멸망했던 사실조차도 "일부러 잊으려" 했습니다(5-6절). 이러한 불신앙은 결국 방종과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거짓된 사고의 유혹과 위험 앞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주님과 사도들을 통해 받은 진리를 굳건히 지키게 하기 위하여 쓴 글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면서 독자들에게 확실히 해주어야 했던 문제의 하나가 시간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겪게 될 때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을 영광에로 이끌어가 주시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자신도 당신이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었습니다. 사도들도 그것을 말하며 신도들을 격려했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빨리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실현되기가 왜 이렇게 더딘가?" 하는 그들의 실망과 의구심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문제에 답하며 두 가지 점을 밝힌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시간이해와 하나님의 시간이해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재림 곧 하나님의 날의 도래가 더딘 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점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이 말은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한 시90:4에 근거한 말일 것입니다. 이 말들은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요점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우리가 경험하듯이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갖는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매인 존재들이며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임에 반해,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신 이시고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시고 움직이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동시적으로 그에게 속한 절대자이십니다. 우리의 시간을 이해하는 잣대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쓴 진정한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두고 참지 못하고 조바심내지 말라"는 데에 있습니다. "너희는 지금 못 참아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얼마나 참고 계시는 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천년이나 되는 듯 참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천년을 하루처럼 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주님의 강림과 의의 심판과 새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하루가 천년이나 되는 듯 늦어진다고 여기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가 회개하고 주님의 강림과 의의 심판대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도록 믿음의 준비를 하기를 바라시며 천년을 하루처럼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 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하루를 천 년같이 여기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깊고 크신 마음과 그 은혜를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디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더딘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유익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고 관심도 없으신 것 같으며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조차 의심스럽게 여겨지는 일들 속에서도 언제나 깊은 뜻과 섬세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9절의 말씀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같은 뜻으로 15절에서는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합니다.

그러나 주의 강림의 날, 의의 심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 하나님의 날은 반드시 오는 것이고 그 때는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임을 베드로는 분명히 합니다. 10절을 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는 말의 뜻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이 지금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뜻을 거역하며 만들어가는 이 세상이 그대로 존속하게 하시고 그런 세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의의 심판을 하시고 불에 던져 태워 없애실 것은 다 불에 던지시고, 녹아 사라져야 할 것은 다 사라지게 하시며, 모든 것은 숨김없이 다 드러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2-13절과 그 뒤 14절에 보면 "바라본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것은 "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의의 심판을 하시고 이루실 새 세상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13절을 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새 세상은 의가 있는 곳이라 했습니다. 주님은 오셔서 의로운 세상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새 세상이 이루어질 날을 믿고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에게 마땅한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11-12절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또 14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우리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주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것이 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의 삶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고 할 뿐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은 "갈망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서두른다", "앞당긴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우리가 앞당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행3:19-20에 보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라" 했습니다. 회개와 죄를 멀리함이 하나님의 날이 앞당겨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24:14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날을 앞당겨지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 가르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도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날을 앞당겨지게 하는 한 가지 방법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의 선한 뜻을 앞당겨 이루실 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그 앞에서 낱낱이 드러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는 의로운 심판을 하시고 이 세상을 전적으로 새롭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새 세상은 의가 있는 세상일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언제든지 개입하시고 간섭하실 수 있으며 자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움직이시고 이끌어 가실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 가운데서도 언제나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정확하시고 전능하시며 은혜로우심을 믿는 것입니다. 흠 없이 평강 가운데 주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믿음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남는 길은 결국 자포자기 아니면 방종, 그리고 파멸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강림도 없고 의로운 심판도 없으며 이 세상이 의롭게 변화할 가능성도 없다면 이 악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저 이 악한 세상에 적응하며 적당히 악과 타협하며 살려고 할 것입니다. 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므로 부패에 대한 분노도 불의에 대한 분개도 악에 대한 투쟁의 의지도 없이 그저 현재에 만족하거나 방종하게 사는 것으로 낙을 삼든지 아니면 낙심과 절망 속에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을 맞으며 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을 다시 한 번 굳건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부패하고 불의한 심판이 많으며 변화의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니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의로운 심판을 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이 사회를 새롭게 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사회를 의가 있는 사회로 만드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 부패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당한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다 씻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회개와 거룩한 행실과 기도와 전도에 힘씀으로써 주님의 강림과 새롭고 정의로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다 함께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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