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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강절 첫주(주제:소망) 소망으로 맺는 열매 (롬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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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으로 맺는 열매
                                  로마서 8:22-26


저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헤엄은 칠 줄 압니다.
수영이나 헤엄은 같은 말인 데 어떤 청년이 제게 그렇게 붙여준 말입니다.
시원시원하게 몇 100m나 몇 Km씩 나가지는 못해도
물에 안 빠져 죽을 정도는 허우적거릴 줄은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제게 말하기를 제가 헤엄을 칠 줄 안다고 생각을 못했답니다.
그러면서도 수영은 못하더라도 헤엄이라도 칠 줄 아니까 좀 가르쳐 달래요.
가르쳐 주었습니다.
먼저 물속에 들어가라!
그리고 물을 먹지마라!
그러나 물 먹을 각오를 해라!
그렇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강에서 물 많이 먹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호흡 조절이 중요하다는 데 막무가내로 뛰어 들다가 보니 개헤엄이라도 배운 겁니다.
초등학교 선생은 잘 하는 게 없어도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림, 삽화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풍금 타는 것,
철봉에 매달리고 매트 위를 구르고
탈춤도 추고, 태권도도 하고
그러나 보니 수영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의 이야기도 기억합니다.
1) 물에 들어가라.
2) 물의 성질을 알고
3) 물에서 자꾸 놀아라.
그래서 저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컴퓨터 배우는 법? - 컴퓨터를 사라! 컴퓨터 성질을 알고, 컴퓨터를 자꾸 만져라.
카메라 다루는 법? - 카메라를 사라! 카메라 성질을 알고, 카메라를 자꾸 만져라.

여러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철학자 하이덱거는 인간을 피투성적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던져진 존재입니다.
물속에 빠져 들어가느냐? 헤엄쳐 나오느냐?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살아나오느냐? 영원히 지옥으로 들어가느냐?

세상을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속에 뛰어들어라!
그리고 세상을 알아라! -
물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성질을 알고, 세상에 먹히지 말고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4장 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고백합니다.

‘체휼하신 주님!’
그렇습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분만을 바라보고 그 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을 보세요!
산 넘어 산이라고 하더니,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더니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무거운 소식들뿐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들 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소중함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들입니다.
소망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대강절의 첫 번째 촛불을 밝힌 우리들은
이 시대의 사명자로 세상 사람들이 소망이 되어 주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지닌 성도들입니다.
소망의 열매들을 맺어야 합니다.

1. 먼저 험악한 세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망적이고 위험한 세상입니다.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22절).

  피조물들이 탄식한다는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왜 길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분신자살을 하고
  연일 데모를 하면서 소란을 피웁니까?
  그 이유는
  그 들이 탄식하고 외치는 이유는 그들을 고용한 주인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죽자 사자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들인 데
  그 결과는 고용주들이 다 가져가느냐는 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같이 잘 살아야 하는 데 
  왜 한 쪽은 빼앗기기만 하느냐는 항의입니다.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주인들 때문에 탄식하며 외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셔서 인간에게 위임 하셨습니다.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8).
  그러나 인간은 착취합니다.
  오용합니다.
  남발합니다.
  오염시킵니다.
  더럽힙니다.
  자연은 소리를 지릅니다.
  그게 바로 이상 기후 현상이고
  사막화 현상이고
  사스나 에이즈와 같은 악성 전염병이고
  지진이나 태풍이나 폭우나 한재와 같은 무서운 재난이나 재해들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헛된 교만과 욕심, 불의와 우매함과 무지함 때문입니다(롬1:29이하)
 
  오늘의 국가적인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인이어야 합니다.
  아니 주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 의식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생명 걸고 찾은 내 나라 내 땅입니다.
  목숨 걸고 지킨 이 나라 이 겨레입니다.
  남 보는 듯해서는 안 됩니다.
  탄식하며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2. 그러나 사실은 우리들의 무능력함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들까지도 탄식하고 있습니다.(23절)
  우리들까지도 포기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들 모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소망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자녀삼아 주시고 능력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능히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육신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전적인 무능력(total inability)으로 지적했습니다.
  저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하와의 후손입니다.
  아담보다 더 강할 수 없습니다.
  하와보다 더 분명하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더 연약하면 했지 더 강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절망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주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꿈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망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오늘 기억하실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로마서 5장 5절입니다.
  5장 3절부터 읽겠습니다.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3.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24절)

  소망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소망 중에 사는 자는 인내합니다.

  저는 자주 20대의 젊은 나이에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체험하였던 놀라운 사실을 자주 간증합니다.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70-80호 정도 되는 작은 마을에 100여명이 참석한 부흥회였습니다.
  부흥회 둘째 날입니다.
  젊은 부인하나가 업혀 들어와서는
  마루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엎드려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담임교역자는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부흥회 도중에 죽으면 어쩌나 염려를 많이 하시면서
  제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딸만 셋인가 넷을 낳았는데 또 임신을 했는데 태중에 아이가 아들이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인의 심장병이 심하여 아이를 낳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뱃속에 든 아이를 인공유산을 시켜야 엄마가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시부모도, 남편도, 심지어 환자 자신도
  죽으면 죽었지 임신한 아들이 어떤 아들인 데 유산시키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 아들을 낳은 부인이 바로 그 부흥회 참석한 그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몇 달을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제 도저히 가망이 없어서 교회로 업고 나온 것입니다.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입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 합니다.
  언제 큰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분이 부흥회 3일째 일어나 앉았습니다.
  부흥회 마지막 날인 4일째 낮에는 걸어서 다닙니다.
  부흥회 마치고 제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날 새벽에는
  그 가족들과 함께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너무나 신비해서 버스에 오르기 전에 물었습니다.
  “자매님! 어떻게 일어나셨습니까?”
  “전도사님 기도 때문이지요!”
  “그래요, 하나님의 은혜랍니다. 언제 그렇게 힘이 났습니까?”
  “저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는데요. 전도사님 이야기 들으면서
  나도 내 아이를 전도사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막 드니까
  저절로 팔 다리에 힘이 막 솟아났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아이 낳는 기구입니까?
  너는 죽어도 아이는 낳아야지 할 때에는 낙심이 되지만
  내 아이 잘 키워야지 하는 소망은 오히려 힘이 솟아나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적당한 예화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소망은 무서운 힘을 가지게 합니다.
저는 종종 무서운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묻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소망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소망이 있으면 삽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꿈이 있는 사람은 살아갑니다.
희망이 있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잠언서 29장 18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하게 행하게 된다.’고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청년들이 많으니까 제가 영어로 읽겠습니다.
영어성경이라고 다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은 아니고
King James Version에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비전이 없고 소망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입니다.
믿음의 성도 여러분!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꿈을 가진 자는 견딥니다.
끝까지 참습니다.
인내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고
인내할 줄 아는 자가 그 인내로 그 영혼을 얻는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24절부터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인내는 말세성도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소망 가운데 기다릴 줄 알아 소망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므로
소망의 주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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