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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사 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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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사 55:5-7>
<2003년 11월 30일>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
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
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
서하시리라)  (이사야 55장 5-7절)

1. 기독교를 일컬어 용서의 종교라고 합니다. 

<용서>는 사랑이 뒷받침해야 합니다.
또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은 <아픔>과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아픔이 없는 사랑은 주고 받는 자기 본위의 사랑일 뿐입니다.
아픔이 있는 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한없는 긍휼의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에서 아픔과 긍휼은 우리에게 용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서 우러난 용서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
다.
이 은혜의 선물은 우리의 행위로 보상될 수 없는 지고(至高)의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랑 앞에서 녹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탕자와 같은 생
활을 하던 사람이라도 그 사랑을 깨닫고 돌아서면 구원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은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있습니다.
마치 집 안에 머물러 있었던 형처럼, 아버지에 대한 감격과 감사도 없이 의무감
에서 신앙을 종교행위로만 알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도리어 기득권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
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한번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 없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 지적하
고 판단하게 됩니다. 즉 신앙생활에서 기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리새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사랑을 자신들의 인위적 행위 속에서 찾으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방인들과 같지 않음을 자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저들을 항상 책망하였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그들의 행위 속에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교회의 크리스천들의 행위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바로 바리새인들 같은 그런 행위를 버리라는 말일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돌아갈 길은 하나님 뿐입
니다.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
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라고 하여 수동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다 알기 쉽게 번역하자면 이렇습
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발견되어질 때, 그러한 때에 나를 찾으라."
"너희를 만나기 위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줄 때 그 때 나를 찾으
라."
"너희들에게 가까이 접근하고 있을 때에 나를 부르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 즉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탕자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부잣집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허랑방탕하게 지내듯이 그런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던 아들이 언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까?
펑펑 쓸 때는 아버지를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매일 친구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면서 온갖 방탕한 생활을 다 했을
것입니다. 요즘도 돈 있으면 그런 길로 빠지기 쉬운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는 아버지를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나가는 유능한 젊은 사람들 중에 지금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
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건강하고, 돈 있고, 권세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생각나
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까?
돈이 떨어졌을 때,
친구들이 자기를 다 버리고 갔을 때,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게 된 형편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죽게 된 지경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공통점입니다.
요새 유행가에 보면, '있을 때 잘해' 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있을 때 하나님께 잘해야 하겠습니다.
재물이 있을 때,
능력이 있을 때,
건강이 있을 때,
젊음이 있을 때, 잘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가지고 나온 것 타 허랑방탕하게 써 버린 후 빈 털털이가 되어서야 아버지를 생
각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적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라야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내려갈 대로 다 내려가서야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탕자들이 아닙니다.
둘째 아들도 아버지의 집에 있었던 자식입니다.
언제부터 탕자가 되었습니까?
세상의 허영과 잘못된 사상과 유행의 물결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보면, 어린 시절에는 교회와 예배와 성경말씀이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
오던 사람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면, 그리고 직장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게되면, 세상의 물결과 바람에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
니다.
제 경험으로 보니까 군대 입영 동기 중에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안 믿는 냄새를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후에 들은즉 군대까지 와서 힘들게 좁
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아서 넒은 길로 함께 가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
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약함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한계를 느끼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
다. 바로 이 때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란 말입니다.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입니다. 이 때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입니
다.

3. 이 때에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바랍니다.
육신의 부모들 중에는 자식을 버리는 경우도 혹 있지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어떤 죄인이라도 버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돌아오면 다 용서하십니다.
그 자식이 세상에서 어떤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것을 따지지 않고 돌아오면 다 용서해 주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찌라도 흰 눈과 같이 희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죄인들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기이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죄인 된 인간 편에 있습니다.
아직도 아버지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으려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단죄(斷罪)해 버립니다.
'내가 이런 인간이었는데...'
'어떻게 이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 정죄(定罪)해 버립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왜 즐거운 성탄이라고 합니까?
바로 죄인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크리스마스는 죄인이 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더 많
은 죄악의 밤만 깊어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내 삶이 돼지 우리의 삶이었을찌라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에게로 돌
아가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참 안식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동구 밖 길을 응시하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이고, 지금이 가까이 계실 때입니다.
이 이상 더 죄 된 길에서 방황하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와 같이 속 좁은 줄 그렇게 생각하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냄새 나는 거지 옷을 입은 채로 둘째 아들은 돌아갔습니다.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갔습니다.
품삯 받는 일군의 하나로 인정해 달라고 마음먹고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는 영역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하지 말고, 그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미국의 기업인 <스탠리 템>씨는 플라스틱 회사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네 번이나 도산, 재기불능에 빠졌다가 어느 날 물에 빠진 베드로가 주의 손을
잡고 살아나는 환상을 보고 '그렇다! 이제 사람의 손을 붙들지 말고 주님의 손
을 붙들고 사업하리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변호사를 찾아가 "우리 회사의 사장은 주님이며, 사장이신
예수님께 수익금의 51퍼센트를 드린다"는 수속을 밟고 새벽마다 기도하며 사장
과 의논, 1년 안에 2백만 달러를 버는 굴지의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1984년에 우리 나라에 와서 이를 간증한 적도 있었습니다.
약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는 것이 최대의 복입니다.
간절히 주님께 손을 내밀면 주께서 뿌리치지 아니하십니다.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시119:17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기도를 합시다.
한 목소리로 기도합시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갈아 입혀 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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