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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라 (막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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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라
젊은이 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마가복음 8 : 34

  박노해라고 하는 분을 여러분이 아마 아실 겁니다. 그의 에세이집 중에 『"오늘은 다르게』라고 하는 수필집이 있습니다.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오랫동안 살다가 요새 와서 얼굴 있는 시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8 15 때에 특사로 석방된 시인입니다. 그는 91년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르고 있다가 이렇게 석방된 분입니다. 감옥에 있을 때 그는 분노와 고독, 절망과 탄식으로 단식투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었으나 동구라파가 무너지는 소식을 듣고 공산세계가 무너지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자신의 오랫동안 생각했던 모든 일 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아주 명료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마지막 남은 애착과 자존심까지 벗어야 한다. 나를 해체하고 정체성을 깨뜨리고 내가 내 안에서 적극적으로 빠져 나와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빠져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해체해 버리라는 말입니다. 내 과거, 내 신분, 내 업적을 깨끗하게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여러 가지 애착에 묶여 살고 있습니다. 욕심에 묶여 살고 있습니다. 욕망의 그늘에 잡혀 살고 있습니다. 충동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쾌락에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 나와야 참 나를 찾고 참 인생을 살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가복음 8 :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자기를 묶고 있는 거짓된 나에게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말 입니다.
 
  영성신학자들은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야한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나, 타락된 나, 변질된 나를 벗어나야 진정한 나를 얻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된 나와 부패한 성품의 존재인 나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질적인 나, 참된 나, 타락 이전의 참 나를 찾아야 바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참 나를 찾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깨닫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자기의 무엇을 부인해야 참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자기부인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부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부인이 아닌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부인은 자기비하, 자기학대, 자기소멸, 자기멸절, 자기경시, 자기 파괴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 부인은 자기를 죽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기 부인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파괴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거짓된 나를 버려야 합니다. 이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리고 부인해야 합니다. 어떤 자기를 부인하고 버려야 할까요?

  첫째, 자기를 찾기 위해서 <이기적인 나>를 버려야 합니다.

  참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야 합니다. 거짓된 나의 감싸고 있는 모습은 이기적인 나입니다. 이기적인 모습을 버려야 바로 참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내 정체를 벗어나야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 아니고 베풀며 나눠주며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동산도 주셨고, 산천초목 수많은 음식과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습은 본래의 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모습은 우리의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게 내가 아닌데" 이런 고백을 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합니다. 그것은 참 내가 나타난 것이 아니고 거짓된 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나> 이것은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특히 더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기적인 굴레에서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기적인 내 모습을 벗어나야 진정한 나를 찾게 됩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려 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동물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찬성입니다" 주인이 거위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어요" 거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주인님, 저는 큰 알을 낳아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암탉이 손을 저었습니다. "저는 아침을 알려줍니다.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습니다.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한답니다. 말고기는 어떤가요" 말이 소를 가리켰습니다.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동물들은 잔치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너무나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자기에게는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인색합니다. 주기보다는 받고만 싶습니다.

  <이기적인 나> 이것은 본래의 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내 양식을 얻기 위해,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고 이기적인 나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합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나를 구원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나를 부인하고 참 나를 구원해야 됩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 나의 본래의 모습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더 이기적입니까? 남자가 더 이기적입니까? 제가 남자이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더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아담이 이기적입니까? 하아와 더 이기적입니까? 누가 더 이기적입니까? 아담이 하와 몰래 여자를 만들어 바람을 피우다 들켰습니다. 하와가 하나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 아담이 심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기분이 몹시 상한 아담은 하와에게 눈을 흘기며, "두고 보자! 아직 갈비뼈는 많으니까."

  <이기적인 나>는 나를 착취자로 만듭니다. 이기적인 나는 나를 인색하게 만듭니다. 이기적인 나는 나를 삭막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본래의 우리 모습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나를 부인하고 이기적인 나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나에서 자기를 구출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거짓된 나, 이기적인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부인할 때 나를 찾게 됩니다. 이기적인 나를 거침없이 강하게 부인하십시오. 그리고 참 나를 찾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자기를 찾기 위해서 <욕심 많은 나>를 버려야 합니다.

  참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야 합니다. 거짓된 나의 모습, 두 번째가 욕심 많은 나입니다. 우리의 본래의 모습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풍족한 곳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가지고 있음에도 만족 하지 못하고 욕심에 묶여 더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참된 내가 아닙니다. 욕심 많은 나는 거짓된 나입니다. 이 욕심 많은 나를 부인할 때 참 나를 찾게 됩니다.

  욕심 많은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욕심 많은 나는 내 속에 욕심이 자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나를 지배할 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한 갈매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갈매기로부터 존경을 받는 갈매기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제자 갈메기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던 순간을 이야기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부둣가에 버려진 생선 한 마리를 발견하고 두 발로 낚아채 공중으로 날아올랐지, 그 때 배고픔으로 허기진 수많은 갈매기들이 생선을 뺏으려고 내 뒤를 따라 올랐단다. 나는 생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한 순간 해면으로 가라앉기도 하며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오랜 시간 곡예비행을 하며 기진맥진해서 날다가 그만 움켜쥐었던 생선을 놓치고 말았지. 그러자 내 뒤를 쫓던 수십마리의 때거리들이 그것을 잡으러 쏜살같이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거야. 그 때 나는 비로소 푸른 하늘을 보았지 구만리 푸른 하늘이 내 세상인 줄 깨달았노라. 썩은 생선 한 마리를 포기하는 순간 갈매기는 푸른 하늘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썩은 생선을 찾느라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것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욕심에 묶이면 내 인생이 아닙니다. 욕심이 나를 이끄는 인생이 됩니다. 진정한 내 인생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찾으려면 욕심을 벗어나야 내 인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이끌고 있습니까? 욕심이 내 인생을 이끌고 있습니다.

  여씨춘추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백주 대낮 시장 한 복판에 벌려놓은 금은방에 놓인 황금덩어리를 넋 빠진 듯이 쳐다보고 있던 한 사내가 느닷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도망을 쳤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시장바닥에서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갈 수가 있겠습니까? 도적은 마침내 붙들려서 재판관 앞에 섰습니다. 도적에게 묻습니다. 시장 바닥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그것을 도둑질 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이 말을 들은 도적은 "그때 제 눈엔 황금만 보였지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럽니다. 역시 인간이 지닌 탐욕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중국우화입니다.

  욕심 많은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욕심 많은 나를 부인할 때 진정한 나를 찾는 것입니다. 욕심에서 나를 구원하십시오. 욕심에 이끌려 사는 인생 비참합니다. 우리는 평생 이 욕심과 싸우면서 삽니다. 이것이 영성입니다.

  욕심을 이기면 경건이고 욕심에 지면 타락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욕심에 이끌려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욕심 많은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욕심에 이끌리는 삶은 내 삶이 아니고 진정한 내 신앙이 아닙니다.

  김집사가 딸 미숙이를 불러 500원 짜리 둘을 주며 하나는 주일 교회 가서 헌금하고, 다른 하나는 돌 때 떡볶기를 사 먹으라고 했습니다. 미숙이는 기분이 좋아서 깡충깡충 춤을 추며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그만 500원 짜리 하나를 흘렸는데 그것이 굴러서 수채구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미숙이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 죄송해요 하나님께 드리려는 것이 수채 구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욕심 많은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거짓된 나입니다. 거짓된 나에게 순종하지 마십시오. 거짓된 나를 추방해야 합니다. 그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욕심에 이끌려 사는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닙니다. 욕심의 인생일 뿐입니다. 이젠 욕심과 정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욕심 많은 나를 추방하십시오. 욕심 많은 나를 허락하지 마십시오. 욕심 많은 나에게 순종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욕심 많은 나를 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는 자기를 찾기 위해서 <충동적인 나>를 버려야 합니다.
 
  참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야 합니다. 거짓된 나의 모습, 세 번째가 충동적인 나입니다. 충동적인 나를 버려야 합니다. 충동적인 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충동적인 모습은 진정한 나의 본질이 아닙니다.

  충동적인 나는 나를 파괴합니다. 충동적인 나는 나에게 실수를 낳게 합니다. 충동적인 나는 나를 후회하게 만듭니다. 충동적인 나는 나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충동적인 나는 내 이성을 잃게 만듭니다. 이 충동적인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충동적인 나를 부인할 때 진정한 나를 얻게 됩니다.

  충동은 나를 결국 죄로 이끌어갑니다. 인류의 최초 살인사건이 충동적인 사건으로 일어납니다.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가인은 화가 났습니다. 죽이고 싶습니다. 마침 들에 아벨 동생이 나가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인은 동생 아벨을 때려죽입니다. 충동이 살인을 낳았습니다. 충동은 결국 죄를 짓게 합니다.

  어떻게 충동적인 나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충동을 하나님에게 향하는 것입니다.  F. B. Meyer 박사님의 신앙관은 이렇습니다. '신앙이란 내 모든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의 충동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본능적 충동에 이끌리면 죄로 빠집니다. 마이어는 이 충동을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말입니다. 충동이 죄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 본능적 충동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충동적인 나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충동적인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님을 선포하십시오. 충동에 이끌려 나를 순종하지 마십시오. 충동을 잡는 것은 이제 내 능력으로 부족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동을 다스리려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충동을 부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왜 충동에 지고 있을까요? 사단은 우리를 충동하여 내 인내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충동에 순종하고 있는 모습은 진정한 자신이 아닙니다. 충동을 다스리십시오. 충동을 부인하십시오. 이제 충동을 거절하십시오. 충동한 때의 모습은 진정한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때는 사단의 도구일 뿐입니다. 이제 충동적인 나를 다스리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어느 날 한 젊은 철학자는 다소 꾀죄죄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프랑크푸르트의 티어가르텐 공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공원 관리인이 그를 뜨내기로 잘못 생각해서는 그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당신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이 철학자는 몹시 괴로운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발 나도 내가 누구인지 좀 알았으면 좋겠소" 했다고 합니다.

  내가 누군지? 나의 본질은 무엇인지?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이제 거짓된 나를 부인하고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가지고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얻고도 진정한 나를 찾지 않으면 그 인생은 허송세월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진정한 내 모습을 간직하지 않고 있으면 그 인생은 허수아비입니다. 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거짓된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항상 속이는 거짓된 내가 어떤 모양입니까? 거짓된 나의 모습은 이기적인 나입니다. 욕심 많은 나입니다. 충동적인 나입니다. 이 모습은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모습으로 인생을 살면 내 인생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나를 부인하고, 욕심 많은 나를 부인하고, 충동적인 나를 부인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 내 인생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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