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 왕상 19:1-18

  • 잡초 잡초
  • 1575
  • 0

첨부 1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열왕기상19:1-18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러 하는지라" (열왕기상 19:4-5)

밴스 하브너(Vance Havner)라는 저명한 설교자는 그의 아내가 죽은 후, 자신이 걸어온 삶을 기록한 일기를 출판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브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세 가지 유형이 날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세상이 밝아 보이는 ''최상의 나날들''입니다. 그러나 매일 최상적인 날만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일상적인 나날들''인데, 우리가 의기 양양해 하지도 않고, 또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는 평범한 날들을 말합니다. 그 다음 셋째로는, 우리가 실의와 절망과 회의와 혼란 속에 무거움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걷는 ''어두운 나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나날들은 오래 동안 지속되기도 하는 데, 이렇게 지속되는 어두운 나날들은 침체되고 의기소침한 날들인 것입니다. 이 어두운 날 속에서 침체되어 있기를 계속할 때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위기 가운데 있게 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의의 아합왕과 사악한 그의 아내 이사벨,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운 불굴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타락과 불의에 대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가혹하게 책망했습니다. 엘리야는 타락한 아합왕의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뭄을 선포함으로 3년 6개월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했고, 다시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한 권능의 사람입니다. 그는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종교전쟁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보여줌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 사람입니다.
이런 능력의 사람 엘리야가 실의에 빠졌습니다. 엘리야 답지 못하게, 엘리야는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위협 속에 도망하여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심한 영적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엘리야는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이처럼 무서운 영적 침체에 빠지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이라는 것 아무리 강한 것 같을지라도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신앙 생활하는 즐거움을 잃게 되고, 믿음의 확신도 흔들리게 되고, 적극적인 열심과 헌신도 식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쉽게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실망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엘리야처럼,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 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며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아의 모습에서 영적 침체의 원인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적 침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엘리야로 하여금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한 요인은 보는데서입니다. 그럼 엘리야로 영적 침체가운데 빠지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피로
엘리야는 피로함으로 지쳐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피로에 지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며 숯불로 달군 돌에 구운 빵과 물을 마시게 하심으로 힘을 내도록 하셨습니다.
영적 침체는 때로는 피로에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지치고 너무 피곤하면 육체가 우리를 지배하여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육체의 피로는 자기집착을 일으키게 하여 신앙을 쇠잔케 합니다. 육체적 피로는 자신에 대한 이기적 집중을 강화시켜 자학과 비탄을 낳게 합니다. 과도한 피로는 마치 치통을 앓는 사람이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듯 자신이 겪는 괴로움에만 관심을 집중케 하는 부정적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하여 자기 외에는 어느것에도 관심이 없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여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의 엘리야의 탄식을 보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엘리야가 온통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묻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피로에 지치면 무력감으로 몰아가고 그 무력감이 가중됨으로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살아갑니까? 무엇이 우리를 바쁘게 하고 지치고 피곤하게 합니까? 균형 있고 조화 있는 시간관리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휴식으로의 안식은 영적 충만의 삶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안식의 삶을 확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살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영혼이 피곤하고 지친 생활에 있으면 기도가 잠들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충만한 삶이 잠들게 됩니다. 성령과 함께 교제하는 생활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무나 바빠 지쳐있는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41-42)고 하셨습니다.

. 잘못된 시각
엘리야는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셋라 선지자 850명을 물리침으로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가 완전히 제거되고 하나님신앙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이세벨이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에 아합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피했습니다. 결국 그는 심한 좌절과 허탈감 속에 죽기를 구하는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 이세벨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데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잘못 된 것입니다.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단의 유혹과 협박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에서 이세벨을 바라보는 삶으로 돌아가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을 보기보다는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두려움 공포 염려의 세계를 보지 마시고, 우리를 예수 안에서 사랑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죽음과 절망을 보기보다 생명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가난과 고난을 보시지 말고 그 가난과 고난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 볼 때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지 않고 바다와 풍랑의 두려움을 바라 볼 때에 바다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잘못 보는데서 영적침체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만"
우리는 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바라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면서 나만 수고하고 고생한다며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자기 관점에서 판단하기에 찾아오는 부작용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았으며, 자신만이 아합왕과 이세벨과 싸웠고, 자신만이 바알과 앗세라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만 고생했고 자기만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나만 끝까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는 저희가 내 생명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19:10)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만''이러고 생각하고 주장할 때에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나만 깨끗하고 나만 수고하고 나만 고생하며 나만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의기소침하게 하는 영적 침체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내 개인 안에 가두는 데서 우리는 나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평가하며 원망하다가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신앙은 ''나만''이 아닌 ''우리모두''를 보고 우리모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깨닫는데서 영적 삶이 더욱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나만''이라는 내 중심의 편견에 사로잡힐 때에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의 상실
엘리야는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침으로 그의 할 일이 모두 끝난 것 같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냈다는데서 영적 침체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어져 버릴 때, 할 일을 잃어버릴 때에 영적 침체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교회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면 영적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없는 신앙의 삶이 될 때, 심각한 영적 침체를 겪는 것입니다.
다윗은 할 일이 없을 때, 할 일을 찾지 못할 때에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할 일이 없는 믿음의 사람은 위험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새벽기도의 자리에 빠짐없이 앉아 기도하시는 연세 많으신 어른들을 볼 때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기도할 수 있는 가장귀한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영적 침체에 빠져있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침체된 기독교인은 자기 모순이며 복음을 위하여 힘쓸 수 없는 미약한 교인입니다.
우리는 영적 침체가운데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실의와 낙망할 수뿐이 없는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침체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은혜의 역사를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엘리야는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구운 빵과 물을 마시게 하셔서 피로를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시듯 오늘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피곤한 영혼에서 다시 일어서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위로의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수님께서 우리의 지친 영혼을 새롭게 해 주시는 은혜의 생수를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떡을 드십시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침체 속에서 해방되십시오.

하나님은 환경의 변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적 침체에 빠진 엘리야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침체된 브엘세바의 환경을 호렙산 환경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산입니다. 호렙산은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호렙산에 이르게 하시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호렙산의 환경으로 바꾸신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똑 바로 바라보게 하심으로 ''나만''이라는 감옥에서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나만'' 하나님을 위하여 특심하고 선지자들은 다 죽고 나만 남았다고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열왕기상 19장 18절에서 엘리야 만이 아니라, 바알에 무릎꿇지 아니하고 입맞추지 아니한 사람이 7000명이 더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만'' 이라는 엘리야의 생각의 환경을 바꾸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고 하는 엘리야의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언어의 환경이 바뀌게 하셨습니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생활의 환경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환경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능력 안에서 인간의 환경을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능력 안에서 심판의 환경을 용서의 환경으로, 멸망의 환경을 구원의 환경으로, 어두움과 두려움의 환경을 빛과 평강의 환경으로 바꾸십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환경이 될 때에 우리의 의식의 환경과 감정의 환경과 언어의 환경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 변화에서 우리는 영적 침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침체된 브엘세바의 환경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호렙산의 환경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체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은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네 길을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을 바로 보도록 해주고 우리자신에 대하여 바로깨닫게 합니다. 잘못된 우리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변화를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침체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열왕기상 19장 15절과 16절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으로 세우는 것이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는 것이고,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해야할 일을 하게 하심으로 영적 침체에서 자유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고 자진이 일어나고 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말씀으로 우리와 만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우리의 생명과 빛이 되는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세미한 말씀을 듣는 체험을 주시어 우리를 살리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을 들음으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인간변화는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입니다. 우리 속사람 깊은 영에 들려지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럼으로 영적 침체에서 자유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오늘도 침체가운데 있지 않고 생명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