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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행복자 (눅 1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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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6:19-25 
제목 : 영원한 행복자 

  어느 분이 칼럼을 쓰면서 행복을 위한 여섯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꿈, 꾀, 꼴, 끼, 깡, 끈이라 하였습니다. 항상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꾀입니다. 때를 다스리는 지혜입니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입니다. 꼴은 꼴값한다는 말을 합니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로써 이미지를 좋게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꼴을 타고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만들기도 합니다.
끼는 멍석을 깔았을 때 제대로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정치가이건 사업가이건 끼가 있어야 합니다.
깡은 "버티는 힘이자 밀고 나가는 오기입니다. 자존심이며 주체성입니다. 끼는 있는데 깡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깡은 용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끈은 "바로 줄입니다. 줄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 친구 모두 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끈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든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행복을 쾌락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쾌락은 일시적인 즐거움은 될지 모르나 진정한 행복은 아닙니다. 쾌락은 순간입니다. 그 이후에는 고통입니다.

누가복음 16:19절이하에 기록된 내용 중에 부자는 일시적인 행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첫째, 그는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건강처럼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둘째, 그는 부자였습니다. 얼마나 부자였는가 하면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다고 했습니다.
셋째, 좋은 옷을 입었고 세마포의 옷을 입었습니다. 좋은 옷은 세상적인 지위를 말하고 세마포는 교회에서 입는 가운 같은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종교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넷째,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애하고 살았습니다. 지옥에 가서도 형제들을 기억한 것을 보세요. 형제우애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받을 일입니다.
다섯째,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웠습니다.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자기가 먹었던 밥상을 내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여섯째, 세상적인 낙을 누렸습니다. 잘 먹고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시적인 성공자에 불과 하였습니다. 영원한 행복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나사로입니다. 그는 거지였습니다. 없는 것이 많은 게 거지입니다. 돈이 없고 집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입니다.
둘째, 건강하지 못합니다.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잘 곳이 없으니 아무데서 잠자고 살면 병이 듭니다.
셋째, 가족이 없습니다. 가족이 있다는데 고마움을 느낀 일은 없으셨습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 그래도 가족이 위로해 줍니다. 갈 곳도 없으니 자연 그 집 대문 밖에서 자고 얻어 먹고 연명합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도 이 거지는 영원한 행복자였습니다. 왜 거지는 영원한 행복자가 되었습니까? 천국에 갖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잘살아도 몇 년이 안 되고요. 못살아도 몇 년만 고생하면 천국으로 가게 된답니다.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천국에 가는 것이 참 행복입니다. 천국 가는 영원한 행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1.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본향입니다. 신앙인의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부인하는 사람에게 당신 지옥이나 가세요. 그러면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천국이 없다면 지옥이나 가라는 데 왜 불쾌합니까? 지옥이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가보았느냐? 고 묻는 이가 있습니다. 보고 알고만 믿는 게 아닙니다. 믿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를 낳아주신 분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가 당신 낳은 것 보았습니까? 그래도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저분은 나의 어머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믿어라 조금 비지성적인 말 갖습니다. 무엇을 증거로 하여 천국이 있다고 그럽니까? 묻는 이에게 대답한다면 이러합니다.

1) 사람의 본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이 있습니다. 본능이 있다는 것은 대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목이 마르다 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 어디엔가 물이 있기 때문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태중에 있는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교육한 일도 없는데 젖을 찾습니다. 잘 먹습니다. 배가 부르면 입 밖으로 혀를 내밉니다. 이건 본능에 의한 행동입니다. 사람의 본능 가운데 숨길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누구라도 장수하세요 라는 말을 했는데 기분 나쁘다는 이는 없습니다. 예전에 설날 명절이 돌아오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하였습니다. 잘하고 덕담을 합니다. 그리고 나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줍니다. 그런데 인사하고 나니까 어르신네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아무 대구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청년이 덕담으로 100세나 사시지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금년이 100세였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섭섭합니까? 순간 아차 깨달은 청년이 어르신네 아까 제가 100세나 사시라는 말은 금년부터 100세를 더 사시라는 말이었습니다 라고 설명하니까 그제서야 여기 주안상을 차려 오너라. 그렇게 말하면서 푸짐하게 대접 하더 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오래 살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2) 사람이 죽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도 죽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가난한 사람만 죽는다면 얼마나 분한 노릇이겠습니까? 부자도 죽더라구요. 공부하지 못한 사람만 죽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공부 못한 게 한이 맺히는데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지성인들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무능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이를 갈며 억울하다고 탄식하면서 죽는 이가 있습니다.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두려워 떨며 죽는 이가 있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두렵구나. 지옥이 보인다 그럴 것입니다. 어떤 이는 사람은 다 죽는 거야 별도리 없지 그러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잘 믿는 사람을 보세요. 하늘에서 천군천사가 나를 영접하러 오시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죽는 것을 보면 그분이 천국 가는가 지옥 가는가를 대개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성도는 개선장군같이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삼마필드’ 라는 유명한 설교가가 있었는데 그가 임종직전에 제자들이 모여와 임종을 합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답니다. 너희들은 사람이 죽는 데를 자주 가 보아라. 그것이 큰 교훈을 준단다. 만일 내가 다시 산다면 이제부터는 천국에 대하여서만 설교하겠다 라고 말했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도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복도 있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고 있습니까? 대답이 없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죽음의 순간에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88세를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에 나는 모든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다 라고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을 기대하면서 운명하였습니다. 영화나 연극도 희극이 있고 비극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몇 십 년간 잘았다. 그런데 이후에 지옥에 갔다. 이는 분명히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비극입니다. 그 아무개는 그렇게 고생도 지긋지긋하게 하면서도 예수 잘 믿더니 천국에 가게 되었답니다. 이런 결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잘 살다가 잘 죽자는 게 신앙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3) 성경을 볼 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지옥은 불 못입니다. 천국은 고생이 없습니다. 왜 아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물도 없습니다. 그만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랍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모르면 우리는 이정표를 보고 갑니다.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이정표 성경이 말해 줍니다. 이정표대로 가면 바로 갑니다. 믿어야 천국입니다. 믿지 아니하면 지옥이라 하였습니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천국 갑시다. 지옥에 가면 안 됩니까? 누구도 지옥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라고 하였습니까?

1) 불 못이라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는 지옥 불이라 하였습니다. 불이 계속 타오르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 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였습니다.(막 9:43) 불처럼 무서운 게 어디 있습니까? 죽어도 불에 타죽은 사람을 보세요.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 불은 계속 타오르는데 사람들이 타서 죽지도 아니하는 불입니다.

2) 괴로움을 당하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0:10절을 보면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고생이란 한때 당하는 것은 삶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생 아니 영원토록 당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도 못하는 곳입니다. 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는 특권일지 모릅니다. 벌레들도 타지 아니합니다.

3) 지옥은 한 번 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마 16:26)

“너희와 우리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는 곳이”(26절)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범죄하고 교도소에 가게 되었는데 무기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닙니까? 길어도 3년이나 5년은 되겠는데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다면 이는 비극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그보다 더한 영원입니다. 지옥에 갈 수는 없습니다. 지옥에 갈 수는 없습니다.

4) 지옥은 자기가 원해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부자에게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소원은 나사로 보내사 그의 손가락으로 물 한 방울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사로가 부자의 신세를 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정도의 요구는 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소원은 자기형제들에게 나사로 보내사 이러한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7절) 자기는 이런 지옥에 왔지만 형제들은 와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것도 거절입니다. 형제들도 지옥에 보낼 수 없습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라 하였습니까?

1) ‘위로 받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6:25절 “너는 고민을 하지만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위로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든 고민과 문젯거리를 해결하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의 위로가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당한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2)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2 절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였습니다.
3) ‘불행의 요소가 없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눈물이 없습니다. 눈물을 씻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눈물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죽음이 없고 아픈 것도 없습니다. 애통 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4)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곳입니다.
만족함이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천국에 갑시다.

3.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왜 예수만이 길입니다. 천국 가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 다 가는 게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가는 게 아닙니다. 비자가 있어야 갑니다. 천국 비자는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가 영원한 행복자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금 죽음의 종착역을 향해 세월이라는 열차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이제 막 부산을 출발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어느 분은 대구 어느 분은 대전에 그리고 천안을 지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잘 믿으세요.

1)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는 게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3 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오래 믿지 아니하였어도 오늘 예수를 시인하고 예수 믿으세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두 사람의 강도가 같이 못박여 죽임을 당합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예수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예수를 시인하였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세요. 몇 시간 믿지 아니하였어도 예수께서는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천국 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여 예수는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나는 그렇게 시인합니다"

2)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요 1:12)

믿는다는 것은 바로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접 하는 자 곧 나의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녀의 권세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신분이 달라집니다. 죄의 사람이 의의 사람이 되고 세상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오늘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분은 아멘하십시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영접기도를 같이 합시다. 내 주여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주님을 내 마음 속에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주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구원의 은총과 축복을 받으시고 영원한 행복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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