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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울이 주는 영적 은혜를 체험하자 (슥 14:5-8, 마 2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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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주는 영적 은혜를 체험하자
( 슥 14:5-8, 마 24:16-21 )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계절이기를 바랍니다. 교회력으로 대강절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성탄을 생각하게 됩니다. 겨울은 추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계절입니다. 사람은 풍족할 때보다 어려울 때에 은총을 사모합니다. 추울 때에 인간의 사고와 사려가 깊어집니다. 겨울에는 추워야 하는데 아직 춥지 않아 염려가 됩니다. 평균으로는 11월 22일에 첫 눈이 왔다는데 아직 비만 내립니다.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추운 겨울을 잘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히브라어로 겨울은 ‘호렙’입니다. 이 말은 ‘범람하다’, ‘넘쳐 흐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겨울은 ‘헤이몬’입니다. 이 말은 ‘비오는 계절’, ‘나쁜 날씨’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똑같이 겨울이란 말은 좋지 못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이란 24절기에 의하면 입동부터 입춘까지를 말합니다. 천문학적으로는 동지를 지나서 춘분까지를 겨울이라고 합니다. 기상학으로는 12월, 1월, 2월을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남반구에서는 6월, 7월, 8월을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겨울은 가장 추울 때를 의미합니다. 가을도 겨울인 사람이 있고, 겨울도 여름인 사람이 있습니다. 추운 계절은 개인이 느낌에 따라 다릅니다. 겨울은 움츠린 계절이며 죽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가장 성숙해집니다. 추위가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겨울의 삭풍은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찬 북풍을 많이 맞은 나무를 가지고 악기를 만들면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눈물 젖은 빵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오히려 유익한 계절입니다.

따뜻한 계절만 있는 나라를 보세요. 얼핏 보면 재미 있을 것 같지만 재미 없습니다. 사람이 변화가 없으면 지루하고, 게을러지고, 도전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삶의 발전을 못합니다. 추운 겨울이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들고 도전을 받고 삶의 향상이 있게 됩니다. 겨울은 준비해야 합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준비하면 겨울은 풍성합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겨울은 유익합니다. 겨울을 준비하지 않으면 겨울은 죽음입니다. 개미와 배짱이의 우화에서 나타났듯이 준비해야 겨울이 즐겁습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겨울은 즐거운 계절입니다. 디모데후서 4:21에는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월동준비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준비 내용은 적어졌습니다. 옛날에는 연탄도 준비해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고, 배추 무우도 땅 속에 묻어야 하고, 문에 문풍지를 붙여야 하고, 창문을 비닐로 막기도 하고, 내복을 꺼내 준비하고, 두꺼운 솜이불을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준비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마지막이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겨울이 주는 영적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겨울 준비도 영적으로 해야 합니다. 요즘은 김장도 잘 안하지만 김장은 안해도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겨울을 잘 준비하여 풍성한 겨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인생의 마지막이 주는 은혜와 경고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봄은 뿌리는 계절입니다. 여름은 자라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거두는 계절입니다. 겨울은 쉬는 계절입니다. 겨울은 막연히 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 계절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동물들은 활동이 둔해지고, 지방을 많이 흡수저장하고, 동면을 취합니다. 식물은 낙엽이 떨어지고 나뭇잎의 엽록소가 사라집니다. 엽록소 대신 안토시아닌 계통의 색소가 많아지므로 붉은 색을 띠고, 크산토필 계통의 색소가 많아지므로 노란색이 됩니다. 잎이 떨어지므로 영양분이 뿌리나 줄기에 저장됩니다. 나무가 얼지 않게 물이 가지 끝까지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물이 오릅니다. 성경도 겨울이 쉼의 계절인 것을 말합니다. 아가 3:11에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합니다. 솔로몬도 분위기에 약했던가 봅니다. 겨울의 긴잠을 깨어나는 솔로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런 인생의 마지막, 쉼의 계절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준비를 잘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인생은 쏜 살같다고 합니다. 미트로프의 ‘백미러에 보이는 물체’란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생이 고속도로라면 영혼은 자동차이다. 백미러에 보이는 물체는 실제보다 멀어 보일 수 있다”. 인생은 고속도로입니다. 완행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뒤에 있는 것들은 멀어보이지만 훨씬 우리의 생에서 가까운 것들입니다. 우리의 죽음도 인생도 가까운데 있는 우리의 실제입니다. 세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삶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시시한 배우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삶을 마칠 때까지 정지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6개월을, 광고 우편물을 열어보는데 8개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이곳저것을 뒤적이는데 1년 반을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5년을 허비합니다. 그러고 나니 이미 황혼입니다.

창세기 5장에는 10고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900세 이상 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장을 요약하면 “낳고 낳았으며 죽었더라”입니다. 900년을 살아도 이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중국의 한 현인은 우리의 삶을 다음의 세 가지 낱말로 요약했습니다. 서두름(hurry), 걱정(worry), 묻힘(bury)입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무엇인가 이루려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 인생은 걱정 투성이입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다 묻히고 맙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갈라디아서 4:4에는 “때가 차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꽉찼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뿐만 아니라 ‘플레루’(pleroo)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이 말은 어떤 것이 완전히 완성되거나 끝이 났음을 가리킵니다. 카이로스는 어떠한 과업이나 열매를 결실하기 위한 기회를 가리키는 반면에 플레루는 그것이 성취됨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이 셋을 다 경험합니다. 그리고 플레루는 우리의 죽음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잘 준비해야 할 시간이 플레루입니다. 일전에 텔레비전 뉴스에 기가 막힌 한 얘기가 보도되었습니다. 부모의 땅을 물려받은 아들이 부모를 봉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물려받은 땅을 되돌려주게 법원이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84세된 아버지는 ‘부모 봉양 약속을 어겼으므로 증여계약 역시 무효’라며 아들을 고소하였습니다. 65세 된 큰아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에서 아버지의 손을 들어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아버지와 중풍에 쓰러진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 모시기로 하였지만 땅을 넘겨받자말자 어머니를 노인전문병원에 보내고 치료비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은 의무불이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란 분이 65세였습니다. 자신도 손자를 봤을 만한 나이이고, 잠시 후에 자신도 아버지같은 처지가 될 텐데 어찌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이 짧은 뉴스는 우리 모두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어느 부부 세미나에서 “만약 나에게 3일만이 주어진다면?”하고 편지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참석한 부부들이 한결같이 “여보, 미안해요. 당신에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잘 하는 남편, 아내가 될께요”,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불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갈등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가정도, 사회도, 세계도 평화만 깃들게 될 것입니다. “남편을 대할 때는 항상 마지막이라는 태도로 섬겨라”. 미우라 아야꼬의 말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마지막의 태도가 우리를 경건하고, 진실하게 만듭니다.

둘째, 환난의 날이 주는 은혜와 경고를 체험해야 합니다.

지중해 연안국가들인 신약시대의 나라들은 그들의 삶과 직결된 바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중해는 그들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중해가 겨울에는 풍랑이 일고 얌전하지 못한 바다로 변해버립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바울이 탄 배가 미항에서 겨울을 나기가 불편하여 뵈닉스로 가려고합니다. 이 배는 항해도중 파선을 당합니다. 하물과 배는 다 바다에 빠졌지만 겨우 생명만 건집니다. 겨울의 항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겨울은 환난의 계절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월동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덕길에는 모래함과 염화칼슘을 준비합니다. 환난이 많은 계절입니다. 요즘은 여름이 환난이 많은 계절인 것 같습니다. 게릴라성 호우가 많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8:22에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환난은 끊이지 않습니다. 풍성한 여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울도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이 환난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자세가 지혜자의 자세입니다. 1812년 가을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편안하게 지내기 위하여 12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그 곳에 진주했습니다. 첫눈이 10월 30일에 내렸는데 예년에 비해 3주나 일찍 내린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실망에 차 곧 퇴각을 서둘러 폴란드에 있는 여러 우호적인 도시에 겨울 진영을 설치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1천 마일이 넘는 황량하고 쓸쓸한 지역을 횡단하는 행군이었습니다. 1주일 후 그 거대한 군대는 완전히 모스크바를 벗어났습니다. 그들의 적들은 경계가 허술한 곳마다 그들을 기습했습니다. 명령과 훈련은 망각되었고 계급은 무너졌으며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하여 다투었습니다.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이 발에 밟혔고, 수백필의 말들이 식용으로 살해되었습니다. 정복의 꿈은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겨울의 냉정함을 뼈저리도록 느끼며 또 한 차례의 패전을 기록하였습니다. 겨울은 냉엄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3:18에는 인류의 종말과 환난이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도 부탁하십니다. 환난의 때가 겨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에 리더십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옵니다. 리더십이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혹은 ‘인듀어런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Shackleton)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을 정복한 뒤인 1914년에 탐험 대원 27명을 데리고 남극대륙 횡단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는 남극대륙 정복에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남극해에 진입했을 때 배는 파괴되었고, 섭씨 영하 80도의 강추위와 굶주림의 죽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새클턴과 27명의 대원들은 2년 뒤 얼음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전원이 무사히 생환하였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귀환한 것은 무려 2000킬러미터를 헤맨 다음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이 돗보이는 것은 겨울을 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은 죽음같은 환난이지만 그들은 똘똘 뭉쳐 승리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환난을 이기는 준비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셋째, 종말이 주는 은혜와 경고를 체험해야 합니다.

인류의 겨울인 종말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3에는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3절입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아오리이까”. 예수님은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며, 난리와 소문이 있겠고,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고, 불법이 성하겠고,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바울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고 하면서 말세의 징조를 말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고, 거룩하지 않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때가 종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때가 인류의 겨울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종말에 삽니다. 인류의 겨울입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홀로 죽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의 종말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은 우리 모두가 맞을 것이지만 결국 함께가 아니라 나홀로 맞을 것입니다. 스가랴 14:6-7에는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고 합니다. 어두워지면 빛이 더욱 빛납니다. 어두움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인류의 종말은 오히려 은혜의 기간입니다. 이 시간을 잘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결론

히브리어의 산성이란 단어는 ‘미쓰가브’(misgab)입니다. 이 단어는 높다, 안전하다는 뜻인 ‘싸가브’(sagab)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시면 ‘마사다’(masada)라는 유적지에 가 보실 것입니다. 높은 산성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유대인을 함락하려 했지만 유대인들은 최후까지 항거했습니다. 마침내 올라가보니 모든 유대인들이 전부 죽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는 “그 때를 기억하라”는 교훈과 함께 학생들에게는 민족적 유적지로 답사하는 곳입니다. 이 마사다도 ‘미쓰가브’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마사다는 환난 때 지은 것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때 계획했고, 안정된 시기에 축성하였습니다. 탈무드에는 “겨울에 땔감을 사는데 쓰지 않으면 안될 돈을 여름에 놀며 쓰지 말라”고 합니다.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닥칠 가장 어려울 때를 준비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겨울을 맞으면서 찬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의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며 영적으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남이 주신 말씀의 신령한 지혜를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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