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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과 생각의 변화 / 잠 4:2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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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생각의 변화

본문: 잠4: 23-27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 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으나,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을 사고를 저지르고 말 형세였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에서 왔을까요? 엔진? 차체의 모양? 값의 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 였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봉사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술취한 운전사였습니다. 부정적이고 더럽고 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 긍정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삶의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내 마음의 운전수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 진 연약하고 괴로운 나 자신입니까? 허물과 질병, 미움과 질투의 교차로를 달리면서 생의 목적지도 모른 체 황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려하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아버지께로 가는 영생의 지도인 성경을 펴놓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목자 예수님이신가요? 삶의 운전석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조정실의 열쇠를 전능하신 사랑의 왕 예수님께 드리고 그 보좌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그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왕좌인 심령에 거처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보좌에 앉아 결정자가 되게 하십시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운전하게 하십시다. 그리하면 영원한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4-6) 그리고 성경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곧 그 사람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 할 까? 어떻게 하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어떻게 하면 기도와 전도를 많이 할 수 있을 까를 생각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마음은 우리 삶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면 평안할 수 있으나 잘못 지키면 큰 불행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평안한 마음은 잔잔한 호수와 같으나 어지러운 마음은 풍랑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첫째, 악하고 죄악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고 살기 어렵습니까? 흔히 환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환경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악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악한 생각을 주어서 악한 일을 하게 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거짓된 사람에게는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생각을 자꾸 넣어줍니다. 모든 문제는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어서 큰 불행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을 점령하면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45절에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악한 마귀를 쫓아내고 난 후, 마음을 정돈하여 지키지 못하면 더욱 악한 마귀 일곱이 들어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악입니다. 악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괴롭힙니다.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9절에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큰 환난과 곤고가 다가오는 이유는 마음 속에 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하셨고 또한 이사야 57장 20∼21절에는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귀영화와 공명을 다 가진다해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의 근원은 마음의 평화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과 화가 그의 머리 위에 임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이 악을 행해도 그 보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응은 천천히 올지라도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구르는 것 같아도 결코 멈추지 않으며 그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악인은 신속히 망합니다. 시편 37편 1∼2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죄에 잡히면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남몰래 죄를 짓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죄는 근본적으로 불행을 가져옵니다. 죄는 누룩과 같아 마음을 부패시킵니다. 부패한 가운데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당하게 됩니다. 죄를 감추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양심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시편 38편 2∼5절에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자신이 먼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죄를 범하면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며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먼저 양심의 질책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두려움이 마음 속에 가득하게 되므로 어떤 일을 당하든 ‘죄 값’이라는 가책으로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은 결국 죄로 인해 다 막힌다는 의미입니다. 교만한 마음 역시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잠언 16장 18∼19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만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진심으로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우리를 널리 용서하고 축복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이시며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둘째는 부정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 가지게 되는 생각"입니다. 즉 현재의 상황만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홍해 앞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들이 그랬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보았을 때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현재의 상황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삶과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불안을 가져오고 쓸데없는 근심 걱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좋으신 분이시며 평안과 소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 역시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늘 부정적입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생각하며 말하며 모든 것을 마이너스 시각으로만 봅니다.
미국의 신발회사에서 시장조사를 위해 두 사람의 신발 판매원을 아프리카에 보냈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의 전보가 회사로 왔습니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 신발 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다니므로 신발을 팔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그와 정반대의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그 사원은 ‘신발을 있는 대로 보내 주십시오. 여기는 모두 신발을 안 신었기 때문에 무한한 시장이 있습니다’라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곳을 보는 시각의 차이는 그 사람의 마음이 마이너스의 시각이냐 플러스의 시각이냐에 따라 이와 같이 정반대의 의견을 내게 합니다.
물통에 물이 반 정도 있을 때 한 사람은 이를 보고 “물통에 물이 반이나 비었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물통에 물이 아직도 반이나 남았구나”라고 말합니다. 똑같은 물통을 보고 한 사람은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은 플러스 시각으로 본 것입니다. 인생을 항상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의 발상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분노와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현대 의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한 신체의 반응은 인체에 좋지 못한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온갖 질병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마이너스의 마음을 품으면 노화를 촉진하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뇌 세포가 활성화되어 건강하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소망을 버리게 됩니다.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두움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밝은 곳을 찾지 않고 그림자만 찾습니다. 이러한 마이너스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가정에서나 직장, 사회생활의 모든 곳에서 언제나 원망과 불평, 탄식의 조건들만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돕는 자로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플러스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을 플러스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이너스 시각을 가지면 좌절하고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부정적인 시각과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실상이므로 믿음의 눈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영적으로나 심리적, 육체적인 모든 생활에 죽음을 가져옵니다.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냉동차가 역에 정차하면 스위치를 내리고 냉동차 내부를 청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싸늘하게 죽은 시체 한 구가 있었습니다. 알아본즉, 그 전날 냉동차 안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가 냉동차 문을 잠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일로 인해 회사는 발칵 뒤집히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냉동차는 청소를 위해 스위치를 뽑기 때문에 냉동차 안에서 청소할 당시 내부 온도가 얼어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또한 산소도 충분해서 질식해 죽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냉동차를 청소하던 청소부가 바깥에서 문을 잠궜다는 사실을 안 후 자신이 ‘냉동차에 갇혔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맥박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냉동차에 갇혔으므로 얼어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그는 실제로 죽었습니다. 이는 실제로 냉동차 안에서 온도가 내려가서 얼어 죽게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냉동차 안에 갇혔으므로 얼어 죽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그를 죽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 인생을 부정적으로만 끌고 갑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가는 곳마다 죽음을 가져오게 됩니다. 결코 긍정적이고 따뜻한 생각을 하지 못하므로 엄청난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셋째, 마음을 새롭게 변화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삶의 환경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마음이 변화되면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아무리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환경을 바꾸어도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먼저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 타당화로 자신이 옳다고 변명하며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네 탓’‘부모 탓’‘형제 탓’으로 돌립니다. 이처럼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그 마음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변화되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깨어져 모든 일을 ‘내 탓’으로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으로 먼저 우리의 마음이 깨어져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10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므로 우리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도 예수님과 하나되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안고 바라볼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받게 됩니다.
말라기 2장 5절에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나는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쁨과 행복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함과 깨끗함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를 성전 삼아 계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우리의 깨끗함은 예수님으로 인한 것임을 마음에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료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과 형통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저주와 낭패와 절망의 마음을 버리고 축복과 형통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속에 영생천국의 소망을 가득 채워 놓아야 합니다. 또한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는다고 미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우리 마음의 변화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들임으로써 변화될 수 있습니다.
물을 끓이려면 먼저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생수를 마음속에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모두 알고 계시지만 우리를 미움의 마음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감싸시어 우리의 모든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덮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은혜를 생각하고 서로 용서하는 것을 배워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죄를 덮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바라볼 때 남편은 아내의 죄를 덮고 아내는 남편의 죄를 덮습니다. 그러므로 화목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허물을 들추고 벗기면 상처만 남습니다. 우리는 벗은 사람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허물을 덮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는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 받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스승이 바구니 안에 꽃을 담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바구니인가?" 제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꽃바구니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꽃을 들어내고 생선을 바구니에 담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생선 바구니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맞다. 똑같은 바구니이지만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요, 생선을 담으면 생선바구니이니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 같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 향기 나는 꽃이 담겨 있으면 향기 나는 사람이니라" 우리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우리 삶의 원천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악하면 모든 행동이 악합니다.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하면 선을 행하고,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롭게 되면 생활 전반에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의의 결국은 영생이고, 악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의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단단히 지켜 생명 길로 행하여야하겠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세상과 죄악, 그리고 우리를 더럽히고 병들게 하는 요소에 감염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때 해로운 사상이나 생각, 태도가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세상적인 것에 물들어 버리고 맙니다. 생각, 사상, 감정, 선택, 충동, 욕망,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만날 때 변화하는데, 대중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대에는 '대중 의식'이 더욱 증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여린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사, TV, 라디오, 잡지, 신문, 친구들이 주는 미묘한 압력과 충격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대중 매체들은 우리의 의식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반 그리스도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폭력과 증오, 편견과 탐욕, 냉소주의가 팽배한 반면, 고상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것은 멸시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오염에 물들지 않을 실제적인 방법은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이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우리 마음에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빌4:6-7)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책, T.V, 라디오, 그리고 특히 광고 등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침투하는 세상의 태도와 사고 방식과 철학 등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그것들에게 길을 내주고 동화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매일의 삶에서는 세상을 닮은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마침내 세상 사람들과 정말 아무 차이도 없는 데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한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5년마다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본국에 돌아올 때마다 어떻게 느꼈는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슬픈 사실은 고국에 올 때마다 표준들이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 더 슬픈 것은 교회까지도 점점 더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성서적인 표준에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되어감에 따라,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교회 분위기는 점차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그의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주님을 닮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그 수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세상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세상의 위장된 겉모습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몸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마음가짐에 따라 자기 운명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눈과 혀를 지켜야 하겠지마는 그보다 더욱 내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집이나 돈을 지키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어도 마음을 지키는 일은 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일입니다. 행복과 불행, 평안과 불안도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내 마음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고 안이한 마음으로만 살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내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번 청소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곧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이고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의심, 두려움, 거짓, 교만, 음란 등과 같은 악한 감정이 내 속에 자리잡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단 마음속에서 나갔다가도, 곧잘 다시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이런 손님에게 마음의 좌석을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과 온유와 관용과 화평과 겸손 같은 좋은 친구들이 먼저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은 선과 악의 싸움터입니다. 이 싸움에서 선한 마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즉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엡6:10-18)
우리는 우리의 재물과 건강은 지키면서 마음을 지키는 데에는 소홀합니다. 우리 마음을 길거리에 던져두고 지키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마음을 돌보고 지켜야 합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또한 잠언 17장 22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을 공급해야 연약한 우리의 마음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19편 8절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히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하다는 말을 하지 말고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먼저 죄와 악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주의 계명을 통해 주의해야 합니다. 얼굴을 단장하려는 사람이 거울을 안보고 단장할 수 없듯이, 우리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거울인 십계명을 늘 지키며 마음을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 21∼22절에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명의 거울을 항상 마음에 비춰보고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죄를 지으면 곧 회개하여 마음을 씻어야만 합니다. 우리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을 하듯이, 더러운 옷을 빨래하듯이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회개하여 우리의 마음을 늘 정결케 지켜야 합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즉시 회개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회개함으로써 마음을 지켜야만 합니다.
여섯째,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용사라도 낙심하게 됩니다. 시편 28편 6∼7절에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마음의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행복과 평화, 기쁨과 영광 등이 모두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보좌만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나 세상의 마귀가 마음에 들어와 우리를 점령하면 그때부터 우리 마음은 악이 점령하고 죄가 점령하여 부정적인 생각으로 많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켜야할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욥이 그랬고 요셉과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랬습니다. 결국 모든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는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잘못된 생각은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며, 기운을 뺍니다. 용기를 없애며, 담력을 잃게 합니다. 또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잘못된 마음은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구속의 은총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무릇 지킬 한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 각자의 마음에서 생명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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