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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청지기 (약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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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지기
약 5:1-6

어느 탈옥수가 “돈이 있으면 유죄도 무죄가 되고, 돈이 없으면 무죄가 유죄가 된다”고 절규한 적이 있습니다. 실로 오늘날 부는 인간의 운명마저 좌지우지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위력은 나쁜 쪽으로 혹은 좋은 쪽으로도 작용합니다. 물질이 나쁘게 이용 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부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를 어떻게 획득하느냐,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쁜 것이 될 수도 있고 선하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물질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화가 뒤떨어진 후진국일수록 빈부간의 격차가 심하게 마련이며, 이같은 현상은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더욱 심각합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차지해 버리면 나머지는 극빈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후진국, 특별히 정신 문화가 뒤떨어진 나라들에서는 이것은 적절하게 조절할만한 통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격차가 심화되고 계층간의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위화감으로 인해 사람들이 물질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사실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먼저 야고보 선생은 착취하는 자들에게는 울고 통곡할 고생이 임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질책하고 있는 부한 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땀을 흘려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부하게 된 사람들, 부당 이득 즉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몫을 자신이 취하여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물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모든 불의에서 떠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착취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이에 상당하는 보응을 받게 되며, 그것은 울고 통곡할 고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마 19:24)는 말씀을 통해 재물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성도 가운데 물질적으로 부한 자들은 그 재물을 선용하여 주의 일을 위해 사용할 것이며 또한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그 어떤 것 즉 물질, 건강, 명예, 신앙등도 한 개인의 영화를 위해 제공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기 위해 공급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보면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비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의 쓰임새를 바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로부터 왔는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고백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참으로 주님을 위해 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재물을 쌓은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잘못 관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이어라고 하는 랍비가 안식일에 예배당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그 자택에서는 두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두 아이의 시체를 이층으로 옮겨, 흰 천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랍비가 돌아오자 아내는,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잘 보관해 달라고 말하며, 아주 귀중한 보석을 맡기고 갔습니다. 그 주인이 갑자기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그것을 주인에게 곧 돌려 주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내는, "실은 지금 막 하나님이 두개의 귀중한 보석을 하늘로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랍비는 알아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700년대 후반의 영국.산업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면서 향락과 사치, 도덕적인 타락이 영국을 병들게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때도 사람들의 빗나간 재물관리가 병리현상을 심화시켰다. 그때 요한 웨슬리가 영적 각성운동을 크게 펼쳐 영국을 변화시켰다. 그의 "재물관리청지기론",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쓸 때 하나님의청지기된 나의 도덕에 어긋남이 있지 아니한가를 살피고, 돈 쓰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가를 파악하고, 이 돈의 사용이 훗날 하나님의 상을 받을만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쌓아 두도록 재물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것을 잘 관리하고 선한 일에 사용하도록 주신 것일 뿐입니다. 즉 청지기로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른체 자신의 것인양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이 과하면 재물에 미혹되어서 남의 물건을 강탈하기도 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삶입니까? 재물을 얻기 위해 다른 것들은 마치 희생되어도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약 1:15절)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에 대한 주의 명령은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둔 재물, 사치와 연락에 사용하는 재물은 좀이나 등록이 해하며, 도적들이 구멍을 뚫고 가져갑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을 통해 선한데 사용함으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마 6:19-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사용함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일꾼들에게는 합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당시 품군의 임금은 당일 지불하게 되어 있었으나 고용주들은 자주 품삯을 연체하고 또한 정당한 삯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고용주들은 힘었고 가난한 일군들의 임금을 착취하며 그들을 압제하고 대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일에 급급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는 말을 통해 그들의 불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결코 소홀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하게 압제 당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적절하게 보응하십니다.
약속은 반드시 이행되어야만 하며, 정당한 품삯을 주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는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약한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늘 하나님은 약한자의 편에 서서 돌보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자를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부르짖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님 앞에서 약한자의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부한자의 편에 서는 성도가 되지 말고 정말 힘없고 약한 자들의 편에 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삶이야 말로 정말 청지기로서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지기는 내것을 주장하지 않는 자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님것이라고 인정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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