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행복을 창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마 19:3~9)

  • 잡초 잡초
  • 256
  • 0

첨부 1



제 목 : 행복을 창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성 경 : 마 19:3 ~ 9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첫 번째 사역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개별적인 구원이지만 축복은 가정적인 것입니다.

가정은 행복의 산실 ! 축복의 산실 ! 구원의 산실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을 받고, 노아의 가정이 복을 받고, 룻의 가정이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축복도 가정 단위의 축복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라고 했습니다(눅19:10).

그런데 오늘날, 이 소중한 우리의 가정들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날로 증가하는 이혼율이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제도는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신적 기원을 가진 제도입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2:18). 그러므로 이 가정은 보호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행복을 창조하는 삶을 통해
서, 축복의 산실, 행복의 산실, 구원의 산실인 가정을 소중하게 지키고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Ⅰ. 가정의 행복은 상호 이해를 통해서 창조됩니다.
본문 5절에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인간의 행복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이야 말로 소중한 행복의 발원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적 가족이 된 제자들에게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요10:15).

가족 관계는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아는”이러한 상호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서로가 깊이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공감대가 형성되고, 공감대가 형성될 때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가정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30%를 상회하는 이혼율이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가정 상담가인 딘, 마틴(Dean Martin)이 말하기를 “당신은 좋은 남편을 만났다고 생각하십니까?”하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결혼 후 1년 미만의 신혼부부는 98%가 “예”라고 했습니다. 결혼 후 2년이 지난 아내들은 56%만 “예”라고 답하고, 결혼 후 10년이 넘은 아내들은 단 6%만 “예”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20년이 넘은 아내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무려 95%가
“예”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반려자로서 안정감을 가지는데 적어도 20년 이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조급합니다. 사실 연애기간이 길었다고 해서 서로를 잘 아는 것이 아니고 한 두해 살았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많은 여자들이 결혼한 후에 연애시절에 알았던 남편과 다른 남자를 살아가면서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남편들이 연애시절에 알았던 아내와 다른 여자를 결혼생활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후회하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를 완전히 아는 데는 열륜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하여 겸비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결함이 있고, 약점이 있고,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의 상대를 이해해 주고, 결함을 덮어주고, 약점을 감싸주고, 허물을 용서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의 부족과 단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Ⅱ. 가족간에 조화를 이룰 때 행복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종속관계가 아닙니다. 창조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했다는 것은 동등한 수평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둘이 한 몸이 된다.”는 의미도 둘을 합해서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 성장 과정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기호도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도 이상도, 다를 수 있습니다. 엄연한 이질적 차이가 있는 두 인격체가, 서로의 차이점을 잘 조화시켜서 생활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삶입니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이 합해서 화음을 이루고,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각기 다른 색깔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후서 5장 18~19절의 말씀에서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씨줄과 성도의 화목의 날줄로서 조화로운 행복의 아름다운 베폭을 짜가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균형과 조화는 행복을 창조하는 요소가 됩니다.


Ⅲ. 가족간에 신앙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 행복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습니다.

사업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세상만사가 사람 뜻대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들 건강하고 싶지 않고, 누군들 행복 하고 싶지 않고, 누군들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지 않는 집은 무너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아니하면 성벽이 무너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인생 최대의 난제를 푸는 열쇠와 해답이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계21:3~4).

하나님의 집이 내 가정에 있을 때, 내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내 사업체 안에 있을 때, 내 사업체는 행복의 창조지가 됩니다. 우리들의 가정에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우리들의 가정에 예배가 있고, 찬송과 기도가 있을 때에 우리들의 삶은 행복을 창조하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시편 128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삶 !

신앙적 삶이 진실로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삶인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