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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제 속에서 기뻐하는 삶 (창 35: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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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속에서 기뻐하는 삶
창세기 35장 16-20절


< 고난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

살면서 문제를 축복으로 만드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 중에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문제 중에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떤 분은 무엇인가 하나라도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처럼 문제를 통해서 우리가 단 한 가지라도 배우고, 변화된 삶과 인격을 가질 수 있다면 문제는 반드시 축복으로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 후에 다가오는 축복을 생각하십시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볼 때 문제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으면 문제 후에는 반드시 축복이 다가왔습니다. 인생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인생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 속에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내일의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이 바로 성숙한 믿음입니다.

자세히 보면 인생의 행복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선택하면 기업이 병들게 듭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을 선택하면 기업이 건강해집니다. 마찬가지로 내 영혼의 기업에서 '어떤 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영혼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 불행한 순간만 살았던 사람도 없고 행복한 순간만 살았던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공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분은 과거의 기억에서 항상 '불행한 나'를 선택합니다. 상처받았던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 영혼은 조금씩 병이 듭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과거의 기억에서 항상 '행복한 나'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았던 때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 영혼은 조금씩 건강하게 됩니다.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까? 그 삶은 어렵지 않습니다. 항상 '행복한 나'를 채용하고, '행복한 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든 인생도 불행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때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큰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믿음입니다.

문제는 축복의 연단과정입니다. 같은 보석이라도 7번 깎은 것과 70번 깎은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보석을 몇 번 깎느냐에 따라서 빛깔도 달라지고, 가치도 달라지고, 가격도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연단을 당하면 당할수록, 고생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더욱 큰 능력과 마음의 넉넉함을 주셔서 더 큰 일을 감당케 하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짜 은혜는 문제를 통해서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고난과 관련된 3가지 교훈 >

오늘 본문에는 야곱이 사랑했던 둘째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1. 인생은 문제의 연속임을 인식하십시오.

야곱의 삶을 보면 문제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문제가 풀리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옵니다. 얍복강의 걱정거리가 형 에서와의 극적인 화해로 해소되고 이제 인생에 행복이 깃드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합니다. 결국 세겜 족속을 죽인 후에 황급히 세겜에서 탈출해해서 벧엘로 갑니다. 그리고 이제 벧엘에서 평안하게 사는가 싶더니 얼마 후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의 죽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에게도 문제는 계속 찾아오고, 긴장과 스트레스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문제와 스트레스가 있는 삶이 축복된 삶입니다. 바이올린은 적절한 상태로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적절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게 됩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면 줄이 끊어집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휴식과 유머와 편하고 멋진 분위기도 필요하지만 너무 풀어지면 안됩니다. 적절하게 조율된 긴장이 있어야 우리의 언어가 아름다운 언어가 되고, 우리의 태도가 겸손한 태도가 됩니다. 바로 그런 축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절한 긴장과 기도제목과 문제와 스트레스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나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고, 항상 넉넉한 마음, 일정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 레임덕(lame duck) 현상이 나타납니다. 레임덕이란 '뒤뚱거리는 오리'라는 뜻인데,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져 정국을 뒤뚱뒤뚱 어렵게 이끌어 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 현상을 극복해보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두 명의 조사요원을 미국에 파견해서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레임덕을 극복하는가?"에 대해 연구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했습니다. "레임덕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정치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침착해야 합니다. 시련이 있어도 그냥 내 할 일을 잘 하면 됩니다. 부족한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시련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너무 편한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교회가 너무 평안하니까 새벽에 기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무엇인가 기도제목이 생기겠지요? 그때 침착하기를 원합니다."

살면서 우리에게 기도제목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있어야 우리는 성숙하게 되고, 다시 신앙심이 깊어지고, 게으름과 나태함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있을 것이 있게 되었구나!"라고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이면 그 문제는 우리에게 숱한 유익을 남기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2.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라헬이 베냐민을 낳을 때 심히 산고를 하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17절) 이 장면은 "축복이 있기 전에는 꼭 산고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12번째 막내아들입니다. 이 아들을 얻음으로 야곱의 12아들을 통해서 '완성된 축복'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형성됩니다.

가장 큰 축복 이전에는 항상 산고의 진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고난의 십자가가 주어지거든 기쁨으로 그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의 십자가는 영광으로 가는 통로가 되고 다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요 12:23). 그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이제 주님께서 뜨시겠구나! 내게도 한 자리 돌아오겠지." 하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광을 얻을 때는 십자가를 질 때였습니다.

우리도 영광과 축복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결코 영광을 얻을 수 없고,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어야 살고, 헌신해야 복을 받습니다. 어떤 분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이렇게 죽었는데 문제는 풀리지 않고 더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완전히 죽지 않고, 죽은 체 한 것이 문제입니다.

때로 상황이 어려워지고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가끔 좋은 결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지!" 얼마나 훌륭한 결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었는데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고 인간관계가 호전되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따집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헌신하고, 이렇게 죽었는데 왜 아직도 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도 따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렇게 하느냐!"고 합니다.

죽은 줄 알았더니 벌써 살아나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한 것입니다. 죽은 곳에서는 많은 열매가 맺어지지만 죽은 체 한 곳에서는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선거철에 입후보자들은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다 죽은 사람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어느새 허리가 펴지고 머리가 뻣뻣하게 됩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정치꾼과 같은 신앙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의 헌신이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성도가 축복 받기 위한 필수 요소는 바로 십자가의 헌신입니다. 학생이 노력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선수가 연습하지 않고 승리를 기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축복도 우리를 회피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으면 기꺼이 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기꺼이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교회의 어떤 필요가 생각나거든 "하나님! 이 필요를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 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하고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반드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지 6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교회 종탑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돕는 데에는 많은 지출을 하면서 정작 우리 교회 종탑을 올릴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역설적인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역설적 신앙을 기뻐하시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은 "주님의 교회에 십자가 종탑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과 관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여러분들 중의 한 사람이라도 종탑 세우는 일에 작은 헌신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항상 교회의 필요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여드리는 교회에 대한 관심과 조용한 헌신을 무엇보다 기쁘게 보시고 앞날의 축복의 씨앗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3. 슬픔을 기쁨으로 만들어 가며 사십시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라헬은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어갈 때에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베노니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일찍 죽는 사람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 어린 자식을 두고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죽어 가는 라헬의 입장에서는 베노니라는 말이 나올만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곧 그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바꿔 부릅니다(18절). 베냐민이란 '기쁨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극한 슬픔 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겠다는 야곱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처럼 극한 슬픔에서도 기쁨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만약 '슬픈 자식'이란 뜻의 베노니라고 계속 부르면 그 자식이 앞으로 어떻게 기쁜 자식이 되겠습니까? 말이 중요합니다.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면 어느새 불행한 삶이 나를 휘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면 어느새 행복한 삶이 나를 휘감게 될 것입니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짓습니다. 그처럼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인생의 집을 그 말한 대로 짓게 될 것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요새 신혼부부 중에 이혼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호칭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새 신혼부부 사이에서 남편을 부르는 호칭 제 1위가 오빠라고 합니다. 그렇게 오빠라고 부르니까 부부가 아닌 오빠로 알고 헤어지는 것도 쉽게 한다고 합니다. 그처럼 말은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말은 나를 나타내고, 나를 빚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끔 자녀가 무서운 꿈을 꾸고, 공포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부모가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합니까? "얘야! 나도 가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좋은 일이 꼭 하나 생겼단다." 그 말 한 마디가 자녀의 공포와 두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 아버지는 어떤 예언자보다도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어떤 축구팀이 중요한 축구시합을 하러 가는데 그 선수단 차량을 장의사 차량이 막고 있었습니다. 한 선수가 말했습니다. "더럽게 재수 없네!" 그 말을 듣고 다른 선수들도 재수 없다고 생각했고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코치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내가 선수 시절에 장의사 차량을 보면 꼭 이겼어!" 그 말 한 마디가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었습니다. 그 코치는 어떤 예언자보다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그런 예언자가 되시고, 교회에서 그런 예언자가 되십시오. "걱정하지 말라! 이 문제는 축복의 기회야!" 이처럼 말과 생각과 태도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연약하지만 생각 하나만 잘 하면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란 '살 생'자와 '깨달을 각'자의 합성어입니다. 즉 '생명이 있는 자의 깨달음'이 바로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내용과 질을 결정합니다.

여러분! 말과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십시오. 문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 속에서 진리를 얻습니다. 쾌락과 함께 걸어보십시오. 인생에서 얻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혜도 얻지 못하고, 건강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제와 함께 걸어보십시오. 그러면 수많은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고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 고난 중에 기억해야 할 3가지 사실 >

야곱은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죽는 상황에서도 기쁨을 노래하며 살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과 천국의 소망이 더욱 확실한 우리 신약 성도들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노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려면 고난 당할 때마다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면 이 3가지 사실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그 고난의 자취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의 고난을 따라가면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반드시 회복의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 고난 중에 하나님이 더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그 아이를 건강한 아이보다 더 생각하게 됩니다. 목회자들은 어려움을 당한 성도에게 항상 마음이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는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오십니다. 그때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반드시 주님의 신비한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고난을 통해서 더 성숙해지고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피하면 안됩니다. 돈을 주고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구본을 보십시오. 강한 사람은 대개 북쪽 사람들입니다. 장수하는 사람들도 대개 북쪽 사람들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사람들은 대개 북쪽 사람들입니다. 적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다 열악한 편입니다. 평균수명도 그들은 40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뜻한 환경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 연단은 헬라어로 '도키메'라고 하는데, 그 뜻은 '성품, 사람됨'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성숙한 인격'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을 만나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생겼을 때 더욱 감사하고 헌신하십시오. 문제는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당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문제는 낙심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승리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살펴보십시오. 어느 해에도 문제가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해마다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는 불안했고, 경제는 어려웠고, 곳곳에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문제를 뚫고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처럼 '문제가 없는 것'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믿음을 잃지 않은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지난 5년간 분당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큰 교회는 되지 못했지만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백혈병 걸린 성도도 있었지만 능히 극복하고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외에 한번도 우리 교인 중에 큰 사고나 사고사 당한 일이 없었습니다. 큰 성취는 못했어도 우리가 찾기만 한다면 감사한 일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충성과 헌신을 새롭게 다짐할 때 우리의 삶의 무게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기쁨을 찾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항상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과 기쁨입니다. 이상하고 특이한 신앙행위가 있어야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기쁨과 생기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을 보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게 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임종을 하면서 찬송가 78장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절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얼마나 아름다운 임종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힘든 일 중에서도 주님께서 내게 펼치신 세계를 노래하고, 나를 향한 주님의 섭리를 노래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수준은 봉사로, 헌금으로, 기도로, 금식으로 잘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리는 기쁨으로 가장 잘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항상 믿음 안에서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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