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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 사랑 표현하기 (호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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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호세아 6:6
제목  예배, 사랑 표현하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울산교회는 “당신이 함께 하면 꿈이 이루어집니다.”라는 표어를 정해서 예배 모범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벌써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예배, 다시 생각하기”라는 제목으로 예배에 관해서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배의 요소 가운데 한 부분만 살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일 설교는 “예배 다시 생각하기”라는 제목보다 오히려 “예배, 관심 집중하기”로 바꾸는 것이 적합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특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나오신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 관심을 쏟기로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여러분 나름의 영성의 오솔길을 따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두 번째로 예배에 관해서 다시 살필 주제는 “예배, 사랑 표현하기”입니다. 예배란 우리의 애정을 하나님께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진정한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분들은 보다 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질 상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을 수 있습니다.

뭐든 표현하기 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쪽이 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지만 표현하면 괜히 어색하고 닭살 돋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해요”라는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하고 훈련이 더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맨 처음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주 긴장된 순간이기도 합니다. 괜히 가슴이 뛰고 손에 땀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받아드릴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입니다. 뭐라고 여러분에게 대답할까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위험부담을 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 놓으십시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데에는 그런 부담을 가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랑고백에 하나님이 뭐라고 나오실지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먼저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수없이 반복적으로 “내가 너를 사랑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기도 전부터 여러분을 돌봐주셨습니다. 거듭거듭 사랑을 고백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고백하는 부담을 안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0, 19)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란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진노를 누그려 트려야 하는 대상일 수 있습니다. 정말 벗어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노가 무서워 달래야만 하는 성가신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께 여지껏 한 번이라도 “하나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으로부터 이 고백을 기다리십니다.

호세아 6장 6절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개역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나 표준새번역은 더 실감나게 번역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한다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에 있어서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사랑을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맨 먼저 이런 기도를 조용히 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가 맞도록 다른 아무 일에 조금도 진보가 없어도 하나님을 조금 더 알게 하옵시고 하나님을 조금 더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다면 하루가 다 지나간 후에 하루를 돌아보면 그날이 억망이라는 느낌이 들고 여러분의 하루 계획이 산산조각이 나도 그 날 하루 하나님을 조금 더 알게 되고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면 결코 그날은 실패한 날이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그날은 성공한 날입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심장 박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무엇보다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하루 동안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루에 스물네 가지 큰일들을 처리해고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놀라운 목표를 이루어도 하나님을 조금 더 알고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다면 그날은 실로 실패한 하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할 일 목록을 하나씩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이 땅에 두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께 사랑을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첫 번째 이유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하나님께 두고 여러분의 애정을 하나님께 나타내므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 대해서 매우 살 깊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 바빠서 여러분까지 관심을 쓰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름도 모르실 것이라고요? 아닙니다. 여름 다 지나가도록 전화도 한 번 없던 여러분의 담임 목사와는 다릅니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털까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서 눈을 떼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의 생의 모든 영역을 친히 아십니다. 너무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여러분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에게는 너무 바빠서 관심을 표할 시간이 없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매우 특별하게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이렇게 성경은 표현합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다른 여자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질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의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 가면 나는 질투합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기 34장 14절을 이렇게 번역하면 뜻이 통합니다. “그는 너와의 관계에 대해서 뜨겁게 연모하는 하나님이시다”.(출 34:14) 하나님은 여러분을 뜨겁게 연모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과의 관계를 가지기를 열정적으로 사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나를 알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만들었다 너는 왜 나를 이렇게 무시하고 살아가니?”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사랑에 빠지신 분이십니다. 

저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어느 날 아내에게 말한다고 칩시다. “여기 당신을 위해 꽃다발을 하나 가져왔소, 내가 갑작스럽게 꽃다발을 준비한데는 이유가 있소, 첫째는 내가 당신 남편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결혼기념일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남편들은 이런 날 꽃다발을 주는 법이기 때문이요, 그래서 꽃다발을 가져왔소.”

어떨까요? 제 아내 표정이. 본래 저보다 훨씬 매사에 이유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제 논리적인 설명 앞에 감동할까요? 그럴 리 만무합니다. 왜요? 제 아내가 제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의무적으로 꽃다발을 가지고 나타나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가지고 행동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인다고 칩시다. “하나님, 제가 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의 백성이거든요, 주일 출석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기본임무 아닙니까? 전 의무를 다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이제 됐지예?”

하나님이 만족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의무수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종교적 의무사항으로 여기에 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석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뵙고 싶은 심정으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연보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의무사항으로 헌금을 드리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의 표현으로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마음을 다해 우릴 사랑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열정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애정을 가지고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정열적으로 이 관계를 갖기를 추구하십니다. 예배시간은 종교적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제도나 규정이 아닙니다. 사랑의 만남이요 기다리던 미팅입니다. 첫 시간부터 하품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데이트 중엔 졸지도 않습니다. 코까지 고는 상대와 계속 만날 연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이것 역시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직 한 번도 하나님께 사랑을 나타내 본적이 없다면 어떻게 시작할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감사의 주제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청명한 가을 하늘을 주셔셔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낙엽을 때를 따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예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잠이 깰 수 있고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아침에도 먹을 것 주셔서 감사드려요” 

여러분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처럼 넓고 온화한 공간에서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청정에너지 전기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긴 장의자에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앉아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둘러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감사의 제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좋은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감사드리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음악과 노래도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도 있습니다. 예배하면 찬양을 떠올립니다만 찬양만이 예배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음치 수준의 사람에게 찬양으로 예배하도록 요구하지 말고 노래말고도 예배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애정을 나타낼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하게 만드셨고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경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여러분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양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결혼서약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과 아내의 임무를 따라 “예”라고 서약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의 삶을 상대방에게 드리겠다는 서약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신을 아내에게 남편에게 양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에게 헌신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왜 그렇게 약속합니까?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는 헌신은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 없이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도 독생자를 주는데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 여러분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내 마음을 드립니다. 내 영혼을 드립니다. 내 몸을 드립니다. 내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고 고백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길은 이와 같이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롬 6:13 표준새번역)

사랑은 언제나 반응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돌려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모든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치기를 요구하십니다.

무엇이 이 일을 막고 있습니까? 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전부를 드리는 일을 주저하십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면 두려움입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꽁무니를 빼고 망설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전부 바치도록 요구하는 하나님 앞에서 닭발을 지깁니다.

“만약 내가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면 나는 완전히 광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텔레비전에서 비춰주는 광신자들 가운데 속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예수,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부류가 되는 것이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바보로 만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답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길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내향적으로, 다른 사람은 외향적으로, 어떤 사람은 언제나 똑같이 행동하도록 다른 사람은 다양한 변화를 즐기도록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지금의 여러분 그대로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광신자로 만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조용한 여러분을 열광적인 사람으로 바꾸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열심당원으로 변화시키길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이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여러분의 인생에 모시기까지는 참으로 여러분다울 수 없습니다. 단지 존재할 뿐이지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으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낼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더 정상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될 것입니다. 결코 엉뚱하고 별스런 존재가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해지면 사람이 성숙해집니다. 믿음이 좋아지면 사람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막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험한 생을 살던 사람도 순탄한 생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공격적인 삶을 살다가도 유순한 모습을 회복합니다. 한 번만 교회에 가기로 한 사람도 순간에 바뀌면 새로워집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죽으신 그 사랑에 접하면 삶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사는 것은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 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을 접하게 되면 헌신적인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가장 가능성이 낮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헌신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우리 영혼의 연인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을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따분한 삶은 감동 넘치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자신의 전부를 드릴만한 대상을 찾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말씀 맺습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새로운 연인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이 사랑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릴 먼저 사랑했기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크신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기쁨으로 반응합니다. 우릴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 십자가에 죽기까지 모질게 사랑하신 주님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변할 것입니다.

여기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분들은 바로 그 사랑에 감격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삶 전부를 주님의 손에 내어드린 사람들입니다. 예배는 나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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