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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결산 방식 /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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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결산 방식 

(마 25:14) <달란트 비유> "또 하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마 25: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마 25: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 25: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다.
(마 25: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마 25: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마 25: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
(마 25: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마 25: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
(마 25: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마 25: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 25: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마 25: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마 25:29)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마 25: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볼일을 본다고 나갔다가 들어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집 화장실은 편하기두 하지. 문만 열면 불이 켜지니 말야!" 그러자 아내가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당신 또 냉장고에다 쉬했지 !!!!"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 했던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소위  탈란트의 비유로 널리 알려진 얘기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 주인이 먼  나라로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섯  달란트 남겼던 사람, 또 두  달란트를 가지고 두 달란트를 남겼던 사람에게 칭찬을 하였습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너희들에게 맡기마.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  계절, 우리는 일년 동안에 우리들의 섬김을, 우리들의 봉사를, 우리들의 사역을, 사명을 결산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한해동안 우리의 삶의 자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의 수고와 봉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참되고 충성 되었다고  결산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각자에게는 주어진 할 일들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1. 타국으로 떠나는 주인(14-15)

  예수님 당시 분봉왕들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왕위를  받기 위해 로마를 다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을 자신으로 집에 남아있는 종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과 성도들로 비유하시며 자신의 부재중에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의 몸인 교회를 부탁하십니다.  복음 전도 사역을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맡기시고 부탁하십니다. 그 외에 여러 직분과 은사, 기회와 재물 등을 맡기시고 부탁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일거리를 맡기는 자요, 그의 종들은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인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개개인의 능력에 맞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달란트를 종에게 맡깁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달란트를 얼마나 받았느냐 하는 문제로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해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길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얼마를 맡았느냐를 묻지않고 얼마나 남겼느냐를 묻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맡았느냐 그것은  절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맡은  것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  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자와는 다르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뭐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죠. 그러나 본문을 푸는  열쇠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본문에서  19절의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자 주인이 돌아오는데 성경은 오랜  후에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한 달란트 맡았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주인이 떠나간 후에  오랫 동안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마도  주인은 영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주님의 재림을 믿는 다고 쉽게 우리는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정말 주님이  오실 것을, 다시 역사와 시간 속에 그 분이 돌아오신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십니까? 그  분이 다시  돌아오실 것이고 따라서  내가 살아왔던 삶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서 반드시 결산하는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부지런히 준비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오셔서 결산하자고 하십니다. "네게 나의 시간을 맡겨 주었는데 어떻게 썼느냐?"  "네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었는데 어떻게 섬겼느냐?"  "네게 나의 사람을 맡겨 주었는데 그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 이렇게 예수님께서  물으시며 결산하자고 하실 때 보여 드릴 자료가 준비되었습니까?  "여기에 이를 남긴 증거가 있습니다." 하고 뭔가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그 날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께 자랑스럽게 보여 드릴 것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갑절의 이익을 남긴 종(16-23)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맡겨진  달란트에 대한 결산을 했습니다. 맡겨 준 것에 대한 셈을 하였습니다. 주인은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게다가 아마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 쫀쫀하게 "옛날에 내가 떠나면서 맡겨준 재물을 어떻게 했느냐? 모두 회계보고를 하여라!" 하는 것입니까?  주인은 종들의 충성도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있었습니다.

층성된 종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충성된 종은 그것으로 '바로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이 잇으니까, 좀 놀다가 천천히 하지 하고 미루었다면 그는 충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인이 그에게 큰 돈을 맡겨 줄 때는 가만히 가지고만 있으라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부지런히 장사를 하여 재산을 불려 놓으라는 뜻임을 알고 즉각 시행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속삭입니다. '그래, 기도생활에 힘써라. 성경도 많이 읽어라.  전도도 열심히 해야지, 교회 봉사도 잘 하고 성경공부도 해라. 헌금도 많이 드리고 새벽기도도 시작해라.  그러나 바쁠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바쁜 일이 많으니까 나중에 천천히 해라.'  여러분 금년 연초에 계획을 세우고는 미루다가 못한 것은 없습니까?  은혜받고 감동이 와서 그 좋은 계획을 세우고 왜 못하였습니까? 바로 가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바로 가서 실행을 해야 합니다. 사명을 깨달았으면 곧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뭔가를 맡겨 주셨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면 바로 가서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충성된 종은 주인을 위하여 갑절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사를 하여 이를 남기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인을 위하여 이를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한 해를 살면서 주님께 어떤 이익을 남기셨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한 것 말고 주님의 유익을 위해 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직분을 이용하여, 재물을 이용하여, 기회를 이용하여, 재능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유익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먼저 자기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연초에 다섯 사람을 맡았는데 다섯 사람이 더 늘었으면 아주 잘 한 것입니다. 우리가 두 사람을 맡았는데 두 사람이 새로 늘었으면 참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그대로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고하고 봉사함으로 교회에 뭔가 이를 끼쳤으면 참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해를 끼쳤든지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면 칭찬 들을 수 없습니다.

셋째, 충성된 종은 작은 일에  층성했습니다.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큰 일이면 충성을 다 합니다. 그러나 작게 여기고 시시하게 여기고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맡은 사람이 사장이나 유명인 같이 큰 사람이면 정성을 다해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작은 사람이면 대충 대하는 이가 많습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칸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 천체물리학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몇 주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cancel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죠. 그래서  그 겨울동안,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눈보라, 차가운 사나운 바람을 헤치고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동안 한번도  빠짐이 없이 그는 계속적으로 이 겨울동안 강의를, 두 학생을  상대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년이 흘러갑니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라는 분이고 그리고 또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동양계 두 사람을 앞에 놓고 열정을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가 노벨상으로 열매가 맺혀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주신 단 한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쏟아 붓는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충성된  종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주인되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한 번 이렇게 말해 보세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여러분이 모두 주님께 그런 칭찬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에서 가서는 물론 이 한해를 마치고 결산하며 주님께 최고의 칭찬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충성된 사람을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크게 칭찬하십니다. 주님께 칭찬듣는 것보다 더 신나고 행복한 일이 또 있습니까?

둘째는 더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가 충성하여 남긴 이를 빼앗지 않으시고 오히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는 가서 편히 쉬어라 특별 휴가를 주마.' 하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것으로 맡겨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절대 신뢰한다는 말슴입니다. 다섯 달란트가 작은 것처럼 느껴질 크고 많은 것을 안심하고 맡겨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안에서 직분이 크거나 많으면 일이 더 많습니다. 책임도 크고, 더 바쁘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는 큰 축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뢰의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신임을 받고 어려운 일, 중요한 일을 많이 맡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주님의 즐거움에 초대된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들이 주인의 칭찬 뿐 아니라 즐거운 잔치에 초대받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황제에게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몹시 기뻣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런 즐겁고 영광스런 자리에 시중드는 종으로가 아닌 당당한 내빈으로 참석하게 되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주인은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이 앞으로 정치를 펼칠 때 나를 도울 왼 팔과 오른 팔 같은 사람이오."하고 소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충성된 청지기가 되면 하나님의 칭찬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받으며 주님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3. 게으르고 무익한 종(24-30)

갑절의 열매를  남긴 종들처럼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열매를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땅을 파고 묻어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 어리석은 행동은 주인의 참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한 것으로 결국에는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는 후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백금율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황금율이라는 것은 들어봤지만 백금율은 못들어 보았지요?  황금율은 무엇입니까?  대접을 받고저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것입니다.  내가 칭찬 받기를 원하면 남을 칭찬하라, 또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지 않기를 바라거든 너도 남을 비난하지 말아, 이것이 황금율입니다.

그러나 이 백금율이란 조금 다릅니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요?  기본적으로 사람의 욕구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맛이 다 다르고 취미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도 이상도 다르기 때문에 부득불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그를 대하라는 것이 백금율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자기 성향에서 남을 대하지 말고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 수준과 그 입장, 그 욕구를 따라서 그 방법대로 내가 그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기대하는 것과 상관없이 내 방식으로 주인을 이해하고 일처리를 해 놓고는 잘 했다고 떠들면 안됩니다. 주인이 그 큰 금을 맡길 때는 이거 도둑맞지 않게 잘 지켜라 한 것이 아닙니다. 가지고 장사해서 이를 많이 남겨라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달란트 가진 이는 공연히 관리하기도 복잡하게 이런 걸 왜 맡겨 하고 땅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제 생각대로 믿고는 잘 믿었다고 떠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사는 삶만이 칭찬들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과 제 기준으로 멋대로 판단하고 엉뚱하게 살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 한 달란트를 도로 가지고 왔는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합니다.  게으르다는 말은 인정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악하다는 말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본전 잘라먹는 사람도 많은데, 가지고 도망가지 않았는데 왜 주인은 그를 악하다고 했을까요?  주인의 의도대로 하지 않고 제 맘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한 달란트를 가져왔던 사람이  왜 땅에 묻어 놓았을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면서 내게는 왜 한 달란트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안들었던 것입니다.  시기, 질투 때문에 자기 판단까지 흐려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는가?  다른 사람이 공장을 세우는데 내가 못 세울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이 출세하는데 나라고 출세 못하란 법 있는가? 그래서 무리수를 씁니다. 알고보면 모든 망조가 시기 질투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지방 시골 도시에 목사님 한  분이 교회에  부임을 했는데 부임하고 보니까 그 교회 안에 아주 깡패 같은 형제가  있어요.. 교회는 나와요. 동네에선 아주 불량하고 사람들 못  살게 굴고  빼앗고 행패도 부리고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오는 그런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이 죽었어요.  동생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님 장례식을 잘 치뤄 주셔 야죠. 목사님 앞으로  여기  새 교회도 지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수표를 하나 주면서 "여기에 목사님 필요한 만큼 제가 다 도와 드릴께요. 그 대신 저의 형님 장례식을 잘  지내주시기 바랍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목사님 장례식 주례사를  할 때  저의 형님에 대한 얘기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꼭  이 말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형이 좀 성자 같은 사람이었다고." 목사님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해 보죠." 자, 드디어 장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동네 유명한 깡패가 죽었으니까 동네 사람 다 왔어요. 그래서 목사님의 그  장례 주례사가 시작됩니다.  한참 크라이맥스에서 형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이 고인은 우리 동네에서  유명했던 분입니다. 불행히도  그 분은  동네 많은 사람 가슴 속에 상처를 주었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커다란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던 사람입니다. 참  많이 인생을 잘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고인은  살아있는 형제에게 비교하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성자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복잡해 집니다.

오늘 이 사람이 한 달란트를 받았으면 한 달란트는 소중한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약 3억원이상의 금액입니다.  얼마를 받았든지 얼마를 가졌든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적당히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게 주신 바 물질과 건강과 지혜와 형편과 현실이 하나님이 내게 적당하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내게 평등하게 역사하셨다, 그렇게 느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참 마음에 안들어.  왜 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나에게는 한 달란트인가 그래서 불만이 솟아납니까?  그래서 문제가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중한 한 달란트의 가치를 땅에 묻어두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는 주인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왜 나를 작게 평가했느냐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주신 재주를 내게는 안주셨는가?  다른 사람에게 주신 건강을 내게는 왜 안주시는가?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맙시다.  얼마를 받았든지 그 받은 바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일을 안하게 된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곳에거 거두고 헤치지 않은 곳에서 모으는 줄 알았으므로 내가 땅에 묻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  책임을 주인에게 돌립니다.  '내가 일 안한 것은 주인 때문이요, 내가 하고싶지 않은 것도 주인때문이요, 주인이 인색한 사람이라 영 마음에 안들어.'  그래서 도로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을 폭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주인을 아주 나쁜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탕자를 보십시오.  탕자는 밖에 나가서 허랑방탕하면서 다 날려버리고 얼마든지 돌아오고 싶었겠지만 못돌아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엄하게 나를 책망하실까?  그래서 돈을 좀 벌어가지고야 가지 그냥 갈 수 없다.  아마도 오랫동안 고생한 것 같습니다.  정 죽을 지경이 되니 손을 들고 돌아왔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아버지일 수가 없습니다.  "죽었다 살았고 잃었다 얻었노라."  아들을 위해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 마음속에 생각이 많아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무서운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자비로우신 아버지입니다.  이 좋은 아버지의 품을 왜 내가 떠났던고?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꾸어버리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였습니다.

  여러분 혹 남편을 무서워합니까?  그러면 남편을 나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내를 무서워하십니까?  그러면 아내를 아주 나쁜 사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그러지 않을 것이라도 설사 내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하며 용서해 주리라고 믿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어떻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벌벌 떨다보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너그러운 분이요 자비로우신 분이라서 얼마든지 내 실수가 있더라도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좋은 부모님을 만들어야지 '우리 부모님께 맞아 죽는다.'  세상에 자식 때려죽이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런고로 너는 악한 종이라고 그랬습니다.  어째서 나를 이렇게 나쁜 사람을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 네게 그렇게 나쁘게 했더냐?  내가 언제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더냐?  "너는 악하다" 그래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실패가 두렵고 징벌이 두렵고 책망이 두려워서 벌벌떨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마침내 가지고 있던 것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종이 나아가서 한 달란트 가지고 나갔다가 그만 홀랑 날리고 빈 손으로 와서 꿇어 엎드리고 "주인이여, 용서하소서.  제가 이렇게 실수했습니다" 했다면 주인은 뭐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주인은 다시 두 달란트를 주면서 다시 하라고 다시 기회를 주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한해가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인생을 결산할  때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을까요?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너는 작은  일에 충성구나 큰 즐거움의 잔치에 참여하려무나!"  여러분 모두 지금부터라도 충성을 다하여 이 한 해가 다갈 때 하나님께 칭찬듣고 더 많은 것을 위탁받으며 큰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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