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과 불 / 약 3:1-6

  • 잡초 잡초
  • 322
  • 0

첨부 1




제목 : 야고보서 강해(3) - 말과 불 
본문 : 야고보서 3:1-6

야고보서 3장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짓는 언어의 죄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간에
"말"(言語)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주제요 또 중요한 주제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말이라는 것이 참으로 길들이기가 쉽지 않기에 어렵다는 것이요
중요하다는 것은 사람은 자신의 말에 의해 판단되고 끌려다니기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쉽게 짓는 죄도 말로 짓는 죄요, 또 가장 크게 짓는 죄도 말로 짓는 죄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창세기에 보면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좋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이 말이 한 목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말에 실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6-17)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이렇게 말이 변합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꼬드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스스로 마음에 동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뱀이 잽싸게 알아차리고 물어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렇게 말을 바꾼 것입니까? 그것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주신 원칙 따라 살았고, 받은 말씀대로 살았으면 말에 실수가 없었을 것을
살다보니까 마음 속에서 조그마한 욕심이 슬슬 올라와
그만 원칙도 흔들리고 말씀도 흔들려서 말에 실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2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말에 대하여 야고보서 전체를 통하여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말을 더디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말을 할 때 더듬거리며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 템포 늦추어서 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고 그래서 또 빠릅니까?
그렇다 보니 말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말하고...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듣고...
이것이 현대인입니다.
 
완전히 속사포입니다. 따따따따....

그렇다보니 말에 실수가 참 많습니다. 말바꾸기도 잘합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끼어 맞추기도 잘합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둘째로 이렇게 말씀합니다(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혀를 재갈먹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자기 혀를 재갈 먹여야 하는 것입니까?
재갈먹이면 삶이 힘들고 불편한데.. 다 알면서도 재갈먹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속이거나 속는 일이 있게 마련인데
이 현상을 관찰해 보면 남을 속이는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는
합리화.. 이런 변명 저런 변명... 그러면서 자기를 속이는 일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말에 실수가 있게 되고.. 자기가 한 말을 뒤집기도 하고...
심지어 "그런 말 제가 언제 했습니까?" 하면서 딱 잡아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혀에 재갈 물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 바꾸기... 말 뒤집기 하는 사람들이.. 소위 세상 사람들 즉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열심히 다니고 직분도 받아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경건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보면 종종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에... 더더욱
혀에 재갈 물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생각할 것입니다.

아, 그러면 말 안하고 살면 되지 않나!
입 꾹 다물고 살고, 어느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고 살면 말실수라는 것은 없을테니
경건은 보장되겠지....

그렇습니까? 말 안하고 살고... 입 꾹 다물고 살면 경건이 되는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 안하고 입 꾹 다물고 있으면 겉으로 보기엔 군자(君子)처럼 보일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만일 기본이 안되어 있으면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은 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말 많이 하는 것 보다 말 적게 하는 것이 낫고, 가려서 하는 것이 낫지만
말 안하고 산다고 해서 경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입이 경건한 입이 되고 그 말이 경건한 말이 되는 것입니까?

원리는 간단합니다.
감사와 찬양과 기도, 말씀 증거와 복음 전파....
이러한데 입을 잘 사용하고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입과 말은 경건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이러한 말씀입니다(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인간은 마지막 날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므로
앞으로 심판 받을 자로서, 심판을 염두에 두고 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4장 28절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말의 원리와 말의 중요성 그리고 말의 영향력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입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잘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그럴 때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가?

이점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혀를 통제하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불이다"

6절 말씀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혀를 제어하지 못하여 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을 때 가져다 주는 폐혜는 이처럼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도 불사르고...
결국 그 혀도 지옥 불에서 불살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13-14에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죄 아래 살아가면서 자기의 혀를 재갈먹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 생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입에 재갈 물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목구멍은
첫째 열린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덤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시체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열린 무덤에서 무엇이 밖으로 새어 나오겠습니까?

당연히 시체 썩는 냄새가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입에 재갈 먹이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은
입만 열면 마치 시체 썩는 듯한 말만 쏟아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입에 재갈 물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혀는
남을 속이는 혀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자기 입에 재갈 물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입술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독사의 독이 있다는 것입니다.

독사의 독,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람이 독사에게 물리면 독사의 독에 의하여 죽게 되는데
그러한 남을 죽이는 독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자기 입에 재갈 물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입 안을 보면
그러한 독이, 독사의 독과 같은 것이 얼마만큼 있는가 하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절입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길들이기 힘든 여러 종류의 짐승이나 새
심지어 벌레나 바다의 해물까지도 다 길들이며 살아가면서
자기의 혀는 왜 공들여 길들이지 못하는가...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적한 것이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9-12절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못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 단물과 쓴물을 낸다는 것입니다.

사실 찬송도 말로 하는 것이고 저주도 말로 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혀를 잘 제어해야만 하는데 여기에 실패할 경우
이런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묻습니다. 13절 상반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과연 누가 지혜로운 자이며 누가 총명한 자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자가 지혜로운 자이며
경험을 많이 한 자가 총명한 자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다 위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는 은혜로 주셔야 하고 아래서는 기도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식을 얻으려면 학교로 가라. 지혜를 얻으려면 교회로 가라.
지식이 지혜가 아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지혜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4-18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는 지혜
즉 참 지혜와 거짓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이미 1장에서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마는
1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장 17절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길들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거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혀 제어할 수 있는 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대학을 나왔다고 박사 학위가 있다고 지혜로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입만 열면 열린 무덤같이 썩은 냄새만 나는 사람도 있고
거짓말 하거나 남을 중상 모략 하거나
교묘하게 탈세하고 남의 돈을 등쳐먹으며
앞에서 이 말 하고 뒤에서 저 말 하며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그런 사람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믿음 안에서 항상 기도하며 살면서
자신의 마음과 혀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입만 열면 주님을 찬송하고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며
대인관계 속에서는 남을 격려하고 세워주며
비록 자기가 한 말이나 약속은 손해가 나도 끝까지 지킬 줄 알며
앞에서 이 말 하고 뒤에서 저 말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하여 가정에는 화평을 교회에는 덕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약 시편 141편 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람에게 죄가 주로 들어오고 주로 나가는.. 주된 통로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모든 것이... 생각이나 눈이나 입이나 손이나 발
모든 것이 다 죄와 연결될 수 있지만
주로 죄와 관계되어 그 죄가 들어오고 나가는 주된 통로가 있는데
그 주된 통로는 "눈과 입"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가 주로 들어오는 통로는 눈이요
죄가 주로 나가는 통로는 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 사도는 바로 이 부분
죄가 주로 나가는 부분인 입과 말에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입을 조심하고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기 입에 재갈물리는 일에 실패하여 말에 실수가 많게 되면
어떤 지경에 떨어지게 되는가?
15절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언어생활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말은 하되 하나님의 말씀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라 세상 방식대로 말하며 사는 것을 뜻하고
정욕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말은 하되 그리스도인 답게
성령의 소욕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말하며 사는 것을 뜻하고
마귀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말은 하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마귀의 뜻을 따라 말하며 사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몸이나 삶,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혀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열면 말 같은 말을 하며 살아야지 불을 내 뿜으면서 살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 지혜를 위로부터 얻어 살며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말에 실수가 없이 살도록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는 삶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