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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합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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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하박국 3:2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우리는 개혁을 이야기합니다.
부흥을 이야기 합니다.
갱신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들입니다.
진정한 개혁과 갱신과 부흥과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고집이나 생각을 이루는 것이 개혁이 아닙니다.
자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순종해야 합니다.
본래 개혁교회 성도인 우리들이 말하는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하박국의 기도는 항의와 불만으로 시작됩니다(합1:-2:).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다 해도 그렇지 우리의 채찍이 하필 갈대아 사람들입니까?”
본래 갈대아 지방은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우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박국의 항의와 불만은 오히려 솔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망루 위에 서게 됩니다(합21: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박국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 말씀에 감격합니다.
기도하는 자의 자세는 <자기 고집>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의인은 오직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2:4)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2:20)

하박국은 감격했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지만 순종하며 감격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솔직한 기도입니다.
하박국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로 하박국의 솔직한 직고를 보신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이제 부탁드리는 것은 솔직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들 자신이 변화되고 달라지고 갱신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부흥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가식을 버려야 합니다.
외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가집시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찌니라.”

우리의 변화는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럴 때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그 변화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박국을 놀라게 하고 감격하게 하였던 바로 그 말씀이
이번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도 임하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성도들 간에
이웃 교회와 성도들에게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놀라운 소문을 듣게 하는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 시기오놋의 감격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응답의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이 더 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란 말은
<충만 위에 충만함>이라는 말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말은 
성장이나 진보나 발전이 바로 체험한 자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이 수년 내에 부흥케 될 하나님의 은혜가 이번 기도회를 통하여 시작되게 합시다.
기도의 맛을, 응답의 맛을, 말씀의 맛을, 예배의 기쁨을 맛보는 기회가 되게 합시다.

한국교회는 이미 이 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이라는 큰 경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의 경험이 바로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의 도화선입니다.
물론 대부흥운동의 기원은 1903년 함남 원산에서 있었던 선교사 기도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원산 바닷가에서 감리교 선교사인 스웨덴목사 프란슨이 인도하는 기도회에 이어
감리교와 장로교, 침례교의 목사들이 함께 창천교회에서 연합기도회로 모였습니다.
강원도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감리회 소속의 하디(R.A.Hardie)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 목사님이 자신의 무능함을 통회자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1904년에도 역시 원산에서 사경회가 열렸고,
장로교선교사 로브(A.F.Robb)는 한국인 전계은과 함께 원산거리를 누비며
가슴을 치면서 통회 자복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평양에서도 1906년 다시 하디를 초청하여 장.감 연합의 기도회를 1주일간 계속하였고,
서울에서도 방한 중이던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존슨목사를 강사로 집회를 하였습니다.
같은 해 이 분이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집회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헌신자 결단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손을 들고 헌신자로 일어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길선주라는 장로였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모두가 기도회로!
통회 자복하는 시간으로!
모두가 헌신의 결단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내에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특별 새벽기도회가 단순히 한두 주일로 끝나는 기도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1903년에 시작된 원산만의 작은 선교사 기도회는 수년 내에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대부흥 운동의 불길로 이어집니다.
직접적인 대부흥운동의 불길은 1907년 1월 6일부터 있게 된 평안도 남자 도사경회입니다.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사경회의 프로그램은 주로 성경공부였습니다.
그러나 새벽에는 기도회로, 저녁에는 전도 집회로 일정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주된 프로그램은 성경공부입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와 이번 주부터 열리게 되는 특별새벽기도회는 분명히 기도회로 모입니다.
그리고 4월 20일 부활절 같은 날은 <전교인 출석주일>로 분명한 전도대회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1907년 1월 14일 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5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대개 선경공부는 900명 정도가 참여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전도대회에 모인 숫자는 1500명이었습니다(우리교인의 숫자가 가슴을 울렁이게 합니다).
이길함선교사가 예배를 인도하였고, 배위량선교사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당시의 선교사들의 보고와 당시의 기록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흐느낌 소리와 함께’ 평양에 오셨다.”
  “마치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눈사태처럼 우리 위에 무겁게 내렸다.”
  “우리 선교사들은 즉시 강단에 모여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논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각각 갈라져 강단에서 내려와 가장 애통하고 번민하는 사람을 붙잡아주고
    마루에 엎딘 사람을 일으켜 앉혀주면서
    ‘걱정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터진 눈물과 회개의 통성 기도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미 부흥과 성령의 불길은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여사경회로 이어지고
신학교, 중 고등학교, 초등학교로
그리고 전국교회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실제적인 지도자로 이 운동을 이끌고 나간 사람은 길선주 장로였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이 일 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9월에 다른 여섯 분과 함께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따라 합시다.
“우리도 지금 이렇게 시작 합니다”
“주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3.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전쟁,
병명조차 알 수 없는 괴질(‘사스’는 병명이 아닙니다.)
기근과 지진,
굶주림과 고통,
온갖 대형 참사들
정치적인 불안,
경제적인 한파.

여러분! 두렵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우상 숭배, 쾌락과 향락과 음란으로 만연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진노입니다.
만세반석이신 주님께 기도함으로 그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힘입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기도회를 통하여 솔직한 제 심정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저 만큼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나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으니 믿는 저희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 자신들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까 두렵고,
책망 받는 종이 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더욱 두렵고 떨리는 것은 내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형제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주님 맡겨주신 효목중앙교회 성도들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고통당하고,
주님의 영이광 가릴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응답받은 말씀이 <“그루터기”와 같은 신앙으로 이기자>는 것이었습니다.

  1)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주님만 바라봅시다.
  파도도 풍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생명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2) 고난을 참고 인내합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까지 참아야 하는 믿음이 바로 그루터기 신앙입니다.
  3) 겸손해야 합시다.
  낮아져서 순종하는 그루터기가 되어야 합니다.
  잎이, 가지가 줄기가 잘려나가도 순종합니다.

급할 것 없습니다(無急).
아~ 가진 것 없습니다(無取, 취할 것 없음).
그러나 여러분! 손해 볼 것 없습니다(無損).
신학교 때 들었던 중의 3무(三無)가 생각났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 주인이 더 급합니다.
내(종)가 가진 모든 것은 사실 다 주인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손해 보시지 않습니다. 
범브란트(‘하나님의 지하운동’의 저자)의 기도도 생각났습니다.
“응답해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만나주세요! 만나주세요! 기도하던 시절에 이 한 구절을 보고 다짐했던 그 말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만나주시지 않아도 평생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런 각오로 기도하면 오히려
만나주시고,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결코 잠잠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하박국과 같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바로 이 시간, 이 때에 드려야 할 우리의 기도입니다.


정리합시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특별 새벽기도회는 2주일로 끝나는 기도회가 아닙니다.

(1) 하박국과 같은 감격을 체험하시는 복된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고 <받은 자가 더 많은 것을 받게 되는> 부흥의 원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3) 진노 중에도 하나님께 긍휼을 바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북쪽 바벨론의 갈대아 사람(오늘의 이라크지역임을 명심하십시오)이 밀려오는 진노 중에도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기도하던 하박국은
밭에, 외양간에, 포도나무에 아무 얻는 것이 없다하여도
오직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노라고 노래하는 이 간증이
바로 여러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합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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