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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란 무엇인가(3) “노아 시대: 육체를 좋아하고 악한 생각을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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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3) “노아 시대: 육체를 좋아하고 악한 생각을 좋아하고 패괴한 행위를 좋아하고”                          창6:1-12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존재와 운명이 결정됩니다. 돈을 좋아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권력을 좋아하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노름을 좋아하면 건달이 되고 싸우기를 좋아하면 깡패가 되고 여자를 좋아하면 난봉꾼이 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는 것을 좋아하다가 모두 홍수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좋은 기질 중의 하나는 신앙의 스승들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기질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아플 때는 의사인 어머니보다 제가 좋아하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모셔 다 기도를 받곤 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신학생 때는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등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지금도 신앙의 선배들과 동료들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방지일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박종렬 목사님, 손봉호 교수님, 김상복 목사님, 최성규 목사님, 이중표 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이동휘 목사님, 권성수 목사님, 손영삼 선교사님 등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과 어린이들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어느 어린이는 제가 외국에 가고 없을 때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성도는 목사님이 선교대회에 가고 없을 때 매일매일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고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을 좋아하고 교회를 좋아하고 선한 일을 좋아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일들을 좋아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 드릴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악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오늘 아침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 번째 설교를 합니다. 세 번째 죄의 이야기는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이 죄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범한 죄를 세 가지로 묘사했습니다. 첫째는 육체를 좋아한 것이었고 둘째는 악한 생각을 좋아한 것이었으며 셋째는 패괴한 행위를 좋아한 것이었습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이 범한 죄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사는 사람들이 노아시대 사람들이 범한 죄를 범하다가 그들과 같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론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To err is human 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To forgive is divine 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어제 성도 한 분이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목사님, 제가 잘못 했어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잘못 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제가 목사님을 오해하고 목사님에게 잘못을 했어요”라고 울먹이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사하다고 말을 했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을 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용서함을 받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제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범한 세 가지 죄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육체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그들을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당시 아벨과 셋의 믿음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던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불신앙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던 불신자의 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자들은 육체보다는 성령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성령보다는 육체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의 딸들 즉 육체를 좋아하고 따랐을 뿐 아니라 아예 육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노아는 성령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신을 거두어버리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창6:3). 그리고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까지 하셨다고 말씀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의 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체험한 사람입니다. 물론 다윗도 그와 같은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그 고민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 그리고 바울은 자기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하면서(고전15:31)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못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 그리고 육체의 열매 15가지와 성령의 열매 9가지를 열거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육체를 따르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우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의식주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기 몸과 자기 집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장가가고 시집가서 가정을 이루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노아시대와 같다고 하겠습니다(마24:38). 현대인들은 잘 놀고 많이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시고 취하고 노래하며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술 취함과 오락과 음행과 호색에 빠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는데 현대인들은 돈과 무절제와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금욕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일부터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는 금욕적 삶을 살았습니다. 덜 자고 덜 먹고 덜 쉬는 고달픈 삶을 일부러 살았습니다. 론 사이더 박사는 지금도 씸플 라이프 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손봉호 박사도 이동휘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저 자신부터 육체를 편하게 하고 육체를 즐기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먹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노는 것도 너무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들은 육체를 너무 잘 먹이고 잘 쉬게 하고 너무 즐기게 하고 있습니다. 못박기는커녕 영화의 면류관을 육체에 씌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를 우리가 그대로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악한 생각을 좋아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악한 생각을 좋아해서 악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모보다는 마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신8:2).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고”(렘18:10).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도다”(사29:13).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생각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존재를 만듭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땅을 바라보면서 지옥을 생각하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고 나다나엘 호오톤의 ‘큰 바위 얼굴’에 등장하는 소년 어니스트처럼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하면 큰 바위 얼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마음에 악한 생각만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고 여자를 많이 얻어서 육체의 쾌락을 더 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을 짓밟고서라고 내가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악한 생각들을 마음에 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120여년 동안 항상 방주를 짓는 일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방주를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을 수 있을까 그것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 집 짓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선한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골3:1). 육신의 것을 생각지 말고 영의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려면 경건한 것을 생각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고 정결한 것을 생각하고 사랑할만한 것을 생각하고 칭찬할만한 것을 생각하고 덕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기림이 있는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빌4:8,9). 바울은 항상 교회의 일을 염려하며 교회를 생각했고 예수의 일을 염려하며 예수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생각의 내용과 방향은 어떻습니까? 항상 악한 것, 항상 땅의 것, 항상 육신의 것, 항상 세상의 것, 항상 부끄러운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를 우리가 그대로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생각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셋째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패괴한 행동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6:11). 여기 패괴함이란 타락함 또는 부패함이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All the people on earth had corrupted their ways” 라고 했습니다. 행위가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었다고 했는데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면서 타락한 존재인데 노아시대 사람들은 타락한 존재 그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죄인들에게 붙혀진 새로운 칭호입니다. 새로워진 존재에게 붙혀진 칭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롬4:3). 마찬가지로 노아가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그에게도 의로 여기신바 되어 노아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노아는 이제 새로워진 존재에 따른 새로운 행위를 좋아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행위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20여년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방주를 지으면서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타락한 본래의 그 상태의 행위를 좋아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불신자의 행위를 좋아하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타락한 자들의 패괴한 행위들을 로마서1장에 22가지로 나열했습니다. 그 행위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음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하나님 미워함,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오늘 우리 시대는 각가지 패괴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행위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 범죄, 인신매매, 가정파괴, 유괴살인 등 극도로 패괴한 행위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권고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께서 인자가 임하는 날에도 사람들이 노아시대 사람들이 범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 물론 사람들은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죄사함 받고 날마다 믿음의 생활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도록 날마다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악한 생각을 품지 말고 선한 생각을 품도록 날마다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옛 사람의 타락한 행위를 좋아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 의인의 행위를 좋아하면서 살도록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스승들을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 착한 일들을 좋아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좋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서 힘쓸 때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노아의 길로 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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