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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파와 오메가의 주인 / 왕상 8:22 ~ 23, 29~30, 계 1:4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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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와 오메가의 주인

구약의 말씀: 열왕기상 8:22 ~ 23, 29 ~ 30

  그런 다음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주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들어서 펴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와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주의 종들에게는, 세우신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서신서의 말씀: 요한계시록 1:4 ~ 8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 내려 주시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내려 주시고,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우리로 나라를 이루셔서,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24:50 ~ 5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밖으로 베다니까지 데리고 나가서,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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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여러 가지 역사 중에는, 우리가 가진 사고방식을 바꾸어 민족이란 한계를 넘어서고 교파도 뛰어넘고 지역의 경계도 넘어서 온 세계 만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에 동참하여 우리 교회는 성령강림절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다음주에는 성공회와 우리가 연합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부활절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무엇을 기리는 주일입니까? 오늘 읽은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5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가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축복하시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일은 부활절기에 속하지만 승천하신 일을 기념하는 승천기념주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한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절의 마지막 행위로, 부활의 마지막 마무리로 승천을 이야기합니다. 부활의 마무리 그것이 승천입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가 우리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주님이 되셨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부활의 완성으로 오늘 승천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승천하시는 주님, 그분은 승천하시는 그 모습으로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부활과 승천, 이것을 접하고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크리스마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자,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 예수야말로 인간의 몸을 입은 사람들 중에 진실로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참 사람인 예수! 성탄으로 시작된 인간 예수의 역사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역사가 어찌 인간의 역사만이겠습니까만, 베들레헴에서 골고다까지의 시간, 이것이 참사람인 예수 역사의 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골고다 언덕에서 죽은 인간 예수,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하는 걸 보고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고백합니다.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군요.” 사람이 어떻게 부활하여 승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의 이름에 한 가지 고백이 더 붙습니다. “저분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나중에 신조로 고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굽니까? 그분은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입니다. 참 사람과 참 하나님이라는 두 개의 고백이 결합된 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예수를 따르고 예수와 함께 다녔지만,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서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금실 좋게 살아온 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는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이 부부가 함께 10년을 살다가 다행히 개안수술을 받아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을 뜬 다음에 아내가 남편한테, 남편이 아내한테 한 첫 마디가 뭐였겠습니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10년 동안 듣고 만지기는 했는데 보기는 처음이니, 여보 처음 뵙겠소.” 아마 아내도 같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오래 동안 만져 보고 듣고 느껴 온 상대이지만, 눈으로 얼굴을 보는 그 순간의 감동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 부부는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 하나 때문에! 보는 것 그것 때문에!

여러분 예수님에 관한 얘기 많이 들으셨죠? 성서 많이 읽으셨죠? 공부도 하셨죠? 그 예수를 하나님으로 보셨습니까? 오늘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골고다 언덕에서 죽고 거기서 귀신처럼 부활했다는데 내 눈으로는 아직 못 보았다. 그러나 오늘 부활하신 예수가 승천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이 진실로 하나님인 걸 이제야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하나님 됨을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 예수 한번 제대로 보고, 크게 인사 한번 해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오메가 포인트, 마지막 지점은 죽음의 골고다입니다. 거기서 끝납니다. 인간의 역사가 끝난 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 역사는 부활하여 승천하신 참 하나님의 역사가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오늘 읽은 누가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끝냈다. 그러나 끝낸 뒤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었다.” 골고다 언덕에서 끝난 인간 고뇌의 역사가, 부활과 승천으로 인해서 새로운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오메가요 동시에 알파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그리고 승천한 모습 그대로 앞으로 구름 타고 오신답니다. 앞으로도 계실 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함께 계실 분, 똑같은 분, 그분이 오늘 알파요 오메가로 우리한테 오십니다.

사실 그분을 가리켜서 성서는 “당신이야말로 주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오셔서 이 역사를 주관해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구약 본문에서는 똑같은 주님이란 말로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이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밤이나 낮이나, 주님의 이름이 있는 이 예루살렘을 살펴 주십시오. 이곳은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성전은 야웨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곳입니다. 그 이름으로 항상 있는 곳!

설교 때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야웨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석 자를 감히 부를 수가 없어서, 우리말로 말하면 어르신, 주님이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주님, 어르신이라는 뜻의 히브리말은 ‘아도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글자에는 원래 모음이 없었습니다. 모음 발음은 있었지만 글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후에 사람들은 아도나이라는 말의 발음에다 하나님의 이름 글자, 자음 글자를 붙여서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 자음의 발음은 야웨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야웨라고 부르든지 여호와라고 부르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오늘 솔로몬 왕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주님으로 불려진 야웨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은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거룩하시고 항상 전지전능하시고 항상 위에 계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끌고 인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 야웨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 오면 모습을 바꾸십니다. 하도 인간이 타락해서 이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합니다.

그 하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좌절과 절망과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그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라는 사람은 부활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그리고 승천했습니다. 승천한 다음에 사람들이 참 하나님 되신 그분을 가리키기 위해 한 가지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주님”이십니다. 헬라 말로 “퀴리오스.” 당신은 참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것을 보니, 당신은 참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로만 불렀는데, 이제 예수라는 이름 옆에다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붙여야겠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부활하신 그리스도, 승천하신 그분을 합하여 “주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역사를 어느 단계에서는 단절시키고 완성하고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는 그 시점에 서신 분!

여러분 기도할 때, “나는 부활하여 승천할 정도로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죄악의 과거는 단절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믿으시면 “주님”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다 죽겠다. 나한테 무슨 새 역사냐? 새 인간은 뭐냐? 됐다. 나는 그저 골고다 언덕으로 마감하겠다.” 그런 사람은 제발 “주님”이란 호칭을 쓰지 마십시오. 기어이 쓴다면, 예수라는 이름만 쓰십시오. 부활과 승천에서 나타난 참 하나님의 모습을 신앙으로 담을 수 없는 사람은 제발 그리스도란 이름은 그만 쓰십시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오메가로서 인간의 역사를 마감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새 역사를 여는 알파이십니다. 그래서 성서는 “주님, 당신이 알파와 오메가요, 당신이 오늘 우리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저한테 골고다에서 끝나는 역사만 있다면 저는 예수 안 믿겠습니다. 그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저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의 모습으로 부활하고 승천하면서, 모든 인간은 새롭게 변할 수 있고, 인간의 역사도 새롭게 변할 수 있고, 세상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것 없이, 새로운 알파 없이 뭣 하러 예수를 믿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자신을 대신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알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이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다 잃고 병원에서 질병을 선고받을 때에야 비로소 건강이 고맙고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노인이 되고나서야 세월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그러나 세월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플 때 위로를 받고 싶어서 하나님을 찾고, 나이가 들어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 찾아올 수 없나? 일이 잘 되고 성공할 때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나? 젊을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없나? 왜 꼭 늙어서 죽기 전에, 아플 때, 고통스러울 때만 찾는가? 기쁠 때는 안 오고 슬플 때만 나를 찾아오나?”

건강할 때 미리 의사에게 검진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왜 꼭 아플 때, 다 죽어 갈 때만 의사에게 갑니까? 여러분이 절망에 빠질 때, 슬플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나 기쁠 때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아플 때 고통스런 눈물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할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인간의 막다른 곳, 변두리, 한계상황에 다다를 때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생의 한복판에서 들끓는 정열과 기쁨, 환희의 웃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은 한계에 빠질 때도 도움을 받고, 기쁘고 즐거운 인생의 복판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살게 됩니다. 그날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이 함께하시는 그 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인생의 한계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나아가고, 삶의 들끓는 한복판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십시다. 나라가 다 망한 다음에 왜 전쟁을 벌였느냐고 묻지 말고, 미리 전쟁이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나라가 다 거덜 난 다음에 왜 우리가 경제를 잘못 만들었느냐고 문제 삼지 말고, 지금 이상한 조짐이 나타날 때 경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인간도 사상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과학은 잘 모릅니다만,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는데, 공전하는 시간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년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365일이 아니고 365일 하고 5시간 48분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을 모았다가 4년마다 하루를 더해서 윤년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가 365일 하고 5시간 48분이 걸리는 이 공전의 속도는 얼마인가를 계산해 놓은 것을 보니까, 시속 6만 6000마일, 킬로미터로는 시속 10만 5600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비행기만 타도 속도감을 느끼게 되는데, 보잉 747의 열배 속도로 빨리 움직이는데도, 썩어서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싱싱한 사과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 역사의 속도 때문에 인간을 실족시키시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태양이라 이름하는 사랑의 하나님이 있는 곳을 향해서 우리는 지구처럼 돌면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성서는 지구인 인간이 태양을 향해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인 하나님이 다가오신다고 합니다. 태양이 자꾸 지구 쪽으로 오면서 둘 사이의 거리가 짧아집니다. 오늘 지구가 태양을 쉬지 않고 돌듯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돕니다. 때로는 구름 끼는 역사도 있고 태양이 내리쬐는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인 태양은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입니다.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주님이 되어 우리한테 오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도, 우리의 슬픔도 주님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이 신비의 사실을 오늘 여러분이 선물로 받으십시오. 이것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날의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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