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향기로운 예배 (민 28:1-8)

  • 잡초 잡초
  • 368
  • 0

첨부 1



제목 : 향기로운 예배
본문 : 민수기 28: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찌니라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로 드리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하나에 힌 사분지 일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해 질 때에는 그 한 어린 양을 드리되 그 소제와 전제를 아침것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민수기 28:1-8)

모든 종교는 예배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각각 다릅니다만 자연을 숭배하고 예배하는 종교도 있고, 새기거나 부어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고, 사람을 신격화 해 예배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합니다. 대상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배도 살아 숨쉬는 예배라야 합니다.

구약의 경우 모든 제사가 곧 예배였습니다. 특히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의 경우 제물을 선택 할 때 두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이라야 했고 둘은 흠없는 것이라야 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만 그러나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산 짐승이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 드리려면 칼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상처가 날 수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제물 자체가 흠 있는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히브리서 9:12 말씀대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14을 보면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은 히브리서 10:18입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짐승을 잡아 제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흠 없으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산 제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산 제사는 곧 산 예배를 뜻합니다. 죽은 제물을 드릴 수 없고 흠있는 제물을 드릴 수 없었던 것처럼 생명 없는 예
배, 맥빠진 예배를 드려선 안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아 고기는 각을 떠 불태워 드리고 내장도 씻어 불태워 드립니다. 그때 연기와 냄새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피는 그릇에 받아 두었다가 번제단에 뿌립니다. 모조리 불태워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에 온전히 불태우다라는 뜻 Holoskaio라고 했습니다.
고기가 타고 내장이 불에 타는 냄새를 본문 2,6,8,13,24절과 29:6,8절에서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예배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조명해 보겠습니다.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0:10-12을 보면 "삼림의 들짐승, 천산의 생축, 산의 새들, 들의 짐승,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왕이었던 다윗은 역대상 29:11-14에서 "권능도 영광도 이기는 것도 위엄도 천지에 있는 것도 다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8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세계도 만물도 주의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사야도 다윗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왜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까?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키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계나 만물은 그렇다 치고 왜 내가 주의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역대상 29:14에서 다윗 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생명도, 물질도, 시간도, 재능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욥기 1:21을 보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정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찌니라"고 했고, 3절에서는 "매일 드리라"고 했고, 4절에서는 "아침에 드리고 해질 때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시간 즉 예배드리는 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 정하신 날, 정하신 때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 드렸던 모든 예배(제사)는 시기도, 방법도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백성들에게 규례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내 맘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나면 드리고 바쁘면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제쳐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안됩니다. 틈나면 예배드리고 틈나지 않으면 예배를 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예배는 내 맘대로 정하고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기도, 때도, 방법도 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를 받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라는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중에 노예나 종이 주인을 섬길 때 "절하다,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계획이나 일정을 짜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이 종의 일정을 정하고, 할 일을 정하고 감독합니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체인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마음대로 바꾸고 조정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3. 향기로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2,6,8,13,24,27절과 29:2,6,8절을 보면 "향기로운"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려 아홉 번이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는 제물을 태워서 드릴 때 나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어떻게 향기로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물을 태워드리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한 것은 그 희생을 향기롭다고 한 것입니다. 희생보다 더 진한 향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30:22-38을 보면 향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최고급 향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23-24을 보면 상등 향품을 취하되
몰약 500세겔,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 창포 250세겔, 계피 500세겔, 감람나무 기름 한 힌으로 향유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둘째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관유란 성전에 있는 기구나 제사장의 몸에 발라 성별할 때 사용하는 향유를 말합니다. 식용 기름이나 미용을 위한 향수가 아닙니다. 거룩한 구별을 위해 사용하는 향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셋째 법대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0:35을 보면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라"고 했고, 37절을 보면 "너희를 위해 만들지 말라"고 했고, 38절을 보면 "그런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예배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제도는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분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근로현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조업체나 회사입장에서 보면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찬반을 떠나 우리 입장에서 중요시 할 것은 주 5일 근무제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신앙을 망가뜨리는 일이 일어나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제물을 태워 드리는 제사를 향기롭다고 표현한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자신을 태우고 희생해야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자기 할 일 다하고, 자기 갈 곳 다가고, 자기 쓸 것 다쓰고 남은 찌꺼기로 예배하는 것은 향기로운 예배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재능을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인 것입니다.

4. 성전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7절을 보면 "거룩한 곳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거룩한 곳은 제사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회막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곳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동방박사 얘기를 하곤 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상한 별을 연구하다가 예수가 동방 베들레헴 마을에 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택배로 보냈다든지 속달로 보냈다든지 인편에 보냈다면 별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박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직접 찾아와 경배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제 4박사는 길을 잃고 헤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비로소 예수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 4박사는 30년동안 예수를 찾아 헤메다 만났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TV를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집 옆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신교회 교인들은 멀든 가깝든 여기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히브리어로는 「아보다」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합니다. 그 뜻은 주인을 섬기는 종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일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워십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과로와 주색에 빠져 산 것이 주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운동부족입니다. 식사도 궁녀들이 가져다 주고 그들이 먼저 음식 맛을 봅니다. 세수도 궁녀들이 시켜 주었기 때문에 운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왕의 삶은 섬김을 받기만 했지 몸을 놀려 남을 섬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좋은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단명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서비스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섬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예배 횟수가 너무 많다는 둥, 예배 시간이 길다는 둥 구실을 잡아 예배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단순한 요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싫어하거나 피하려 한다면 신앙이 성립되겠습니까?

신앙이 자라고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섬기는 일을 많이 해야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이며 섬김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맙시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둡시다.
예배에 최선을 다합시다.
정성으로 예배합시다.
예배 시간을 지킵시다.
그렇게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