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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 / 마 6: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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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

본문 : 마태복음 6: 24-34, 시108: 1-3

성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우물에서 물긷는 여인을 관찰했습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왜 물 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군요?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격노가 일어날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분노와 갈등,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인내를 생각하면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고 천사들이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터전을 이루려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예수님을 모시고 평화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그 숱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찾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평화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그처럼 찾고 있는 평화를 다 찾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의 비극입니다. 어떤 청년이 그의 생을 통해서 꼭 소유하고 싶은 것을 종이에 적어 보았습니다. 건강, 지식, 명예, 사랑, 권력, 돈, 이런 것들을 기록해 가지고 그가 존경하는 경험 많으신 어른을 찾아가 보여 드렸습니다. 이 어른은 청년이 적어 온 목록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시더니 그 청년을 향하여 여보게, 자네가 여기 적어 온 것은 훌륭한 계획이야. 그리고 일리 있는 목록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자네는 여기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 그것이 없으면 자네의 소유는 오히려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 될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빠뜨렸습니까? 이 청년이 묻자 노인은 연필로 청년이 써온 목록을 북 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다가 마음의 평화라고 써서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 청년은 나중에 마음의 평화라는 책을 써서 수 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이 죠수아 리브만입니다. 사실 평화에 대한 내용의 책이 얼마나 많이 출판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그런 책을 꼭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84세로 죽기 직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건강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항상 “적당한 운동, 적당한 음식, 신선한 공기 그리고 마음의 평화인데 그 중에 제일은 마음의 평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찬양할 때, 우리 마음에 평화가 임합니다.(시147:12-14)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세요. 평화로운 마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세우신 근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원리는 너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이 갈라지면 마음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싸움이 있는 한 평화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느 한편으로 싸움의 끝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음의 평화를 가지기 위해서 내려질 근본적인 결정은 한 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세상 재물,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재물이라는 말은 우리 육신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갈망을 표현한 말입니다. 어느 곳에 우리의 마음을 바칠 것인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롯의 아내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왜요? 롯의 아내는 둘 사이에서 하나를 결정해야만 하는 때 완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뒤를 돌아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도 하였습니다.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따라 소돔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소돔은 비옥한 땅이요 재물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평생 이런 곳을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 롯의 아내는 마음에 큰 동요를 받았습니다. 세상의 맛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소돔도 원했습니다.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 날이 왔습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 소돔 성을 떠나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과 구원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돔 성을 돌아다보았습니다. 한 손으로는 별을 찾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더듬거렸던 롯의 아내는 마음이 둘로 갈라져 결국 가련하게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 갔었습니다. 여러 곳을 구경하는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일은 제주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였습니다. 겨울 바다 그대로 멋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해변에 서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출렁이는 바다를 지켜보았습니다. 바다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바다는 왜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할까? 그것은 둘로 갈라진 마음 때문입니다. 하늘의 목소리가 바다를 부릅니다. 바다는 하늘에 있는 달의 자력에 의해서 딸려 올라가지만 이 지구가 나와 함께 머물러 있자 고 소리치기 때문에 바다는 완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지구와 달에서 울려오는 소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바다는 결코 평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인을 결정할 때까지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주인이 되려고 싸우는 두 가지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하고 신성하게 살기를 희망하는 고귀한 삶에 대한 이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괴테는 한 인간이 건달과 신사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사실을 후회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택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찾을 때까지 참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도록 하면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골3:15)
여러분은 쿼바디스 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그 제목의 뜻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로마를 개종시키는데 실패하고 그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떠나가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어디로 가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베드로에게 발길을 돌이켜 그 성에 가서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순교를 뜻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는 베드로가 도피하여 로마성을 빠져나올 때 느끼지 못했던 평화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면 용기가 생깁니다. 아마 우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어올라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다면 거기에서 어떤 어려움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 한 것처럼 우리는 달리기 때문에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달리지 않습니다. 어떤 노련한 선장(船長)은 폭풍우가 몰아칠 때 선원들에게 폭풍을 정면으로 대하라. 언제나 그렇게 해. 그렇게 하는 것이 폭풍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방법이야 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우리의 결심은 용기를 동반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결정할 때까지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결정하고 행하면 용기가 솟아나고 그 마음에는 평화가 깃드는 법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워하며 순종하기로 결심할 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잠3:1,2)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를 굳게 결심하셨을 때 그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해야 한다는 음성,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망설이지 아니하고 굳게 결심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아니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주제가 섰습니다. 아무런 결심을 갖지 아니하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대부분의 고통은 결심하지 못한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에도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였습니다.
주님은 고통 이 엄습하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그 마음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은 그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뢸 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빌4:6,7)
본문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의복과 음식과 물질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더 많은 것으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 내리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 먼저 찾아야 합니다. 결정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거룩한 삶은 반드시 고통스럽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편 기자는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 (시37:25)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우선으로 택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절대로 버림을 당하거나 걸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는 사람의 마음 속엔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삶의 내적인 평안을 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 내부의 긴장과 투쟁 그리고 혼란으로 우리의 삶이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그처럼 마음의 평화를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이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찾는 평안과 같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평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다섯째, 주님의 말씀을 사랑할 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영혼을 소성케하고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므로 금보다 더 사모하고 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고 (시19:7-19),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영의 생각을 하는 자에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일곱째,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롬5:1)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소유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면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 : 9)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끝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두려워서 그럽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내가 잘못을 저질렀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을 꺼야 하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어느 양품점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뺏은 후 일가족을 살인하고 도망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체포하여 재판한 결과 사형시켰습니다. 진범은 미국으로 도망가 20년 간 거기서 숨어 지내다가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하며 신분을 감춘 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런던의 일류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때, 호각 소리가 나며 동시에 쿵쿵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저 놈은 도둑이니까 붙잡으시오." 경찰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전신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숨어 지내던 20년의 생활은 불안에 찬 세월이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로 인해서 오는 끊임없는 공포가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는 모든 기회를 앗아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범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여 참된 용서를 구할 뿐더러 다른 사람을 내가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혹시 마음 속으로 글쎄, 다른 사람의 죄는 몰라도 내가 범한 죄는 하나님께 용서받기 어려울 꺼야. 또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릴 염치도 없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된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용서 못할 죄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평화를 원하십니까? 주님께 나아오세요. 그리고 모든 죄를 용서받으세요. 그래서 죄로 인한 두려움, 불안을 말끔히 씻어버리세요. 참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주어질 것을 믿습니다.
여덟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히 의지할 때 마음의 평화가 임합니다.(시25:12,13)
시편 46편 10절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였습니다. 이사야 30장 15절에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놀라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기 때문에 장래의 일 때문에 불안해하지 아니합니다. 담대하게 힘을 얻어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 아니하리니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 마음이 평안합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를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마음에 근심하므로 불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꼭 믿습니까?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환경으로 인한 평화가 아닙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전에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감방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언제 순교를 당할는지 알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까? 이유는 다른 것 아닙니다. 주님이 어디서나 언제나 함께 해 주시는 것을 꼭 믿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 리들리는 메리 여왕 1세의 즉위와 함께 화체론적 성찬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가 뒤에 옥스퍼드에서 레티미와 함께 화형(火刑)되었는데, 그 전날 밤의 일입니다. 그의 동생은 찾아와서 그 밤 동안 위로하며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때 리들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왜 그는 그렇게 평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환난이나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4:8).'
여러분, 불안한 세상에 살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소유하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나와 꼭 함께 해주시는 사실을 믿으세요. 우리 마음의 평화를 누가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불안한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살게 하여 줍니다. 이 세상의 줄을 끊어 버립시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십시다. 우리의 잘못이 있으면 솔직히 주님께 내어놓아 용서받으십시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그만을 꼭 의지하십시다. 그리하면 세상의 누가 뺏을 수 없는 참 마음의 평화를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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