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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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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1-3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
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
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
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
신지라”


<서 론>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
고 평안을 주는 사람이 이에 속합니다.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재앙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만 하면 하던 일도 잘 안되고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최근에 일어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
다. 우리는 얼마 전에 발생하였던 대구 지하철의 끔찍한 사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서 지하철에 큰 화재가 발생
하게 되었고 선량하고 착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너무나도 가슴 아
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요셉같은 인물은 어디에 가든
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안겨 다 준 복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
이라는 믿음의 한 사람을 보시고서 그가 속한 가정과 이웃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이 요셉 때문에 큰 축복을 받았으며, 심지어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그로 인하여서 원래의 신분을 되찾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
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들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어디를 가든
지 가는 곳곳마다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야말
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지켜야만 하는 신앙의 마땅한 자세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복의 근원에 해당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
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아브람입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
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동일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이
름의 뜻은 서로 다릅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
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브’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
라의 ‘아버지’라는 단어하고 히브리어인 ‘아브’라는 단어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람’은 ‘존귀하다’라는 뜻이고, ‘라함’은 ‘열국’이라는 뜻입니다. 그
러므로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가 되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가 됩니
다. 원래 아브람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셔서 이삭
이라는 귀한 아들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아브람은 이삭이라는 믿음의 후사를 
통해서 오늘날의 이스라엘과도 같은 큰 민족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창세기 17장 4절부터는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
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성경에서
조차도 아브라함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실로 막대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
럼 창세기는 모두 5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 세 가지 기원
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인류의 기원을 다루고 있
습니다. 두 번째는 아담의 후손이 노아의 홍수로 거의 대부분 멸망을 하고 노아의 후
손으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창세
기 12장에 등장하는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
의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후손 3대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성경에 무려 39장이라는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즉 창세기 11장 이후로는 모두 다 아브람과 그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입니
다. 이 같은 사실을 비추어 볼 때에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과 그의 가문이 성경의 전체
에 흐르고 있는 핵심인 구원에 대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진리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
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친
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한 사람을 통하여
서 신앙에 관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가 있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을 연구하
는 것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신앙의 유익을 안겨 다 줍니다. 


아브람 소명의 장소

  본문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아브람에게 직접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셨
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
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임재하셔서 말씀하신 장소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
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 2-3절을 보시면 그 장소가 다음과 같이 아주 상세하게 나옵
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아브
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
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하란이 아니라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아
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소보다미아 중에서도 갈대아 우
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
지 이름은 바로 ‘데라’입니다. 데라에 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데라
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영권을 받은 셈의 후
손입니다. 정확하게 족보를 따진다면 데라는 노아의 8대손입니다. 당시의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은 믿음의 사람 노아의 후손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입니다. 그런
데 이 데라가 과연 조상인 노아처럼 하나님을 잘 섬겼을까요? 안타깝게도 데라는 하나
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호수
아 24장 2절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
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신지 불과 8세대 만에 다시 우상을 섬기
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
다. 데라는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이 땅을 심판하셨
음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이방의 우상
들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우리들도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하기가 마치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매우 힘이 듭니다. 이것은 인류의 죄성이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사실을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입고서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섬긴다고 할지라도 가정에 있는 자녀
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모릅니다. 부모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야말로 참다운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귀한 믿음의 삶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자녀들은 이 세상의 헛된 부귀영화와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손에 잡기 위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너무나 귀한 인생의 시간을 잠시 
잠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세상의 썩은 것들을 잡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
도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의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같은 자녀 양육
의 어려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시대의 부모들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입니
다. 그렇기에 노아의 아들인 셈의 후손 데라도 조상들의 신앙을 잘 이어받지 못하고 
그만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통해서 아브람이 우상을 섬기는 데라라고 하는 우상숭배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아브람이 배운 것은 우상숭배밖
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가끔 TV를 통해서 인도나 미얀마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조
그마한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서 맹목적으로 우상 앞에 나아가 절을 하는 장면을 보면 
“저렇게 나이어린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알고서 우상에게 절을 할까?”라는 생각
을 하곤 합니다. 틀림없이 그 아이들은 자신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정확하게 알고서 
절을 하거나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모들과 조상들이 하는 것을 어릴때부터 
보고 자랐기에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브람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도 어릴때부터 아버지인 데라가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서 자라났습니다. 하
나님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자신 앞에 있는 말 못하는 우상만을 섬겼습니다. 이런 와
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만나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특출하게 하
나님을 잘 섬기고 굳센 믿음을 소유한 신앙의 사람 아브라함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보다 훨씬 못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만나 주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나
타나신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
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에 아브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
한 어떠한 공로나 의로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은 만한 근거
나 이유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증명할 만한 어떠한 선행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아브람을 불러내시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신 하나님의 부르
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요, 우선적인 은혜요, 순수한 은혜임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구원의 은혜
를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어
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선행적인 조건이나 거룩한 믿음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축복
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공로와 노력은 전혀 없이 오
직 하나님의 은혜가 100%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어느 곳에 계시는 지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
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구원에 대해서도 조금도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 아브
라함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
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기쁨으로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다 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
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영생의 천국으로 옮겨졌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
러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비록 이 땅에서 잠시 잠깐의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영원한 천국의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을 확신하는 가운데에 넉넉히 이기는 축복이 임하
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
한 사람만이 그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불신자는 결코 하나
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훌륭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
고 윤리적으로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결코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나눠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조금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부분적 순종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아브람에게 세 가지 명령을 내리셨습니
다. 첫 번째는 “너는 본토를 떠라나”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심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
라는 명령입니다.  거기에 있으면 계속해서 배우는 것은 우상숭배밖에 없기 때문에 한
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친척 아비집도 떠나라”입
니다. 친척과 아비집이 울타리가 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힘이 된다고 할지라
도 친척과 아비집에서도 배울 것은 우상숭배밖에 없으니까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입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
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새로운 땅으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향해서 세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
람은 이 세 가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
니오”입니다. 아브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100% 순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
다. 물론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독자 이삭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
종하여 모리아산에 끌고 간 아브람이었지만 원래부터 그의 믿음이 출중하였던 것은 아
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1/3만 순종하였
고, 2/3는 불순종하였습니다. 아브람은 33.33333……%만 순종하였고 66.666……%는 불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본토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순종
을 하였지만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아버지인 데라와 친척 조카인 롯도 함께 데
리고 떠났습니다. 즉, 아브람은 본토를 떠날 때에 친척과 아비를 둘 다 데리고 떠났다
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에 하란이라는 곳에 무려 5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머물러 있
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의 의미는 “deley(연기하다, 지연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처럼 아브람은 아버지인 데라와 함께 다니면 다닐수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
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연기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아브람은 아버지인 데라와 
함께 하란이라는 곳에서 아까운 시간 5년을 허송세월로 낭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어
디를 살펴보아도 아브람이 하란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구절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
람은 하란에 머묾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통도 단절이 되었고, 가나안 땅으로 들
어가는 시간을 5년이나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완
전히 순종한 것도 아니요, 완전히 불순종한 것도 아닌 부분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렇
기에 아브람은 부분 순종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도 완전히 받지 못하고, 그전에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도 손해를 입었고, 아까운 시간도 무려 5년씩이나 낭비하고 말았
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브람의 경우를 통해서 떠날 곳은 과감히 떠나야만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신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라는 두 가지 세력의 파워
(힘)속에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처럼 불신 세계와 하나님의 세
계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 항상 하나
님의 세계에 거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화려하고 멋있고 
좋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시면 우리는 언제라도 그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서 신속하게 떠나야만 합니다. 이런 신앙의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향해서 아버
지인 데라를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은 육신의 아버지를 미워하고 돌보지 말라는 의미
가 아닙니다. 그 의미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의 세계를 과감히 떠나라는 뜻입
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향해서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친척을 미워하
고 모든 인간적인 관계를 무시하고 혈통을 멸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진정한 이유
는 바로 친척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불신앙의 세계요, 우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우상에
게 이끌리어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우상에게 피동되어 살아가
는 것은 결코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에 이끌리어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향해서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
도 매 순간순간마다 불신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동시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항상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께 피동되어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바
로 그러한 인생이야말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입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세 가지 약속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세 가지 명령을 내리셨고 거기에 따른 세 가지 약속을 허
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에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
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아브람을 향하여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그 
약속을 신실하게 수행했을 때에 받게 될 약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
문 2절은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
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 말씀처럼 첫 번째 약속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입니다. 이 복은 무제한적인 복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도 주고, 땅의 풍성한 복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들에게 참된 복을 주실 수가 있
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의 사람들이 우상에게 절하고 손을 빌고 별의별 짓을 다해
도 그 우상은 말 못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성도들에
게 하늘의 복도 주시고 땅의 복도 풍성하게 주시고 구원의 복과 영생의 복과 부활의 
복도 주시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능력이 되십니다. 세 번째는 “내가 너의 이름을 창
대케 할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아브
람을 향해서 너의 이름이 영원무궁토록 이 세상에서 기억되어지는 위대한 이름으로 만
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요 확실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
속대로 아브람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실질적인 조상으로서 그 이름을 후대에 남
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거룩
한 타이틀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
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큰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
청난 하늘의 신령한 상급과 축복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틀림없이 임하게 된다는 진리
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 세상의 명예를 버린 자들에게는 하늘의 찬란한 명예
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의 물질을 버린 자들에게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억 만 배의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존심을 
버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세상 열국가운데에 창대케 되는 축복을 허락하
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버릴 줄 아
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세상의 물질과 명예
와 권세와 권력을 포기하는 자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땅의 기름
진 축복이 틀림없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버리
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어떠한 축복도 임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도 희생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전
혀 임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람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역사할 수가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신 것은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만을 편애해
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궁극적인 복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2절 후반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
라”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에게도 그 복을 나눠 주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본문 3절을 보시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복
의 기준을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입어서 복의 근
원도 되고 동시에 복의 기준도 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광스러운 믿음의 반열에 올
라서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도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축
복을 받아서 우리를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통해서 영원
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주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
데에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
에게까지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람을 통해서 하나
님이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명령을 내리실 때에 아브람이 
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 아브람을 통해서 전개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섭리와 계획에 대해서도 조금
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
한 믿음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을 보시면 갈대아 
우르에서 무려 5년을 지체하였던 아브람이 더 큰 순종의 길로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
고 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
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또한 창세기 5-6절을 보시면 아브
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기록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든 사람들을 이끌
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
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
라” 이 말씀처럼 아브람이 부분 순종에서 발전하여 좀 더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갑니
다. 그러자 7절에 다음과 같이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즉,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아브람에게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5년간 하란에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임하
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엄청난 선포가 아브람에게 들려집니다. “내가 이 땅
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전까지는 가나안 땅의 유업에 대하여 보여만 주신 하나님
께서 지금은 아브람을 향하여 직접 주겠노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의 거룩하신 임재하심 앞에 아브람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님의 은혜와 역사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뜨겁게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가운데에 
성령의 역사도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거나 성
령의 역사를 체험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하는 부분 순종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을 경험하거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신앙의 태도가 분명 잘못된 사람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계시를 한번도 못 받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없단 말입니까? 도대체 지금까지 어떠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남
들 다 받는 성령의 은사와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간
단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거나 순종을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만 순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좀 더 순종하기 위해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
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고, 그 땅을 주겠노라고 하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 주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세겜 땅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음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보이고 약속이 임할 때에 우리들도 그 즉시 감사의 제단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람
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의 반응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
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지속되어지고 아브람처럼 복의 근원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 사이에서 더 이상 갈등하거나 영
적으로 방황하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의 능력에 이끌리어 성령의 역사하심대로 살아가
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계신 자리가 불신앙의 세계라고 한다면 과감히 자리
를 박차고 일어나셔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거룩한 땅으로 신속히 나아가십시오. 그
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분 순종에서 완전 순종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계시도 오고 하나님의 은혜도 임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삶은 하란의 삶이 아니라 세겜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람처럼 계속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예배의 삶
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계를 유지
하며 성령님의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소홀하
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형통의 축복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를 이 세상의 그 무엇
보다 귀중하게 여기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
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 아브람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서 가는 곳곳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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