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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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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에베소서 4: 25-32)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32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이 말을 뒤집어서 '하나님의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라 했습니다. "근심하게 하지 말라" 와 "기쁘게 하라"는 같은 뜻이지만 후자가 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내 아내를 근심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은 걱정만 안 끼치면 되는 것임에 반하여, 아내를 기쁘게 한다는 말은 근심도 안 시킬 뿐만 아니라 기쁘게 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아들 딸을 불러놓고 오늘 나쁜 짓 하지 말아라 하면, 나쁜 짓만 안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오늘 착한 일을 해라하면, 나쁜 일 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인 것처럼 적극적인 표현을 적용시켜서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이 전혀 믿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십 년을 나와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을 못 믿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임하셔서 나를 감동시키고 깨우쳐 주셔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아버지처럼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을 받고 믿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이 성령이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알 일은 성령을 받고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 지으면 성령이 떠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번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죄를 지으면 성령이 근심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깨우쳐 주고 근심하면서도 떠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의 생활을 잘 할 때에 성령이 기뻐하는 생활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기뻐하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I. 절제의 생활(25-27절)

1. 말의 절제(25절)

절제라는 말은 알맞게 조절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조절을 잘 해야 됩니다. 그것도 알맞게 조절을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절제의 생활은 말조심 하는 것입니다. 이 에베소서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 지방에 가서 전도해서 교회를 세워 키워 놓고, 또 다른 곳에 가서 교회를 세워 키워 놓곤 하다가, 얼마쯤 세월이 지나서 에베소 교인들의 사정을 듣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 보니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나오면서도 거짓말을 곧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죄인인 줄을 몰랐습니다. 거짓말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진실을 말하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지체 즉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속인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한 몸이기 때문에 절대로 성도들끼리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왜 하느냐 하면 거짓말을 함으로 해서 내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해야 이 위험스런 고비를 넘기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항상 말하라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게 되면 손해가 되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아도, 사람들이 결국은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즉 믿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성령이 너를 기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할 때에는 성령이 말할 수 없이 우리를 위해서 근심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얘기할 때는 성령은 네가 망신당하는 것 같아도 잘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절제' 즉 '거짓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하며, 진실한 것만 말한다'는 이러한 말에 대한 절제가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2. 마음의 절제(26절)

'분을 내어도'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 믿으면서도 분을 내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금술 좋은 부부사이에도 이따금 분을 내는 일이 있고, 부모 자식간에도 분을 내는 일이 있고, 성도들간에도 분을 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을 내어도 죄 까지는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을 내고 그 분풀이를 다 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분을 내되 죄까지는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나라는 한밤중 0시가 되면 날이 바뀌는데, 이스라엘은 해가 질 때 새 날이 되므로 오늘 분이 나면 오늘로 삭여 버리고 내일까지 분을 끌고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가 미워서 다음날까지 분을 품고 있으면 성령이 근심한다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빨리 떨어버릴수록 성령이 기뻐하는 생활이 됩니다. 이것이 마음의 절제입니다.


3. 믿음의 절제(27절)

도적이 어디로 들어옵니까? 도적은 틈이 있기만 하면 들어옵니다. 그래서 문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도적이 들어오면 남겨 놓질 않습니다. 그저 손에 잡히는 것은 다 가져갑니다. 하여튼 도적은 들어 왔다하면 손해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도적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약한데로 꼭 뚫고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하도 좋아해서 돈이라면 자기 믿음도, 또 자기 양심도 팔아먹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돈줄을 타고 꼭 마귀가 들어옵니다. 여자에게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가 여자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심이 강하여 명예라면 오금을 못 쓸 정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명예심이 약점입니다. 마귀는 이런 약점을 타고 들어와서 믿음을 모두 도둑질 해 갑니다.

병마는 약할 때 약한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체온이란 것은 올라가도 안 되고 내려가도 병이 되는 것 아닙니까? 혈압이 올라가도 병이요 내려가도 병입니다. 혈압이 한결 같아야 되고 체온도 한결 같아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결같이 빈틈이 없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결같을 때에는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마귀로 하여금 틈을 주었다하면 성령이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빈틈 없이 든든히 하고 한결같은 믿음 생활 할 때에 성령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절제 생활입니다.

절제하는 생활은 '말의 절제', '마음의 절제', '믿음의 절제', 이것이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II. 건덕의 생활(28-29절)

1. 변화로 건덕(28절)

도적이 변하여 구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에베소 믿는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따지고 보면 에베소 교회에 나오는 교인 중에 도적놈도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 안 믿을 때 도적질하던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 나와서 세례 받고도 여전히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적질하는 자들은 이제는 도적질을 그만 하라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부터는 제 손으로 수고하여 구제할 것이 있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 믿기 전의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온 후에는 변화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이 교회 앞에 덕이 됩니다. 예수 안 믿을 때 습관을,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그래도 가지고 있다면, 교회에 덕이 될 것도 없고 자신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믿지 않을 때 가졌던 습관을 버리고 예수 믿어서 전혀 딴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되고 예수 믿고 난 후에 세월이 흘러 갈수록 계속 새로워지므로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됩니다.


2. 선한 말로 건덕(29상반절)

본문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의 더러운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술 마시고 취하여 남녀가 서로 욕지거리하는 것이 더러운 말입니까? 본문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모여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음담패설을 하기도 하고, 예수 믿기 전에 난잡하던 생활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런 더러운 말은 다시 입밖에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즉 남에게 도움을 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도움 못 되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국을 돌면서 동업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되자, 앞차의 번호 숫자로 노름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서 앞차를 볼 적마다 그 숫자 노름 생각이 무척 머리를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결국 덕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심코 하는 말 즉, 믿음의 덕이 되지 않는 말도 들으면 오히려 떨쳐 버리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모여 앉아서 더러운 말을 하고 또 들으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믿음에 도움 안 되는 말은 그만두고 믿음에 도움되는 말, 즉 선한 말만 하라는 뜻입니다. 남의 믿음에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에게 도움 주는 말로 덕을 세우면 성령이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3. 은혜로 건덕(29하반절)

말씀의 은혜가 있으면 설교를 듣는 중에 혹은 성경 읽는 중에 너무 재미가 있게 됩니다. 그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의 재미가 있어서 설교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저녁에도 나오고 수요일에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의 은혜 때문입니다. 또 찬송을 뜨겁게 부르다 보면 너무 감격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고난 당할 때에는 이 찬송이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하늘나라 그 밝은 영광이 마음의 어둔 그늘 다 물리치고, 예수 공로 의지하여 끝까지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얼마나 힘을 주고 은혜가 되는지, 부르고 또 불러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찬송의 은혜입니다. 또 기도를 하면 하나하나 응답 받고 이루어질 때 너무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기도 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지 않고는 믿음 생활 못 합니다.

밑천 없이 장사 못 하고, 밑거름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은혜 없이는 믿음생활이 안 됩니다. 학생이 공부에 재미 못 붙이면 공부 못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교회에 왔다갔다하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고 남에게 은혜를 끼치는 생활을 할 때에는, 성령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먼저 은혜 받고 남에게 은혜를 끼치는 생활로 덕을 세우며 성령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건덕의 생활"은 세 가지인데 '변화로 덕'을 세우고, '선한 말로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침으로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III. 경건의 생활(30-32절)

1. 성령의 보증을 받아 경건(30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치셨다는 것은 내가 책임지고 너를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너는 죽으나 사나 내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문서에나 내 이름 쓰고 내가 도장을 찍으면 내가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쳤다고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 문제는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실제적으로 이야기하면 성령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보증이라는 말은 "선불했다, 선금으로 주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후에 선금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면 정한 날 정한 시에 그 물건은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구원 받으라 하고 성령을 우리들에게 선금으로 주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구원은 우리가 받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고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이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날 누가 우리의 보증을 서는가 하면 성령이 보증을 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의 보증을 받는다, 성령의 선불을 받았다는 말을 본문에는 성령으로 인쳤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보증 서 주는 사람, 성령을 선불로 받은 사람,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 이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성령이 구원을 보증해 주고 하늘의 영광을 보증 서 줍니다. 가령 누가 보증 서 주게 되면 그 사람을 보고 나에게 물건을 다 내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우리에게 보증서면 하나님께서 온갖 축복을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보증을 받아 우리는 경건하게 됩니다.


2. 버림으로 경건(31절)

버리라는 것 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악독, 노하는 것, 분내는 것, 떠들고 돌아다니는 것, 비방하는 것, 이런 행동과 함께 악한 마음조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내 몸에 도움 안 되는 노폐물은 빨리 버릴수록 좋습니다. 아침에 자고 나면 맨 먼저 배설물을 버립니다. 배설물은 우리 몸에 하나도 도움이 안됩니다. 버리지 않으면 죽습니다. 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버려야 내 몸에 생기가 납니다. 우리 믿음에 도움 안 되고 믿음에 손해나는 것을 안 버리면 성령이 근심합니다. 그런 것은 빨리 버릴수록 경건해지고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3. 용서로 경건(32절)

용서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기억해 두는 용서입니다. 가령 3년 전에 누가 재물과 명예에 손해를 끼쳤을 때 용서 했으나 다시 한번 또 손해를 끼치는 경우 3년 전의 것을 다시 기억하고 또 들추어내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기억해둔 용서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의미로는 용서가 아닙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놓고 기억을 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없습니다.

둘째로 잊어버리는 용서가 있습니다. 용서해 주고 잊어버립니다.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때 그때마다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랑하는 용서입니다. 잊어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까지 하는 용서입니다. 네가 한 짓에 용서하고 없었던 것으로 하지만 다시는 너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잊어버린 후에 사랑을 더 해주는 것이 사랑의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다 용서를 하신 후에, 마지막에는 사랑까지 해 주는 용서를 하십니다. 이 용서로 남을 용서하는 것이 경건의 생활이요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활은 '절제하는 생활', '덕을 세우는 생활', '경건의 생활'입니다. 성령이 우리들에게 구원과 축복을 보증할 수 있는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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