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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되는 곳 (마 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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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되는 곳 (마태복음 20:20-28)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추수감사절에 마치 007작전을 한 것처럼 이라크까지 13시간을 극비리에 날아갔습니다. 테러라든지 여러 가지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에 비행기 안의 모든 불을 다 꺼버리고 착륙하여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대통령으로써 대접을 받고 온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군통수권자(軍統帥權者)인 대통령이 큰 쟁반을 들고 장병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식사를 날라주면서 격려하는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미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본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국민 위에 군림(君臨)하는 대통령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길들여져 왔습니다.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재판관(裁判官)과 같은 대통령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인식해 왔습니다. 자기와 다른 견해는 일절 용납하지 아니하는 절대군주(絶對君主)와 같은 대통령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정치적인 반대자에게는 가혹하게 보복(報復)하는 대통령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대통령이 쟁반을 들고 섬기는 모습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모두가 높아지려 하고, 섬김 받으려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세상에서 높은 자가 이처럼 낮은 자를 섬기고 또 대접하는 것은 정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오늘의 말씀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5절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께 와서 무엇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는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인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동생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이모뻘이고,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과 이종사촌간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인척(姻戚)관계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사람은 예수님의 좌편에, 한 사람은 우편에 앉게 해주십시오.”하고 직접 말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24절에 보면 나머지 열 제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열명의 제자들도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대접받고 지배하고 섬김 받고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바램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삶의 가치관이 아니고 섬기는 삶을 보여주시고 교훈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왔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니까, 나머지 제자들도 벌떼처럼 일어나서 막 씩씩거리면서 대들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싸움이 날 판입니다. “너만 그러냐? 나도 그렇다”하고 싸움이 날 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교훈을 하십니다. 25절에 있는 대로 ‘이방의 집권자(執權者)’는 로마황제를 비롯한 당시 주변국의 통치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높은 권세를 가지고 백성들을 압제하고 강압적으로 지배를 해 왔습니다.

26절에 보면 <그런데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너희가 아는 대로 세상 통치자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럴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너희는 그럴 수 없다>. 쉬운말 성경에는 <그러나 너희는 저희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자, 가진 자, 배운 자가 지배하고 군림하고 섬김받고 대접받는다. 그러나 너희는 그럴 수 없다. 내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천국은 그렇게 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섬기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온 것도 하나님으로써 섬김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고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나처럼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했습니다.


1. 예수님은 섬기는 삶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강절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강절(待降節)은 강림절(降臨節)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성탄절 전 4주간을 가리킵니다. 2천년 전에 초림(初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서 4주 전부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이 대강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서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기간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要約)하면 어떤 삶일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삶을 한 사건(事件)으로 요약한다고 하면 어떤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신 예수님께서 종들이 하듯이 제자들의 발을 무릎꿇고 씻기신 사건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섬김의 절정이 바로 대속물(代贖物)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신 사건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거기에 말씀에다가 예수님을 대입(代入)해 보면, <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빌립이 예수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뭘 또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내가 곧 아버지가 아니냐?>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직접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천지만물이 다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 창조의 역사를 누구를 통해서 하셨느냐? 예수님을 통해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모든 심판의 권세를 다 맡겨주어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백보좌(白寶座)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도 세상을 지배하고 운행(運行)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이시요,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시요, 편재(遍在)하신 하나님이시요, 불멸(不滅)하신 하나님이시요, 영원(永遠)하신 하나님이시요, 왕 중의 왕이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습니까?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셨으면 군림하고 섬김받고 굉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습니까? 태어나실 때에 말구유, 말 밥그릇에 태어났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경배하고 섬길 수 있는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을 만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시장하셔서 때로는 무화과나무 잎을 들추어 열매를 찾으시며 ‘먹을 것이 없는가?’라고 하실만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종처럼 무릎을 꿇고 씻기면서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이셨습니다. 묻힐 무덤도 없어서 남이 판 무덤에 묻혔습니다.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이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가장 위대하신 왕 중의 왕이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오셔서 섬기고 또 종처럼 섬기며 사신 삶이었습니다.


2.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됩니다.

그렇게 사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여 주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9절에 보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모든>이라는 말이 3번 나옵니다. <모든 이름>, <모든 무릎>, <모든 입>이 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백하고 꿇고 높일 수 있도록 높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처럼 섬겼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예수님을 높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대강절을 맞이해서 예수님께서 섬기기 위해서 오셨고, 또 섬기며 사셨던 삶을 본받아서 나도 예수님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말인데,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신 삶과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셨던 섬김의 삶을 대강절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리라고 다짐하고 내 주변에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없는지 찾아서 이번 성탄절에는 꼭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는 그 성격상 기능과 구조가 아주 비슷합니다. 가정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큰 자>아닙니까? 그런데 자식에게 군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한 자, 큰 자가 작은 자, 약자를 섬기고 돌보고 책임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섬김의 가정이 되지 아니하고, 모두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남편과 아내가 금이 갑니다. 나중에는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려고 하는 가정, 아내를 섬기고,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가정은 정말 행복한 가정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섬기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섬김받고, 세상에서는 대접받지만 교회는 섬기는 곳이요, 대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모두가 다 섬김받으려 하고, 사랑받으려 하고, 대접받으려 하면 교회는 교회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섬김의 자세가 교회에서 잘 훈련되어져서 가정에 가서도 잘 섬기면 그 가정이 행복하게 될  것이고, 이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서 섬기는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사회가 밝아지고 아름다워지겠습니까?
싱가포르가 리콴유(李光耀)라는 아주 잘 섬기는 총리를 통하여서 삽시간에 바뀌어지지 않았습니까? 제가 십수 년 전에 한번 가보았더니 그의 아버지가 여전히 시계 수리공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의 대통령 아버지같으면 수리공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런 섬김의 정치가가 나라를 그렇게 바꾸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섬김의 경제인이라고 하면 노사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섬김의 사회라고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세상은 점점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더라도 우리교회만은, 우리가정만은 섬기는 교회와 가정이 되어서 섬김의 문화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이어나가서 이 세상을 정화시켜 나가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천국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섬기는 곳이요, 대접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적어도 네 가지 면에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하나님 안 섬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드리는 <예배(禮拜)>는 섬기는 행위인데, 우리는 예배가 서비스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섬긴다고 하면서 예배 자체를 자꾸 받으려고 합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받으려고만 해요.
정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잘 드리고 섬기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오도록 되어있는데, 교회와서 섬김받으려 하고, 은혜 받으려 하고, 기도 응답만 받으려 하고, 축복만 받으려 하니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예배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하기 위해서 올 때에 ‘하나님 앞에 드린다. 섬긴다’는 자세를 가지고 오세요. 옷을 입으면서도 ‘이 옷을 입고 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내 마음의 표현인 옷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자세를 가지고 옷을 입는다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찬송할 때에, 예물 드릴 때에,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해 보세요. 은혜 받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은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세만 가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오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하여서 마치 피가 심장을 통과하듯이, 정맥의 피가 심장을 통과하고 동맥의 피가 되어서, 깨끗한 피가 되어서 나가고 또 들어오는 순환(循環)이 되어야 됩니다. 마치 자동차가 주유(注油)를 계속함으로 자동차가 잘 나가는 것처럼, 예배를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위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은혜를 받고, 은혜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예배생활의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의 조각이 아닙니다. 피자의 한 조각처럼 조각이 아니고, 구심점입니다. 예배생활, 드리는 예배생활이 실패하게 되면 모든 생활도 다 실패하는 줄 알고 예배생활에 꼭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자의 성공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우리는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세로 예배드리면 모든 사람이 다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에 의자가 없습니다. 보통 예배를 3-4시간 드리는데 서서 드립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찬송도 서서 불러야 합니다.


4. 우리는 다른 교회를 섬겨야 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교회를 섬겨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를 섬기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농어촌 교회를 위시한 도움이 필요한 교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주어서 그 교회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또 자극하고 세워주는 일들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지금 1백 여개의 교회와 선교단체를 돕고 있습니다. 또 금년 여름에도 경남지역에 있는 많은 목회자들을 지리산 수양관에 모시고 어느 세미나에서도 할 수 없는 식사와 간식으로, 또한 세미나의 질(質)로써 잘 대접을 하며 섬겼습니다. 또한 전도폭발을 통하여서 전국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3일 동안도 셀개척교회 세미나를 노회 주관으로 하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등 이런 일들을 우리 교회가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도 많은 섬김을 해왔지만 앞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교회들을 더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들을 해 나가실 줄 믿습니다. 한 개인을 섬기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 한 목회자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능률적인지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느 교회를 섬긴다고 할 때에 왜 우리 교회도 바쁜데 남의 교회를 섬기느냐고 불평하거나 짜증내지 말고 더욱 더 다른 교회를 섬기는데 우리 온 교인들이 최선을 다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우리는 우리교회를 섬겨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섬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최근에 어떤 일로 인하여서 네티즌( netizen)들이 교회에 하는 욕을 읽었습니다. 물론 국민 전체의 평가가 아니라 편견을 가진 몇 사람의 말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까 잠이 오지 않습니다. 가슴이 떨립니다. 교회가 때로는 이런 비난을 받을 때도 있지만, 교회가 그런 곳이 아닌데 그런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가슴이 저려오더라고요.

한국 근대사에 교회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합니까? 한글보급을 통해서 문맹퇴치를 했습니다. 또한 사회사업은 대부분, 거의 99%가 교회를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육 사업과 의료 사업은 또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리고 내려오던 축첩(蓄妾)하는 일들, 노름, 술과 담배에 등  폐습(弊習)을 개선하는데  교회가 얼마나 앞장을 섰습니까? 농어촌의 계몽(啓蒙)에 얼마나 앞장을 섰습니까?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신장(人權伸張)을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신문화(新文化)를 받아들이는데도 교회가 하나의 통로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국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교회가 미쳤는데, 오늘날 현실은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제 교회가 세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좀 더 조직적으로 섬겨나갈 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영락복지재단을 통하여서 모자원을 수십 년 동안 운영해 왔습니다. 어린이 교육에 힘을 쏟아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오랫동안 운영했고 영락신용협동조합을 통하여서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각 부서에서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여러 교회나 단체에서 무료급식을 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가 십수 년 전, 무료급식을 처음 시작할  때 다른 교회들은 그런 쪽으로 관심도 안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 전도회에서 몸으로 봉사하고 물질로 봉사해서 무료급식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습니까? 지금도 안수집사회와 남전도회에서는 독거노인(獨居老人)에게 사랑의 우유배달을 수년 동안 이름도 모르게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유치장 선교는 부산에 있는 13개 경찰서 유치장에 주일 새벽마다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역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의료선교가 지금은 의약분업으로 상당히 어렵게 운영되지만, 다른 교회에서 하지 않을 때 우리교회가 의료선교를 통해서 다대포 지역, 학장지역, 영도지역의 가난한 환자들을 얼마나 많이 치료했습니까?

개안수술(開眼(手術) 과 그 외 많은 일들을 우리가 해 왔지만, 이제 좀 더 조직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를 섬겨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사회 속에서 존경받고 높임받고, ‘아, 교회가 저런 일을 하는 곳이구나. 나도 교회에 가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전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될 수가 있지, 교회 스스로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는 앞으로 사회에서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전에 인도네시아에 비젼트립을 다녀왔는데, 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도네시아는 회교국가(回敎國家)입니다. 하루종일 스피커를 통해서 알라신(Allah神)에게 드리는 기도문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모든 것이 회교문화화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는 다른 회교국가에 비해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신앙적으로 아주 좋은 토양(土壤)이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본래 인도네시아가 회교국가가 아닙니다. 화란(和蘭-네덜란드)이 350년 동안이나 지배했습니다. 화란이 얼마나 대단한 기독교 국가입니까? 그런데 350년 동안 화란사람들이 와서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많이 세워서 기독교화 되어졌어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세계에서 인구가 네 번 째 많은 나라입니다.

이렇게 큰 나라가 기독교화되어 있었는데, 이름있는 회교 한 지도자가 들어와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몇 사람이 모여서 자기들의 재산을 공유(共有)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또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실천하니까 그 사랑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고, 또 만들고 해서 급속하게 회교의 교세(敎勢)가 확장되어져서 온 백성 속으로 아래에서부터 깔려 나갔다는 것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회교 국가는 정치적으로 위에서 회교 국가가 되게 만드는데, 인도네시아는 아래에서부터 섬김을 통해서 감화(感化)를 받은 백성들이 한 순간에 회교의 신앙을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얼마나 충격인지, 오늘 교회가 해야 될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왔습니다. 우리 민족을 복음화 하는 것도 우리가 사회 속에서 세상을 섬길 때, 사랑을 베풀게 될 때에, 그때 비로소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이 열려지고, 그들 가슴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왔어요.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일을 해야 되고, 섬기는 일에 앞장 설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교회를 섬기자! 세상을 섬기자!’하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돕고 노력하여서 이런 역사를 일으켜 나가는 것만이 우리 민족을 복음화 시킬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파레토(Vilfredo Pareto)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20:80의 법칙인데, 이것은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고 세상 일이 전반적으로 그렇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그것이 적용되어지는데요. 예를 들어 말하면 20%의 사람이 80%의 부(富)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0%의 사람이 80%의 부를 누리고, 80%의 다수가 20%의 부를 누리면 그 사회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불균형이 일어나겠습니까? 잘 사는 사람은 굉장히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매우 못 살게 되는데, 이런 면은 후진국가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합니다.
옛날에는 한 나라에서만 그렇게 되었는데, 이제는 세계화가 되면서 세계의 나라 가운데서 몇 나라만 잘 살고, 대부분의 나라는 다 못 살게 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하지 말자고 반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국민은행에서 이런 통계를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10%의 사람이 90%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10%의 사람이 70%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진국보다도 더 합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못 사는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나타나는데, 우리 사회에 그만큼 소외계층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바냐서 3장 12절에 보면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왜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곤고한 사람을 너희 중에 남겨 놓겠다고 한 줄 아십니까? 그들은 오늘 우리들이 뿌릴 수 있는, 심을 수 있는 밭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열려져서 ‘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살아가구나.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고 마음이 열려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와 곤고한 자를 남겨 놓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제도 제가 교회에 오니까, 한 분이 뭘 좀 달라고 합니다. 그 분을 제 마음 그대로 표현하자면 징그럽게 와서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정기적으로 와서는 달라고 조르는데 어제는  제가 좀 바쁘고 해서 “아이고, 또 왔습니까? 다음에 줄게요.” 하고는 돌려보냈는데, 돌려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심을 수 있는 밭을 주었는데, 내가 그 밭을 뭉개버렸구나.’하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곤고한 자, 가난한 자를 우리 주변에 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우리에게 주어서 그들을 돕는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축복해 주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하셨는데, 거부하고 나니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최근에 어느 분이 <절망촌 희망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주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광야교회를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인 임명희 목사님이, 책의 표제대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무법천지 쪽방촌에 잡초인생과 뒹굴면서 섬긴 섬김의 이야기>.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나가서 일하고, 술 먹고, 죽이고 싸우는 이런 곳에 들어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여서, 처음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았지만 십수 년을 하고 나니까, 고 건 시장(市長)도 와 보고는 이제는 인정해 주고, 지원도 해주고, 그래서 새로운 희망촌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한번 읽어보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삶의 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긴다고 하면, 하나님의 복음은 더욱 더 전파되게 될 것이고, 우리민족이 새롭게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축복의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섬기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보에도 기록했습니다만,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섬김을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우리교회 앞을 지나는 버스의 기사들, 또 교회의 주차 때문에 불편을 안겨드린 이웃 사람들, 그리고 관공서에서 밤늦게까지 봉사하는 직원들, 아파트의 경비실에 계신 분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보육원의 시설들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자는 운동을 펴고 있는데, 각 부서가 책임을 지고 해 나가겠지만 우리 모든 성도가 다 지원하고 동참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앞서 믿은 자, 믿음이 있는 성숙한 교인들, 그리고 직분을 맡은 분들이 어린 신자를 이해하고 돌보고 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난 11월 22일자 교회복음신문, 우리 부산에서 발간되는 신문입니다만, 이 신문이 1백 교회, 1천여 명의 성도들에게 설문조사 한 것이 보도되었는데, 교회를 옮기는 가장 큰 원인이 무언가하면 그 첫 번째가 ‘교우관계의 악화’라는 것입니다.

왜 교우관계(敎友關係)가 악화(惡化)됩니까? 섬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 한 마디에도 상대방을 전혀 생각지 아니하고 나오는 대로 마구 뱉어버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대접받으려고 하고, 섬김 받으려고 하는 이기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가 이런 곳인가 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성도들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산에 있는 어떤 큰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사님이 매우 처신하기에 어렵게 되어졌습니다. 서울에 계시는 원로급에 있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내가 이런 입장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하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세 가지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첫째, 교회를 깨끗하게 떠나는 길이 있다. 그러나 너의 허물은 늘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아주 강하게, 법대로 교회를 치리(治理)하고 이끌어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교회가 잘못하면 갈라질 것이다. 세 번째로는 네가 죽는 법이 있다. 그러면 교회가 잘 수습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 목사님은 죽기로 작정했습니다. 죽기까지 섬기기로 결심하고 와서 모든 성도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지금도 목회를 잘 하고 계십니다.

저를 위시한 우리 교역자가 더욱 더 교회를 섬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장로님들 지금까지 잘 섬겨왔지만 더 교회를 잘 섬기리라고 다짐하실 것입니다. 항존직원을 세울 때 표 많이 받아서 일하고 싶다면 섬기세요. 궂은 일부터 먼저 하세요. 그러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숙한 교인들 같지만 얼마나 똑똑한지, 누가 섬기는지, 누가 장로되고 누가 집사되고 누가 권사될지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 앞에서 진실하게 섬기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높임 받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격려하고,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고, 웃어주고, 낮은 곳에서 한번 섬겨보세요.
서울시장 이명박 시장이 소망교회 장로님 아닙니까? 그가 시장되기 전에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소망교회의 차량관리위원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한 때는 그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차량관리위원으로 낮은 곳에서 늘 섬기더니 하나님께서 서울시장의 자리까지 높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더 높여주실는지 모르겠어요.
차량관리위원은 운전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차할 때 친절하게 안내하고, 또 주차장에서 차 잘 지켜주면 됩니다. 우리교회도 정말 큰 자가 차량관리부터 낮은 자리부터 섬기는  교회가 된다고 하면, 본인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교회가 새로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권사님들도 식당에 들어가서 봉사하세요. 걸레들고 교회당을 청소해 보세요. 환란 당한 성도들을 찾아가면서 돌아봐 보세요. 안수집사님들은 남자니까 그렇게 못한다고 하지 말고, 밥은 권사님들이 하면 설거지는 안수집사님들이 가서 한번 해보세요. 교회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교회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손도 꼼짝하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봉사하는 직분자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이 그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한번 섬겨보리라.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면서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겼듯이 나도 그렇게 한번 섬겨보리라. 죽기까지 복종하리라.” 그렇게 한번 다짐해 보세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높이시고,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섬기는 자를 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본받아서 이제부터 섬기는 삶을 살아가리라, 아예 그런 삶으로 체질화 되어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섬긴다는 것이 크게 뭘 가지고 섬겨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있는 처지에서 마음 자세만 고쳐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와서 빨리 갈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자의 제일 끝에 앉아있다가 착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 보면, 안으로 좀 들어가자고 하면 절대로 안 들어가요. 꼭 거기에 앉아서는 자기 앞을 지나가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남의 바로 코앞으로 궁둥이를 내밀어서 지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그런데도 절대로 안으로 안 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의자의 제일 가운데 안쪽부터 앉는다.’ 는 자세를 가지고 실천해 봅시다, 식당에서도 보면 줄 안 서고 식당 안에 바로 들어가서 밥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줄 서서 순서대로 한번 먹어보세요. 저도 식당에 가면 절대로 새치기 안 합니다. 꼭 순서 따라서 밥 먹습니다. 의자도 식사하고 난 다음에 안으로 집어넣고 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반드시 의자 집어넣고, 또 내가 앉았던 자리에 흘린 국물도 닦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다니는 길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주워 넣는 것, 이런 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새벽기도 마치고 난 다음 교회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몇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 화장실이 저렇게 깨끗한 것입니다. 화장실 깨끗하게 청소하는 분들이 건강으로 물질적으로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다른 분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봉사할 일이 하나 있어서 봉사를 열심히 잘하시는 분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그런데, 그 분에게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이 봉사를 도저히 이 분에게 못 시키겠다’ 생각되어 부탁을 안 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봉사를 하겠다고 제게 찾아 왔어요.
심적인 고통으로 매우 힘든 시기에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는 일에 순종하여 잘 섬기더니, 그때 여러가지 문제가 풀려지기를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아, 정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섬겨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축복하시는구나’ 하고 깨닫고, 이제  남은 삶은 정말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고 저에게 와서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섬기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은혜주시는 것은 하나의 공식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예배할 때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섬기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끼리 서로 섬기고,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섬기고, 또 교회에서 성도끼리 서로 섬기고, 사회에서 이웃을  섬기고, 다른 교회를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종으로 섬기고, 죽기까지 섬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서는 그런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나 교회에서만은 그렇게 해서 안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긴다’는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종’이라는 ‘디아코노스’와 같은 어원입니다. ‘디아코노스’는 ‘집사’라는 말도 되고, 때로는 ‘종’이라는 말로도 쓰여 집니다. 동시에 ‘권력자’라는 뜻도 동시에 있습니다. 원어를 종합해 보면, <종처럼 섬기는 자가 왕이다, 권력자다, 큰 자다.>는 뜻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중에 종이 되어야 한다>. 크고자 하면 작은 자가 되고, 으뜸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도 억지로 섬김을 받아서 작은 자가 되고 싶습니까? 억지로 남에게 대접받아 낮은 자가 되고 싶습니까?

섬기고 봉사하고 종처럼 섬겨서,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남편, 사랑받는 아내, 그리고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아름답게 칭송받는 성도들. 그리고 세상 속에서는 우리 부산영락교회가 세상을 잘 섬겨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교회, 이런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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