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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믿음 II - 아름다운 도전과 개척 / 히 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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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믿음 II - 아름다운 도전과 개척 / 히 11:27-28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모세의 믿음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24-26절>은 모세가 나이 40세 때에 처음으로 애굽을 떠날 때의 믿음을 묘사해준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 <27-28절>은 모세가 나이 80세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하고 광야길을 통과하던 때의 믿음을 묘사해 줍니다.

<27절>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한 것은 많은 학자들이 모세가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를 가리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우리 개역한글판에는 "참았으며"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면 "행하였으며"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 의하면 27절이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왕의 분노도 무서워하지 않고 에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 듯 확신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모세가 바로 왕을 무서워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애굽을 떠나는 생각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용기와 담대함의 비밀은 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8절>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애굽을 탈출하는 마지막 밤,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애굽 전역에 엄습하던 그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않고 passover, 유월, 건너가도록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바르는 예를 정한 것을 믿음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가 애굽의 서슬퍼런 바로왕 앞에 직면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지루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power encounter를 거쳐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일련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이끌어 낸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선적으로 마음의 영역, 신심(信心)이고 그리고 그 믿음의 마음은 삶의 행동과 태도, 신행(信行)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모세의 세 가지 신행, 믿음의 태도와 행동을 그리고 두 가지 신심, 믿음의 마음을 그리고 한 가지 믿음의 근원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한 것, 이것은 담대한 용기지요? 애굽을 떠나는 것, 이것은 분명한 결단력이고 그리고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한 것, 이것은 창조적 개척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의 분노를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 애굽을 떠나는 분명한 결단력 그리고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는 창조적 개척정신 이 세 가지가 모세의 믿음의 행동과 태도가 어떠한 지를 가르쳐 줍니다.
믿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임은 지난 번 모세 부모의 믿음 때에 말씀 드렸고 믿음은 세상의 영화를 거부하고 고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결단력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지난 주, 모세의 믿음 전편에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믿음은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임을 중점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I. 믿음의 삶과 행동 -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하기 위하여, 다시 바로왕 앞에 서고 바로왕과 팽팽한 영적 대결을 펼치고 그리고 9가지 재앙과 유월절 예를 정하고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10번째 재앙을 행하고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생활을 인도하는 모든 과정, 사실 가만히 생각하면, 이 모세의 삶과 사역 자체는 모두가 창조적 개척과 도전의 사역입니다.
모세는 선례가 없는 일을 스스로 "예를 정해 갔습니다." 누가 언제 이런 선례를 보인 적이 있습니까? 모세는 선례가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원칙과 규례를 정하고 꾸준히 추진해가는 마음을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중요한 단면이 이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중요한 단면이 이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입니다.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하는 로마서 12장에서 <롬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였는데, 여러분, 이 세상에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음을 아시지요?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나 유행.. 무엇보다도 가치관에서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몰아가는 관성이 있습니다. 세대의 흐름에 판박이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 이것이 일종의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입니다.

그래서 <엡2장>에서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모습을 뭐라고 묘사했습니까?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죄와 허물로 죽음처럼 살아가는 때, 그 한 실상이 세상 풍속을 좇았다고 하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냥 답습하던 세상 풍속을 거부하고 창조적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을 답습하며 살아가던 때에는 웃으며 밀쳐 놓았던, 왜 라는 질문을 꺼내어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행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끌어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음으로써, 세상의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자기 욕심에 밀려 사는 사람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중요한 한 단면이 도전과 개척정신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배는 항구에 매어 있을 때에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무사안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편하게 살려고 하는 인생은 무의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젊었을 때에 택시타기 좋아하는 사람치곤 세상에서도 인생에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육신의 요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자기자신을 향한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사람이 창조적 삶을 삽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도전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편하게, 쉽게 살려고만 하는 안일한 생각은 인생을 망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 여러분, 이 땅에 태어난 것,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심을 아십니까? 인생살이가 내 뜻대로 안되고 세상의 차가움과 괴로움이 피부에 닿을 때도 있겠지만, 인생 자체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축복으로 주신 것은 인생에는 기회의 문이 많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인생에는 기회가 많은 것입니다. 바로 잡고 바로 세우고 정도를 만들고... 이 땅에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회가 많은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기도하는 바, 신앙생활의 곧은 길을 만들고 맑은 물 근원이 되고자 하는 것도 창조적 도전과 개척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교회생활, 신앙생활의 무조건적 답습을 거부하고 이유와 소망에 충실한, 신앙생활, 교회생활의 새로운 예를 정하고 도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냥 다른 교회가 하는 모습과 조금 다르다고 거부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흥미를 갖고서 왜 이렇게 행하는 지를 묻고 성경말씀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주실 것이며 그 마음 안에 새로운 꿈을 새겨 주실 것입니다.
도전정신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꿈을 안고 개척 정신으로 도전해 보십시오.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하나님 나라에 가면 푸욱 쉴 수 있으니,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의 날에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안고 도전정신으로서 창조적 삶을 살아보십시오.

배나온 남자는 용서해도 가슴이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벗겨진 남자는 용서해도 머리가 빈 남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과거가 있는 남자는 용서해도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실패한 남자는 용서해도 도전하지 않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창조적 도전과 개척의 정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안고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살아가는 인생, 그 사람이 우리 시대의 모세입니다. 그가 오늘의 믿음의 사람입니다.


II. 믿음의 마음 -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

두 번째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흥미롭게 주목해 볼 것은 모세의 믿음의 마음입니다. 
애굽을 떠나는 결단력, 바로 임금을 무서워 아니하는 담대한 용기 그리고 유월절 예를 정하는 창조적 도전.. 이렇게 모세가 창조적 도전과 개척의 삶을 살아가게 한, 내면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세히 보면, 모세의 신심, 믿음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두 어절이 있습니다. 볼까요?

<27절>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그 다음에 <28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이 두 어절 다 왜 모세가 이렇게 믿음의 행동을 드렸는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27절>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행하였으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모세는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애굽을 떠나는 결단력, 임금을 무서워 아니하는 담대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의식하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요약해 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내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또 겨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자 최소한의 의무를 간신히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사야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런 말씀 하시지요? 너희가 제사드리러 성전에 나오는 것 이젠 질렸다, 질렸어. 너희들 꼴도 보기 싫다, 제발 누군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나님께서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자신의 종교적 의무만 이행하기 위하여 내지는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만 바라고 열심히 종교의무를 수행하는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역겨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종교적 열심을 내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종교적 열심은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예수님께서 훤하게 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여기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믿음의 제일 교과서적인 정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하였는데, 누가 순종을 제일 잘 합니까? 사랑에 빠지면 뭐든지 다 순종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모세도 그렇지요?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 바로 왕 앞에 다시 서는 것, 그에게는 하고 싶은 않은 일, 많은 두려움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요구에 의하여 되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동에 의하여 전달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게 하시는 그 사랑이 당신을 지옥의 운명에서 건졌음을 기억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닿지 않습니까?
모세가 담대한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의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그의 믿음의 마음의 정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또 하나 <28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한 마음을 저희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장자의 재앙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모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까? 괜히 니들이 찾아와서 벌집을 쑤셔놔서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느냐.. 분노와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볼 때,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였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자의 죽음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백성을 향한 모세의 사랑입니다.
믿음의 마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애굽에 다시 돌아가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바로왕을 다시 만나고 치열한 영적 전투를 감행하고 두려움을 헤치며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던 마음.. 한 축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순종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애굽의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고르반<막7:11>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내가 부모님께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라는 뜻의 말로써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핑계로 쓰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연히 책망하시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대어서 사람의 도리를 유기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 사랑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님을 밝혀 줍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사람들에 대한 도리만 다했던 부자청년에 대하여 핵심을 지적하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며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제일 집착이 강하고 자연스러운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랑이 우선임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예수님께서 선명히 깨우쳐 주었던 제일 큰 계명이지요.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묻는 율법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믿음이 좋다는 것은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진리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믿음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III. 믿음의 근원 - 사랑의 하나님과의 만남

모세의 삶에서 힘있고 아름다운 믿음의 삶과 행동, 기죽지 않는 담대한 용기, 분명한 결단의 의지, 그리고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을 낳게 한 것은 모세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당신의 마음에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진정한 믿음이 가득하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묵상해 보십시오. 모세는 어디에서 이 믿음의 마음을 얻었겠습니까?
히브리서에 나와 있지 않지만 출애굽기의 모세를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가 응답하였고 그 이후로 모세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만났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사랑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면서 그의 마음에는 사랑의 마음이 점점 더 충만하여져 갔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라듯이, 당신의 마음 안에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이 싹이트고 점점 더 자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calling은 구약에서는 특정한 민족, 특정한 가계, 특정한 사람.. 이렇게 점점 더 좁혀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하여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국 특정한 한 인물, 예수 그리스로로 촛점이 맞혀졌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좁혀졌지만 신약에서는 점점 더 넓혀집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12제자, 70제자, 120문도, 초대교회..점점 더 넓혀집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천하에 누구에게든지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기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나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넉넉히 당신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십니다. 아무리 불행한 여정을 보내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베푸사 당신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해 보십시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도로 부르시는 당신을 부르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보십시오.

그 사랑의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며 살아보십시오. 당신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아침 해 힘있게 솟아오름같이 충일하게 피어오를 것이며 그 사랑이 당신의 마음 안에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일으킬 것이며 마침내 당신에게도 담대한 용기와 분명한 결단력 그리고 창조적 도전과 개척정신의 아름다운 믿음을 창조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꿈을 품어 보십시오.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창조적 도전과 개척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당신의 마음 안에 아침 해가 떠오를 때마다, 밤마다 아름다운 별들이 빛을 발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게 떠 오르는 모습을 소망해 보십시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여 밝혀 주리라" 라고 시작하는 노래처럼, "주님 평생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 힘있고 멋있는 믿음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으로 응답해 보십시오. 내 남은 여생, 살며 사랑하며 드리고 싶습니다. 이 소망의 기도 함께 드려봄직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제일 큰 계명을 마음에 품어 봅시다. "하나님, 저의 마음에도 이 사랑으로 가득 부어 주십시오." 함께 기도해 봅시다. "저도 아름다운 믿음의 삶 살고 싶으며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 드리우고 싶습니다.
사랑은 없고 욕망만 가득한 저의 마음에 찾아와 주셔서 추한 욕망의 껍데기를 벗게 하시고 제 안에 사랑을 창조하소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으로 제 마음을 물들여 주십시오.
마실수록 목만 더 타고 마르는 욕망의 거리에서 저를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샘물로 나를 인도하소서.
작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 삶의 영역에서 푸르고 푸른 믿음의 꿈을 꾸며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함께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사랑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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