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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동역자들에게! / 롬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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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역자들에게! 
로마서 16:3-4 


오늘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부의 이름이 여섯 차례나 성경에 기록된 부부, 사도 바울이 최고의 찬사를 담아 나의 동역자라 소개한 부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저들은 소아시아 본도 출신이었지만, 로마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행복하게 살던 저들 부부에게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로마 황제가 유대인 모두를 쫓아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들은 고린도로 이민을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바로 그 곳에서 저들 부부는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허락하신 기적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저 동업자인 줄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첫 만남은 동업을 위한 만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3절 말씀을 보면,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바울과 아굴라는 모두 천막을 만들어 파는 기술자였습니다. 하여 두 사람, 생존을 위해 동업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행히 동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돈도 벌었습니다. 명성도 얻었습니다. 고린도 성에서 제일가는 천막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본문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저들 부부를 동업자라 부르지 아니하고 동역자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것도 나의 동역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저들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향한 사도 바울의 애정과 그리움과 사랑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동역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짐을 같이 지는 사람, 또는 매를 같이 맞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지금 저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이 돈을 벌던 동업자에서 같이 짐을 지고 가는 동역자, 심지어 같이 매를 맞는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업자가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4절을 보니 사도 바울이 더욱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저들 부부가 자기를 위하여 목이라도 내어 놓았다는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동업한 사이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거나 기대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을 위하여 목을 내어 놓다니, 우리네 같았으면 바울을 위하여 목을 내놓겠다는 아내나 남편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아니, 여보 당신,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요? 어디 할 일이 없어서 누군지도 모르고 근본이 어떠한지도 모르는 저 사람을 위해 목을 내 놓는다는 거요? 정신 차리시오, 아니 되오!”그러나 저들 부부는 우리의 통념을 깨고 사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늘 본문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3절을 보실까요? 거기 보니, 바울이 저들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라! 그랬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자 가장 먼저 저들 삶의 목적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업을 잘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던 인생이, 목을 내어 놓는 한이 있더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돈을 추구하던 삶에서 주님의 복음을 추구하는 삶으로,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던 삶에서 조금이라도 더 퍼주기 위한 삶으로 변한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변하자 사람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이제까지 돈 버는 기계쯤으로, 곧 동업자로만 보이던 바울이 하늘의 일을 함께 하는 동역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천막 만드는 기술만 눈에 보였는데, 이제 그가 전하는 복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여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짐을 함께 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동참하다가 혹 매를 맞게 되더라도 그 매 같이 맞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목이라도 내어 놓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동역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만나야 우리 서로 거룩한 일에 동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입니다. 예수님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동업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 밖에서 동업하는 사이는 늘 불안하다는 점입니다. 동업하는 사이, 늘 긴장합니다. 동업을 하면서도 늘 서로 경계합니다. 왜? 그 만남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요, 그 만남 속에 예수님이란 궁극적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조심할 것은 돈이란 것이 본디 악마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여 예수님 없이 돈만 버는 동업자들 사이에서 그 돈이 악마적 장난을 치기만 하면 관계가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여 동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했느니, 동업자 때문에 완전히 망했느니, 이 놈의 동업자 만나기만 하면 내 손으로 어떻게 하겠느니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린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와 함께 거룩한 일에 동역을 할 것이냐, 예수 버리고 돈 버는 일에만 동업할 것이냐의 선택입니다. 이 선택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선택입니다. 이 선택에 따라 인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만남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여기서 선택에 도움을 드리고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설명해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을 사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건 내가 만나는 그 사람 자체가 만남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비로소 거룩한 동역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목적으로 만나지 않고 수단으로 만납니다. 저 사람이 나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만난다는 뜻입니다. 하여 세상은 내 필요에 의해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야박합니다. 동업의 경우, 내 돈 버는 일에 필요한 한에서만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 평생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내 인생을 좌우하는군요. 정말입니다. 나를 목적으로 여겨주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나를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불행합니다. 우울한 사람을 만나면 그와 함께 하루 종일 우울한 법,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불행한 만남은 평생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행복한 만남은 평생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천사를 만나면 그와 함께 천국을 살게 되는 법, 하여 오늘의 행복한 만남은 평생 행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위대한 만남이 위대한 역사를 이룹니다. 하여 하늘이 낸 인물을 만날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소인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소인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늘 만남은 기적이라 노래합니다.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남은 기적이며 동시에 축복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우리의 만남은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 고맙습니다.>>

여기서 나의 동역자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금 바울이 저들 부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 곧 내 사람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내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주 안에서 내 사람입니다. 나는 주 안에서 당신 사람입니다. 하여 우린 주 안에서 서로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귀한 당신, 한번 불러 보실까요?

<<당신은 내 사람입니다. 그럼요, 당신은 제 당신입니다.>>

그런데요, 더욱 감사한 일은 내 사람이 되니 당신을 위해 내 목을 내어놓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 내 사람이란 말은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곧 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주안에서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 관계입니다. 세상에선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주의 사랑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룬 만남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이입니다. 아멘? 아멘! 옆의 분 한번 보시고, 이제 제 말에 그렇게 생각하시면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내 목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린 주 안에서 만난 거룩한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도 바울을 위하여 자기 목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동역자로 만날 수 있음이 왜 기적이요 축복인지를 바울의 다른 서신을 통해 확인하고 갑니다. 고린도전서 3장으로 가 보실까요? / 고전 3:3-9 / (265쪽) / (읽기) / 너무나 잘 아는 대목이기에 말씀을 다시 풀어드리진 않겠습니다. 단 중요한 사실 하나만 확인합니다. 3절에 보니 저들이 사람을 따라 행하다가 시기와 분쟁과 당파 싸움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발생한 분쟁과 다툼은 사람을 따라 행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 밖에서 사람 중심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나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거기엔 반드시 인간적인 분쟁과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여 사도 바울이 호통을 쳤던 것입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또 무엇이냐?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믿음의 사역자들일 뿐, 나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준 것일 뿐, 그 씨앗이 자라나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거늘, 어찌하여 주님 앞에서 다툰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바울은 결정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 고전 3:9 / (다시 읽기) / 할렐루야! 여러분, 나의 동역자란 말이 하나님의 동역자란 말로 바뀌었군요. 지금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 믿으시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늘의 일에 참여한 동역자란 뜻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런데 거기 9절 하반절에 보니 나를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인 동시에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시는군요. 거기 밭과 집이란 단어에 표시하시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밭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집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밭이 되고 하나님의 집이 되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라는 명령입니다.

밭이 되라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하늘 씨앗 가슴에 품고 그 씨앗 잘 자라 거목이 되기까지 밭으로 살아달라는 명령입니다. 집이 되라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언제든 하나님의 사람들 내 안에 영접하여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집으로 살아달라는 명령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명령입니다. 나는 거룩한 밭이요, 나는 거룩한 집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밭은 밭이요 집은 집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밭은 밭이요 집은 집입니다. 여러분, 언제 밭이 나 밭이라고 우기는 것 보셨습니까? 언제 집이 나는 집이라고 뻐기는 것 보셨습니까? 언제 밭이 씨앗을 가리는 것 보셨습니까? 언제 집이 사람을 가리는 것 보셨습니까?

여러분, 밭은 밭이요, 집은 집입니다. 아니, 밭은 밭이어야 하고 집은 집이어야 합니다. 거기 그렇게 밭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기 그렇게 집으로 건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밭의 소명, 그것은 하늘 씨앗 가슴에 잘 품어 거목 만드는 일입니다. 집의 소명, 삶에 지친 영혼들이 안식을 얻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 소개 받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당시 저들은 네 개의 도시를 전전하며 이사를 해야만 했던 유대인 부부입니다. 그러나 어딜 가든 저들의 가슴 속에는 보석 같이 빛나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자부심이었습니다. 그 자부심으로 저들 부부는 평생을 하나님의 집으로 살았던 부부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가는 곳마다 터를 잡고 자기 집을 구하면, 즉시 그 집을 예배 처소로 공개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그리고 로마에서도, 저들 부부는 가는 곳마다 변함없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평생을 살았던 위대하고 아름다운 부부였던 것입니다.

제가 어딜 가든지 저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가 하나 있습니다. 저의 신앙고백이기도 한데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앞에서 다시 한번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참 행복한 목사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는 아니지만, 가장 행복한 목사입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이 곳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목숨 걸고 사랑하기로 약조한 거룩한 동역자들이 이렇게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금년 2003년, 1년 365일을 하루 같이 동광 가족들을 위하여 저와 함께 새벽 제단을 함께 지켜온 120문도가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앞을 다투어 하나님의 밭이 되어 드리려고 애쓰는 분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집이 되어드리려고 애를 쓰는 귀한 분들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동광의 하늘 가족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돕니다. 한 분 한 분 얼굴을 떠올리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 간구하며,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고맙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정녕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사입니다.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 2004년 한 해, 더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우리의 여정에 주 성령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주님 오심을 대망하는 대림절기입니다. 지금 다시 오시는 주께서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2004년, 하나님의 일에 나와 함께 동역하자고 지금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크고 작음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높고 낮음이 따로 없습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의 밭과 집이요,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서로 목숨 걸고 함께 가는 일입니다. 함께 가자 약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내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목숨도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을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 동광의 브리스가와 아굴라들의 헌신을 통해, 새롭게 맞이하는 성탄과 새해에 더 크신 은혜와 섭리와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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