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리아의 고난과 영광 (눅 1:39~56)

  • 잡초 잡초
  • 356
  • 0

첨부 1


< 제 목 > 마리아의 고난과 영광
< 본 문 > 눅1:39~56

금년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벌써 12월이 되기가 무섭게 세상은 성탄 분위기를 내느라 야단입니다. 번쩍거리는 트리, 요란한 캐럴, ... 물론 장사 속으로 그런 거지만 교회보다 세상이 더 빨리 더 열심히 성탄절 준비를 하나? 그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이 주도권을 쥐고서 성탄절 문화를 점점 세속화시키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예수님이건만 그분은 온데간데없고 흥청거리고 먹고 마시며 노는 게 주류를 이루는 듯합니다. 그래서 마치 성탄절은 1년 중에 ‘제일 잘 노는 날’로 낙인찍힌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와 달리 성탄절은 가장 경건하게 보내야 할 신앙 부흥의 계절입니다. 또한 가장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되는 전도의 계절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의 들뜬 분위기에 편승해서 엄벙덤벙 지나갈 게 아니라, 세속 문화에 경건한 신앙으로 맞불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성탄절의 기쁨을 맛보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먼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사9:, 11:, 마1:~2:, 눅1:~2:, 요1:를 비롯해서 복음서를 많이 읽을 것) 그러면 성탄의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 특별히 불신 이웃에게 성탄의 의미를 적어 전도 성탄카드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성탄절을 가장 성경적으로 보내는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부터 3회에 걸쳐 성탄 메세지를 전해 드립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성탄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시고 구체적인 신앙의 결단과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 성탄절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늘은 수태고지 사건(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 사실을 알려준 사건, 눅1:26~38)과 그 이후에 마리아가 불렀던 찬양마리아 송가(마리아 찬가, Magnificat, 눅1:46~55)에 관해 살펴봅니다.

[1] 동정녀 잉태의 필연성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셔야 했는가? 인간 구원이 방법이 다른 건 없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얼마든지 다른 방법도 가능할텐데 말입니다. 아주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가 인생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만족과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갑니다. 롬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육체의 죽음 외에 ‘영적인 사망’과 ‘영원한 사망’을 포함합니다. 죄가 인생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들은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애를 써도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다고, 출세한다고, 세상 향락을 누린다고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단 한 가지 죄 값을 치루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히9:22에 보니까,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죄 값을 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이 직접 죄값을 치루고 멸망 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이 두 가지 면을 잘 조화시켜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것이 곧 ‘대속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신 겁니다. 그게 곧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를 대속하려면 인간과 같아져야 합니다. 동시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속이 가능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인간의 몸으로 오시되, 죄가 없는 모습으로 오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녀의 성관계를 통해 태어나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원죄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 원죄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동정녀의 몸을 사용해서 탄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동정녀 중에서도 정혼한 여인이 가장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정혼한 여자가 그 순결성에 대해 공적으로 보증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생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혼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법적인 효력을 가질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함께 동거하지는 않습니다. 1년 정도 그렇게 지냅니다. 이 기간 동안은 순결이 유지돼야 합니다. 만일 이 때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면 간음죄로 인해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까 정혼한 여인은 절대 순결합니다. 마리아가 정혼한 시기에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케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묘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2] 마리아에게 제시된 고난

문제는 이 방법이 하나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오시기 위해 유일한 길이지만 마리아로서는 엄청난 고난을 요구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잉태하면 대번에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게 됩니다. 잘못하면 돌에 맞아죽을 위험조차 있습니다. 혹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평생 사생아를 낳은 미혼모라는 낙인이 찍혀 수치와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정혼한 요셉에게 파혼을 당할 게 뻔합니다. 그 당시 마리아가 10대 소녀였을 텐데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고난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다가와서 전해준 잉태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을 겁니다. 마리아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34절 보면 그 심경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기쁨의 찬양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줍니다. 마리아가 잉태할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며, 그 예로서 친척 엘리사벳을 언급합니다. 엘리사벳은 늙었지만 잉태했지 않았냐 하는 겁니다. 35절~37절.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가 고백합니다. 38절.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자신을 계집종으로 말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둘레’(δουλη)인데 여자 하인 혹은 여자 노예라는 뜻입니다.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되는 존재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겁니다. 이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그후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지금 자신의 잉태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그 사람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로부터 격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를 방문해서 이야기하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재확인하고 찬양을 부릅니다. 46절~55절 내용입니다. 이를 가리켜 흔히 ‘마리아 찬가’ 혹은 ‘마리아 송가’(Magnificat)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비록 자신에게 큰 고난이 닥쳐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높이 찬양합니다. 특별히 비천한 여인을 선택해서 그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로 찬양합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사실 그에게 예상되는 고난은 엄청난 것인데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목숨의 위험, 수치와 파혼의 위험 등이 코 앞에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 내내 모친으로서 겪을 고난도 엄청난 것입니다. 눅2:35 보면 시므온 선지자가 마라아가 장차 겪을 고난을 가리켜 이렇게 예언합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지켜봐야 되는 어머니의 고통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 보면 그 입구에 큰 조각상이 하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달려 주은 예수님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인데 마리아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 가슴에 확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이토록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건만 마리아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로 찬양합니다. 놀라운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잉태도 기적이지만 마리아의 신앙 또한 기적 같습니다.

[4] 마리아의 축복과 영광

이렇게 믿음을 순종한 마리아가 어떻게 됐습니까? 놀랍게도 그 인생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① 축복 : 마리아는 큰 위험만 당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하나 하나 해결해 주셨습니다. 마1:18~25 말씀을 보면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 마라아의 잉태에 대해 해명해 줍니다. 그로 인하여 마리아는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고 수치를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마리아를 져러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할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잘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사생아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도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결혼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후에 헤롯왕의 핍박 등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철저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마6:33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은 우리 인생에 무거운 짐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이 때때로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내 인생을 붙들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마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선교사가 새로 부임했습니다. 처음이라 지리를 잘 몰라 현지인의 안내만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날 강물을 건너게 됐는데, 현지인이 큰 바위를 안겨주면서 건너가라는 겁니다. 빈 몸으로 가기도 힘들텐데 이게 웬 일인가?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강물 한 가운데 가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물살이 하도 세서 만일 큰 바위를 안고 가지 않았다면 휩쓸려버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큰 바위돌은 짐이 아니라 그를 지켜주는 안전 장치였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보장해 줍니다. 책임져 줍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입니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로운 마음’(왕상3:9)이 바로 그겁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히브리 원어로 ‘레브 쇼메아’인데 ‘듣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라는 겁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이런 신앙을 잘 배워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영광 : 마리아는 인류 역사 상 여인 중에 최고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신성시하여 숭배의 차원까지 치우칩니다. 성모 무죄 잉태설, 성모 승천설 등을 주장하고, 성모는 하나님의 어머니라서 기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비성경적인 내용들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처럼 죄인이고 예수님으로부터 대속의 은총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영광은 대단합니다. 천사의 예언(31절~33절)이나 엘리사벳의 칭송(42절~45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엘리사벳은 산골 처녀 마리아에 비해 지체가 높은 분이었지만 마리아를 높여 칭송합니다. ‘내 주의 모친’이 자기에게 찾아와 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 주의 일에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예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피동적으로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자발적인 고난에 헌신하면 하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마리아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겪지만 장차 얻을 영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것입니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런데 이런 영광은 솔직히 부럽지만,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헌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쉽지만 내 이야기가 되면 너무 어렵습니다. 어느 선교회 모임에 갔다가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선교하는 목회를 지향하는 분으로 선교 메세지를 전하며 많은 선교 헌신자를 배출하는 분입니다. 선교 헌신자가 나오면 너무 귀하다고 격려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분의 따님이 선교사로 헌신했다고 선언하자 가슴이 철렁했다고 합니다. 물론 금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님을 축복했지만 말입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가 남은 생애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는 신앙을 위해서! 그래서 주의 영광에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성탄의 계절! 마리아의 고난에 관한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시고 그 귀한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앙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디 마리아가 체험한 축복과 영광을 우리도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