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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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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8-11.


서  론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유대나라 베들레헴에서 3-4키로 쯤 떨어진 곳에서 목동들이 밤에 밖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목동들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천사들이 목동에게 전한 말 중에서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일이 큰 기쁨의 소식인가를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이 큰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일까요?

1.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1:1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계셨는데 요1:14에 보면, 그 말씀이 육을 입으시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나 영국의 여왕이나 일본의 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그 소식도 큰 소식일진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육을 입으시고 오신 소식이야말로 큰 소식 중에 큰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소식을 큰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인류 역사상 딱 한번밖에 없는 소식이므로 큰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해방시키고자 구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눅2:11에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주”라는 말은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는 주인이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값으로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20:28에 보면,“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마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갈3:1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가끔 살신성인이 나타나 각박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그 사건이 큰 미담으로 매컴에 보도가 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일입니다.
그동안 있었던 살신성인의 사건은 한 생명을 바쳐 한 생명을 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살신성인은 특별한 개인이나 몇몇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구원받는 살신성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모든 사람을 살리는 살신성인으로 오셨으니 큰 소식이며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신성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롬8:1-2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엡2:1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3.하나님께서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눅2:32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1:9에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시대는 인간의 마음상태나 종교나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모든 분야의 모든 것이 칠흙같이 어두워진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400년 동안 침묵하신 시대였습니  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박한 시대였습니다.
적시에 예수님은 생명의 빛, 구원의 빛, 정의의 빛, 양심의 빛, 정의와 진리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로서의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밝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마음, 영혼, 가정, 삶의 현장, 인생의 진로)
그러므로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소식은 어떤 소식보다 큰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모두가 밝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영접치 않은 자들은 어두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2000년 전 예수님을 빛으로 깨닫지 못하여 영접치 않았으므로 어두운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요1:5에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9에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11에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지금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만 마음과 삶의 현장에 모시고 살면 밝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에 모시고 살면 밝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결  론

이 땅에 수많은 철인들과 종교인들과 성인들이 왔다가 갔지만 단 한 사람도 생명의 빛으로나 구원자로나 하나님의 본체로 온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주로 빛으로 오셨지만 그 분을 영접하지 못하면 죄 사함이나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밝은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구주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싶어도 그 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영접할 수 없고 누군가가 그 분을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고 듣지 못하면 알 수 없으니 이번 성탄절에는 어떤 선물보다도 예수님을 전하는 선물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사가 목동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목동들은 베들레헴에 달려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한 것처럼 이번 성탄절에는 구주로 오시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힘있게 전하는 성탄절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선물만 전하지 말고 예수님을 전하고 식사만 대접하지 말고 예수님을 전하고 또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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