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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헤롯과 동방박사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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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헤롯과 동방박사
본문:마 02:01-12


성경에 나타나는 성탄 문화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업적인 문화입니다.

로마 황제였던 아구스도가 모든 사람에게 고향에서 호적을 하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사실을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라고 표현했습니다. 언제나 가장 상업적인 호경기는 사람이 움직이는 시기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곳에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음식도 사서 먹어야 하고 의복도 갖추어야 하고 교통편도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시기는 상업적인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적 호황기는 일반적으로 명절과 여름 휴가 기간일 것입니다. 이 시기가 상업적인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대거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성탄절에서 볼 수 있는 성탄문화 중에 하나가 상업적 문화였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는 성탄 문화는 폭력 문화입니다.

헤롯은 군인을 풀어서 베들레헴에서 난 아이 가운데 두 살 아래의 모든 유아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그야말로 통곡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장 힘이 없는 유아들을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그들의 희망을 헤롯에 의해서 도륙을 당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성탄절에 나타나는 두 번째 성탄문화는 바로 폭력 문화였습니다.

세 번째 나타나는 성탄 문화는 예배 문화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준비해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또한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도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천사들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성탄절에 나타나는 세 번째 성탄문화는 예배 문화였습니다.

오늘 날 성탄 문화도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의 문화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상업적 문화입니다.

성탄절이 만든 가장 상업적 얼굴은 아마도 산타문화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선물을 주고 받는 기회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아마 일년의 매출액 가운데 성탄절은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날 성탄절을 가장 먼저 준비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바로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성탄절 문화에서 등장한 또 다른 문화가 바로 음란문화입니다.

성탄절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많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윤리적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켜 버리게 만듭니다. 유흥업소가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시기가 바로 성탄절이라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탄절이 다 지나고 어떻게 성탄절을 지냈는가 하는 말은 어떻게 놀았는가 를 의미하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주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이 성탄절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계획을 세상 사람이 세우고 믿는 사람이 그 계획에 끌려가는 경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전도의 기회가 되지 못하고 타락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탄 문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예배하다는 뜻입니다. 성탄절을 바로 지키는 것은 예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도 성탄절을 바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에 아무리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성탄절을 의미있게 보낸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을 가장 바로 보낸 사람은 바른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성탄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오직 예배를 통해서 해석이 되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의미를 저마다 해석하고 있지만 성탄의 의미는 바로 예배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법이 예배에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성탄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배드리는 사람뿐이었습니다.

성탄절을 통해서 예배에 대한 중요한 정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양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주님을 찾은 두 종류의 사람을 통해서 주님 앞에 나가는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멀리에서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을 버려 두고 왔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는 항상 두 가지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멀다는 장벽과 매임의 장벽입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 멀다는 장벽은 항상 있습니다. 멀다는 의식은 심리적인 장벽일 수 있습니다. 멀다는 의식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자식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멀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교회가 멀다는 의식을 극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매임의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매임들이 주님 앞으로 가는 길을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두 번째 예배에 대한 정의는 드림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올 때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역자들의 장래를 알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교역자가 하나님께 얼마나 드림에 최선을 다하느냐를 보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항상 대접을 받는 일에 익숙해져서 드림에 대한 은혜를 알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잘 받는가 하면 드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사실 드리기 위해서 먼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드림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예배의 기쁨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아들은 부모에게 얻어 가는 아들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드리는 아들입니다. 이웃에 대한 소중함도 이웃에게 얻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품에 있습니다.

성탄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눈다면 성탄절의 의미를 훼손하고 헤치는 사람과, 성탄절 의미를 세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헤롯은 성탄의 의미를 파괴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이 탄생한 마을을 죽음의 마을, 살인의 마을로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동방박사들은 성탄의 의미를 깨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록 속에만 있었던 예수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의 사건으로 깨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도 성탄절을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두 가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 헤롯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중심이 된 사람입니다. 헤롯은 사실 예수님께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와 어떤 악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군인을 보내었고 잔인하게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그 생각과 그 삶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사역하시는 모든 현장에서 드러나는 늘 나타나는 영적 현상이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충성된 사람에 대해서 피해의식을 드러내게 됩니다. 성경은 어둠의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이상하게도 피해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헤롯의 계획대로라면 헤롯과 동방박사는 두 번에 걸쳐서 만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째 만남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만났고 둘째 만남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께 대해서 가르쳐주기 위해서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이 났습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로 알고 심히 노하여 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점점 피해의식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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