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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 / 마 2:1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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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성 경 : 마2 : 1 - 12절
제 목 : 베들레헴 예수

세계 각국의 성탄절의 풍습을 살펴 보면 아주 다양합니다.

1. 영국에서는
영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주로 큰 저택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으며
특히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풍습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독일에서는
독일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장난감 선물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3. 프랑스
비록 법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12월 6일의 성 니콜라스의 날은 동부 프랑스에서 아주 널리 지켜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 날은 아이들에게 선물과 캔디를 주는 행사로 간주되어 점차 성탄절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4.미국에서는
미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사고, 분주했던 생활 가운데서 시간을 내어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합니다.
한해 중 가장 눈에 뜨이게 사랑이 넘치는 계절입니다.

5.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크리스마스는 11월말 대강절의 계절에서부터 시작된다. 교회와 각 가정에서는 대강절 찬송을 부르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세계의 성탄절 풍습 가운데서도 더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이 나라의 성탄절 축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때 집안의 창문이 있는 곳마다 촛불을 켜 놓습니다. 그리고 창을 조금씩 열어둡니다.
이렇게 촛불을 켜서 창을 열어두는 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를 낳기 위하여
마구간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6. 네델란드에서는
산타할아버지가 백말를 타고 오신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때문에
실제로 산타할아버지가 백마를 타고 이집 저집 방문한다고 합니다.

7. 아르헨티나에서는
영상 40도시의 무더운 여름 크리스마스를 맞는데
밤 12시가 되면 온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늘에 축포를 쏘아 올리며 자신의 소원을 함께 올린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러시아 이탈리아 멕시코 필리핀 인도 심지어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나름대로의 성탄절 축제를 가지며 예수 탄생을 기념합니다.
헤롯왕 때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2>
본래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쪽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되었는가?
그리고 멀리 동방 박사들이 먼저 알고 경배하게 되었는가?
두 가지 질문의 답을 통하여 성탄의 귀한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면

1.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배경을 말해 보세요(1절)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는데

1) 역사적으로 보면 눅2:1-에
[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을 하라 하였으니 ]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지배할 때 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식민지 조세를 거두려고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
황제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본적지로 호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북쪽 나사렛에 살고 있었지만 다윗의 혈통인 유다지파였기 때문에
고향 베들레헴에 정혼한 마리와와 함께 호적을 하러와서 갔다가 예수님을 탄생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벌써 700여년 전에 선지자 미가를 통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6절은 바로 미가5:2절의 인용으로서
[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한
바로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친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간 것은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면 로마 황제의 영이지만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구속사를 이루어 나가는데 필요하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당신의 뜻대로 돌리신다는 사실을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사를 이룩하시기 위해
로마의 시저도 들어 쓰시고
멀리 페르샤의 박사들도 움직이게 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동방박사들은 멀리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 별을 보고
[ 이건 분명히 새 왕이 나타났다는 징조다 ] 라고 믿고
수 만리 길을 걸어와 유대 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탄의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동방은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란, 이라크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박사라는 칭호는 (magi)라 해서
페르시아와 갈대아 사람들이 천문학자와 현인들에게 붙여주는 것인데, 이 칭호가 페르시아에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가 드린 예물이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다고 해서
세 사람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확히 몇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별에 대해서도 많은 설이 있습니다만
별이 움직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별을 움직여 그가 메시야 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 즉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도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이 되자면
별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들 별의 인도를 따라 유대 땅 까지 왔지만
깜박 자신들 생각에 왕으로 나신이 같으면 궁궐에 있겠지 하고
예루살렘 궁궐로 찾아갔을 때 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궐에 찾아가 헤롯 왕에게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함이 없는 성탄은
항상 마음을 높은데 두는 성탄이 되고 맙니다.
예수를 믿더라도 말구유에 오신 예수가 아니라
궁궐에 오신 수퍼 스타 예수로
자신의 야망을 이룩하는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마음으로 경배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동방박사들의 방문 소식을 들은 헤롯 왕과 예루살렘 군중들은
이 소문을 듣고 소동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성탄절이 되면 온 나라가 소동하고 온 세상이 소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성탄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신론 국가인 일본에서도 대다수가 범신론 내지 무신론자로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화려하게 성탄절을 준비하며, 즐깁니다.
일본의 기업가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성탄절을 취급하며
그리고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흥청거리며 놀 수 있는 날”쯤으로 성탄절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처럼 안타까운 일은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인 것입니다

온 예루살렘 군중들이 소동을 하는 가운데
헤롯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 나겠느뇨? 하고 물었습니다.

본래 서기관들은 성경에 정통이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이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선지자의 기록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고는 미가5:2절을 인용합니다.
[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라라 ]
예수님은 베들레헴 땅 그것도 여관의 빈방이 없어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남에 대해
예수님의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미5:2절에는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 합니다.
베들레헴은 본래 에브라다라고 불리워진 곳인데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지 아니하시고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 났습니다.
이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별의 인도함을 받다가도 순간적으로 왕이 태어났으면
예루살렘 왕궁에서 태어났겠지 하고
예루살렘 헤롯 궁으로 찻아간 박사들의
그러나 그곳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별을 따라 머무는 곳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영이 없으면 우리는 왕궁에 살기를 원하고 왕궁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우리를 왕궁에 있도록 하지 않으시고
작은 마을 베들레헴 낮고 천한 마굿간으로 인도하십니다.
유럽 교회에 가보면 교회의 웅장함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5>
그런데 성탄절이 되면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 마굿간이 세워지고
어머니 마리아 앞에 아기 예수님을 눕히고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는 셋트가 마련됩니다.
그 셋트가 실물크기로 만들어 졌으나 교회 건물이 하도 커서
돋보여야 할 말구유 예수가
한쪽 구석 휴지통같이 너무 초라하게 놓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교인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교회란 말구유 사건 위에 세워진 교회인데
어느 듯 교회가 말구유 사건을 축소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점 더 우리의 마음 속에 부각되는 것은
말구유의 예수가 아니라 궁궐 안에 있는 예수요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과 쾌락의 예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만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가장 잊혀진 남자 - 예수라는 말이 있듯이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이 없는 성탄이 세상을 요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오강남>이란 교수가
서울에 있는 현암출판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발간하여 근간 한국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책이 초판 제1쇄가 발행된 몇 달 만에 13쇄가 발간 됐고
총 45000부 정도가 팔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못 읽어 보았습니다만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이 들어요.
오강남 교수가 어릴 때부터 교회 출석한 교인이요
지금도 자신은 크리스챤이라고 말합니다만
[ 그래 눈이 뜨여진 사람은 볼 것이고 눈이 안 뜨여진 사람은 못 볼 것이고 ]
못 보면 없다 할 것이고 보면 있다 할 것이고, 그렇죠?
그런데 이 책에 대한 파문이 커지니 조금 양보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 역사적 예수는 있지만 현대교회가 가르치는 예수는 없다 ]
이건 좀 생각해 볼 말이 아니겠습니까?
성탄은 있지만 예수가 없는 성탄
성탄은 있지만 예수의 성육신의 삶의 본이 없는 성탄
이런 면에서 예수가 없다는 도전에 할 말이 없는 교회인 것입니다.

내일의 가족 여러분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이 있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의 탄생이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궁궐에 앉아 있는 헤롯 왕 같은 사람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내려 올 줄 모르는 사람은
예수의 탄생이 반갑잖은 스캔들로 듣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의 헤롯의 반응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6>
헤롯 왕은 서기관들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가 언제인가? 라고 물으며
아기를 만나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아기를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헤롯의 꿍꿍이셈이 있습니다.
결국은 헤롯왕은 박사들이 천사들의 지시로 고국으로 말없이 떠난 후 베들레헴 지경 내에 있는 두 살이하의 어린아이를 다 죽이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럽니다.
항상 자기가 왕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애매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야만 하는 비극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척한 마음에는 사탄이 자리를 잡습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최고의 자리와 최고의 쾌락을 약속합니다만
그러나 결과는 실망과 파괴요 죽음이요 멸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 마음에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낮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을 주 앞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지체장애우 시인 송명희를 잘 압니다.
그가 21살이 되던 1984년 8월 16일 극동방송에 가서 대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사장 유관지 목사는 간증을 듣고 눈물을 적시면서
[ 소원이 무엇이냐? ] 고 물으니
[ 노트에 써 놓은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소원이라 ] 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1985년 5월 규장출판사 여운학 장로의 도움으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왼손으로 몽당연필로 쓴 원고지 열 권 분량의 시와
왼손으로 몽당 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표지로 한
송명희 시인의 시집 3권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너무 행복해서 울었습니다.
책만 봐도 눈물겹도록 기쁘고 감사한데 원고료로 백만 원이 주어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번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송명희씨의 집은 전세금 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송명희씨는 원고료가 나왔을 때
휠체어도 사고 전동타자기고 사고 빚도 갚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원고료 전부를 봉투째 자기가 교회로 삼고 있던
극동방송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 헌금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7>
자신들의 탐욕을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작가 고무송씨가
“명희양에게 전동타자기를 주옵소서”란 제목의 기사를 「빛과 소금」지에 싣자
이름 모를 독자가 그에게 전동타자기를 생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듬해인 1986년부터 하용조 목사가 기증한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극동방송의 임경섭 부사장이 송명희 시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극동방송에 맡겨
미국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송명희씨와 어머니는 당황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요.”
송명희씨는 놀란 토끼처럼 가슴이 뛰고 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송명희씨는 순간적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를 했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임경섭 장로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송명희씨를 덥석 껴 안았습니다. 후에 임경섭 장로는 극동방송에서 설교를 하면서
송명희 시인에 대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명희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
나는 사지 육체 멀쩡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원망 불평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방송을 듣던 송명희씨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슨 대단한 말도 아닌데 저 야단이지! 나는 그냥 할 말을 했을 뿐인데 ]

저는 송명희 시인의 복음송 가사가 기억납니다.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별을 인도함을 다시 받은 동방박사들은 별이 멈추는 곳에 머물러
그 집에 들어가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준비해 간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왕의 왕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8>
황금은 성경에서 황금은 창세기 2장 11,12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지만 인간사에 항상 보물로 여겨 왔으며 권세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유향은 매우 향기로운 것으로 성전의 제사를 위한 향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라비아의 한 나무에서 얻은 수액을 증류해서 만든 것입니다.
몰약은 거의 아라비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낮은 가시나무에서 추출되는 귀중한 것으로 좋은 연고를 만드는 중요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23절에서는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세 가지의 예물이 상징하는 바는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바로 아기 예수가 만왕의 왕임을 뜻하는 예물입니다.
유황을 드렸다는 것은
제사장 직을 상징하는 예물입니다.
몰약을 드렸다는 것은
선지자직을 상징하는 예물입니다.
즉 예수가 메시야인 것을 상징하는 예물입니다.
본래 히브리 말로 메시야는 헬라말로 그리스도란 말로서 그 뜻은 기름부으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보면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에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메시야로서
그 분은 만왕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대 제사장으로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며 선지자로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 경배하되
예수가 우리의 메시야라는 신앙의 고백 위에 드려지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신앙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아이가 열 살이 넘었을 때 아내를 잃었습니다.
상심이 컸던 그는 아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을 수집하여
그 슬픔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되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언에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경매에 부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대단한 것들이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들이 예상대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술품들은 경매 전에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9>
그것은 지방의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 내 사랑하는 아들 >이라는 제목의 보잘것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경매에 붙여진 것은 바로 그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무도 입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림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변호사는 경매를 중지시킨
다음 큰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 누구든지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이가 모든 소장품을 가질 것입니다. 이 그림을 선택한다면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줄 믿습니다.

자신들의 보물을 주께 드릴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동방박사들이 예물처험
오늘 나는 주님께 드릴 최대의 성탄의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 구유에 탄생했을 때
제일 먼저 예물을 드린 사람은 동방에서 온 세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아니 온 인류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네 번째 박사 <알타반>이 있습니다. 본래 동방에 박사 네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카스파(Caspar), 멜키오(Melchior) 발사살(Balthazar) 그리고 알타반(Artaban)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재산이 많은 부자들이었고 학문이 많은 박사들이었고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연구하면서 메시야가 태어날 때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태어날 때
새로운 하나의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별이 나타나면 네 사람이 10일 후 한 곳에 모여서
각기 준비한 보물을 가지고 유대 예루살렘으로 가서
새로 태어난 메시야께 경배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재산을 다 팔아 사파이어와 루비와 진주를 사 가지고 <10>
밤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캄캄한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흥분한 알타반 박사는 머리 숙여 감사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 별이다. 왕이 오셨다. 나는 왕께 경배하러 가야 한다."
알타반 박사는 가장 빠른 말에다 안장을 얹고 말 위에 올라
약속 장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열흘 동안 달려서 바벨론 교외 어느 약속 장소에 거의 이르게 되었을 때
길가에 쓰러진 불쌍한 병자를 만나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빵과 포도주와 여비를 모두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박사들이 편지를 남기고 떠난 후 였습니다.
" 기다리다 떠납니다. 우리 뒤를 따라 사막을 건너 오십시오 "
알타반 박사는 너무 기가 막혀 땅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 음식도 포도주도 약초도 여비도 없이
지친 말을 타고 어떻게 사막을 건넌단 말인가?" 한숨을 쉬면서
알타반 박사는 바벨론 도시로 돌아가 왕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사파이어 보석을 팔아 낙타와 음식과 여비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유대를 향해 먼 사막 길을 떠났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동방 박사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베들레헴 거리는 음산하고 삭막했습니다.
헤롯의 군인들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잡으려 집집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대문이 열려 있는 어느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알타반 박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삼일 전에 동방에서 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에 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고 다시 동방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 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왕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모다 잡아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밖에서 군인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아기를 안은 그 여인은 온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군인에게 커다란 루비 보석을 쥐어 주었을 때
군인 장교는 이 집에는 아기가 없다고 하면 돌아서 갔습니다.
그때 알타반 박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오, 하나님이시여,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
왕께 드릴 보석을 사람을 위해 또 썼습니다. 내가 왕의 얼굴을 볼 자격이 있습니까? "
알타반 박사는 다시 왕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먼 길을 떠났습니다. <11>
애굽의 곳곳을 찾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랍비를 찾아가서 물으니
" 메시야는 부자들 가운데 있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있을 것 " 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알타반 박사는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과 노예 시장을 찾았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왕을 찾기 위해서 집을 나선지가 어느덧 33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 있을
그의 왕 메시아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었습니다.
결국 알타반 박사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유월절 절기 때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 가를 향해 떼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 우리는 지금 처형 장면을 구경하려고 성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갑니다. 강도 두 사람이 처형을 당하고 그 가운데서
나사렛의 예수가 처형을 당하지요.
나사렛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했지만
우리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 사람의 말이 알타반의 가슴에 천둥처럼 들려왔습니다.
" 왕이 처형을 당하다니!
나는 이제라도 왕을 뵈어야 한다. 나는 이제 왕을 구해야 한다.
하나 남은 보석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의 왕을 구해야 한다."
알타반은 군중들과 함께 골고다 언덕을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군인들이 한 젊은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타반이 잠시 서서 그 여자를 바라보았을 때
그 여자는 군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알타반 박사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 할아버지 저 좀 살려 주세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저는 지금 노예로 팔려가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알타반 박사는 또 한번 영혼의 고뇌를 경험하며 떨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손에 진주를 꼭 쥐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딸아, 이것이 네 몸 값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보석이다."
알타반은 무너진 성벽에 기대어 기진 맥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알타반의 인생 여정은 마지막 종점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왕을 만나려던 그의 한 평생의 추구는 이제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알타반은 신음하듯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 하나님, 용서하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바로 그때 저녁 노을의 하늘로부터 고요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알타반아! 알타반아!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12>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너는 나를 만났고 나를 도와주었고 나를 섬겼노라."
알타반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긴 평안의 숨을 쉬고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인생 여정은 끝났습니다.
왕을 위해서 준비된 그의 보물들은 왕께 기쁘게 열납되었습니다.
결국 네 번째 동방의 박사는 왕을 만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왕을 만났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영원에서도
그의 왕을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만났습니다.

오늘 나는 주님께 드릴 최대의 선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의미 있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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