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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창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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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 3:15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창세기 3장은 철저하게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사단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인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던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뱀을 통하여 인간을 유혹하려는 사단의 술책은 아주 교묘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인 고로 뱀은 먼저 여자인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미혹하였습니다. 사단의 도구인 뱀의 미혹에 넘어간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와는 대조적으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지극히 작은 명령조차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먼저 엄히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 책망은 매우 준엄했지만 깊은 사랑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아담의 답변을 보면 그는 모든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에 대한 책임을 하와와 하나님께 돌린 데 비해 하와는 그것을 뱀에게 돌렸습니다.

범죄의 결과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것은 수치심이었습니다.

아담은 스스로 '벗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범죄 이전까지는 벗었지만 벗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범죄로 말미암아 벗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수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오염된 인간은 바야흐로 수치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없었던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에 부끄러움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범죄한 아담에게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범죄가 자신에게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두려움은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은 인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왜소하게 만들어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두루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두려워 떠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창3:1-5). 이 때 무거운 침묵을 깨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소망의 내용이 담겨져 타락한 인간에게 들려 왔습니다.

이겼다고 의기양양한 사탄의 조소 앞에 하나님께서는 인생 구원의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실패로 절망에 잠겨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종국에는 믿음으로 일어서면 승리할 것을 약속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고 합니다. 절망의 소리가 들려온다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 12:3)고 합니다.

실패자 아담과 하와에게 들려오는 소망의 예언이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세주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신다는 놀라운 사건을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남자의 씨로 태어난 남자의 후손이지만 그리스도만은 남자의 씨가 아닌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으로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여자의 후손'이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로 구체화됨을 보게 되며, 그 이름까지도 예언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여자의 후손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4:4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성취의 초자연적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27,30,31)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2000년 전에 주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선포된 이 후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서 많은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300여회가 넘도록 선포되었습니다.

  피터스트너 박사는 8가지 사건이 한사람에게 우연의 일치로 성취될 가능성을 수학의 확률원리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만일 대머리가 10명 중에 하나있고, 손가락 하나 없는 사람은1,000명중에 하나, 그리고 눈먼 사람은 10,000명중에 하나로 칠 때, 동일인이 손가락을 짤리고, 대머리에 소경이라면 그 확율은 이 셋을 곱한 수치가 됩니다. 이런 계산으로 8가지의 조건이 동일인에게 우연히 성취될 가능성은 남북한을 합친 우리나라 영토의 3배나 되는 텍사스 주에 은화를 약 60센치의 높이로 깔아놓고 그 중에서 어떤 표를 해 놓은 단 하나의 은화를 단 한번에 집어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350여 개 예언의 일치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신적인 역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며 그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심으로 온전하게 이루어 진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는 이 세상에 오실 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에 의해 여자에게 잉태되어 여자의 후손으로[seed] 오시도록 하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며 그는 창세기 3장에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 1:18)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고 합니다.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는 말씀은 여인의 몸을 빌려서 어떻게 오느냐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심에 있어서 처녀 잉태의 방법을 취하신 데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메시야가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원죄와 상관없이 출생하는 흠 없는 제물(출12:5;29:1;레1:3;민6:14;겔43:22)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눅1:35)입니다.

유일한 초자연적 출생자인 '독생자'(요1:14)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마1:23)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신인 양성을 취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대제사장'(히6:20)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19:6)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결혼을 앞둔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이 처녀에게 하나님의 예언이(창3:15사7:14) 임했는데, 성취되는 방법은 초자연적으로 임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은총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입니다.


윌버 채프맨이 대학생이었을 때 무디 선생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날도 구원에 대해서 말씀이 증거되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채프맨이 무디를 찾아 왔습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거듭남의 확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하자, "저는 믿기는 믿는데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디는 요5:24을 말씀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채프맨에게 이를 믿느냐고 하니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하니 "글쎄요"했습니다. 무디가 한번 더 읽으라고했습니다.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 "당신은 이제 믿습니까 ?" "제가 믿는다고 여러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글쎄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이때 무디가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께서 믿는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그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러면 나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하는 무디의 말에 채프맨은 자신이 여지껏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학 공부를하고 . D. L.무디가 은퇴했을 때  그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채프만은 한국에도 다녀갔는데 그는 그 깨달음 후에 전 세계에 다니며 요한복음5:24절을 주로 설교했다고 합니다.

요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따르리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구원자로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4:4,5)라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범죄치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 후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요3:16;눅19:10;갈4:4;히2:14).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것도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죄의 오염으로부터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라고 합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입은 모습이었으나, 죄를 이기는(히9:14)권세로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인생을 구원하며,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사 구원하셨습니다(마28:2-6;요10:30).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합니다.

인간의 생리적인 현상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었으며, 출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끊이지 아니했으며(창49:10단9:25마2:1눅2:1갈4:4), 사탄은 그의 탄생을 방해하였습니다(마2:16-18마2:23).

또한 예수의 공생애의 사역은 많은 부분이 귀신의 세력을 제어하는 승리의 사역이었으며(히2:14요일3:8), 종국에는 십자가상에서 예언의 성취를 위해 죽으시고(요17:4), 사탄의 최후 보루인 무덤을 깨치고 부활(마28:5,7요20:20행1:3) 승천하셔서 사탄의 머리를 상케 하심으로 예언의 성취를 이루신 것입니다.

여자의 씨가 우리를 위하여 죄와 저주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상하게 하려는 '마귀의 도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도전은 '십자가에서의 못 박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발꿈치 부분, 다시 말하면 인간의 어두운 속성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친히 맛보셔야 했습니다. 사탄의 도전을 '발꿈치'에 한정한 것은 그의 도전과 그리스도의 고난이 결정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시적인 사건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질고를 대신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손과 발에 못 박히셨을 뿐만 아니라 멸시와 천대와 영혼의 극심한 슬픔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면 서도 이미 사탄을 깨뜨리셨고, 상처받은 발꿈치를 가지고도 상처를 준 뱀의 머리를 짓밟으신 것입니다.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하는데 '머리'라는 말로써 그리스도께서 사탄과의 최후적 싸움에서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사탄과 맞부딪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시편 기자에 의해 예언되었습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 91:13)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는 바울 사도의 증거로 그 의미가 명확해졌습니다.

따라서 이런 궁극적인 승리로 '사탄은 떨어지고'(눅 10:18), '결박을 당하여'(계 20:2), 마지막 심판 때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던져집니다'(계 20:10).


  그러므로 그를 대적하면 그는 우리를 피할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우리는 이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면서 성숙한 크리스천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 그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자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동역자입니다. 때문에 사탄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 관심을 가지며 별수단을 다 동원하여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세상 것과, 육신의 정욕과, 사탄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탄의 머리가 이미 깨졌다는 믿음으로 사탄을 대적해야 하겠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평화로 기쁜 구원의 소식을 주시는 메시야 이십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한밤중에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서로 총을 겨눈 채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오면서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양 진영은 상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양군은 갑자기 총격을 멈추고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양 진영의 중간지점에서 한 어린이가 한가롭게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들판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그 어린이의 미소에 취해 도저히 사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이의 해맑은 웃음이 잠시 싸움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그 미소가 전장에 평화를 선물했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오신 한 어린이가 있습니다. 2000년 전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이십니다. 예수의 탄생은 전 인류를 위한 축하전보였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죄악에서 영원히 해방시킨 새 생명의 선언이었습니다.(예수의 탄생은 전 인류를 위한 축하전보-임한창 -인터넷 정보클럽)

하나님께 영광이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 주시는 메시야는 여인의 후손으로 예언대로 성령으로 잉태하여 구원주로 오시었습니다. 이 사실을 바로 믿고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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