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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 1:9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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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 : 9 - 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태초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그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이 땅에 기초가 놓일 때 그는 이미 계셨습니다. 욥기서에 보면 그가 이 세상에 주초를 놓을 때 천사들은 노래하며 기뻐 소리쳤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세 전부터 스스로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찾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늘의 모든 천사가 기뻐 소리칠만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이 땅이 우리의 땅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땅을 우리 땅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 땅을 만들기 위하여 쉴 사이 없이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땅을 하나님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땅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무엄하게도 영접지 아니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서 많은 부를 누리고 있던 이른바 기득권자들이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부자들의 행위를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차라리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나사렛 동네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하늘 보좌의 영광을 가지고 오셨더라면 이 땅에서도 부자들과 군왕들이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상대가 되지 않으시려고 아예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탄이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을 때 당시 이 세상에서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목자들이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안나와 시므온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주 무시당하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성탄은 바로 이들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면 큰일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자기 자신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는 그런 사람들만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Ⅰ. 예수를 주님(왕)으로 영접해 야 합니다.

본문 1장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자기』라는 소유 대명사가 두 번 씌여지고 있음을 봅니다. "자기의 땅" 또는 "자기의 집" 과 "자기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십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땅이며 자기 집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이 세상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찾아왔으나 그러나 자기 백성들은 영접해 주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암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미워하므로 언덕에서 떠밀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까지 했습니다.

또 자기 백성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를 때려서 사람들로부터 이른바 측은지심을 유발하게 하여 놓아 주려고 하는 빌라도 앞에 몰려들어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절을 당하고, 상함을 입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했다는 말을 심각하게 들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의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매일 매일 우리들의 마음 밖에 계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문을 열고 그를 영접하는 자는 그와 함께 먹으며 그가 주시는 영광을 볼 것입니다.

Ⅱ. 예수를 겸손하게 영접해야 합 니다.

본문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이라고 했습니다.
『영접하는 자』는 그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란 자기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곧 겸손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탄은 겸손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매우 특징적인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한 가지 포기해 버려야 될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부와 명예는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한 가지, 나 밖에 없다는 교만만은 포기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진 건강, 지식, 재산 등 이런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인정할 수만 있다면 그는 곧 겸손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아니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욕심이 생기지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가진 것을 선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자기 땅에 보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하면 나귀새끼를 풀어 내 놓아야 합니다(마 21:3).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때 평화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항상 교만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시끄럽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영접하려면 아주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 땅에 오신 것임을 인정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내 자신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올바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Ⅲ. 예수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 영접해야 합니다.

본문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권세』(엨수시아, ) 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절대 권능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눅 12:5; 골 1:13).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권한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마 28:18; 막 2:10; 눅 4:26).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러한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롬 8:17; 엡 3:6). 또한 이미 죄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후사로서 자격증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I.D 카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한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격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장 14절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영광 중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자는 앞서가신 예수님처럼 이런 영광에 동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왕을 영접할 줄 모르는 성탄절이 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분주합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쇼핑마스' 라고 하는 웃지못할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지켜야할 성탄절이 사람들의 감정을 만족시키기에 급급한 성탄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성탄절이 연말 분위기와 영합하여 퇴폐적이고 타락한 성탄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탄절에 대한 의미상실의 작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분노해야 합니다.
성탄은 이 땅을 거룩하게 하는 새 창조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왕궁에서 나셨다면 우리와 얼마나 거리가 멀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시골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 내놓을 만한 가문도 못되는 집안의 시골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오셨습니다. 그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오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교회가 인간 중심으로 흐르면 안됩니다.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직분을 허락한 것은 사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 예수가 지배하는 나라를 찾게하는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이지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달라고 교회 앞에 애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는 인본주의 목회를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구걸목회나 배려 목회를 하지 아니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헌금관 하나만 보더라도 적당하게 드리라는 말이 없습니다.
예컨데 ① 우리가 맡은 거액의 연보(고후 8:20) ② 극한 가난 속에 드리는 풍성한 연보(고후 8:2) ③ 넘치는 연보(고후 8:2) ④ 너그럽게한 연보(고후 9:11) ⑤ 약속한 연보(고후 9:6), 마침내는 자신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⑥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⑦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⑧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라(롬 6:13) ⑨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롬6:13) ⑩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했습니다. 성탄절이 왔다고 하여 기독교인들이 이 기간 동안에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퇴색했던 성탄의 의미를 다시 찾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별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가장 정상적인 신앙인이 되고자 몸부림 치는 것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람으로서 가진 기본 욕구 중에는 안정, 안전의 욕구가 있고 공포탈강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타당한 욕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마저도 이 세상은 인간에게 제공해 주지 못합니다. 제발 속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안정과 공포로부터의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될 때에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축복조차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마땅히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정상적인 교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정상적인 교제는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성립시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바로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와의 바른 관계로 등식화됩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인간은 참 평화와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제와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선물을 받은 날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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