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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으로 자기 목자를 삼으면 / 시 23: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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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 자기 목자를 삼으면.
시 23 : 1 - 6

많은 사람들이 요즘 참 살기가 어렵다는 말들을 합니다. 정치도 혼란스럽고 경제도 IMF 때 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참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이제 오십이 조금 넘은 나이이지만 지난 오십 여 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있어서 지금 보다 더 좋아서 살기 좋았던 때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과거와 비교하면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좋아졌는데 사람들은 왜 밤낮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만 하는지 저는 정말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김 목사는 큰 교회의 목사여서 별로 힘든 일이 없어서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실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저는 꼭 그렇다고만 생각되지 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세상과 세월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힘들고 어려웠었습니다. 요즘 정치판이 이러니저러니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옛날 보다 많이 좋아진 정치판 아닙니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대통령의 측근이 대통령 취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감옥으로 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땡하고 뉴스가 시작되면 대통령을 미화하고 부추키는 홍보성 뉴스가 모든 방송에서 나왔었는데 요즘은 땡하고 뉴스가 시작되면 곤혹스러운 대통령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저는 참 좋습니다.(?)

저는 요즘 대통령 조금 마음에 안 듭니다. 말 잘하시는 대통령을 뽑아 놓았더니 너무 말이 앞서서 말에 실수가 많은 것이 저는 좀 불만입니다. 다음엔 입이 좀 무거운 대통령을 뽑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사견이지만 지금 대통령이 전의 대통령들 보다는 좋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은 좀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정치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후진국 중의 후진국형의 독재정치였습니다. 한번도 여당과 야당이 뒤 바뀐 적이 없는 말 그대로 후진국 형 정치를 하는 중에 하나였습니다. 여당보다 야당이 절대로 클 수 없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슬슬 여당과 야당이 바뀌기도 하고 여당보다 야당이 커지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나라 정치에 대하여 혹독한 비판만 하는지 저는 좀 둔해서 그런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제가 나쁘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그와 같은 생각과 이야기의 기준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제는 참으로 많이 발전을 하였는데 왜 우리들은 한번도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들을 하지 않고 밤낮 경제가 나쁘다는 이야기만 하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저는 정말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이야기대로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벌써 망해서 지금 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어 있어야만 할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곤층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평균적으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은 한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감사 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일까요? 끊임없이 불평하며, 쉬지 않고 절망만 하며 사는 것일까요? 그러면 쉬지 않고 불행하고 끊임없이 불편할 터인데 왜 사람들은 감사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쉬임없이 불평하고 원망만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사람들은 언제쯤 만족할까요? 도대체 우리들은 언제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고 별것 아닌 것에도 만족하며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늘 자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정치는 좋아질까요? 물론 좋아질 것이고 좋아지면 좋겠지만 정치가 좋아지면 과연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될까요? 경제는 좋아질까요? 물론 좋아질 것이고 또 좋아지면 물론 좋겠지만 도대체 국민소득은 몇 불이나 되어야 되는 걸까요?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민소득 2만 불이 되면 과연 잘 살게 될까요?

사람들은 삶의 희망을 정치와 경제에 걸지만, 물론 정치와 경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 중에 훌륭한 정치가와 경제인이 나와야 한다고 굳게 믿고 늘 기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삶의 희망을 정치와 경제에 걸지 않습니다.

다윗의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의 시편에서 쓴 표현들은 세상 사람들이 좀처럼 쓰지 않고, 쓰지 못하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 ‘나의 삶은 꼭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누운 것과 같이 풍족하고 평안하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도 해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밤낮 나를 좋은 길로만 인도 하신다’ ‘하나님은 꼭 원수 앞에서 상을 베풀어 주신다’ ‘내 삶은 부족함이 없는 삶 정도가 아니라 철철 넘치는 삶이다’

왜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다윗을 그렇게 살 수 있게 하였던 것일까요? 정치적으로 왕의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요? 돈이 많아서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어서 그랬을까요?

그랬다면 다윗의 시편 23편 1절이 달라졌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내가 왕이 되어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고 보니’라던가, 아니면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소유하게 되고 보니’라고 써야 옳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삶을 살았던 다윗의 시편 23편 1절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시편 23편 1절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간단하지만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말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의 목자를 삼았더니 ‘부족함이 없더라’ ‘나의 삶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있는 것 같이 늘 풍족하고 평안해 지더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도 하나도 겁 안 나더라’ ‘언제나 가보면 좋은 길이더라, 옳은 길이더라’ ‘삶의 잔이 언제나 넘치더라’는 것이 다윗의 시편 23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두 세 사람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입니다. 택시를 타도 우리나라 택시 기사들은 대개 정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니어서 마치 정치 평론가 같습니다. 음식점엘 가도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옆에서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사 장로가 모여도 몇 분만 지나면 다 정치 이야기들을 대개 합니다.

정치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나 경제는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여호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셔야만 합니다.

저는 다윗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제 마음 속에도 다윗과 똑같은 감사가 있고, 똑같은 만족이 있고, 똑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 마음 속에 다윗과 똑같은 감사와 만족과 고백이 있는 원인도 똑 같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저는 상고출신입니다. 대학도 낙방했던 사람입니다. 신학교가 늘 미달일 때 겨우 신학대학엘 들어간 사람입니다. 집안도 명문 집안이 아닙니다. 성격도 지나치도록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때문에 세상적인 면에서의 인간관계가 아주 서툰 사람입니다. 세상 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에도 도저히 성공할 수 없고 조금 과장한다면 살아남기 조차 쉽지 않은 그런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삶도 다윗과 비슷하게 ‘별로 부족한 게 없습니다’ ‘정말로 저의 삶도 푸른초장에 있는 것처럼 풍성하고 쉴만한 물가에 있는 것처럼 평안합니다’ ‘때때로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지만 걱정이 안 됩니다’ ‘지나놓고 보면 언제나 좋은 길로만 왔습니다’ ‘제 삶도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넘칩니다’

저는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고, 집안도 썩 좋지 못하고, 성격도 활달하지 못했지만, 대표적인 못난이었지만 하나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을 좋아하고 교회 다니는 것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벌고 인간관계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알고 있는데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정말 교회가 좋았습니다. 저는 교회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었습니다. 청량리 중앙교회는 산비탈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비가 좀 많이 왔다 싶으면 교회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물 때문에 패이곤 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교회 걱정이 되어 학교 가기 전 가방을 끼고 새벽기도회에 갔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교회 마당의 흙을 퍼서 교회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메우곤 했었습니다. 청량리 중앙교회 마당은 평지가 아니었습니다. 교회 마당이 2층처럼 높고 낮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교회 마당은 평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잘 안 믿으시겠지만 그것은 저와 제 친구들이 비만 오면 새벽에 와서 그 흙을 파서 길을 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저는 교회가 좋았습니다. 저는 정말 교회를 사랑했었습니다. 제가 지금 받고 있는 복 중에 상당 부분은 제가 교회를 좋아하고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늘 마음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듣는 중에 은혜를 받을 줄 알았고 찬송을 부르는 중에 은혜를 받을 줄 알았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받으면 그 말씀대로 정말 살고 싶었습니다. 순종하고 싶었고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말씀대로 다 산 것은 아니지만, 살지 못하고 산 것이 훨씬 더 많았지만, 순종하고 싶었고 실천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비교적 좋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어느 정도 저축도 하고 관리도 할 것이지만 저는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갈 작정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후한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면에 있어서 아내가 저보다 한 수 윕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별로 어려움도 문제도 없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한번도 이견을 가져 본적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돈에 대하여 저는 분명한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에 대하여 언제나 하나님이 저보다 빠르시고 후하시다는 것입니다. 한번도 돈에 대하여 하나님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좀 미련한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오해 받을 만한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저희 아내는 학교 교사였습니다. 아내가 시집을 와서 학교에서 받아 온 월급을 집에 내 놓았을 때 그 돈은 그 동안 저의 집이 매달 생활비로 쓰는 돈에 약 3배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의 월급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 아니고 저희가 그만큼 가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넉넉해 진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적금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금 둘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가정을 위한 적금,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 목돈 헌금을 해보기 위한 적금이었습니다. 돈이 조금 넉넉해 졌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목돈을 하나님께 헌금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대로 했습니다. 3년 적금을 들어 그것을 하나님께 목돈으로 드려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껏 교회를 섬길 때마다 거의 한번도 빼놓지 않고 건축헌금을 해야만 했습니다. 건축헌금을 하는 것이 무슨 팔자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승동교회에서 교회부지를 넓히기 위하여 작정 헌금을 했을 때 저와 제 아내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집에 있는 돈을 다 털고 하다못해 아이들 돌 반지까지 다 팔아 헌금한 후 은행에서 2년 정도는 열심히 갚아야 할 만큼의 돈을 융자받아 건축 헌금을 하였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제가 헌금을 작정한 것을 보고 당신들이 작정하려고 했던 것의 두 배를 헌금하시는 바람에 목표액을 단번에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영락교회에서도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축헌금을 하였는데 얼마 안 되었지만 작정한 헌금 외에 퇴직금까지 고스란히 헌금하고 동안교회로 왔습니다. 동안교회에 오자마자 동안교회 건축을 위하여 3년 짜리 적금을 들었습니다. 그 적금을 타서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내어 놓으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건축헌금 작정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드릴 때 저도 또 다시 3년 적금을 들어 헌금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건축헌금을 다 드렸을 즈음 한 번 더 건축헌금을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열심히 했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간증 하나를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건축헌금을 드릴 때 꼭 건축헌금으로 드린만큼의 액수가 제 통장에 또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엘리사의 기름병과 같았습니다. 동안교회에서 건축헌금을 하면서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책들이 제법 팔리기 시작하면서 인세가 적지 않게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 전 까지는 제가 헌금으로 하나님을 추월(?)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언제나 저를 물질적으로 앞서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제 연봉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높은 뜻 숭의교회의 연봉은 제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헌금하며 사는 액수가 그 보다는 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돈에 대한 제 철학과 신앙에 대하여 비판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은 제 철학과 신학일 뿐 정작 돈 그 자체에 대하여 이제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엘리사의 기름병을 체험한 사람에게 기름병의 기름은 별로 중요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단 돈 뿐 아니라 가정생활의 모든 것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간증하고 싶습니다. ‘정말 부족함을 모르겠습니다’ ‘정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과 같은 때가 있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겁이 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옳은 길로 좋은 길로만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 삶도 부족함이 없는 삶이 아니라 넘치는 삶입니다’

공부를 잘 한 적도 없고, 남달리 유능한 것도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지극히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달리 교회 다니는 것 좋아하고, 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좋아하고 부족하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해 보려고 노력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헌금하고 드리는 것 조금 열심히 한 것 뿐인데 거의 다윗이 받았던 복을 저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정말 다윗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자신의 목자를 삼으면, 정말로 하나님과 교회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고백을 하실 수 있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시편 23편이 다윗의 시편이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윗의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다윗과 똑같은 복을 주셔서 시편 23편이 다윗의 시편일 뿐만 아니라 오늘은 나의 시편도 되기 때문에 저는 좋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시편 23편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시편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를 믿는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정치에 너무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경제에 너무 희망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아지면 좋겠지만 좋아진다고 꼭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 좋아져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말짱 헛일입니다. 혹 좀 세상 힘들고 어려워져도 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아지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경히 여기며 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만족주지 못할 세상에만 정신을 팔며 사는 것이 속상합니다. 벌써 2003년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2004년 새해에는 좀더 하나님께 정신을 팔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으로 자신의 목자를 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양과 같이 순종하며 사는 한해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시편 23편의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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