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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아 2:10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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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 : 10 - 14

아가서에 대한 학자들의 논란은 어리석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가서를 단순한 인간의 연정을 노래한 탁월한 시집이라고 생각하고, 아가서에 대한 정경성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통적인 성경학자들은 아가서에 대한 정경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미쉬나 혹은 미슈드라 같은 구절에서까지 아가서는 성경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책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가서에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사랑 노래를 비유한 것임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었던 솔로몬 왕과 보잘 것 없는 시골 여자 술람미 여인과의 열렬한 애정을 노래한 서정시입니다.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 왕의 애절한 초청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된 오늘의 교회를 향한 은혜와 축복의 초청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된 교회, 곧 그리스도인을 부르는 초청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사랑해서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게달의 장막 같이 검고 못생긴 여자를 솔로몬은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술람미 여인은 군왕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실 것이 있다면 사망의 형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진심으로 초청하고 있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죄인들을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Ⅰ. 초청의 때는 봄입니다.

본문 2장 11절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라고 했습니다.

1) 겨울이 지나간 때입니다.

본문 2장 11절에 『겨울도 지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겨울은 마타르( )인데 가리움이라는 뜻입니다. 팔레스틴의 겨울은 이른비가 오는 계절이기 때문에 구름이 하늘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겨울 즉 가리워서 어둡게 된 이 어두움은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장 78-79절에 『…돋는 해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라고 했습니다.
요한1서 2장 8-9절에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요한 1서 1장 6절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라고 했습니다.

2) 비가 그친 때입니다.
본문 2장 11절에 『비도 그쳤고』라고 했습니다.
비가 그쳤다는 말은 팔레스틴 지방에 어두운 겨울에 내리는 이른 비가 그치고 봄이 왔다는 말입니다.
비가 그쳤다는 말은 새 날 곧 구원의 날을 의미합니다. 노아에게 비가 그치니 구원의 새 날이 도래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꽃이 피는 때입니다.
본문 2장 12절에 『지면에는 꽃이 피고…』라고 했습니다.
꽃은 그 향기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온 세상에 발합니다. 꽃이 피는 것은 소생하는 증거이자 열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꽃이 피는 계절은 소망과 비젼(vision) 의 계절입니다.

4) 비둘기의 소리가 들리는 때입니다.
본문 2장 12절에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 구나』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합니다. 비둘기가 본격적으로 지면에서 활동하는 것은 봄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계절적인 봄이라기보다는 신부와 신랑이 절정에 달하는 계절이 봄이라' 고 했습니다.(G. Cn. 알러르스)


Ⅱ. 초청의 장소는 동산입니다.

본문 2장 13절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각종 생명체가 저마다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동산입니다.
창세기 2장 8절에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3장 8절에 『왕의 동산』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장 3절에 『물 댄 동산 같겠고』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4장 6절에 『강가의 동산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욥기 8장 16절에 『그 가지가 동산에 뻗어가며』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2장 5절에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4장 9절에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라고 했습니다.
아가서 6장 11절에 『호도 동산』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동산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유하는 잠근 동산이요 봉한 샘이요 생수의 우물입니다(아 4:12).

오늘의 교회는 피곤한 자와 목마른 자를 초청하는 동산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결실하는 십자가의 포도동산입니다(갈 5:23).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기 동산으로 초청하는데 인색하지 아니했습니다(아 5: ;6:1,13)


Ⅲ. 초청의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2장 13절에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했습니다.

1) 술람미 여인의 얼굴을 보기 위함입니다.
본문 2장 14절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고했습니다
여기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세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진리의 교회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원시 아담보다 한 단계 높이 되었습니다(롬 8:31-39).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이십니다(고전 10:4).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비둘기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구원의 소식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창 8:7). 비둘기는 제물용으로 쓰였습니다(레 1:15).
예수님은 전도자를 파송할 때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했습니다(마 10:16). 그렇다면 여기 비둘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성도를 가리킵니다.
여기 얼굴은 사람의 전체뿐만 아니라 인격과 그가 가진 기능까지도 포함합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한 눈과, 신행과 헌신을 상징하는 길르앗 산의 누운 염소 털 같은 머리카락과, 말씀을 먹는 것을 상징하는 고루고루 박힌 이와, 성도의 소망을 상징한 석류 같은 뺨과, 견고한 의지를 상징하는 군기의 망대 같은 목과, 믿음과 소망을 상징하는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은 두 유방을 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술람미 여인의 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본문 2장 14절에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린 부드러운 성도의 소리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중생 받은 성도의 아름다운 얼굴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소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 받은 성도의 인격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주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소리, 회개하는 소리, 전도하는 소리, 찬송하는 소리, 감사하는 소리. 격려하는 소리는 진정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부터 택함 받은 그의 백성만을 초청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만을 위하여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마침내 자기 백성만을 영접하기 위하여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초청하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따라서 초청의 때는 각인에게 언제나 현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초청의 장소는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입니다.
초청의 목적은 우리를 통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받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하는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통해서 성장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변화된 자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위하여(for Christ) 혹은 그리스도 때문에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인이 되어서는 안되고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일꾼이라는 말이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롬 16:1)
새 언약의 일꾼(고후 3:6)
하나님의 일꾼(고후 6:4 ; 롬 13: 6; 살전 3:2)
은혜의 선물을 따라 된 일꾼(엡 3:7)
진실한 일꾼(엡 6:21)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골 1:7)
복음의 일꾼(골 1:23)
교회의 일꾼(골 1:25)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딤전 4:6)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롬 15:16)
그리스도의 일꾼(고전 4:1)
이렇게 일꾼에 대한 성경의 표현은 풍성합니다. 2003년도 연종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갈보리 인으로서의 일꾼의 서약을 굳게 해야 합니다.
갈보리 교회의 3.1.3.1 운동은 갈보리 교회가 받은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갈보리의 World vision 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갈보리 공동체(Calvary Community)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안일하게 앉아 있는 우리의 속과 겉을 일으켜 세웁시다. 그리고 함께 갑시다.
우리만 함께 가면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함께 가는 곳에 주님이 함께 가시니 어디로 가든지 우리는 안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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