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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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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삼상7:12-14
제목: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2003. 12. 2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라는 것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빠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인생이 어떻습니까? 2003년 한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엊그제 이 자리에서 2002년 송구영신을 드린 것 같은데 벌써 한해가 끝났습니다. 정말 빠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또 시간의 특징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으로 반복됩니다. 일주일이 7일로, 한 달은 30일로, 일년은 365일로 반복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반복됩니다. 시간은 반복이요, 그래서 인생도 반복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어제와 같은 사무실이나 집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저녁이 되면 같은 집으로 귀가하여 동일한 잠자리에서 잠을 잡니다. 물론 내일 역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주일이 되면, 지난 주일과 같은 교회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형식의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시간은 반복되고, 인생도 반복됩니다. 인생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마지막 특징은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갑니다. 우리가 종종 시간을 좀 저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때마다 꺼내어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결코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좋은 시간도 좋지 않던 시간도, 슬픈 시간도 기뻤던 시간도, 젊은 시절의 시간도 노인의 시간도,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은 빠르고, 반복되고, 흘러가기에 우리가 우리 인생에 주어진 모든 시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가장 지루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카이로스’입니다. 언젠가 한번 언급한 것처럼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를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기회,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이 어떤 시간보다도 귀하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2003년 마지막주일입니다.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졸업이 또 다른 학업의 시작이고,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듯이, 오늘의 마지막은 새해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03년을 접고, 2004년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하여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격변기에 있었던 어려운 상황이 배경이 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이스라엘은 한때 안정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고, 내부적으로 혼란과 타락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문장이 사사기 마지막장과 사무엘상 3장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것이 당시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질서가 없었습니다. 마치 큰 대로변 사거리에 신호등이 고장났을 때의 상황과 같습니다. 자동차가 서로 먼저 가려고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옵니다.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립니다. 서로 욕하며 싸웁니다. 이런 때 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교통순경과 같은 좋은 지도자가 있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는데 제대로 된 지도자마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지도자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마치 요즘 우리 나라의 정치세계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상 6장까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7장부터 완전히 달라집니다. 새롭게 출발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새시대가 열리면서 사무엘이 백성들과 함께 만든 것이 바로 기념비입니다. 사무엘은 한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놓고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거기에 새긴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금년은 참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지난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함으로서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 쳤습니다. 물론 전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여파로 전 세계는 다시 테러의 공포가운데 떨고 있습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테러가 많이 있었고, 언제 911과 같은 대형 테러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 어제는 이란에서 강한 지진으로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국내적으로는 금년 초에 대구 지하철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 태풍 매미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치는 계속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게다가 경제는 곤두박질을 하여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점점 높아져 갑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범죄가 더욱 가세 집니다.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이 자살합니다. 참 어려운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가운데 사업과 직장의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말할 수 없는 눈물과 통곡으로 지내온 한해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 가운데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셨고, 가정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셨고, 나라를 간섭해 주셨습니다. 세계와 역사를 섭리하시며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 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가운데 우리를 보존해 주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하여, 새로운 한해를 힘있게 출발하기 위하여, 먼저 내 인생에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며, 주님 앞에 감사로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다시 싸우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된 원인은 블레셋과의 전쟁 때문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가시노릇을 하며 괴롭혔습니다. 날마다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 천명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의 패배가 법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법궤를 앞세우고 2차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1차 때와 같이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3만 명이 죽었습니다. 군사만이 아니라 당시 지도자였던 엘리와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법궤가 빼앗겼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사는 싸울 때마다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싸울 때마다 패한 것입니다. 이제 힘도 없고, 의욕도 없고, 모두가 한숨과 두려움만이 이들을 지배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때 사무엘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명령은 다시 싸우라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죽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길 때까지 다시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과 말씀 앞에 이스라엘은 싸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평화와 안정도 임했습니다. 얼만큼의 큰 승리인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블레셋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신앙은 영적 전쟁입니다. 지난 한해동안 우리는 싸우며 달려온 것입니다. 자신과 싸우고,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가 승리하지 못하고 빈번히 패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잘못했고, 실패하고, 죄지은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릅니다.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이젠 낙심하고, 모든 것 포기하고 항복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다시 싸우라는 것입니다.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이길 때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승리와 안정이 임하기까지, 끝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제목의 책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 참 멋진 말이 아닙니까? 내용도 좋으리라고 분명히 확신합니다. 우리가 1패에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2패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가 인생의 링에서 상대선수의 펀치를 받아 그로기에 들어갔더라도 다시 싸워야 합니다. 도저히 앞에 보이지 않고, 눈이 떠지지 않아 그냥 링에서 내려오고 싶지만, 그래도 다시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이젠 외부적이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핍박과 환란으로 믿는 자를 압박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약하게 만들며 공격합니다. 우리를 한번 두 번 실패하게 한 뒤, 낙심하여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젠 소망이 없다고 속삭입니다. 이젠 끝났으니 두손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실패하고 살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몹시 흔듭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이렇게 우리 속에서 우리를 참소 하며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듭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절망하거나 낙심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싸워야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다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을 높이 세워야 합니다. 승리와 평화와 안정이 오기까지 새해에 다시 싸울 채비로 무장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미스바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미스바는 모든 것의 출발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은 미스바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싸워 승리와 평화를 누리게 된 것도 미스바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의 새로운 출발을 만들었던 미스바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미스바는 사무엘이 주도한 ‘회개운동’ 입니다. 7장 3절 4절에서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우상과 이방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외침 속에 백성들은 모든 우상을 버립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됩니다.

  미스바는 ‘영적각성운동’ 입니다. 5절, 6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이방신을 버린 이스라엘백성에게 사무엘은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거기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습니다. 그 날에 온 이스라엘이 금식합니다. 거기서 모두가 여호와께 범죄 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던 것, 지금까지 바르지 못했던 것, 지금까지 정직하지 못했던 것, 지금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것, 모두를 다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미스바는 ‘성령운동’ 입니다. 7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각성한 뒤, 그들은 기도합니다. 사무엘부터 온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0절에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여호와께서 응답 하셨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임합니다. 불같은 성령이, 폭포수와 같은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충만히 기름 부어주셨습니다. 그 감격과 흥분 속에 사탄의 심장인 블레셋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때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미스바’를 경험하고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회개와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피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던 우리 영혼을 향하여 움직이라고 소리치고 외쳐야 합니다. 잘못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털고 가야 합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약하게 하고, 흔들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내가 예수 믿고 버리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버릴 것 버리지 못하면 새해가 온다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버리고 털어야 합니다. 내 인생에 어떤 전환점을 만들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이 전혀 기도에 힘쓸 때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삽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승리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일어 날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절망과 좌절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용기와 힘이 솟구칩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의 은혜가 촉촉히 여러분의 심령을 적시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기념비를 세우십시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고백하며 감사하십시오. 이제 다시 싸워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담대해 나가야 합니다.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리십시오. 그리고 버리고 털고 가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는 승리와 회복과 평화와 안정이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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