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소망을 잃지 않은 것 (마 25:1-13)

  • 잡초 잡초
  • 309
  • 0

첨부 1



소망을 잃지 않은 것(마25장1-13)


오늘이 12월 28일, 금년 마지막 주일을 지키는 날입니다. 되돌아서 생각해보면 금년 새해 우리가 처음 시작을 할 때 흥분과 기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들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해 뜨는 것을 구경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고 흥분해있었습니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이 되었는데 이제 오늘 1년이 지나고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 이젠 올해도 빛바랜 달력 한 장에 가느다란 숨결을 남겨놓고 있는 시간. 몸도 마음도 연약하여 그때마다 새 힘을 받아 지켜온 날들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껴지나요? 시간은 빠르고 느림의 의미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시간은 깊고 얕음의 의미로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하길. "시간 참 빨리 간다" 라고 말하며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느리게 가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지루함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우리를 지나가는 존재가 아닌 우리 안에 혹은 근처에 깊게 혹은 얕게 쌓여가는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나중에 깊숙하게 들춰볼 때마다 웃음 지을 수 있는 시간들을 쌓아가며 우리에게 놓여진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사람들은‘사건’에 관심을 가지지만 하나님은‘사람’에게 집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아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겪어본 지난 한해는 옛날과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는 그대로였던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세상을 똑같은 일을 하면서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데 햇수가 바뀌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미련한 생각이요,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금년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것을 우리는 다 경험하게 됩니다. 그 하나의 감정은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요, 또 하나의 감정은 지난날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들의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든지 다 마찬가지로 평생 동안 우리 인생들은 후회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평생 동안 우리의 삶에 후회가 끊어지지를 않습니다. 저녁에 우리가 잠자리에 들어가며 하루의 삶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후회스러운 일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후회로써 하루의 삶이 마감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날로 넘어갑니다.


후회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인생인가?

인생이라는 것은 끝없는 후회, 되풀이되는 후회를 하면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끝없는 후회 속에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해를 접고 새로운 일 년을 기다리게 되겠습니다. 지난 일 년을 우리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후회스러운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 일은 안 했으면 좋을 뻔했는데 했으며 그 어느 때인가 우리에게 있었던 이 기회는 내가 꼭 붙잡았어야 될 기회인데, 그 때 그 일을 꼭 했어야 될 일인데 놓치고 말았다. 이런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후회로써 떠오르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어제의 후회가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의 후회가 내일로 이어지고 작년의 후회가 금년의 후회가 되어지고 금년의 후회가 내년으로 이어지는 후회라는 돌로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우리는 한평생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끝없는 후회로 해가 바뀌고 날이 바뀌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한평생 후회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끝없는 후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후회하고 있는 이 후회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도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요? 사람들은 무엇을 그렇게도 가슴 저미게 후회하는가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후회하는 내용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공통된 후회는 시간에 대한 후회, 때에 대한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때 꼭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후회, 꼭 그때 내가 그 기회를 잡았어야 할 일을 잡지 못한 후회, 이 때에 대한 후회, 시간에 대한 후회,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하는 후회인 것 같습니다. 때를 놓치는 후회, 때를 분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대한 후회를 뼈저리게 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때에 대한 후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어떤 사람들에게 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잘하면 되고 용서를 빌면 됩니다. 그러나 이 때에 대한 후회는 한번 때를 놓치면 그 때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우리에게 뼈저린, 돌이 킬 수 없는 후회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후회하는 일 중에 무슨 후회가 많이 있습니까? 우리들 모두가 다 공부에 대한 후회를 한번쯤을 해보았을 것이고 결혼에 대한 후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해야 될 때, 결단해야 될 때, 바꾸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줄여야 될 때가 있고 넓혀야 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라는 것도 자기가 노력하고 애를 쓰면 건강도 지킬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 때를 놓치면 그때는 자기가 지킬 수 없는 그런 상황으로 바뀌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때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때를 잘못 판단하고 때를 놓치기 때문에 뼈저린 후회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모두가 다 경험하는 인생의 뼈저린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성경에서도 이 때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서 3장 1절 이하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범사에, 모든 일에 다 기한이 있다는 겁니다. 늘 지금처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합니다만 일하는 것도 기한이 있습니다. 평생 동안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일 년을 가만히 되돌아 생각해보시고 여러분들이 살아온 지난날들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많은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때를 놓친 것 때문에 후회를 하고,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 때문에, 평생 동안 내가 이 상태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세상만사에 기한이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어리석음 때문에 후회를 하지는 않는지요?

오늘 성경을 읽어보면 때를 놓쳤기 때문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올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늘 늦게 올 줄로 알았습니다. 신랑이 그렇게 갑자기 올 줄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노는 것이 기한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졸다가 신랑이 갑자기 왔을 때 신랑 맞을 준비를 못했고 결국 이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을 때를 놓쳤습니다. 뒤늦게 신랑을 맞으려고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안으로 들어갔고 문은 안으로 닫혔습니다. 뒤늦게 주여, 주여 소리를 질러 사정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가 지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때, 그때까지 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 지경에 우리가 도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문이 닫힐 때까지 우리가 밖에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이를 회복할 수 없을 때까지 우리의 삶이 그런 지경으로 몰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이처럼 때가 아주 중요합니다. 때를 잘 아는 사람,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알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 때를 아는 이  때를 잘 분간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야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때를 얼마나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아느냐?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인가?

이 세상을 성공한 사람은 마지막 날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후회 없이 정말로 행복한 웃음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 년 여러분들의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 여러분들이 많은 일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을 것이고, 회사에서 승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지난 1년 동안 하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러나 오늘 이 마지막 날 여러분들이 지난 1년의 여러분들의 삶에서 어떻게 평가를 하는가? 나는 정말로 만족한 삶을 살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 여러분들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1년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이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요 지난 한해를 되돌아 볼 때 나는 정말로 후회스럽다. 내가 어떻게 저렇게 인생을 살았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후회가 가득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인생을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입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이 용서하는 일과, 용서받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고 싶어 나눕니다.


용서를 위한 기도

그 누구를 그 무엇을 용서하고 용서받기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 위의 당신을 바라봅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이유 없는 모욕과 멸시를 받고도 피 흘리는 십자가의 침묵으로 모든 이를 용서하신 주님! 용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용서는 구원이라고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조용히 외치시는 주님!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기엔 죄가 많은 자신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진정 용서하는 일은 왜 이리 힘든지요. 제가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미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고 깨끗이 용서받았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새 어둠의 뿌리로 칭칭 감겨와 저를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 조금씩 이어지던 화해의 다리가 제 옹졸한 편견과 냉랭한 비겁함으로 끊어진 적도 많습니다. 서로가 용서가 안 되고 화해가 안 되면 혈관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늘 망설이고 미루는 저의 어리석음을 오늘도 꾸짖어 주십시오.

언제나 용서에 더디어 살아서도 죽음을 체험하는 어리석음을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 제가 다른 이를 용서할 땐 온유한 마음을 다른 이로부터 용서를 받을 땐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하루 해 지기 전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먼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잔잔한 마음에 거센 풍랑이 일고 때로는 감당 못할 부끄러움에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지라도 끝까지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랑을 넓혀 가는 삶의 길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주님! 너무 엄청나서 차라리 피하고 싶던 당신의 그 사랑을 조금씩 닮고자 저도 이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렵니다. 피 흘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이를 끌어안은 당신과 함께 끝까지 용서함으로써만 가능한 희망의 길을 끝까지 가렵니다.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용서와 화해의 삶으로 저를 재촉하시며 가시에 찔리시는 주님! 용서하고 용서받는 평화를 이웃과 나누라고 오늘도 저를 재촉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 - 이해인

항복한 자의 삶이 아름답다

깊이 판 샘의 물이 맑고 시원하듯이 깊이 판 광산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광석이 나오듯이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항복으로 얻는 것이며 큰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은 깊이 깨어짐과 빠른 항복을 통하여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듯이 날마다 죽음을 방불한 항복을 모르는 자는, 은혜의 실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시며 하나님은 항복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시간은 우리가 항복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항복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항복을 얻어내기 위한 절대 절명의 순간과 한계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인생의 상처가 영광이 되듯, 성도의 항복은 축복이 됩니다. 사람은‘어디를 가느냐?’‘무엇을 하느냐?’보다‘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항복한 자와 함께 가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터미네이터는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야망, 잔머리, 위선, 가장, 인본주의로 무장된 강한 용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 속에서 대장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항복하기를 기다리셨고, 야곱은 항복되기까지 고난과 싸우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야곱은 21년 만에 맨발이 되었습니다. 얍복강의 전투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항복을 얻어냈고, 야곱은 항복의 포상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맨발과 맨몸으로 산다고 하는 것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산다고 하는 것, 믿음만으로 산다고 하는 것, 불가능을 기도로 해결 한다고 하는 것, 포기하며 산다고 하는 것, 손해 보며 산다고 하는 것, 빼앗기며 산다고 하는 것, 억울하게 산다고 하는 것, 원수 갚지 않고 산다고 하는 것, 악인의 형통을 보기만 해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무모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에게 맨발이 되라 하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도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와 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신발을 벗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몇 켤레의 신발로 무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무장으로 인하여 우리는 늘 자신만만했고 그 자신만만함이 하나님께는 짐이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신을 신으면 안됩니다. 양말도 버선도 벗어야만, 고난도 연단도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으로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또 하나의 고난의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맨발이 될 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왕 같은 제사장이며, 세상속의 신령한 리더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우리에게 맨발이 되라고 하심은,‘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내가 너를 책임져 줄 것이다’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것이다'‘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올 한 해 동안 일 년이 천년같이 힘겨웠던 이유는 항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항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도 항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도, 기도해도, 갈등과 갈증의 포로로 사는 것입니다. 끝없는 내적 갈등과 육신의 쓴 뿌리는 무장된 자아의 열매이며 항복되지 못한 가나안 일곱 족속과 그 잔당들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추격의 산물입니다.

항복은 순종으로 표현 될 때 아름답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백번의 예배보다 백번의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번이라도 순종하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예배와 순종 없는 기도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타성에 빠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것은 낳지 않는 알을 품고 있는 자고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항복과 순종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항복은, 영적전쟁 가운데 가장 치열한 전투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수십 년 학습되고 세뇌된 자아와 사단의 세력들이 그냥 순순히 놔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항복의 은혜로 무장되어야만 합니다. 은혜의 무장으로만이 우리는 물질, 쾌락, 안주, 게으름, 패배주의, 인본주의에서 항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야, 너 맞고 할래. 그냥 할래'. 하나님도 성도들에게 그렇게 물으십니다. '맞고 순종하려느냐? 아니면 그냥 순종하려느냐?' 얼른 항복하고 순종함이 신상에 좋을 듯합니다. 깊은 항복 속에 깊은 샘이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항복한 자의 행복 그것만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령한 축복이 아닐까요? 항복은 약한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고백이며 신뢰의 표현입니다. 항복은 단념이나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항복은 약할 때 강함 주신다는 믿음의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기려 하는 자는, 일생을 진자로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 항복한 자는 평생을 이긴 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진 자 그는 진정 강한자요, 위대한 인생입니다.

한해를 돌이키면서 목사로서 솔직한 심정은 우리 교회가 사람이 많이 나오고 부흥하는 것 물론 목회자의 바램일 수도 있겠지만 한해를 보내면서 그리고 한해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목사의 더 깊은 바램이 있다면 저희 영암교회에 나오는 모든 성도님들이 모두가 예외없이 다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되면 목사도 참 좋습니다. 더 귀한 소원과 바램이 있다면 저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들이, 복음의 확장이 많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가치 있게 쓰임 받는 것이 목사의 바램입니다. 죽어 가는 영혼 한 영혼 한 영혼이 저희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방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작은 것, 작은 사역이지만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교회가 조그마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됩시다. 바로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과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한 해 동안 우리를 인도하셨던 하나님, 우리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풍성히 채워주셨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신 주님께 마지막 시간을 주님께 바칩시다. 한해를 주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부정적인 씨앗을 뿌리지 말자

한해를 우리가 마감하면서 머릿속에서나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꼭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절대로 부정적인 씨앗을 뿌리지 말아 합니다. 회개와 불평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평 불만 만을 말하는 사람은 불평 불만 만이 앞에 생기지만 긍정적이고 감사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바라고 기도하는 대로 되는 법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생각을 반영하고 또한 그대로 씨앗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함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씨앗을 뿌리기 바랍니다. 자신이 부정적인 스타일이라고 하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사람들과 항상 교제하십시오. 그런 사람과 교제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장 힘들었던 때, 절망했던 때만을 말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우시고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했던 것을 먼저 떠 올려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바로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왜 우리가 절망을 말해야 합니까?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다른 것을 주고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가끔 선물할 일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을 다 전달하지 못해서 아쉽고, 선물을 받을 땐 쑥스러움에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줄줄도 알아야 하지만 받기가 서툴러서 미안할 때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보낸 간절함은 보이는데 받은 고마움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신 소망과 은혜를 크게 보면서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소망을 잃지 않은 이유

만델라 대통령의 이야기 중 감명 깊은 것이 있습니다. 몇 십 년 간 옥고를 치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 소망을 잃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합니다.“자신은 감옥에 있을 때 창틀을 바라보지 않고 창틀 밖에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았고 밖은 태양을 보았다고!”

맞습니다. 복음이란 소망이며 빛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는 대로 가고 듣는 데로 갑니다. 믿음의 소리를 들으면 믿음 있는 자가 됩니다. 소망의 것을 기대하면 소망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밝은 것을 사모하면 인생이 밝게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믿음은 바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다음해에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인생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소망만 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지금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전적으로 은혜가 아닙니까?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그런 말이 있어요. "하나님이여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죄 아닌 것이 있었습니까?" 죄 아닌 것이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의 나는 이대로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 우리가 율법의 심판 앞에서 자기를 비판해 볼 때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없어지고 맙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그 큰 은혜를 긍정하고 수용하고 믿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꿔 놓는다고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란 깨달음에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은혜가 중요한 것이요. 그걸 깨닫게 하신 것이 중요한 것이에요.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게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어떤 시각에서 지난 일 년 동안을 되돌아보고 있습니까? 후회할 것도 없고 자책할 것도 없고 또 그리고 절망하지도 마십시오. 깊이깊이 생각해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대로가 은혜요, 현재가 은혜입니다. 받은바 은혜 너무너무 큽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은혜로 느끼고 그리할 때 이 은혜는 솟구치는 생명력으로 밝은 미래를 창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힘이요, 용기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오직 은혜, 그 은혜 가운데서 새해를 맞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금년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들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후회가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후회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사실은 새해를 다가오는 한해로 건너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의 후회의 징검다리가 감사의 징검다리로 바뀌어서 후회의 징검다리로 새로운 해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여 나가는 그런 믿음의 준비, 그런 믿음의 삶을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다짐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