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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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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본문: 히 12:1-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히브리서는 극심한 박해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던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로마 제국에는 A.D. 64년부터 네로 황제의 대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혀지기만 하면 무조건 사형에 처했습니다. 박해 초기에는 믿음의 힘으로 이겨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고 피곤하여 신앙을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신앙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신앙생활을‘달리기 경주’에 비유하여 박해받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주자들이 승리를 바라보고 상을 받기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기왕 달리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달려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천국도 가고 축복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결승지점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경주자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달리기 할 때는 지켜야될 규칙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경주에도 꼭 명심해야 할 규범이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영적 경주에 임해야 합니까?
첫째, 믿음의 경주자는 몸을 가볍게 해야합니다.
경주자는 절대로 무거운 옷을 입고 달릴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도로 달리기에 적절한 런닝셔츠를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옷 자체가 짐이 되고 얽매이는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신앙의 경주에도 얽매이기 쉬운 것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죄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영적생활은 정상적으로 달릴 수가 없습니다. 죄는 의식적으로 벗어버리고자 할 때 끊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기도가 막히고, 나만이 아는 죄가 자꾸만 나의 양심을 괴롭힙니다. 성도가 마음이 불안해지면 능력 있는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숨은 죄로 인하여 자신이 버림받을까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고전9:27) 오늘도 나를 넘어지게 하는 죄가 무엇인지 늘 살피면서 숨은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도록 신속히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경주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말씀대로‘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것’은 무엇입니까? ‘필요 없는 것’을 말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짐을 손에 들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면 어떻게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 불필요한 것은 다 던져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불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의심은 필요치 않습니다. 교만도 필요치 않습니다. 탐심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욕망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악한 습관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얽매이기 쉬운 죄’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나쁜 습관을 고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습관, 악한 것을 버리고 얽매인 것과 죄악을 던져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창세기 35장은, 야곱이 히위 족속과 전쟁을 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자, 야곱은 전쟁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기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과 가족에게 말했습니다.
“이방 신상(神像)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우상을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는,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의복을 바꾸어서 깨끗한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온전한 믿음 가지고 나가야 산 제사, 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舊習)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까? 옛 사람의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1981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차려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국 땅에서 돈을 벌고 출세하다보니, 본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기는 했지만, 그는 곧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항상 술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간에 물이 찼으니 당장 술을 끊지 않으면 몇 달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구나. 내 죄 값을 치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과거가 참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떠났던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며 죄를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건강을 주시옵소서.’ 3개월 동안 아침에는 새벽 기도로 저녁에는 철야 기도로, 매일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시면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과 권능을 주셔서, 질병으로 죽어가던 몸이 치료받고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주신 하나님, 이제부터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는 자동차 정비 공장과 판매 회사를 합병해 자동차 회사를 만들고 ‘하나님, 이 회사는 하나님의 회사이고, 저는 하나님의 회사에서 일하는 일꾼, 종업원입니다. 하나님이 붙드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아침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사업도 성공하고 물질의 축복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받은 재물의 축복에 보답하기 위해서 남미의 여러 나라에 선교 활동까지 시작했습니다. 교만한 사람, 불순종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책망을 받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병들어 죽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음의 경주자는 인내하면서 달려야합니다.
믿음의 경주자는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와 같습니다. 인내하지 않고서는 도중에 주저앉기 쉽습니다. 믿음생활 가운데도 어려운 고비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 인내로서 그 위기를 잘 넘겨야 합니다. 경주자는 끝까지 인내하면서 달리는 결심이 중요합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합니다. 힘들 때마다 아브라함의 인내, 요셉의 인내, 다윗의 인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내는 반드시 값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달리기 경주에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에서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숨이 차서 꼭 죽을 것만 같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그래서 대개 프로들은 끝까지 가지만, 아마추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 우리의 신앙생활도 장거리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낙심할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게을러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에도 나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목숨 바쳐 열심히 충성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신앙을 통해서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도전서 9장 24절 말씀에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상 받는 사람, 축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끝까지 달린 사람에게 상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8절 말씀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씨를 심었어도 인내하며 기다려야 열매를 거두지 않겠습니까? 농사짓는 것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것, 자녀를 키우는 것, 우리 인생 만사가 다 인내해야 결실을 맺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할지라도, 온전한 신앙을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인내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달리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달리기 경주자들은 목적지까지 가기도 전에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도중에 ‘포기할까, 말까?’ 하고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경주하는 사람은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달려야 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렵고 숨이 차다고 해서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일단 달리기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피곤하고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새벽 기도, 철야 기도, 구역 예배에 다 참석하고 재직으로서 충성하다 보면 피곤하고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피곤하여 낙심하게 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일단 시작했으면 끝까지 달려야지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피곤하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30∼31절에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仰望)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젊다고 다 새 힘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도 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낙심하고 포기하면 젊은 사람도 자살합니다. 그러나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꼭 장정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는 것처럼 하늘 높이 날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피곤하고 낙심했다고 해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사람에게 주신 축복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시편 37편 9절 말씀에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땅의 축복을 주십니다. 또한 인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마 24:13). 소망이 이루어집니다(롬 5:4).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됩니다(히 10:36).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약 1:4). 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12).
셋째, 믿음의 경주자는 결승점을 바라보며 달려야합니다.
달리는 사람에게는 다 목표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목표 지점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바로 그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또한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여 도움도 받습니다. 다른 것을 쳐다봐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쳐다봐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을 쳐다봐서도 안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세상과 환경을 보면 불안합니다. 오직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대통령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재벌들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일가 친척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하고 낙심하고 맙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인들, 경제인들, 사업가들이 부정부패하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보고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부활의 승리를 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 승리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말씀에는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사밧은 주변 국가들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도저히 대적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대하 20장 12절에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기만 했는데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적군을 다 물리쳐 주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환경이나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전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경기도 개성시 북쪽 16Km 지점에 솟은 천마산 아래에는 박연폭포가 있습니다. 그 폭포를 향하여 가는 길에 두 절벽이 마주보며 만나는 곳이 있는데 그 간격은 약 1미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건너뛰는 사람이 몇 사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지에서의 1미터라면 어린 아이도 건너 뛸 수 있지만 천길 만길 되는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건너뛰자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결단의 바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밑을 바라보지 말고 평지라고 생각하며 앞에 있는 목표만 바라보고 결단을 내려서 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이 1미터의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경주자는 끝까지 경기의 룰을 지키면서 우리 주님처럼 바른 경주를 해야합니다. 그때 우리의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위를 저벅저벅 걸었지만, 바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무서워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4장 31절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疑心)하였느냐?”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베드로가 물위로 저벅저벅 걸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삶에 보람이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 이는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두려움·공포·의심이 생겼을 때는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다. 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한 목수 아버지가 어느 날 못질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그것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큰 망치로 작은 못을 탕탕탕 박는 것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못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얘야, 못질을 잘 하려면 네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단다. 못만 쳐다봐라. 그러면 처음에는 못이 작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점점 크게 보인단다. 그렇게 해서 못 대가리만 때리면 되는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고 한눈을 팔면 손가락을 찧고 말 거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한눈을 팔아서 그렇습니다. 잘못된 사람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다 한눈 팔아서 그렇습니다. 이것저것 한눈 팔다가 자빠지고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만을 향해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목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동대문 시장에서 한 부부가 가방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신앙이 좋았기 때문에 시간만 나면 시장 주변의 지하도를 다니면서 틈틈이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아내가 전도를 해도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5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전도를 나가긴 해야겠는데 가게도 가봐야 하고 병원에도 가봐야 하고 바쁘다 보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전도를 포기할까?’그러나 이 아내는 ‘하나님은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바쁜지. 병원에도 가야하고, 가게도 운영해야 하고, 전도도 해야 하고. 그렇지만 저는 결코 전도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그래도 이 아내는 계속해서 전도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만 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남편 없이 저 혼자 가게를 운영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입원하고 혼자 가방 공장을 운영하고부터 주문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단체 주문이 들어오고, 멀리 일본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남편하고 함께 일을 할 때보다도 몇 배의 매상이 올랐습니다. 그러니 남편도 놀라고 자신도 놀라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조롱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 믿더니, 정말 하나님이 도우셨나봐. 정말 하나님이 있긴 있나봐.” 남편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깨닫고 퇴원하자마자 곧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인내하며 전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사업도 번창케 하시고 남편도 구원시켜 주신 것입니다.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리스트는 집에 놀러온 친구와 음악에 관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습니다. 한참 지난 뒤 친구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하며 돌아갈 뜻을 비쳤고 리스트는 친구를 역까지 전송했습니다. 그런데 길가는 중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리스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계속 작곡이야기만 했습니다. 친구가 소나기가 오는데 이야기만 하느냐고 하자 리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씨가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듯 나도 날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음악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면 환경이 나쁘게 변해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결승점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경주자는 앞만 바라보며 달려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자도 좌우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물질을 바라보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먼 훗날 승리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중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안타까움으로 부르짖는 말 가는데 한마디가 '네가 이렇게 나보다 먼저 가면 나를 누구를 보고 살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 아무리 귀하고 가까운 자라도 사람의 얼굴을 보고 살다가는 낙심할 때가 있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무엇을 보고 살다가는 언제든지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세상에 무엇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예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살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죽을 때도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죽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악한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 얼굴을 들어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우러러 보니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서 계신 것이 보였다고 하였습니다.(행7:55) 스테반은 죽을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변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에도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죽어야 되겠습니다. 고전13장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 때에 예수님의 얼굴을 친히 대면해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언제든지 우리의 눈이 영광의 주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부터 영생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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